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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枝庵 復元 趣旨文
일지암이라 함은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소재 대흥사 사찰내에 있었던 한 암자입니다. 지금은 주춧돌과 깨진 기와가 남아 있을 뿐 옛 모습은 간데없지만 문헌또는 구전에 의하면 이 암자는 ㄱ자 四간의 그 셋째 간을 다실로 꾸민 조그만 가람을 중심으로 유천과 연지와 자죽으로 둘러싸인 유수(幽遂)한 구조였다고 합니다.
이 일지암은 보제존자 초의대종사가 1826년(순조26년)에 결암(結庵)하였습니다.
초의스님(俗名 張意恂)은 전남 무안 삼향에서 출생, 15세 때 나주 남평의 운흥사에서 축발하고 19세 때 대흥사로 옮겨 대교수학 후, 잠시 화순 쌍봉사, 경주 불국사에 머문 적이 잇고 일지암 결암 후에도 금강산 등 명산과 경향각처를 자주 주유하였으나 81세에 입적할 때까지 줄곧 여기에 머물렀습니다. 초의스님은 여기에서 많은 업적을 쌓았습니다. 즉 經과 禪에통달했으며 시문, 서, 화 삼절이요, 특히 사라져가는 다도를 바로 세운 茶人이었습니다.
한국의 陸子羽, 한국의 蘇廣, 혹은 한국의 茶仙이라 일컫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그리고 다도의 진수를 밝힌 <다신전>과 <동다송>을 저술하였으며 멋과 맛을 깊고 넓게 터득한 선비와도 상통했던 초의스님의 일지암을 복원하는 일은 우리나라 다도를 바로 세우는 捷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동다를 되찾고 이를 널리 振作할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도의 뿌리를 되살리는 일과도 같은 일지암 복원불사에 江湖諸賢의 협조 있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1976년 9월20일
일지암 복원 추진위원회
현장 연락장소―전남 해남읍 학동 811 대둔학회 전화 : 해남 3400
일지암 복원 落成에 즈음하여 초대의 말씀
梅花滿發하고 冬柏爭艶하는 이 가절에 선생님 존체 균안하실 줄 믿습니다.
아뢸 말씀은 저희들이 한국차문화 啓導를 標榜하면서 捷徑의 사업으로 추진 중이던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 복원공사가 완공되어 그 낙성식을 4월6일 오전 10시에 갖겠습니다.
한국의 차문화 발전에 한 획을 긋는 이 사업에 물심양면으로 협조하여 주신 선생님을 이 제전에 모시고자 합니다.
바쁘시더라도 期於 枉臨하셔서 좋은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1980년 4월
한국차인회회장 李 德 鳳
대흥사 주지 智 牛
일지암복원위원장 金 鳳 皓
合 掌
一枝庵 重建序
乙未年夏閏六月에 한 庵子를 湖南勝地大興寺頭輪峰下 九曲溪上 烟樹之間 白雲之下 北菴之南 南菴之北 山腰舊址 窈窕幽明之處에 重建하였으니 이것이 飄然情舍一枝菴이니라.
이 일지암은 本寺 13大宗師인 草衣禪師가 始建하였으며 中間에 한번 重建한 庵子로서 場圃築前 鑿成一池 하였으며 手栽奇花異草 紫?鳥? 庭除, 紫霞擁門 白雲入室 松風拂軒 蘿月暎窓하여 가히 幽人이 起居할만한 곳이더라.
이곳에 雲林高土 宏儒碩士가 從遊하였으며 江湖詞伯이 吟詠한 記錄이 歷歷하니라.
本是 草衣禪師는 博究八萬大藏經 不惰戒律 禪餘博涉經史 兼究茶道하였으며 海居 홍현주의 請으로 동다송을 著述하였으니 이는 육우의 茶經과 優劣을 가릴 수 없는 고로 後人들이 그를 [東國의 茶宗]으로 推仰하였느니라.
원래 우리나라 茶道는 멀리 新羅時代부터 由來하였거니와 南方 山野各處에 茶樹가 尙存하고 있어서 이는 茶 가 널리 愛用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近世의 茶風屢經은 叔世之源이로다. 이로써 洞察컨데 茶道의 興旺 不興旺은 國政의 善治不善治와 關係한다 아니할 수 없느니라.
現下 邦道全盛 勢列列强함에 여러 茶人들이 茶道를 復興하려 할세, 復興기 道는 先欲之其宗이라 此一枝菴重建之好?緣이 施主하였기로 直視始工 同年 十月 訖工 益庚申年四月 落成式을 擧行함에 있어서 이 序文을 쓰다.
一枝庵 上樑文 [1]
靜觀萬物
劫數懷成住壞空 常理有消長進退
是以
廖渴大海?渴爲瀝劫之盡也 嵬峨泰山崩頹成沙理之窮也
況其混沌之內
獨能剛固 何不盡窮
惟此一枝庵
百歲劫壽盡而空 永歲常理窮而廢
射影蟄於庭中 夷田巢於壇側
但見左右牛羊放牧竹松狼藉增濊
如聞晝?陰魂泣訴風雨慇懃助亮
藤蘿榮路差似庵?鳥鼠同?之所
荊?遮空?成業海禍惡不息之處
有儒佛?茶群眞
四海文客 彌天畵伯
眞感幽興募良緣於入域
性懷特發遂至願於十載
乃成登玆樓以搖?乘暇日而消憂
方得憑軒檻以遠望向北風而開襟
占氣侯景 揆節伺辰
散紅流出於奇花之源 嫩綠凝?於嘉木之岸
淑姿皓月如臨石鏡之峯 幽馥紫霞正對香爐之岳
於是乎?察時今
歲次協洽 月旅林鍾
辛丑繞日 乙未御辰
修樑豊柱幽房靜室陰映於林間
開戶放門芳卉?紅香濕於澗壑
漢漢高山深谷??泉石之膏盲
曄曄紫芝可以療饑煙霞之痼疾
枕流可洗聾俗之耳 潛跡可緘愼言之口
老栢蒼松蘇勝舊之芳姿 江燕林鶯獻賀新之淸唱
兒卽偉兮抛樑東
榮枯盛退古今同 雲橋架壑揷靑空 底物紫雲?終不見
兒卽偉兮抛樑西
無妨俗客到幽捿 多荒石搖正如梯 多少橋?橫九曲
兒卽偉兮抛樑南
偏憐一?緣波涵 雙峯磨漢碧如藍 嶺外澄瀛連萬里
兒卽偉兮抛樑北
晝?不息除紛惑 鬱鬱綠陰幽興極 林外潺緩石澗流
兒卽偉兮抛樑上
幽懷不盡登高望 天河萬里?銀浪 方覺江山急雨過
兒卽偉兮抛樑下 重陰綠樹時維夏物色懷新氣味淸
伏願上樑之後 追晦鄙恥散去 福善嘉慶驟集
四依之俊傑熟讀陸羽之三篇
六和之賓朋飮渴盧今之七椀
臥看晴天浮雲解醒宿醉之氣
邀來碧澗明月蕩?昏寐之意
紫荀之香與乾坤而永大
白兎之味將一月而無窮
海南茶人會
金斗萬 金鳳皓 朴容壕 梁基泰 梁載坪 劉俊植
趙周元 全春基南琪祐 金濟炫 林璂洙 鄭宰洪
朴奉炫 韓炳壽盧時康 金常宗 尹光鉉
獻文
己未年 閏六月 十日 海南茶人會一同 獻撰
조용히 우주만물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성겁, 주겁, 괴겁, 공겁을 거쳐 재액을 품으며
그 이치는 항상 모자라면 길어지고 나아가면 물러나는 자연의 섭리이다.
이 때문에
큰 바다의 넓고 깊은 물도 말라 없어지면 오래도록 물이 흘러 다함이요,
아미산같이 크고 괴이한 산도 모래가 되는 이치로 다하게 된다.
하물며 자연 그대로 일 때,
홀로 강하다고 하지만 어찌 다 함이 없겠는가.
오직 이곳 일지암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 수명이 다하여 공허하게 될 것이고
긴 세월 지나면 항상 다함의 이치에 의하여 폐허가 될 것이다.
곤충의 유충은 흙속에서 꿈틀거려 나오고
날다람쥐는 단 옆의 숲에 둥지를 틀 것이다.
다만 보이는 것은 좌우로 소와 염소를 놓아기르니
대나무 소나무 사이로 어지럽게 뛰어놀고
마치 들리는 것은 밤낮으로 떠도는 귀신이 울면서 하소연한 것 같은데
비바람도 은근히 슬픔을 자아낸다.
등나무 넝쿨이 궂은 길에 엉클어져 해가지는 곳에서는
새와 쥐가 같은 굴속에서 살게 되고
가시덤불이 하늘을 가리니 업보의 세계를 이루어 재앙이 멈추지 않게 된다.
불가와 유가에서는 참된 이에게 차를 권하는 이가 있었다.
글 재주꾼 그림 그리는 화백들은 온 세상에 가득하니
참된 느낌이 그윽이 일어나고 고상한 생각이 특별히 솟아난다.
널리 훌륭한 시주자를 모집하여 이 집을 완성하고
한가한 틈을 타 우러러 바라보면서 근심을 없애준다.
마침내 오랜 소원 이루고 비로소 집 난간에 기대어
멀리 북쪽 풍경 바라보니 마음속이 후련해진다.
그리고 여기서
기상을 점치고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며
절기도 헤아리고 날씨도 살피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 바치는 붉은 꽃은 진귀한 꽃밭에서 얻어 내고
연한 초록색 잎은 아름다운 나무가 서 있는 언덕에서 나온다.
아리따운 자태의 밝은 달은 거울 같은 봉우리에 떠 있는 것 같고
그윽한 향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노을은 향로봉에 걸려있다.
여기서 시절을 살펴보니
해는 기미요, 달은 음력 6월이다
신축의 날이요 을미의 시다
튼튼한 기둥에 들보 얹고 꾸밈이 풍만하고 조용한 집 그윽한 방은
숲 사이로 그늘져 보인다.
방문 열고 대문 열면 향기로운 붉은 꽃이 휘날리는데
산골물이 흐르는 골짜기에도 향기에 젖어든다.
넓고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물은 구불구불 흐르며
아름다운 자연의 흐름도 어둠도 그대로 드러내고
윤기 있는 자주빛 버섯은 굶주림 면해주고
산허리에 둘러있는 안개는 걷힐 날이 없다.
무지하고 깨치지 못한 사람의 귀는 침계루 아래 흐르는 물이 씻어주고
신중히 말하는 사람의 입은 종적을 감추듯이 닫게 한다.
늙은 잣나무와 푸른 소나무는 좋은 경치에서 아름다운 자태 뽐내고
물위의 제비와 숲속의 꾀꼬리는 새로이 맑은 노래 불러 하례한다
어영차 들보를 동쪽에 드니
구렁에 다리 놓은 운교는 푸른 하늘에 솟아있고
아래 바닥에 서있는 자줏빛 왕대나무는 마침내 볼 수가 없지만
사람의 영고성쇠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어영차 들보를 서쪽에 드니
험준한 돌길은 마치 사다리 같고
크고 작은 다리는 아홉 구비 돌아 흐른다.
속세의 나그네 쉬어가도 무방하리
어영차 들보를 남쪽으로 드니
두 봉우리 물에 비춰 푸르기가 쪽물 같고
고개 너머 큰 바다는 멀리 연해 있고
외롭게 젓는 노는 파도를 탄다
어영차 들보를 북쪽에 드니
풀 나무 우거진 숲은 녹음이 짙고
숲 밖의 개울물은 돌 사이를 흐르며
낮과 밤으로 쉬지 않고 걱정을 덜어주네
어영차 들보를 위로 드니
은하는 멀리 은물결 번득이고
마치 강과 산에는 소나기가 지나간 것 같네
그윽한 회포는 높은 산에 올라봐도 다하지 않네
어영차 들보를 아래로 드니
푸른 숲 짙은 그늘 우거진 여름철이요
좋은 경치 맞으니 속이 시원하고 심기도 맑다
두건 벗어 이마를 드러내고 정자에서 잠드네
바라건데 들보를 올린 후로는 후회와 부끄러운 일은 흩어지고
복되고 즐거운 일만 있게 하소서
지덕을 갖춘 선비에게는 육우의 삼편을 숙독케 하고
가까운 손님에게는 노동의 차 일곱 사발을 마시게 한다
누워서 맑게 갠 하늘의 뜬구름을 보고 지친 몸을 일으켜 깨워
먼 시냇가 밝은 달을 맞아 사리에 어두운 마음을 씻는다.
좋은 차향기는 하늘과 땅이 오래도록 함께 하고
깨달음의 맛은 장차 해와 달처럼 한이 없으리라
첫댓글 코로나로 심란한 저녁, 아버님이 내려주시는 차를 오래 마시며, 모처럼 옛 다인들의 추억을 떠올렸다. 우록 김봉호 선생님이 해주시던 추사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일품.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던 "蔬荀氣"에 대한 전거를 찾다, 우연하게도 일지암 복원에 관한 자료들 가운데 반가운 이름들을 다시금 만났다. 해남 다인회 '할아버지들'. 봄이면 야생차를 따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덖음차를 만드는 것이 해남 다인회의 큰 행사였였는데, 차를 덖는 날이면 언제나 아버님의 진두지휘하에 그 많은 어르신들이 일사분란하였다. 열 몇살이던 나는 늘 '정 선생 따님'이라 불리며 어르신들 사이에 뻘쭘하게 끼여 있었다.
빼어난 한학자이셨던 김두만 선생, 근대의 마지막 풍류다인이셨던 김봉호 선생, 주머니 사정이 넉넉찮은 다인들에게 늘 아낌없이 베푸셨다던 박동선 선생..... 내가 얼마나 큰 선생들의 품 속에서 자라고 있었는지 까맣게 몰랐건만 이제야 머리가 굳고 나이를 먹어 선생들의 귀함을 알아차리자니, 아, 이미 모두 고인이 되셨구나. 아버님을 친 자식처럼 아끼셨던 우록 선생님이 조금만 더 오래 계셔주셨다면 세상이 얼마나 기름졌을까! 더는 감로수와 같은 말을 청해 들을 어르신들이 없음을 애도하며, 선생들이 남겨주신 다완만 매만진다.
일지암 복원 추진위원회의 현장 연락장소인 "전남 해남읍 학동 811 대둔학회"는 우리 가족이 아침재에서 오랜 세월 이웃하여 살았던 우록 김봉호 선생의 자택주소로 보인다. 나이가 드셔 병약해 지신 선생은 더 자주 고개를 넘어 아침재로 마실을 오시곤 하셨더랬는데, 몸이 성치 않으신 까닭에 고개를 넘다가 다치시는 일이 잦아지자 아예 아버지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우록 선생님의 댁에 들어가 선생의 수발을 들기도 하였다. 모두가 참 극진하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