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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어려워도 무언가를 새롭게 해 보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남아 있다.
지난 1월 4일, 폭설이 내렸다.
카메라 메고 나가 사진을 찍으면서도 "지금이 눈꽃산행 할 최적기인데" 하는 생각이 앞섰다.
혼자서 망설이다가 몇몇 산을 좋아한는 다섯 친구들에게 눈꽃산행에 대한 얘기를 했다.
다섯명 모두가 흔쾌히 동의 하였다. 승용차 한대 만원사례다.
그래서 가장 빠른 가능한 날 12일을 잡아 놓고 제발 날씨는 춥고 기상은 맑기만을 기원했다.
1월 12일, 다행히 혹한은 지속되어 상고대는 기대 되었으나, 흐린 날씨와 오후의 눈 예보는 시계에
걱정이 되었다.
설천봉 상제루가 상고대를 뒤집어 쓰고있다.
덕유산!!! 남한 4번째 높은 봉우리다. 산이 큰 만큼 골도 깊다.
10여년 전만해도 무주 구천동하면 강원도 오지와 맞먹는 중부 내륙의 오지라 하지 않았던가!
덕이 있어 너그러운 산, 德裕山! 그러나 산 사람들은 말한다.
"대 자연은 자신의 모든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고....
덕유산이 그렇다.
겨울 덕유산의 3대경관은 "상고대가 그 첫째요, 눈꽃위로 청옥색의 푸른하늘이 그 둘째이며,
지리산 천황봉까지 60km 구간에 켭켭이 쌓여있는 백두대간의 준봉들이 제3이라" 하였는데,
오늘은 날씨로 보아 오직 상고대만이 희망이었다.
역시 대 자연은 모든걸 보여 주지않는구나 하면서도 길을 재촉하였다.
상고대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아침 7시, 정확하게 모두 다 양재역에 모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래도 가느다란 희망을 간직한 채 경부~ 대진고속도로를 달렸다.
날씨가 점점 흐려지더니 금산을 지나면서 부터는 함박눈이 쏟아졌다.
일기예보는 3시부터 눈이 온다고 했는데 오전 9시부터 쏟아지니 달리던 차들도 모두 거북이가
되고, 덕유산의 설경과 옥빛하늘, 광활한 산줄기의 환상은 벌써부터 깨어지나 보다 싶었다.
모두들 침울해 지며 갑짜기 말도 없어졌다.
한편으로는 이런날 등산 가자고 한 내 스스로 미안한 마음마져 들었다.
향적봉을 향하여 눈길을 뚫고
어떻든, 무주리조트에 도착후 곤도라 탑승표를 끊어 설천봉까지 곤도라를 타고 올라갔다.
곤돌라를 타고 중간쯤 올라오다 보면 누렇고 앙상한 나무들이 갑짜기 하얗게 변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상고대와 눈꽃이 피어나고 이때부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1524m인 설천봉까지는 곤도라로 이동하기 때문에 꼬마나 노인들도
등산이 가능하다.
또한,설천봉에서 최고봉인 1614m 향적봉까지는 불과 600m 거리이고, 향적봉에서 중봉까지는
20분 거리로 요즘은 당일치기 여행지로 변하였다.
1614m, 한국 제4봉 향적봉 정상
<설천봉에서>
설천봉에 내려서면 휴게소 윗 편으로 하이얀 상고대를 뒤집어 쓴 팔각정이 한 눈에 들어오고,
주변은 온통 눈부신 설국이다. 그러나 오늘은 켤코 눈 부시지 않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매서운 칼바람과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고개조차 들기가 힘들었다.
옛날 휴전선에 근무할 때의 혹한이 생각났다.
함께 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오늘 등산은 이미 포기한거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누구하나 실망의 표현은 없었다.
이때 한친구가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니 오늘은 또 이런 맛으로 등산 한번 해 보자"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휴게소로 들어가 아이젠을 차고 칼바람과 보온에 대비한 완전무장을 한 후
등산길을 나섰다.
하산길에 내려다 본 설천봉 팔각정
설천봉의 넓은 공터엔 하강을 준비하는 젊은 스키어들과 카메라를 멘 사진 마니아,
그리고 산을 즐기는 산꾼들의 발길이 바쁘다.
우리도 칼바람 속에서 몇장의 사진을 찍고 발길을 재촉하여 향적봉으로 향했다.
상고대(습기가 나무에 얼어붙어 형성된 서리)는 덕유산의 자랑이며, 상고대가 가장 멋스런 곳은
설천봉과 향적봉을 잇는 산행로이다.
나무계단으로 이어진 눈꽃 터널을 통해 향적봉으로 가는 길은 환상의 설국이지만,
오늘은 눈꽃터널의 환상보다는 칼바람과 눈보라로 오히려 무거운 발걸음을 해야만 할것 같았다.
다행이도 터널 안에 들어오면서 칼바람은 잦아졌고 구름도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향적봉 상징 사진이 된 고목
눈꽃 터널길을 20 여분 쯤 걸었나 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느새 눈보라는 간데없고 간혹 구름사이로 햇빛줄기가 새어 나오며,
때로는 하늘이 청옥색의 얼굴을 살짝살짝 내민다.
어둡던 우리의 마음도 날씨가 맑아지듯 차차 밝아진다 .
향적봉에 다다르자 날씨가 더욱 환해졌다. 설국은 더욱 눈부셔 졌고,
산에 오른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향적봉 정상 바위도 설화를 피운다
모두 들 “내 생애 이런 눈꽃을 또 볼 수 있을까” 감격에 겨운 표정이다.
층층나무, 개벚나무, 물푸레나무 등 푯말이 각각의 나무 이름을 말해 주지만,
이들 나무는 모두 꽃을 피우고 있었다. 모든 나무들이 한가지의 똑같은 꽃들만 피우고 있었다.
바로 그 어느 꽃보다 화려한 눈꽃이다.
눈 덮인 어린 가지는 어린 순록의 보드러운 뿔 모양이다.
하늘을 향해 뾰족뾰족 하얀 뿔들이 솟아나 있다.
어린 순록의 보드러운 뿔 모양이다
30여분 만에 도착한 향적봉.
한길이 넘는 3개의 돌탑이 정상임을 알린다.
서쪽은 탁 트여 광활한 조망을, 동쪽은 가야산 등의 산릉이 몇겹으로 중첩돼 묵직한 수묵화를 보는
듯한 절경을 선물한다.
설경도 설경이지만 그 산자락이 품은 연무와, 쌓인 눈이 칼바람에 휘날리는 현란한 눈보라에
등산객의 시선은 마냥 빨려 들어가고 만다.
'눈 덮인 하늘 봉우리'라는 뜻의 설천봉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여기 향적봉까지 오는 길은 한마디로
상고대와 눈꽃으로 황홀한 터널을 이룬다.
또한 청옥빛 하늘을 배경으로 거미줄처럼 뻗은 나뭇가지에 핀 상고대는 마치 남태평양의 하얀 산호를
닮았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가 될른지......
이따금 거센 바람에 눈꽃이 낙화라도 하면 상고대 터널은 은색 가루를 뿌려놓은 듯 황홀하다.
향적봉을 배경으로
정상인 향적봉 바위 위에서 만나는 덕유산 설경은 북해도의 설국이나 스위의 알프스를 무색케 한다.
그래서 덕유산을 동양의 알프스라 칭하기도 한단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은세계다.
마치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랄까.
땅과 하늘의 경계로 변한 능선의 순백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다.
거센 바람에 나무들 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향적봉 능선은, 봉우리 아래에 위치한 향적봉대피소
에서 볼 때 가장 아름답다.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 후 대피소에 들어가 각자 준비한 간식을 점심으로 대신한다.
중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왼족 맨 뒤 희미한 산이 지리산(40km)이다
<중봉으로>
이제 다시향적봉에서 중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능선 건너편에서 날아오는 눈구름 사이로 이따금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한다.
능선을 수놓은 산행객들의 행렬이 마치 오색단풍을 보는 듯하다.
세상은 오직 순백이다.
같은 순백이지만 상고대와 눈꽃은 또 느낌이 다르다.
가지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꽃이 포근하고 부드러운 순백이라면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상고대는
강인하고 화려한 순백이다.
특히 상고대가 햇살에 반짝이며 토해내는 순백은 겨울산이 연출하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꽃보다 더 화려하다는 상고대와 눈꽃의 생명은 허무하리 만큼 짧다.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상고대는 가녀린 겨울 햇살에도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눈꽃은 거센 칼바람에 동백꽃처럼 뚝뚝 떨어져 우리를 슬프게 한다.
모든 나무가 똑같은 꽃을 피우고 있다. 바로 눈꽃이다
여행은 아는것 만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덕유산에서는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한 만큼 많이 보이는 모양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야생화가 피고 지고, 철쭉이 붉은 카페트를 만든다는 중봉!,
중봉은 역시 겨울에도 덕유산의 백미중의 백미이다.
달력의 단골사진으로 나오던 몇 백년은 되었음직한 주나무 고사목 한쌍이 상고대를 덮어쓰고
여기에 묵묵히 서있고, 주목과 구상나무의 하이얀 눈꽃이 멋스런 자태를 뽑내고 있으며,
철쭉과 관목이 만들어 내는 눈꽃터널 또한 황홀하여, 이곳에 오는 동안 카메라에 그림을 담다 보면
어느새 중봉 전망대에 다다른다.
<중봉에서>
중봉 전망대에 도착하니 깜짝 놀랄일이 일어났다.
하늘을 꽉 메웠던 구름이 어느새 한점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도 감추려던 청옥빛 하늘이 우리앞에 얼굴을 내밀고 만 것이다.
덕유평전 너머로 남덕유산과 지리산 등 백두대간의 준령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 뿐만 아니라 모두가 환성이다.
청옥의 하늘이 그렇고, 지리산까지 정확히 60km, 훤히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한
켭켭이 쌓인 백두대간 산 줄기의 장엄함에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청옥빛 하늘과 어울어진 상고대
상고대에 취하고 눈 꽃에 눈이 먼 겨울 나그네들이 여기 중봉에서 온갖 감탄사를 토해내며
오수자굴과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수묵화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아니 온 듯 떠나라는 듯, 산 능선을 휘감는 바람이 그 발자국 위로 하얀 눈을 소복소복 채워
발자국을 감추어 준다.
우리는 여기서 겨울 덕유산의 환희를 만끽한 후, 아쉬움을 간직한 채 다시 향적봉으로 돌아와
백련사길로 하산하였다.
비록 3시간 반의 짧은 산행였지만, 추억으로는 오랜 세월 간직하고 싶은 눈꽃산행이었다.
<추천의 글>
혹시 눈꽃산행 생각하고 계신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 추운데 무슨 산이냐고 합니다.
칼바람에 눈보라 몰아 쳐도 보온만 잘하면 크게 걱정할게 없습니다.
가시에 찔리지 않고 장미를 딸 수 없듯이 추위가 없으면 상고대나 눈꽃도 없습니다.
눈꽃산행은 반드시 눈이 온후 2~3일 지난 추울때 떠나야 합니다.
작년에도 태백산, 계방산에 갔는데 기쁨은 절반도 안되었습니다.
영하 10도가 넘어야 황홀합니다. 기온이 높으면 아침 9시 전에 정상에 도착해야 됩니다.
영하의 기온이라도 햇볕이 나면 상고대는 없어집니다.
금년 덕유산은 몇십년 만에 최고의 절경이랍니다.
한번 작심해도 후회는 없을것 같습니다.
산행시간은 2시간 정도면 됩니다. 가족과 함께 가면 더욱 좋은 추억이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