그의 도토리 그림을 보면서 사진과 회화의 치열한 영역다툼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욱 강렬한 시각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가를 경쟁하는 것이다.
글 : 신항섭(미술평론가)
자연물을 자연 상태로 보았을 때와 회화로 재현해서 보았을 때 느끼는 미적 감흥은 전혀 다르다. 안정균의 작업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도토리라는 작은 열매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실제와 회화를 분간하기 어렵게 만든다. 분명히 그림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아도 실제를 방불케 하는 리얼리티로 인해 실제와 허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러한 모호한 경계야말로 극사실적인 묘사가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의 도토리 그림을 보면서 사진과 회화의 치열한 영역다툼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욱 강렬한 시각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가를 경쟁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완성도 높은 손의 기능은 사진의 해상도를 앞선다.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극렬한 묘사력은 사진보다 높은 리얼리티를 실감케 하는 것이다.
그가 도토리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토리는 가을열매로 우리나라 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일상적인 대용식의 재료로 우리에게는 친숙하다. 하지만 그 대용식의 재료가 그림의 소재로 이용되는 일은 드물다. 따라서 새삼 그의 그림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오는 도토리에 대한 인상은 일정한 크기의 작은 알맹이가 아주 영특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어디 한 군데도 틈새를 두지 않는 두껍고 견고한 갈색 껍질은 마치 기름 바른 듯싶은 모양새로 작은 거인을 연상시킨다. 이와 같은 모양새에서는 도토리묵의 식재료라는 사실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그는 이처럼 도토리를 생경한 이미지로 변환하여 보잘 것 없는 존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뭇가지에 달린 도토리를 비롯하여 수확한 도토리를 한데 모아 놓은 그 숫자를 헤아리기조차 힘든 군집의 상태를 재현함으로써 놀라운 손의 재능과 집요한 작가의식에 놀란다. 이는 확실히 극사실주의 회화가 가진 시각적인 충격이다. 그 충격은 전통적인 리얼리즘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사진의 해상력을 능가하는 극미한 묘사력을 통해 리얼리즘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첫댓글 리얼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