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은 역사가 오래됐다. 18세기 서당에도 있었으니 50년 전이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에‘서당’이란 그림이 있다. 18세기 글방의 훈장과 학동(學童) 묘사가 빼어난 걸작이다. 아이는 방금 훈장한테 회초리를 맞았다. 눈을 내리깔고 서러움에 복받쳐, 흐르는 눈물을 찍어내면서 바지 대님을 만지작거린다. 훈장에게 등 돌린 채다. 책상너머 아이의 등판을 물끄러미 내려 보는 훈장의 표정에도 수심이 가득하다. 귀여운 제자의 여린 종아리에 회초리를 댔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아이는 외워오란 천자문을 못 외웠거나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의 뒤편엔 읽다만 책이 떨어져 있다. 요즘 학교체벌을 찬성하는 이들은 이 그림을 들며‘사랑의 매’는 교육에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림처럼 아무리 자애로운 훈장이라도 어쩔 수없이 회초리를 들어야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 드는 회초리야말로 정녕 사랑의 매며 그걸 맞은 아이는 바짝 정신 차려 학업에 몰두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서당도’그림엔 또 다른 아이들이 있다. 훈장 앞 왼쪽에 다섯 명, 오른쪽에 세 명이다. 회초리를 맞고 우는 아이는 이 여덟 아이들 가운데에 있다. 그런데 이 아이들, 표정이 웃긴다. 마냥 고소해하는 것 같다. 벌써 웃음을 터뜨렸거나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아이도 있다. 친구가 매를 맞고 서럽게 우는데 신이나 웃다니? 좋아 어쩔 줄 모른다니? 아하, 그러고 보니 맞은 아이는 친구들에게서 따돌림을 받는 모양이다. 요즘 말로‘왕따’인 것 같다.
따돌림 때문에 학교방화·살인미수까지 벌어진 사건이 있었다. 1963년 5월, 서울 모 중학교 1학년생이 죄명도 으스스한‘위계에 의한 살인미수’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위계란 계획적이란 뜻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13살 소년이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다 적발된 걸까. 어처구니없게도 학생들이 마실 물에 청소용 양잿물을 넣다 발각됐고 그 이유는“따돌림에 대한 보복”이란 것이었다.
소년은 그 일이 있기 전 반 친구의 만년필을 몰래 가져간 적이 있었다. 잠시 빌린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결국 15일 정학을 당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반 아이들이 일제히 따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도둑놈”이라고 말을 하면 그래도 나은 편. 아예 말을 않거나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학교 대청소일이 다가왔고 소년은 교실 바닥을 윤이 나게 닦음으로서 환심을 되찾으려고 했다.
부모를 졸라 때를 잘 빼는 양잿물을 학교에 가져왔다. 반 아이들에게 자신이 양잿물 묻힌 걸레로 마루를 닦아 윤을 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이들은 들은 체 만 체, 본 체 만 체 했다. 자기들끼리 숙덕대고 얘기를 하면서 소년은 아예 거기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소년은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먹을 물을 끓이던 솥에다 양잿물을 쏟아버렸다.
1972년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학교에 불을 지른 사건이 일어났다. 역시 따돌림 때문이었다. 생모를 잃고 계모 밑에서 자란 A군은 사랑이 없는 집과 학교 모두에 관심을 잃었다.
특히 학교에서는 공부를 못한다고 손가락질하는 담임이나 반 아이들 모두를 미워했다. 자연히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고 다른 아이들과 싸우는 일도 잦았다. 몇몇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고 선생님이 칭찬하는 걸 보면 질투심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장기 결석을 하게 된 것도 그런 열등감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A군은 몰래 학교에 숨어들어갔다. 교실 뒷벽에 붙어있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그림을 한 장씩 뜯어내 불을 붙였다. 한 장 한 장 태울 때마다 희열을 느꼈지만 불은 어느 순간 갑자기 공작도구 상자로 옮겨 붙었다. 혼자 꺼보려 했지만 역부족. 황급히 교실을 빠져나온 A군은 소방차가 오자 물을 퍼 나르며 진화를 도왔다. 그런데 이때 또 이상한 행동이 나타났다. 반 친구들을 보자 느닷없이“시원하게 잘 탄다. 저 불은 내가 낸 거야!”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 이후 사회문제로 대두된 왕따 문제는 심각했다. 왕따 당한 아이들이 사건사고를 저지를 때마다 언론은 교육의 부재를 한탄했다. 양잿물 사건 때는 소년이 물건을 훔친 행위를 교실에서 공개한 담임의 잘못을 지적했다.
또 아이가 집단 따돌림을 당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걸 알고도 방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교실에 불 지른 소년의 경우도 가정과 학교 모두 그에게 무관심했다며 특히 장기 결석할 때 가정방문 한 번 하지 않은 학교 측 처사를 나무랐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아이들 세계에 은밀히 번진 따돌림을 심도 있게 추적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이 사회문제로 본격 대두된 것은 80년대에 들어오면서였다. 86년 일본에서‘이지메’ 희생자인 중학생들이 잇달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국내에서도 학교폭력 실태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그해 5월 경향신문은 일본의 이지메가 한국에 번져“초 중학생들 사이에 학우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하는 사태가 늘고 있다”고 폭로했다. 신문은 서울시 교위와 7개 교육구청이 월 40여 건의 전학 상담을 받고 있으며 대개 급우들에게서 집단구타, 따돌림, 비웃기, 낙서 따위로 괴롭힘을 당해 전학을 희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