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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절규 (1893, 83.5 x 66cm , 템페라화법)
작가: 에드바르 뭉크 (1863~1944)
작가의생애: 1863년 12월 12일 노르웨이 로이뎅에서 출생, 부친은 빈민굴의 의사인 크리스티앙 뭉크, 모친은 라우라 카트리네 뷸스타드.1864년(1세) 뭉크 1가 오슬로로 이사.1868년(5세) 모친 라우라, 결핵으로 사망. 죽은 어머니를 대신해서 이모가 가사를 돌봐 줌.1877년(14세) 누이동생 소피어, 모친과 같은 결핵으로 사망. 뭉크는 모친과 누이동생의 죽음, 그리고 폐 질환에 대한 공포가 일생 동안 집요하게 엄습, 고독하고 감수성이 날카로운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와 같은 성격은 그의 작품과 사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1879년(16세) 부친의 희망으로 공업 고등학교에 입학.1880년(17세) 화가가 되기를 결심. 공업 고등학교 자퇴.1882년(19세) 오슬로 국립 공예학교에 입학, 조각가 미테르트웅과 화가 크리스티나 크록에 사사함.1883년(20세) 타블로 야외 미술학교에 참가.1884년(21세) 이때 오슬로에 있는 보헤미안 그룹에 가입. 보헤미안들과 자주 접촉한다.1885년(22세) 장학금을 얻어 파리에 3주 동안 체재. 인상파의 작품에 강렬한 자극을 받는다.1886년(23세) <병을 앓는 소녀>, <사춘기>등 제작.1889년(26세) 이른 봄, 오슬로에서 첫 개인전. 가을엔 정부 장학생으로 파리 유학. 레옹 보나의 아틀리에에 4개월 동안 다님. 피사로, 쇠라, 고갱, 고호, 로트렉 등의 작품을 감상함. 부친 사망.1891년(28세) 여름, 오슬로로 귀환. 정부 장학금을 갱신, 파리로 감. 2개월 동안 루아블 병원에 입원.1892년(29세) 3월 귀국. 9월, 오슬로에서 2차 개인전. 1월 베를린 미술과 협회 초청으로 개인전을 개최했으나, 스캔들을 일으켜 1주일 만에 중단함. 그러나 이로 인해 뭉크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일약 유명인이 되었다.1893년(30세) 독일 각지에서 개인전 개최.1894년(31세) 동판화와 석판화를 시작함.1895년(32세) 오슬로에서 개인전을 끝내고 파리로 감. 파리의 오귀스트 쿠로의 판화 작업장에서 일하면서 판화 기술을 연마함.1897년(34세) 앙데팡당전에 <생명의 회도> 시리즈 인부를 출품.1898년(35세) 노르웨이, 독일에서 보냄.1899년(36세) 봄, 이탈리아 여행. 가을 겨울을 노르웨이에서 보냄.1900년(37세) 이때부터 1907년까지 주로 독일에서 살면서 제작 활동을 계속했다.1902년(39세) 베를린 분리파전에 <생명의 회도> 시리즈의 일부인 <절규>, <마돈나>, <생명의 약동> 등 22점을 출품, 후원자가 된 막스 린더 박사와 알게 됨.1903년(40세) 막스 린더 박사 가족의 초상화집을 제작.1904년(41세) 베를린의 화상 카치라와 계약 체결. 베를린 분리파 정회원이 됨.1906년(43세) 베를린에서 공연한 <유령>등의 무대 장치를 맡음.1907년(44세) 베를린 극장의 실내 복도에 내걸기 위해 <생명의 회도> 신판을 만든다.1908년(45세) 노동자와 공장을 테마로 한 새 시리즈 제작에 착수. 코펜하겐의 정신 병원에 입원.1909년(46세) 5월, 정신병원 퇴원. 오슬로에 집을 마련. 풍경화를 제작. 삽화를 넣은 산문집 <알파와 오메가>를 만든다. 오슬로 대학의 벽화 콩쿠르에 응모하기 위해 준비.1911년(48세) <역사>가 오슬로 대학 벽화 콩쿠르에 당선됨.1912년(49세) 게른 분리파전에서 세잔, 고호, 고갱과 함께 전시실 하나를 배정받음. 뉴욕에서의 현대 스칸디나비아전에 <병을 앓는 소녀>, <백야> 등을 출품, 미국에 최초로 뭉크의 작품이 소개된다.1913년(50세) 뉴욕에서의 아모리 쇼전에 출품.1914년(51세) <역사>, <알마 마테르>, <떠오르는 태양> 등의 벽화를 오슬로 대학을 위해 제작.1916년(53세) 오슬로 교외에 있는 집을 매입, 이후 이곳에서 제작 생활을 함.1922년(59세) 취리히 미술관에서 대회고전.1927년(64세) 베를린 국립 미술관에서 회고전.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서 전람회.1929년(66세) 스톡홀름 국립 미술관에서 대판화전. 에케리에 <겨울의 아틀리에> 건립.1930년(67세) 오슬로 시청 홀에 장식 벽화.1936년(73세) 런던 화랑에서 개인전.1937년(74세) 스톡홀름, 암스테르담, 파리 만국 박람회의 노르웨이관등에서 전람회. 나치스는 뭉크의 예술이 퇴폐 예술이라고 낙인찍고 82점을 몰수.1940년(77세) 4월, 노르웨이가 독일군에 점령되자, 미술 명예 평의 외에 관여하도록 강한 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완강히 거부.1944년(81세) 1월 23일, 에케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향년 80세.
출처: http://youkasmunch.com.ne.kr/
작품 주제 및 설명: 절규 (絶叫,노르웨이명; Der Schrei, 영어 번역명; The Scream, The Cry)는 노르웨이의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1863∼1944)의1893년도 작품으로
노르웨이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1893년 이 그림을 제작하기 전 뭉크는 친구들과 거리를 걷다가 저녁노을을 보고
아래와 같은 유명한 일화가된 일기를 남겼습니다.따라서 그 내용으로 보아 이와
같은 경험이 바탕이 되어 절규가그려 졌었다 추측 할 수가 있습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거리와 피오르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쪽으로
태양이지고 있었습니다.바로 그 순간 갑자기 나는 너무 슬펐습니다.하늘이 돌연 피처럼
붉게 물들었습니다.나는 마음이 너무나 초조해저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서고 난간에
기대었으며 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처럼 검푸른 피오르드와 거리 위로 낮게 깔린 불타는
듯한 구름들을 바라 보았습니다.
두 친구는 잠시 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공포에 떨면서 소스라치게 그 자리에 줄곧 서있었습니다.그리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자연의 날카로운 절규가 대기를 갈기갈기 찢는 것 같이 느꼈습니다.이 강렬한
체험이 바탕이 되어절규가 그려졌다고 생각 할 수가 있습니다.
간접적으로는
뭉크의 불행한 성장 환경이 일조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누이의
자전 병과 이들의 죽음을 목격했고 이로 인해서 정상적인 가족간의 유대 관계와 보호를
경험하지 못하여 과목 함과 슬픔,죽음에 대한 모호한 공포가 어쩔 수없이 그의 작품에
반영 되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뭉크의 절규(The Screem)가 만들어지기까지..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해질녂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그 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멈춰선 나는 죽을 것만 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핏빛 하늘에 걸친 불타는 듯한 구름과 암청색 도시와 피오르드에 걸린 칼을 보았다.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그 때 자연을 관통하는(가로지르며 울리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 뭉크의 일기 中뭉크에게 있어 그 장소(절규의 배경으로 추정되는 노르웨이 피오르드 해안)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지는 곳이었다. 언덕 아래에는 바로 정신병원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병원에서 종종 미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한다(화가의 동생 로라도 우울증에 시달리다 1892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또한 근처에는 방목장과 도살장도 있어서, 이 역시 작품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뭉크의 절친한 친구였던 칼레 로헨이 문제의 장소 근처에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모니카 봄 두첸, <세계명화 비밀 The Private Life of a Masterpiece>, 뭉크의 절규 편
출처: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3&dirId=130105&docId=127963353&qb=662J7YGs7J2YIOygiOq3nCDsnpHtkojshKTrqoU=&enc=utf8§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TwWoddpySoCsss3vAnsssssssZR-192238&sid=cFkhxCOTJ8NiVVoh7oVPyw%3D%3D
작품 평가하기: ‘절규’는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나는 이작품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핏빛으로 물든 하늘과 회오리 치는 피오르드 강, 다리 난간에 있는 두친구와
절규하고 있는 사람은 마치 소리없는 공포와 불안감을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절규하고 있는 저 사람은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인 에드바르 뭉크를
그린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에드바르 뭉크의 불우한 성장환경이 이 그림에 나타나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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