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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
제자 변선진을 추모하며
간디학교 설립자 양 희 규
2018-4-6
1997년 간디학교 설립 이후 22년 째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일 중의 하나가 2010년 4월, 1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젊은 예술가이자 간디학교 졸업생이었던 제자 변선진의 죽음과 수목장입니다. 변선진은 1991년 8월에 태어나 2007년 금산간디학교에 입학하고 2010년 2월에 졸업한 뒤, ‘골수이형성증후군’이라는 병으로 2010년 4월15일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제 8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최근 제자 변선진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8년 전 4월 17일 금산간디학교 교정에서 있었던 변선진 수목장 기억을 떠올렸고 그 수목장을 위해 제가 준비하고 읽었던 추모사를 파일에서 찾아 꺼내 읽어 보았습니다. 눈시울을 적시면서 회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자 변선진은 제가 만난 모든 청소년 중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가장 긍정적으로 삶을 살았던 친구이고 매우 훌륭한 예술가였습니다. 그가 금산간디학교 고등과정의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던 그림동화책은 임종한 다음 해인 2011년 5월 20일에 바람의 아이들 출판사에서 책으로 출간되었고 책 제목은 [절대 보지 마세요 절대 듣지 마세요]입니다. 출판사 발행인은 이 책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인 된 것을 너무나 안타까와 했습니다. 탁월한 신인작가를 찾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간디학교에서의 아름다운 전통인 수목장과 그리고 아름답고 짧은 인생을 살고 간디학교의 한 그루 단풍나무로 다시 태어난 변선진의 삶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 뜻에서 8년 전 변선진 수목장 행사에서 읽었던 추모사를 소개합니다.
‘제자 변선진을 추모하며’
4년 6개월 전 2005년 10월 22일 제 부친이자 간디학교 초대 이사장이셨던 양영모 이사장의 유언에 따라 간디학교 공동체 처음으로 수목장을 치루었습니다. 양영모 이사장님은 산청 간디고등학교 교정에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간디의 두 번 째 수목장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사랑스런 간디의 딸 변선진은 2010년 4월 17일 오늘 금산 간디학교 교정의 아름다운 단풍나무로 다시 태어납니다.
간디의 딸 변선진은 1991년 8월 7일 변상범 님과 송지민 님의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간디자유학교 제1기 입학생이었던 언니 변혜진으로 인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간디학교를 자주 방문하였습니다. 언니 오빠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간디학교와 친숙하였습니다. 때때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간디학교 축제에 참여하고 가야금 연주도 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고등학교 연령이 되어 금산 간디학교 6기로 입학합니다. 3년의 시간을 열정적으로 보냈습니다. 그 3년의 세월을 더듬어 봅니다.
2007년 3월 금산 간디학교의 1세대로 입학하였습니다. 1학기는 해방학기로서 체험학습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먼저 밀양연극촌에 가서 2주간 ‘천국과 지옥’이라는 뮤지컬을 연습하고 공연하였습니다. 그리고 푸른누리공동체에 가서 2주간 밭 일구고 나무심기의 노동과 명상을 했습니다. 1주간 전북 임실에서 전통문화체험으로서 풍물 소고 민요배우기도 했습니다. 변산국립공원에서의 체험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충남금산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616.2Km이나 되는 먼 길을 걸어서 국토를 순례 했습니다.
2007년 2학기는 학교에서 차분하게 배움에 임했습니다. 다양한 모든 교과에서 A를 받아 2007년 12월 22일에 금산간디학교의 지혜상을 수상했습니다. 2007년 11월에는 국립소록도병원에 가서 병동봉사를 43시간 했습니다. 인생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1년 동안 학년대표로서 매사에 긍정적으로 친구들을 배려하고 독려하며 긍정과 친절의 리더쉽을 발휘했습니다.
2학년이 되던 2008년 1학기에는 인턴쉽을 갔다왔습니다. 창비출판사에 가서 여러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학교에서는 도예, 친환경제품 만들기, 그림으로 대화하기, 손바느질, 악기연주 등의 수업을 들으면서 작은 예술가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한 학기입니다. 선진이는 2학년 1학기 때 이런 자기평가를 했습니다.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자. 남이 보았을 때 우와 멋진 사람이다란 얘길 듣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지만 내가 나에게 “멋진 사람,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백배 천배 기분 좋은 일이 아닐까? 엄마 아빠에게 자랑스런 나보다 선생님께 믿음직한 나보다 진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나를 찾자.’
2008년 2학년 2학기에는 겨울 해외이동학습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선진이는 인도해외이동학습의 총기획을 맡아 전체 준비과정을 점검하고 진행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북춤, 몸짓 공연준비, 인도 어린이들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 준비(종이접기, 풍선아트, 점토, 그림 그리기 등) 음악활동(민요) 준비, 뿐만 아니라 영어에 중점을 두고 공부하였고 일어도 꾸준하게 공부합니다. 환경동아리인 손수레의 팀장을 맡아 천연염색 제품과 친환경 달거리대를 생산, 판매하였고, 역할분담과 조율, 후배 이끌기를 잘 해 주었습니다. 새터민 아이들을 맞아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1학년부터 심리학도 꾸준하게 공부했습니다. 변선진은 이 학기에 다음과 같이 자기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나와 내 인생에 있어서 그림이란”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한 학기였던 것 같다. 고민을 한만큼 예술적 감수성도 더 성장한 것 같다. 훌쩍 성장하고 있는 내 모습이 좋기도 하고 조금은 겁나고, 눈을 넓히고 마음을 넓히고 머리를 넓혀보자’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겨울 2009년 1월 3일부터 2월 21일까지 7주 동안 인도여행을 갑니다. 남인도 뱅강로루 힌두푸루 근교의 작은 마을 깔루르에서 3주간 지역민들과 같이 생활하였습니다. 벽화도 그리고 방과 후 교실도 열고 홈스테이도 하였습니다. 2주간 남인도 여행을 갔습니다. 이 때 선진이와 친구들이 잊을 수 없었던 감동은 오로빌공동체였습니다. 2주간은 북인도여행을 했는데, 간디아쉬람에서의 명상, 강가 화장터에서의 생사의 윤회 생각, 인도의 전통악기 시타르와 타블라의 매혹적인 연주 앞에서의 넔 잃기, 마더 하우스에서의 테레사 수녀님의 마음 가지고 봉사하기, 비노바 바버 아쉬람, 타지마할. 주체적으로 인도를 만났습니다. 변선진은 인도여행의 감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오로빌 공동체 안에 있는 내내 마음 안에서 무언가가 팔딱 팔딱 뛰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오르빌의 모든 곳을 둘러보았더라면 전 아마 당장이라도 입주자 신청을 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 오로빌이라는 국적을 초월한 이상적인 공간에서 다시 인도의 모습을 봐서 그런지 잠깐은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저는 인도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진이는 7주간 늘 긍정적인 태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 편견 없이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는 용기를 가지고 정말 열심히 생활했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따라 다니는 인도 어린이들을 서슴 없이 안아주고 언제나 환한 미소로 손짓 발짓 다해가며 즐겁게 소통하였습니다. 선진이 덕분에 인도여행은 더욱 행복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에 참여한 모든 학생과 교사들은 전체의 뜻을 모아 선진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3학년이 된 2009년 1학기는 졸업작품, 즉 그림동화책 만들기에 모든 열정을 쏟은 학기였습니다. 선진이의 졸업작품 처음 제목은 “가장 중요하지만 잊고 있었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중 책 제목은 ‘절대 보지 마세요 절대 듣지 마세요’입니다. 선진이는 그 졸업작품과 함께 낸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늘 꿈꿔왔던 것은 그림 그 자체였다. 순수하게 그림 자체를 졸업작품으로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졸업작품은 바로 동화책이다. 어린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하는 것에 큰 관심을 둔다. 그림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매개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는 그림을 통하여 어린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동화책이라고 생각했다.
내겐 아쉬움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은 곳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힘이 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건 나의 직업은 예술가일 것이라고 결심한 이상, 첫 작품에서 느낀 아쉬움을 발판으로 삼아 뛰어오르게 될 더 높은 곳은 얼마든지 남아있다... 나는 평생 꿈을 꾸고 또 꿈 속으로 들어가 꿈을 그릴테다. 꿈을 살 테다‘
3학년 1학기에 선진이는 “몰입의 경험”이라는 신의 축복의 시간을 갖습니다. 몰입의 시간은 물리적 시간과 다릅니다. 열정과 몰입의 시간이라는 축복의 시간 창조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림 글 완성된 책으로 만들기까지 몇 개월 간 선진이는 창작의 고통과 기쁨이 교차하는 몰입의 과정을 경험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선진이는 이야기합니다.
‘이번 학기에 나는 나의 에너지를 분산시켰던 여러 갈래들을 하나 하나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러 갈래로 뻗어 있던 에너지들은 시나브로 하나로 모여 날 몰두하게 했다.’
졸업작품에서 선진이는 그림동화책을 통하여 어른들은 잊고 살아가는 삶의 중요한 기쁨과 슬픔에 관해서 아이의 눈을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표현하지 못한 아픔을 따뜻한 마음으로 어루만져 주는 치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에겐 이러한 내면의 상처 받은 아이가 있으며 우리 모두는 치유가 필요함을 알리고 있습니다.
3학년 1학기만으로도 선진이는 졸업에 관한 모든 이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기졸업을 할 수도 있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듯이 대체학습을 통해 학교 바같에 나가 진로준비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진이는 10대 시절 마지막을 학교생활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학교에서 온전하게 보냈습니다. 선진이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양) 학교생활에서의 모든 시간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보냈습니다. 친구 후배 선생님과의 만남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배움의 과정 모두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학교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델이자 교과서이었습니다. 마지막 학기 2009년 11월에는 일본의 키노쿠니 학교에서 연 국제심포지엄에 가서 간디학교를 소개했습니다. 선진이와 네 명의 친구들이 보여준 잠재력은 일본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간디의 친구들은 정말 사고력이 뛰어납니다’는 놀라움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건강은 선진이의 유일한 어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2학년 9월 경 신체검사에서 빈혈증세가 발견되었습니다. 1학기 말 국토여행 끝 무렵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것은 육체적인 과로상태에서 온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2학년 1학기에 건강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담임교사들도 선진이의 건강관리에 대해서 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선진이가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선진이의 건강에 관해 염려를 해 왔습니다.
저는 19년이 채 안되는 선진이의 삶과 죽음의 의미에 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선진이가 간디의 딸로서 영원히 간디와 함께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선진이 부모님께는 ‘선진이는 재능이 많으니 밥 먹고 사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고 늘 이야기하곤 했었지요. 내심 저는 선진이가 간디학교로 돌아와 일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선진이의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의 뜻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듭니다.
변선진은 긍정의 삶, 거의 절대긍정의 삶을 살았습니다. 너무나 긍정적이었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선진이는 어려운 환경 부정적인 환경 조차도 긍정적으로 바꾸어 해석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선진이는 신의 긍정을 가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긍정의 힘은 놀랍습니다. 절대긍정의 힘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것을 배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선진이는 우리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늘 교실과 분위기를 밝히는 등불이었습니다. 미소와 친절과 따뜻함은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웃음, 친절, 격려의 말로서 우리를 업(up)시켰습니다. 선진이는 우리에게 Happiness Maker였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학기마다 선진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였습니다. 학기말평가서를 보면 매 학기마다 교사들이 선진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학년 2학기 ‘수업을 진행하는데 선진이의 적극적인 태도가 저에게 아주 큰 힘이 되었습니다.’ 2학년 1학기 ‘수업참여도도 높고 전체적으로 학습분위기를 조성하여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2학년 2학기 ‘선진이는 평화여행동안 모든 친구들의 비타민 같은 존재였습니다. 기획 준비과정 진행 평가 등 모든 부분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참여했습니다.’ 2학년 2학기와 3학년 1학기에도 ‘항상 적극적으로 수업을 따라오고 교사를 도와주어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 선진에게 고맙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로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교사가 고마움을 전하는 학생, 교사와 같은 학생, 친구와 교사를 도와주는 예외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선진이의 삶의 뜻과 의미는 몇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삶의 긍정, 행복을 만드는 사람, 예술에의 꿈, 아이디어와 기획력. 저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싶습니다. 선진이의 삶의 의미를 이어가는 의미에서 학생 교사들과 논의하여 매년
행복주간(Happiness Week)이나 행복의 날(Happiness Day)을 선포하고 선진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아이디어 (Happy Ideas Contest)를 창조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바랍니다. 음악과 그림, 시와 노래, 연극 혹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아이디어와 기획 등이 선보이는 행사를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늘 긍정적인 사람, 따뜻한 친절과 미소의 사람,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뛰어난 친구, 그림과 음악 등 예술에의 꿈을 가진 예술가, 시간을 쪼개어가며 시간을 아까와하며 살아온 열정과 성실의 간디 3년, 그리고 간디를 사랑하여 졸업이수조건을 다 마치고도 졸업하거나 대체학습을 하지 않고 간디에 남았던 간디를 너무나 사랑한 간디의 딸, 선진이는 오늘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금산 간디학교의 교정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선진이를 이렇게 일찍 보내는 것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고 안타까움의 눈물을 멈출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진이가 누구보다도 찬란한 인생, 순수한 삶, 열정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진정한 간디의 졸업생이자 간디의 영원한 상징인 선진이에게 교사들이 쓴 글을 읽어 보겠습니다.
‘금산간디학교에서 선진이가 보낸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였습니다.
선진이의 슬픔과 기쁨, 눈물과 환희는 우리 간디 식구 가슴 속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습니다. 진정한 자기발견의 교육이 실현되는 오늘의 금산 간디학교를 만들어낸 선진이는 모두의 자랑이요 긍지입니다. 이제 선진이는 오늘 간디의 동산에서 한 그루의 나무로 영원히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은 영원한 간디인이며 우리 모두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졸업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라고 말하고 했던 선진이를 아름다운 자연과 우주의 신이신 당신의 손길에 맡깁니다. ‘She will forever live in the house of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