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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枝庵 上樑文
청라 추천 0 조회 34 20.02.24 08:1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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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0.02.24 09:57

    첫댓글 코로나로 심란한 저녁, 아버님이 내려주시는 차를 오래 마시며, 모처럼 옛 다인들의 추억을 떠올렸다. 우록 김봉호 선생님이 해주시던 추사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일품.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던 "蔬荀氣"에 대한 전거를 찾다, 우연하게도 일지암 복원에 관한 자료들 가운데 반가운 이름들을 다시금 만났다. 해남 다인회 '할아버지들'. 봄이면 야생차를 따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덖음차를 만드는 것이 해남 다인회의 큰 행사였였는데, 차를 덖는 날이면 언제나 아버님의 진두지휘하에 그 많은 어르신들이 일사분란하였다. 열 몇살이던 나는 늘 '정 선생 따님'이라 불리며 어르신들 사이에 뻘쭘하게 끼여 있었다.

  • 작성자 20.02.25 12:31

    빼어난 한학자이셨던 김두만 선생, 근대의 마지막 풍류다인이셨던 김봉호 선생, 주머니 사정이 넉넉찮은 다인들에게 늘 아낌없이 베푸셨다던 박동선 선생..... 내가 얼마나 큰 선생들의 품 속에서 자라고 있었는지 까맣게 몰랐건만 이제야 머리가 굳고 나이를 먹어 선생들의 귀함을 알아차리자니, 아, 이미 모두 고인이 되셨구나. 아버님을 친 자식처럼 아끼셨던 우록 선생님이 조금만 더 오래 계셔주셨다면 세상이 얼마나 기름졌을까! 더는 감로수와 같은 말을 청해 들을 어르신들이 없음을 애도하며, 선생들이 남겨주신 다완만 매만진다.

  • 작성자 20.02.24 08:31

    일지암 복원 추진위원회의 현장 연락장소인 "전남 해남읍 학동 811 대둔학회"는 우리 가족이 아침재에서 오랜 세월 이웃하여 살았던 우록 김봉호 선생의 자택주소로 보인다. 나이가 드셔 병약해 지신 선생은 더 자주 고개를 넘어 아침재로 마실을 오시곤 하셨더랬는데, 몸이 성치 않으신 까닭에 고개를 넘다가 다치시는 일이 잦아지자 아예 아버지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우록 선생님의 댁에 들어가 선생의 수발을 들기도 하였다. 모두가 참 극진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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