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4회차]
복성이재-치재-봉화산-광대치-월경산-중재
6월 12일(토) 대간4구간은 흐림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 "남아공"은 뭐의 약자지?"
"남아공화국의 약자"
"그런 나라도 있니?"
"없으란 법은 어디있어?"
우리나라와 그리스가 예선 첫경기를 하는 날 입니다.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일기 예보도 있으며
실제 새벽부터 서울에는 많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백두대간이라는 더 높은 산줄기 속으로 떠나 갑니다
[산행 개념도]
오늘 산행도 그렇게 힘들지 않는 편안한 산행이 되겠습니다
"복성이재"에서 "중재"까지 도상거리 12.1km의 대간길을 걸으며
"봉화산 919.8m"를 오르고, "월경산 980.4m"를 지나 갑니다.
특기사항은 이제까지 "전라북도" 속에서만 놀다가
"경상남도"와 접도구역으로 들어 가는 것입니다.
[함양 휴게소] 오전 10시 20분
비 내리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들어 서니 빗방울이 사라집니다.
이제까지 세번의 대간길을 갈때 꼭 들렸던 "함양 휴게소"
자꾸 북쪽으로 전진을 하니 앞으로는 이 휴게소에 들릴 일이 없겠군요.
하지만 한번은 더 와야 할듯....
아직 종주하지 못한 "지리산 종주-실제 백두대간1구간-지리산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를
가려면 한번더 와야겠지요? 아마 8월 넷째주 주말이 될듯한데...
물론 중산리에서 시작하면 모르지만, 성삼재에서 시작하면 틀림없이 다시 올겁니다.
우리 14기는 "성삼재"에서 "천왕봉"으로 올라야겠지요? ㅎ
"중산리"에서 오르자구요? ㅎㅎ "중산리"에서 오르는건 "성삼재"보다 두배 이상 힘들어요
[복성이재] 11시 2분
"별을 보고 점을 치던 곳"
"복성이재 卜星里峙"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卜星里峙"는 좋은 점괘의 내력으로 이곳에 상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 마을은 福星마을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는군요.
[단체 기념사진]
언제 다시 이곳 "복성이재 卜星峙-福星里峙"에 오겠는가~
단체사진 찍는 것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세련되 갑니다.
['복성이재'에서 '봉화산'까지 구글어스]
오늘 산행에서 제일 힘든 구간입니다.
1. 복성이재(11시8분)-(22분)-치재(11시30분)-(42분)-"봉화산 熢火山 919.8m"(12시12분)
산행시간 : 1시간 8분
오늘은 산행기를 특별히 쓸 얘깃꺼리가 없습니다.
제가 가방끈이 좀 짧아서 이기도 하고, story-history가 없는 산들이기도 해서 입니다.
그래서 산길을 걸으며 씰데없는 얘기들만 쭝얼거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을 위해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산행기는 별 도움이 않되실겁니다.
시간 낭비 하지 마시고 이 산행기 보시는 걸 접기 바람니다.
잼없다고 나중에 항의해도 책임 지지 않습니다.
[산행들머리] 11시 8분
기상청의 예보와는 달리 이곳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산행이 끝날때까지 빗방울 구경은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시원해서 산행하기엔 아주 좋은 날씨였습니다.
비 핑개로 오늘 참가하지 못하신 분들은 아마도 후회막급이실겁니다.
"나중에 땜빵하지~뭐~" 이렇게 위안 하실지 모르지만 '땜빵'하기가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약 오르실까?
['치재'로 오르는 길]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기상청은 국민들로 부터 떼거지로 욕을 먹고 있읍니다
'기상청'이 아니라 '구라청'이라고 씹어댑니다
그런데....씹지만 말고 저 같은 유능한 사람을 기상청장으로 보내 주세요!~
제가 기상청장을 하면 그렇게 까지는 욕을 안먹을거라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ㅎㅎ
우리나라 기상청의 예보 적중률이 75%라고...그게 세계적 수준 이상이라고 자랑합니다만,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1년에 비오는 날이 365일 중에 50여일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 15%가 비 오는 날이고 나머지 85% 날에는 비가 오지 않는 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일기 예보를 일년 내내 비가 오지 않는 다고 해도 예보 적중율은 85%를 넘습니다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부으며 괜히 예보 했다가 욕 먹지 말고, 돈 한푼도 들일 필요 없이
무조건 비가 오지 않는 다고 예보 하는 편이 10%의 적중율을 더 높일수 있지 않습니까?
십원 한장 안들이고 75% → 85%로 간단하게 10% 더 적중율을 올릴수 있습니다. 에헴~으쓱
단, 어떠한 상황이라도, 즉 현재 비가 오고 있는데도 오지 않는다고 하는게 더 적중률이 높습니다.
괜히 잘 돌아 가지도 않는 짱구를 돌려 예보하면 적중율은 급격히 떨어 질수 있으니 조심해야죠
"여러분!~ 파란문을 기상청장으로 보냅시다~!!"
['치재'앞 무명봉] 11시 27분
'복성이재'에서 약25분 정도 약간의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처음으로 만나는 봉우리입니다.
"치재" 가지전에 있는 봉우리라 "치재 앞 무명봉"이라고 했습니다.
['치재'앞 무명봉에서 뒤 돌아 본 지나온 대간길]
뒤돌아 보니 지나온 지난 구간의 "아막성 阿幕城"과 "시리봉"이 살아서 꿈틀대는
龍 같습니다.
['치재'앞 무명봉에서 바라 본 '흥부마을']
첩첩산중 전라도 속을 흐르는 "洛東江"
버스 타고 오다보니 이 마을,
즉, 남원시 아영면 - 속칭 '흥부마을'이 예상외로 부자 동네더군요
집앞에는 대부분 자가용차가 있고....
모두 '흥부'처럼 되었나?
['치재'앞 무명봉에서 바라 본 가야할 '봉화산']
이곳에서 봉화산까지는 '철죽군락지대'입니다만 꽃은 이미 지고 신록만 더해 갑니다
봉화산이 다소 멀리 느껴 집니다.
바로 앞이 "치재" 입니다.
[철죽 터널]
지난 5월말에는 이 터널이 꽃터널이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꽃은 지고 푸르름만 더해 가고....
저희 학교 대선배이신 "김영랑 詩人"의 詩가 떠 오릅니다.
순수 우리 언어를 음악으로 승화 시킨 "김영랑선배"의 詩 한수 들려 드림니다.
모두 다 잘 아시는 아마 핵교때 국어시간에 배웠던 詩이지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치재] 11시 30분
'치재'는 사람들만 넘나 들수 있는 조그만 고개입니다.
그런데 큰 고개 같은 이미지를 주는 "치재"는 아마도 "고개 峙"를 쓰는듯 합니다.
그렇다면 "고개"라는 말을 두번 붙인 것과 같으니 큰고개를 은연중 암시하는듯....
"족발 足발" "역전앞 驛前앞"과 같은 맥락....
[찔레꽃]
철죽의 꽃닢은 뚝뚝 떨어져 버리고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철죽 대신에 하얀 찔래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라는데 ......영어로는 Rosa multiflora라고...
오늘 산행기의 배경 음악으로 "이연실씨"가 부른 "찔래꽃"을 깔았는데
왜 이 노래를 선택했는지 조금 상상이 가시는지요
찔래꽃의 꽃말은 "고독"이랍니다.
[찔래꽃]
어릴 때엔 이렇게 부러짖었죠. "나이야~~ 좀 빨리 먹으라!!~~"
"이 지긋지긋한 학교라는 압박과 설움의 암흑 세계를 박차고 나가
저 어른들처럼 하고 싶은거 마음대로 하며 살아보게....!!"
자유를 갈망하며, 쌓아 논 세월이 없으니 어서 빨리 세월을 쌓고 싶었던게지요
그래서 어릴 땐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 갈 뿐이었답니다
뒤 돌아 볼 과거도 없으니.....
에구~~ 이제 세월을 제법 쌓아 놓고 보니 뒤돌아 볼게 많아졌습니다
아니 앞으로 나아 갈 길이 제법 남아 있는지 없는지 그런게 더 마음 쓰이는군요
나아 갈 길이 별로 없으니 자꾸 뒤 돌아 본다고 하네요....세월갈수록...휴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 갈 궁리를 하지 않고 뒤만 돌아 볼려고 한다면 미래가 없는 놈들이죠?
늙은 노장이야 미래가 자꾸 가물가물하니 한잔 걸치기만하면
"왕년에~~~난~!!"하며 왕년을 먹고 살지만.....
제일 불쌍한 인간은 이런 인간들이라군요
젊은 넘들이 앞날을 설계하지 않고 추억 속에서 헤메고 있는....놈들
그보다 늙은이가 뒤돌아 볼 추억도 없다는게 더 불쌍하다는데...
난 뒤돌아 볼게...내 세울만한게 있는지...에구~갑갑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찔레꽃"이란 노래를 청승맞게 들으며 산행기를 쓰고 있습니다.
[770m봉 가는 길]
그래서 이왕 듣는 "찔레꽃"이라는 노래이니 이 노래에 대해 줏어 들은 얘기들을 씁니다
사실 이 노래는 오래 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 오는 곡이라 여러 가수가 불렀습니다
또한 "찔레꽃"이란 제목의 노래는 장사익씨가 부른 곡도 유명하고...몇곡이 더 있는듯 합니다만
저는 지금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이연실의 찔레꽃"을 가장 좋아합니다.
저와 한시대를 같이 살아 가고 있는 가수 - 이연실씨
그 사람 근황은 인터넷 어느 구석을 뒤져봐도 알수가 없어 더욱 궁금합니다
이연실씨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한 독특한 가수 - -
서강대 사학과를 다닌 양희은 보다는 1년 선배쯤 될겁니다
이때에 박대통령 딸이며 현 한나라당 박근혜씨는 당시 여성으로는 독특하게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다녔는데 학교에 나오면 경호원들이 교실에 쫙~깔려
학생보다 경호원이 더 많았다고 함께 다닌 제 친구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770m봉]
이 당시 가요계는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는데 이 때의 가수들이 정말 멋진 가수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혼성 듀엣 '뚜아 에 모아'를 만든 이필원과 박인희.
박인희는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했지요. 불문과 출신 다웁게 '뚜아 에 모아'.
뉴욕 주립대를 졸업한 '은희'와 '한민'이 만든 '라나 에 로스포'는 '꽃반지 끼고'를 부르고..
['770m봉'에서 바라 본 가야할 '봉화산']
이외에도 당시에 활동한 많은 가수들이 있습니다만
이런 가수들 중에서도 저는 단연 '이 연실'을 좋아합니다
인간 '이연실'은 활동하던 그때 이후 지금까지도 안개 속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부른 노래들은 한결 같이, 우리들의 마음을
"울쩍 할때에는 더 울쩍하게"
"가슴이 갑갑하고 답답 할때엔 후련하게" 터져 뱉어버리게 해 주는 그 무었이 있습니다
그리고 音色은 미대 출신 다웁게 정말 독특한 색깔로 한폭의 추상화를 만들어 줍니다
[봉화산 정상 오르는 길]
찔레꽃엔 구전되어 내려 오는 유명한 사연이 있죠?
전세계 역사에서 땅따먹기의 최고 대빵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우리나라 복부인들이라구요? 고위직 싸모님들이 8~90년대엔 좀 쎄기는 쎈편이었지요
그러나 땅따먹기의 대가는 아시아에선 '징기스칸'이고 서양에선 '알렉산더' 였지요
우리나라엔 '테무진 징기스칸'이 세운 원나라 야만민족이 고려때 쳐들어와 점령을 하고
많은 젊은이들과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몽고로 거의 대부분 잡아 갔습니다.
그때 잡아간 이쁜 아가씨들이 몇십만이 넘는다고 하죠?
아무도 뒤돌아 보고 싶지 않은 치욕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몽고의 침입 정도로 얘기하고 더 이상은 말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슬픈 역사 속에는 이런 믿어도 그만 안믿어도 그만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몽고에 잡혀간 소녀들 중에 "찔레"라는 소녀가 있었답니다요.
이렇게 "찔레꽃"에 얽힌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봉화산 정상] 12시 12분
'복성이재'에서 1시간 8분이 걸려 "봉화산 熢火山"정상에 올랐습니다.
전국에 "봉화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봉화산"중에 높이로 최고 대빵이 이 "봉화산"입니다.
[봉화산 정상석]
919.8m 높이의 봉화산 정상을 알려주는 정상석이 우람합니다.
"봉수대 烽燧臺"가 있었다는 자랑보다는 "백두대간"임을 더 강조하는듯....
['봉화산 정상'에서 뒤 돌아 본 '백두대간']
뒤돌아 보니 멀리도 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가야할 길은 지금까지 온 길의 20배 정도는 가야하겠지요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가야할 '백운산' 방향]
"봉화산 熢火山"이라면 "봉수대 烽燧臺"가 있어야 하는데,
"봉수대 烽燧臺"는 없고, 산불감시 카메라만이 우뚝 서 있습니다.
['봉화산'에서 '광대치'까지 구글어스]
2.봉화산(12시30분)-(10분)-점심장소(12시40분)-식사(40분)-꼬부랑재(1시24분)-(9분)-
道界峰(1시33분)-(1시간12분)-광대치(2시45분)
[870m봉-경남 전북 道界]
"봉화산" 정상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식사장소로는 마땅치가 않아 '꼬부랑재'로
내려 갑니다. 전라도 속에서만 걷다가 경상도와 만나는 道界峰으로 갑니다
[점심식사] 40분간
언제나 즐거운 시간
네번째 만남이라고 이젠 제법 서로 친숙해 졌습니다.
[임도 정상-꼬부랑재] 1시 24분
자동차가 '봉화산' 정상부근까지 직접 올라 올수 있다는 증거가 보이지요?.
[안내도]
"중재"까지 7.9km가 남았다는군요.
"백운산"까지는 4.4km를 더 가야하구요
["임도 정상-꼬부랑재"에서 내려다 본 '흥부마을']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전체가 조망되는듯 합니다.
"찔레꽃"에 얽힌 믿어도 그만 안믿어도 그만인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몽고족의 침입으로 아수라장이 된 우리나라였습니다.
일본 쪽바리들이 침범했을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참하게 당했습니다.
몽고 놈들이 고려왕의 시호 앞에 "忠"자를 붙이게 하여, 25대 왕부터는 "충렬왕","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30대 "충정왕"까지 몽고에 충성을 다하는 속국으로 전락시켰고,
그리고 임금을 부를 때 "전하 殿下"라고 부르게 했습니다.
"궁궐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여하튼 비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젊은 아가씨들을 종으로 부리기 위해 수없이 잡아 갔습니다.
그 아가씨들 중에 "찔레"라는 아가씨도 있었답니다.
엄마 일 가는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870m봉-경남 전북 道界]
전라북도 남원시와 장수군, 그리고 경상남도 함양군이 만나는 봉우리에 도달합니다.
저 봉우리부터는 좌측으로는 전라북도, 우측으로는 경상남도가 되는 경계선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870m봉-경남 전북 道界"에서 뒤 돌아 본 '봉화산']
몽고로 끌려간 찔레는 다행이 부잣집 종이 되긴 했지만 가난해도 자기 집만 하겠습니까?
그러니 찔레는 고려에 있는 가족이 그리워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답니다.
그 모습을 본 주인은 저도 인간이라 고민 끝에 찔레를 다시 고려로 보내 주었답니다.
조건이 있었죠. 반드시 한달 이내에 다시 돌아 와야한다고.....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꽃 산등성이 너머로 일렁이는 꿈
["870m봉-경남 전북 道界"의 동쪽방향]
지금같으면 KTX라도 타고 불이 나게 빨리 고향찾아 가겠지만
걷고 또 걸어서 울며 불며 고향을 찾아 갔답니다.
우리는 자기 만족을 위해 걸어서 백두대간을 가지만 걷는다는게 장난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달이상이 걸려 찾아 온 고향
그러나 돌아온 고향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고 허물어진 옛집이 공허하게 누워 있을 뿐이었습니다
애타게 가족을 찾아다니다 지쳐 쓰러진 찔레는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다시 몽고로 돌아 가느니 차라리 세상과 이별하여 영원히 부모님 곁에 있기로.....
[944m봉] 2시 26분
찔레가 부모님 곁으로 영원히 가기 위해 꽃잎으로 날라가 사라진 이듬해 ---
찔레가 쓰러졌던 그 자리에는 꽃이 피었다는데
그것이 바로 가엾은 찔레의 넋이 서려 있는 '찔레꽃'이었답니다요
엄마 엄마 나 죽거던 앞산에 뭍지말고 뒷산에도 뭍지말고 양지 쪽에 뭍어주
비 오면 덮어 주고 눈 오면 쓸어주오 내친구가 찾아 오면 엄마 엄마 울지마
['944m봉'에서 '936m봉'으로 가며 보이는 "백운산"]
찔레꽃이 들판 여기저기 안 핀 곳이 없는 이유는
그렇게 찔레가 동생과 부모를 안찾아다닌 곳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찔레의 가시는 무엇이든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는데
"우리 엄마, 우리 동생을 본 적이 있나요?"하고
애타게 물어보는 찔레의 마음이 가시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울 밑에 뀌뚜라미 우는 달밤에 기럭기럭 기러기 날라 갑니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넓은 하늘을 엄마 엄마 찾으며 날라 갑니다
[936m봉] 2시 26분
몽고 야만족들의 침입으로 쑥대밭이 되었던 그 시절을 뒤돌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슬픈 역사도 있었다고...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서울에 "홍제동"이라고 있지요?
북한산 구기동 평창동 방향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개천이 홍제동의 "홍제천"입니다.
"홍제천"은 한자로 "弘濟川"으로 씁니다. "넓게 구제한다"라는 뜻을 가진 개천입니다.
'찔레'같이 수없이 잡혀가 정조를 잃고 돌아 오는 여인들을 돌려 보낼수도 없었던 조정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 "홍제천"에서 아랫부분 거시기를 씻고 들어 오면 비극적 전력을 깨끗이 지우고
구제하여 준다고 하였고, 그래서 '홍제천'에서 씻기만 하면 더렵혀진 몸을 없던 일로 간주해 주었답니다.
우리나라에 여자가 거의 없었으니 어쩔수도 없었겠지요
그래서 개천의 이름을 "홍제천 弘濟川"이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비극적 역사는 이렇게 하나의 개천에도 남아 있는 것이니......
이런 꼴 당하지 않을려면 국력을 더욱 신장 시켜 강국이 되어야 겠습니다.
강국이 되더라도 제발 전쟁은 하지 맙시다!~ 사이 좋게 서로 도와주며 삽시다
가을밤 외로운밤 벌레 우는밤 초가집 뒷 산길 어두워질때
엄마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끝에 나와앉아 별만 헵니다
[광대치] 2시 45분
그렇게 넓지도 않은 "광대치"에 도착했습니다.
[광재치 이정표] [길안내]
이정표도 세월의 풍상을 이기지 못하고 제 역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거인산악회 선두대장이 길안내를 별도로 하고 있습니다.
['광대치'에서 '중재'까지 구글어스]
3. 광대치(2시45분)-(33분)-월경산(3시18분)-(42분)-중재(4시)-
(10분,술한잔25분)-지지터널앞(4시35분)
[약초 시범단지] 3시 정각
'광대치'에서 급경사 오르막을 15분 정도 치고 오려면
"약초재배시범단지" 철조망이 나옵니다.
[약초 시범단지]
'약초재배시범단지'를 옆에끼고 10분 정도 가면 "월경산 갈림길"이 나옵니다
["월경산" 갈림길] 3시 11분
"월경산 갈림길"
이곳에서 "월경산 정상"까지는 7분 정도 걸렸습니다
그러니 갔다가 와도 진행에 아무른 지장이 없습니다.
["월경산" 가는 길]
단 한사람의 흔적도 없는 "월경산 정상"까지의 길은 좀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들이 한분도 가지 않았기에 '파란문'이 홀로 대표로 갔다 와야 했습니다.
용감하고 친절한 '파란문'입니다. ㅎㅎ
이 산행기를 보시는 분들은 갔다 온거나 마찬가지이지요? ㅎㅎ
[월경산 정상] 3시 18분
"월경산"은 한자로 "月鏡山"으로 쓰더군요.
거울처럼 맑고 밝은 달을 볼수 있는 그런 곳이란 의미이겠죠?
[월경산 정상 표지판]
사방이 꽉 막혀있어 조망도 할수 없는 "월경산" 정상에는 '삼각점'이 하나 있고,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높이 표기도 서로 다른 비공식 표지판이 초라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940.8m"가 정확한 높이입니다.
['중재'로 내려 가는 길]
약40분 정도 걸려 "중재"로 내려 갑니다.
외부 조망도 없는 숲터널을 뚫고 ....
[중재] 4시 정각
오늘 대간 마루금의 종점인 "중재"에 도착합니다.
"복성이재"에서 4시간 50분 정도 걸렸습니다.
[중재]
예전에는 이곳에서 함양군 백전면 중기마을로 내려 갔었는데
근간에 장수 지지계곡에 도로가 개설되어 가까운 "지지터널"방향으로 하산합니다.
10분 정도 거리이니 매우 가깝습니다.
['중재'에서 한잔]
"중재"에서 남은 음식을 모두 처분합니다....술과 함께......ㅎㅎ
['지지리'로 하산]
우리나라 최고의 산간오지 중에 하나 다웁게 계곡이 깊어집니다.
['지지계곡']
간단하게 "지지터널"까지 내려 옵니다.
[알탕]
그 유명한 "지지계곡"에 몸을 담구고....
아~워~ 시원
[지지터널 앞] 4시30분
1. 대간 마루금 도상거리 : 12.1km
2. 접속거리 : 약700m
3. 총산행시간 : 5시간 20분
처음에 이 산행기는 잼없으니 시간 낭비 하지 마시고 그냥 나가시라고 했는데....
끝까지 읽어셨나요? 에구~ 후회막급이지요?
다 읽었으니 어쩔수 없구요. 이왕 다 읽었으니 잼없다고 욕하진 마세요~
찔레꽃에 얽힌 사연도 사연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정말 왠지 슬퍼집니다
소주 한잔 하며 또 "왕년"이나 생각해야지~~
즐거운 시간 되세요
첫댓글 1팀이 처음으로 가는 코스 퍼왔습니다.......보시고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