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안씨 판서공파
순흥안씨 판서공파(判書公派) 파조는 판서공 휘(諱)종약(從約)공(公)이다. 고려 성현(聖賢)문성공(文成公) 향(諱 珦) 선조(先祖)의 5대손(孫)이다. 문성공의 증손인 경질공(景質公 諱 원瑗)과 영양군부인(英陽郡夫人)남(南)씨의 장자(長子)로 1357년(丁酉)에 출생하시고 1388년(戊辰)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셨다. 조선 초에 이조참의(吏曹參議 正三品)에 선발(選拔)되었으나 즐거워하지 않았고 해주목사(海州牧使)를 끝으로 관직을 물러나서 서원(瑞原 지금의 파주)의 농막(農幕)에 머무셨다.
파주의 농막은 공(公)의 조부(祖父)인 문숙공(諱 목牧)대에 황무지였던 파주 일대를 개간하여 농장을 만들고, 고(考)인 경질공(諱 원瑗)대에 창성(昌盛)했다. ‘순흥안씨 파주농장’은 넓기가 수만 경(數萬 頃 약 일억 평 이상)에 달하고 노비가 사는 집이 백여 채가 될 정도로 큰 농장이었다. 조선 태조가 한양의 경복궁이 완공될 때까지 6개월여를 거처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단히 큰 집이 있었을 것이다.
파주농장에서 금주(琴酒)와 시서(詩書)로 자적(自適)하며 세간사(世間事)를 멀리 하시다가 향년(享年) 70인 세종8년(1426 丙午) 10월에 일생을 마감하시니 장지(葬地)는 교하(交河) 아곡방 야동(阿谷坊 冶洞 지금의 파주시 야동동)이었다.
아들 구(玖 예문제학) 경(璟 한성尹) 수(琇 직장) 리(理 군수) 넷과 손자 지귀(知歸/대제학)와 중후(重厚) 근후(謹厚) 관후(寬厚) 돈후(敦厚) 인후(仁厚) 오 형제 과거 급제, 증손(曾孫) 호(瑚 참판) 선(璿 부정) 침(琛 판서) 종(琮 군수) 기(璣 전적)와 당(瑭 좌의정)의 귀현(貴顯), 또 사위 성염조(成念祖 정승), 외손 성 임(成任 판서) 성 간(成侃 제학) 성 현(成俔 판서), 외증손 성세창(成世昌 영의정) 등의 현달(顯達)로 증직(贈職)이 되었으니 이조판서(吏曹判書)이다. 겸하여 경연(經筵)과 춘추관(春秋館)과 성균관(成均館)과 의금부(義禁府)의 지사(知事), 홍문관(弘文管)대제학(大提學)과 예문관(禮文館)대제학(大提學)을 추증(追贈) 받으셨다.
배(配)는 정부인(貞夫人) 동래정씨(東萊鄭氏)로 양도공(良度公) 양생(봉원부원군 良生)의 여(女)다.
4子2女를 두셨으니 長子는 玖(구)로 직제학에 증직(贈職)이 참찬(參贊 正二品), 二子는 璟(경)으로 판윤(判尹)에 증직이 찬성(贊成 從1品), 三子는 琇(수)는 직장(直長 從七品), 四子는 理(리)로 군수(郡守 從四品), 長女는 성염조(成念祖 판서)와 혼인하였고 二女는 박수지(朴遂智 현감)에게 시집갔다.
세상이 칭(稱)하기를 [구玖경璟수琇리理파派]라 하는 판서공(諱 종약從約 10세)파 자손은 순흥안씨 순수 혈통(血統)을 이어왔고 장자가 11대에 걸쳐 문과에 급제(고려 안향安珦 우기于器 목牧 원숭元崇 원瑗 종약從約 조선 구玖 지귀知歸 호瑚 처선處善 정珽)하는 대기록을 세운 문성공 자손의 적손(嫡孫)이다. 또 삼 형제 급제기록(고려 원瑗 조동祖同 수垂)과 오 형제 급제 기록(조선 중후重厚 근후槿厚 관후寬厚 돈후敦厚, 인후仁厚), 삼 형제 동시 급제(안처겸處謙 처함處함 처근處謹 / 父 瑭당), 두 형제 동시 급제 기록(위瑋 현玹 / 曾祖父 인후仁厚) 등, 대를 이어 학문을 일으키고 문성공 자손의 자존을 지켜온 가문이다.
순흥안씨 최초의 족보 병오보(丙午1546년) 이래로 ‘문성공자손(文成公子孫)’으로 기록되다가 자손이 번성하여 여러 지파(支派)로 갈라지면서 판서공(諱 종약從約을 파조(派祖)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가 되었다. 후손이 더욱 번성하여 종원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므로 다른 지파와 비교가 되니, 무오보(戊午1918년)부터 판서공의 아드님 넷이 모두 파조가 되어 분리 되었다. 곧 참찬공(구玖)파, 찬성공(경璟)파, 직장공(수琇)파, 서파공(리理)파다.
판서공의 이복형제(異腹兄弟)인 종례(從禮 감찰공), 종의(從義 첨추공), 종염(從廉 도정공), 종신(從信 참판공), 종검(從檢 참의공) 등 5형제도 모두 파조가 되었으니 이들은 경질공의 계배(繼配)인 파평군부인(坡平郡夫人)윤(尹)씨 소생이다.
판서공의 증조인 문숙공의 이복형제 신(愼)은 군부인(郡夫人)이(李)씨 소생으로 판관공(判官公)파의 파조가 된다. 또한 판서공의 숙부(叔父)가 되고, 경질공(휘 瑗)의 아우인 조동(祖同 양공공, 고려 문과)과 수(垂 한림공, 문과)도 파조가 되어 순흥안씨 일파(一派)를 이루니 이들은 모두 ‘문성공자손’이다.
순흥안씨 일파(一派 또는 추밀원부사공파) 곧 문성공자손이 12개로 분파된 다음에도 판서공파 종회(宗會)가 유지되었고 종원(宗員)들은 파주(坡州市 冶洞) 판서공의 묘소를 수호(守護)하는 일과 '오공팔부인(五公八夫人)' 망배제(望拜祭)를 모셔왔다.
오 공(五公)은 판서공의 고(考)인 봉익대부 형조전서 경질공(景質公 諱 瑗), 조(祖)인 정당문학 순성군 문혜공(文惠公 휘 元崇 / 順城君), 증조(曾祖)인 정당문학 순흥군 문숙공(文淑公 휘 牧 / 順興君), 고조(高祖)인 광정대부 검교첨의찬성사 겸 판전의시사 순평군 문순공(文順公 휘 于器 / 順平君) 그리고 벽상삼한삼중대광 도첨의중찬 수문전태학사 문성공(文成公 諱 珦)이시다.
팔 부인(八夫人)은 영양군부인(英陽郡夫人)南씨 ․ 파평군부인(坡平郡夫人)尹씨(경질공),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人)원주元씨(문혜공), 화평군군부인(化平郡君夫人)金씨(문숙공), 철원군군부인(鐵原郡君夫人)崔씨 ․ 군부인(君夫人)李씨(문순공) 그리고 한남군군부인(漢南郡君夫人)金씨 ․ 서원군군부인(瑞原郡君夫人)廉씨(문성공)이시다.
아! 뿌리 깊은 나무에 잎이 무성하고 샘이 깊은 물은 흐름이 긴 것이니, 오 공(五公)은 ‘뿌리 깊은 나무’요 팔 부인(八夫人)는 ‘샘이 깊은 물’이라 할 것이다.
문성공의 자손은 받들어 모시고, 선조를 길이길이 추모하라. 이는 문성공의 후예(後隸)로 살아야 할 고귀(高貴)한 자긍(自矜)이요, 한국의 명문(名門) 順興安氏(순흥안씨)를 영원히 이어가고 빛내야 할 자존(自尊)의 근본(根本)이다.
<순흥안씨 판서공파종중 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