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들! 경주, 포항에서 형형색색 곱디고운 가을 단풍 아래 귀한 더덕주 마시며 하하호호 하실 적에 코이카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말을 우리말로 옮기느라 머리 싸매고 끙끙대고 있었답니다. 월요일 새벽 출장을 앞두고 간신히 시간 맞춰 보낸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첨부를 빼놓고 보내는 바람에 결국 출장 내내 눈총을 한 바가지나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일본어 인명과 지명의 한자는 순전히 귀찮아서 생략합니다.)
그렇게 11일 월요일 새벽에 집을 나서 나고야 추부 센트리아 공항에 도착, 마중나온 버스를 타고 출장지인 가나자와에 가기에 앞서 먼저 구조하치만과 히다다카야마에 갔습니다. 늘 그렇듯 버스가 출발하고 잠들기 전에 차창으로 나고야역, 토요타 빌딩, 금빛 샤치호코가 반짝이는 나고야 성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혼노지의 변으로 죽은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오다 노부나가의 손자 산뵤시(혼노지의 변으로 죽은 오다 노부나가의 장남의 아들)를 세운 ‘기요스 회의’로 유명한 기요스 성을 보았습니다. “사진은?” 이라고 하셔도 늘 그렇듯 잠들기 바빠서 사진 따윈 찍을 새가 없었지요.
구조하치만에 도착해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아홉 가지 찬과 함께 이세 식 우동, 닭고기 스키야키가 나왔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일을 시킬 작정인지 아래의 아홉가지 찬을 제 앞에만 두 판을 놓아주더군요. 지금부터 체력 싸움이라는 마음으로 일단 주는 대로 다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구조하치만 성 아래 옛날 일본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거리를 둘러보았습니다. 계단식으로 세 칸으로 구분된 우물의 이름은 그새 잊어버렸지만 제일 오른쪽부터 먹는 물, 종이 씻는 물, 빨래하는 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냉큼 물맛을 보았는데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미지근한 데다가 달았습니다.

(이 사진은 초상권 문제 시 삭제합니다.)
이 곳은 천 년도 훨씬 전부터 가마우지를 이용한 은어 낚시가 성행하였습니다. 은어는 민물고기지만 잡냄새는 커녕 향긋해서 일본인들이 최고의 술안주로 쳐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점심에 나온 은어도 참 맛있었습니다. 이곳의 은어는 워낙 유명해서 해마다 처음 잡은 은어는 교토의 천황에게 진상했다는데, 이때 은어에는 반드시 가마우지의 부리 자국이 있어야했다고 합니다. 은어로 유명한 곳이다보니 맨홀 뚜껑에도, 어물전에도 은어입니다.


지금의 구조하치만 성은 메이지유신 이후 파괴된 후 새로 지은 성입니다. 성에 얽힌 여러 가지 전설 중 ‘오요시 전설’이 있습니다. 성을 지을 때 이 지역에서 제일 아름다운 '오요시'를 ‘히토바라시’로 삼아 산 채로 주춧돌 밑에 묻었는데, 그 이후 성벽 아래에서 ‘오요시’ ‘오요시’하고 부르면서 손뼉을 치면 여자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성에 올라가면 꼭 손뼉을 치며 오요시를 불러보리라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성까지는 올라가지 못하였습니다.

도로에서 올려다 본 구조하치만 성
구조하치만에는 골목마다 몇 채 건너 절이 있었는데, 각 절마다 특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조하치만의 집들은 목조인 데다가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화재에 약하므로, 화재 시 불길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벽체를 흙으로 지었습니다. 집 앞에 도로 곳곳에 수로를 만들고 처마 밑에는 양동이를 매달아 불이 나면 양동이로 수로의 물을 퍼서 불을 끄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동이의 숨은 기능이 또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요바이요케’, 곧 밤중에 남자가 몰래 여자의 방에 들어오다가 건드리면 우당탕 소리가 나는 경보기입니다.


수로에 꾸며놓은 정원. 쉬어가라고 또는 정취를 즐기라고 친절하게 의자도 있습니다.
이어서 히다다카야마로 가는 동안 노랑과 주황의 단풍을 배경으로 햇빛이 쨍쨍한 동시에 눈보라가 치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고원지대를 통과하는 고속도로라 지상에서 1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고가는 물론, 일본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14km의 터널도 지났습니다. 지대가 높은 데다가 사방이 산이어서 오후 세시 반인데 주위가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히다다카야마에 도착하니 오후 5시인데도 옛 거리의 가게들은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게마다 각종 칠기와 그릇, 공예품, 다양한 형태의 ‘사루보보’(순산과 건강을 기원하는 부적으로 각종 동물 모양을 하고 있는데 얼굴에 눈, 코, 입이 없다), 그리고 전통과자와 장아찌를 비롯한 각종 토산품이 가득했습니다.
무엇보다 히다다카야마는 도부쿠로로 유명한 곳이라 옛 거리 곳곳에 술도가가 있습니다. 열린 문틈으로 퍼져 나오는 시큼새큼한 냄새에 이끌려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 몸을 데운다는 핑계로 다들 한 잔씩 맛보았습니다만, 저는 냄새로만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이 지역은 히다규로 유명한데 값이 비싸서 제대로 먹으려면 상당히 돈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히다규를 꼬치로 구워 파는 곳이 있었는데 한 개당 400엔이었는지 800엔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숙소는 시내에서 떨어진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리고 방에 커피와 함께 놓여진 시이다케차(후추-표고버섯차)는 꼭 육수같았지만(같이 간 동료는 ‘국물맛’이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차봉지 뒷면에 육수 대신 사용할 수 있으며, 닭국물 낼 때 사용하라고 써 있었습니다.) 후추의 향과 함께 표고버섯의 고소함이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마시자마자 몸이 따뜻해져서 그 자리에서 두 잔을 마시는 기염(?)을 토하고 말았습니다.

호텔 방에서 내려다 본 히다다카야마 시내 전경
다음날 아침 호텔 매점 앞에서 문 열기를 기다려서 기어이 한 상자를 사고서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시라카와고로 출발하였습니다.
첫댓글 코이카 글 잘쓰네
부럽네!
코이카의 일본 문화유산 답사기 굿
그렇다니까,우리가 아무리 여행 다녀와서 수기라고 올려봤자,코이카에게 감수 받으면 다 빠꾸라니까^^
그래서 결론은 하나,앞으로 코이카 일정부터 맞춰 놓고 실크 동창회 개최합니당^^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고마워,,,다음 일정은 언제 올려주는겨?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2탄은 글쎄, 언제가 될까요? 오늘 저녁엔 자기 인생 찾겠다면서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세계일주하고 온 선배의 무용담을 들으러 가야 해서^^;
아주 잘 읽었어. 나도 이총의 의견에 동의!!
거 좋은 출장이네. 해야만하는 일이지만 조그만 여유로 하고싶고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행복이겠네요. 물론 이나마도 용기가 필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