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곡의 정의와 역사

[강병주]

연가곡의 정의와 역사 하나의 주제와 서술적 연계성을 가진 가곡 모음 연가곡(Song cycle, Liederkreis)이란 기본적으로 한 시인에 의해특정한 하나의 목적으로 씌 어진 일련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의 모음을뜻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겨울나그네’ ‘여인의 사랑과 생애’와같은 대부분의 작품 성격이 그렇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내용이 함축된 느낌을 주는 제목이 달려 있어 어떤 특정한 이야기가 연계적으로 진행되는 듯한 느 낌을 주기도 하여 때로 극적 전개가 이루어진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가곡에서는 소설이나 연극에서처럼 일관된 이야기의 흐름이나 극의 구성적 요소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 다. 왜냐하면 연가곡의 노랫말이 극시(dramatic poem)이기 보다는 서정시(lyric poem)이며, 극적 전개와 서술적 요소가 있더라도 듣는 이로서는 이를 쉽게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헌에 따라 약간씩 그 개념은 다르지만, 그로브 음악 대사전에서는 연가곡의 개념을 위에 서 보다 넓게 적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있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가곡’이란 용어가 갖고 있는 범주가 매우 넓기때문이다.구성적 요소를 살핀다면, 반 주악기가 수반되거나 없을 수도 있는독창·중창·앙상블의 성악작품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또한 노랫말의성격에 따라 본다면, 어떤 상호 관련성이 있는 사건으로 구성되어있거나, 같은 인상을 풍기는 시로 구성된 작품, 또는 같은 기분의 연속성을 갖고 있는 일련의 시에 붙여 진 곡을 뜻한다. 노랫말의 작가가 반드시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어 여럿이 있을 수 도 있고, 노랫말의 출처도 물론 다를 수 있다. 이와같이 연가곡의 구성과 내용적 요소의 범위는 매우 넓게 적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19세기 이전의 연가곡 양식들 위에서 다룬 개념 아래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표제를 갖고 있는프로그램 샹송(Program Chanson), 바로크 시대의 마드리갈 코메디(Madrigal Comedy)와 같이 주로 4∼5성부로 구성 된 무반주 앙상블로이루어진 형태를 모두 연가곡의 유사형식으로 들 수 있다.콸릴리아티의 ‘사랑스런 창공’(1623), 반키에리의 ‘어리석은 노인’, 루자스키의 ‘파르나소의 언덕’ 등이 그 예이다. 이들 중 나중 두작품은 가수의 배역이 있는 등 극적 요소를 가져 음악극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아주 단순한 무대 배경을 갖기도 하는 이들은 연작의 형식을 빌렸다고 하더라도 음악을 사용한 극의 형태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있다. 슈타덴의 ‘내실 이야기’(1641∼49) 나 알베르트의 ‘음악적인 집’(1645)에는 극의 이름이 지어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노랫말의 주제가 ‘사랑’이라든지 ‘죽음’이라는 한 주제에 집중되어 서술적인 성 격과 연계성이 부족하더라도 연작의 형태를 띠고 있는 작품들은 연가곡의 일종으로 분류되 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영국 작곡가인 후크의 ‘사랑의 시간’(1792년, 1800년 개작) 이 있는데, 이 작품은 ‘사계절’이라는 한 주제에 집중되어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당시 작품의 이런 성향은 독일 낭만주의 연가곡의 발생을 예고하는데, 19세기에 즈음하여 짧고 작은 규모, 그리고 적은 수의 곡으로 구성된 연작의 형태의 가곡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민요조의 가곡’으로 널리 알려진 제2베를린 가곡 악파의 일원인 라이하르트의 ‘사랑과 고독의 노래’(1798)는 50곡의, 그리고 네페의‘창조자의 꿈’(1798)은 20곡의 짧은 가곡들 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성격은 서술적 연계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 나 기분에 집약된 것으로 아직 예술 가곡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독일 민요의 성격 에 가까웠다. 19세기에 접어들어 독일 낭만주의 가곡은 이전의 단순한 민요조의성격과 규모를 탈피, 변모 하기 시작한다. 당시 가장 뛰어난 가곡작곡가로 인정받았던 베버의 ‘기질’(1816), 그리고 베토벤의 ‘멀리있는 연인에게’(1816)가 있으며, 이들은 비록 서술적 연계성은 표면에 드러 나지 않으나 다양한 형식, 묘사적 기법 등 많은 발전의 가능성을 보인다. 독일에서의 연가곡 은 이미 모차르트의 아리에타나 하이든의‘영국풍의 칸초네타’(1794∼95) 곡집으로부터 예 견할 수 있듯이 극적인 표현 요소의 도입으로 서정가곡에서 묘사성을 보다 발전시킬 수있었 으며, 연가곡에서 서술적 연계성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최초의 연가곡 작곡가 슈베르트 슈베르트가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1823)는 처음으로 납득 할 만한 서술적 연계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어린 청년이 희망 속에서 처음으로 길을 떠나 겪는 사랑, 연민,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서술적으로 이어나간다. 슈베르트는 이연가곡에 서 시정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묘사적 기법과 상황과 주변환경적 요소까지도 음악으로 묘사 해 이전 작품과는 다른 연계성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의 다른 연가곡 모두가 같지는 않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의 저자인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겨울나그네’(1827)가 그 한 예로,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의 후편과 같이 여겨져 일반적으로는 서술적 연계성을 보인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알려진 것과 같은 정도의 긴밀한 연계성은그리 보이지 않는다. 그는 원래의 시인의 의도와는 다른 순서를 택해 연가곡을 꾸몄으며, 먼저 작곡한 12 곡의 마지막 곡인 ‘고독’에‘Fine’(끝)을 표기해 두었다. 그의 첫 시도는 여기에서‘겨울 나그네’를 마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첫부분의 작곡 후에 발견한 나머지 작품에 추가로 곡 을 붙여 하나의 연가곡으로 재구성하게 된다.즉 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처 음부터 이 작품을 24곡으로 구성할 의도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서술적 연계 성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그의 3대 가곡집 중 하나이며 때로 연가곡으로 오인되는 마지막 작품인 ‘백조의 노래’ (1828)는 연가곡이 아닌 모음집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도 연계적인 관계를 찾아볼 수 있는 데, 렐슈타프의 시에 붙인 첫부분은 사랑이라는 주제, 그리고 하이네의 시에 붙인 후반부는 인생과 회상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어 단일한 주제나 기분은 아니지만,전체적으로 동일한 기 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곡인 자이들의 ‘비둘기 전령’으로 인해 원만한 종결을 이루지 못해 이 작품은 가곡 모음집의 성격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즈음해 더욱 구체화된 문학과 음악의 결합은 음시적작품의 출현을 예고한다. 이 시기의 작곡가인뢰베·슈만·코르넬리우스 등은 서술적 연계성을 지닌 작품과 더불어한 기분이나 주제에 집중시킨 기존 형태의 연가곡을 작곡했다. 슈만이하이네와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곡을 붙인 ‘연가곡’(리더크라이스 Op.24·39, 1840)은 서술적 연계성을 표면에 드러 내지 않으며 베토벤의‘멀리 있는 연인에게’와 같은 유사한 분위기를 보인다.아이헨도르프 의 시에 곡을 붙인 ‘리더크라이스’(Op.39)도 길을 떠난청년이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겪 는 고독함과 사랑하는 자에 대한그리움, 그리고 인생길에 대해 노래하는 등 서술적 구성을 갖고는있으나, 상징적 표현 어법으로 인해 곡과 곡 사이에 이루어지는연계성을 느끼기가 쉽 지 않다. 이와는 다르게 ‘시인의 사랑’(1840), ‘여인의 사랑과 생애’(1840)는 연가곡의 일반적인 개념을 지닌 작품으로 서술적 연계성이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이네의 시에 붙인 ‘시인의 사랑’은 하이네의 자전적 시의 모음으로 사랑하는 여인들 사이에서 번민하는 시인의 내면 의 정신세계를 직·간접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며, 샤미소의‘여인의 사랑과 생애’는 연계성 이 시간성과 함께 나타나 더욱 이해를 쉽게 한다. 처음 연인을 만나 눈이 먼 듯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 사별한 후의 여인의 생애를 시간적으로 나타내 비록 8곡의 짧은 길이라 하 더라도 그 효과는 매우 크다. 슈만은 이 곡을 바로크 초기에 나타났던 연가곡의 유사 형태 로 작곡했는데, 혼성 4중창을 위한‘스페인 가곡집’은 과거 연가곡의 개념을 그대로 재현 하고 있다.브람스가 혼성 4중창을 위해 작곡한 ‘사랑의 왈츠’와 4곡으로구성되어 있는 ‘성서에 의한 엄숙한 노래’(1896)도 같은 성격을 잇고 있는 작품이다. 후기 낭만주의 시대 작품 중에서 연가곡의 성격을 띤 것으로는브람스의 ‘집시의 노래’ ‘아름다운 마겔로네’가 있다. 후자는 주인공인 젊은 기사 페터가 순례의 길에서 느끼는 마겔로네에 향한흠모의 정과 사랑 이야기를 발라드풍으로 엮은 곡으로 서술적 연계성은모든 낭만주의 연가곡 중 가장 돋보인다. 이외에도 독일 후기의 작품으로는 옛 독일 전래 동화에 곡을 붙인말러의 ‘이상한 뿔피리의 아이’(1892~98)과 ‘방황하는 젊은이의노래’(1883), ‘죽은 아이의 노래’(1901~04) 그리 고 ‘대지의 노래’(1908~09)가 대표적으로 모두가 관현악 반주를 동반한 큰 규모이다.이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사랑하는 연인이 결혼하는 날 길을떠나 방황하는 내용을 연 계적으로 꾸몄으나 이에 비해 다른 작품은하나의 기분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곡 모음 집의 성격에 가깝다. 독일 외의 지역에서 작곡된 연가곡들 19세기에 독일 외의 지역에서 나타난 중요한 연가곡으로는 프랑스의베를리오즈가 작곡한 ‘여름 밤’(1841)을 꼽을 수 있다. 슈베르트와슈만 등의 독일 리트의 영향 아래에 발달한 프랑스의 예술가곡이 멜로디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 작품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와 같다. 낭만 시인 고티에의 연시에 작곡된 이 연가곡은 처음에는 피아노로 작곡되었지 만, 곧 관현악으로 편곡된 것으로서 당시에는 획기적인 규모였다. 베를리오즈가 연모했던 연 극 배우 헤리에 트스미드슨에게 헌정된 작품으로 곡의 서술적 연계성보다는 사랑이라는 주 제 아래에 작곡되었다. 관현악의 아름다움, 내면에 스며 있는 시정을 매우 점묘적으로 묘사 한 부분이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이 작품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베를리오즈 이후 마스네의 ‘4월의시’(1866). 그리고 프랑스 멜로디의 완성자라고 일컬어지는 포레의‘행복한 노래’(1892∼94) 등이 뒤를 이어 나타난 다. 베를렌느가 쓴9개의 시에 곡을 붙인 연가곡인 ‘행복한 노래’는 후에 그의 부인이된 연인 마틸데에게 향한 시인의 사랑을 노래한 시로 두려움과 희망 등대조적인 다양한 기분이 섞여 흐른다. 비록 짧은 곡의 연속이지만,포레의 감성적인 음악이 프랑스 가곡의 독특한 감 각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포레의 뒤를 이어 드뷔시의 ‘빌리티스의 노래’ (1897~98), 라벨의 ‘셰헤라자데’(1903) 등이 20세기의 새로운 음악감각으로 작곡된 작품들 이다. 독일 낭만주의 연가곡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러시아·체코슬로바키아등 동구권 음악계에도 그 영향을 미쳤다. 무소르그스키의 ‘죽음의 노래와 춤’(1875∼77), 드보르자크의 ‘집시의 노래’(1880), ‘성서의 노래’(1894)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술적 연계성이 그 리 강조되지 않은 작품으로 한 주제나 기분에 대한 모음곡의 형태를 띠고있다. 이외에 노르 웨이의 그리그가 작곡한 ‘하우크투사’(1895), 본윌리엄스의 ‘웬로크 벼랑 위에서’(190 8∼09), ‘생명의 집’(1914∼18)등이 있다. 후자는 르네상스 시인인 로제티의 시에 곡을 붙 인 작품으로사랑의 눈빛으로부터 사랑 속에서 죽음, 사랑하는 자의 마지막 선물 등 서술적 인 연계성과 더불어 사랑에 대한 집약된 주제를 갖고 있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연가곡의 전통은 계속된다. 쇤베르크의‘달에 홀린 피에로’(1912), 미요의 ‘꽃의 목록’(1920), 라벨의‘자연의 이야기’(1906), 힌데미트의 ‘마리아의 생애’ (1922~23),바르토크의 ‘마을 풍경’(1924) 등 근대 연가곡의 대표작에서는낭만시대의 연가 곡과는 달리 노랫말의 주제가 광범위해지며,12음계법이나 온음음계 등 과거와는 다른 음조 직을 사용하거나다양해진 악기 구성 등으로 기존의 가곡 형식에서 탈피하고 있다. 또한 유 사한 음고 아래에서 자유롭게 말하듯 노래하는 슈프레흐슈티메(Sprechstimme) 등 낭만시대 의 연가곡들과는 다른 표현방식을 사용했으나 연가곡으로서의 기본 요건인 일련의 노랫말에 대한 개념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