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나시우스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의 이름이 붙어있지만, 갈리아와 스페인 지방에서 사용되던 신경이 그의 신앙의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에, 또한 에베소와 칼케돈 공의회에서 논쟁되었던 교리에 대해 정통신앙의 입장과 아타나시우스의 신앙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여 진다. 대략 7세기 아틀(Autun)공의회 즈음에 아타나시우스신경이라는 이름으로 고정되어 역사적으로 전달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8세기부터 이 신경은 경건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고, 13세기에 이르러, 앞에서 언급한 사도신경, 니케아신경과 함께 믿음의 규칙으로써 광범위하게 인정받게 된다. 이 신경도 예배에 사용되면서 단지 고대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종교개혁 때에도 예전적 고백으로서 역할을 감당해 왔다. 이 신조는 아리우스와의 논쟁에서 제기 되었던 아타나시우스의 교리적 주장을 설명하고, 니케아 신경의 내용을 추가 확장한 신경이다. 크게 두 부분으로 첫 번째 부분에서는 삼위일체를 다루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기독론을 다룬다.
이 신경은 고전적인 형태의 한 분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이 삼위일체로 계신다는 것과 한 분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있다고 고백하는 교회의 변함없는 믿음을 표현한 훌륭한 신경이었다. 니케아 신경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종속부분에 대해 명백히 삼위 상호간 종속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성부와 성자의 성령발출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신경은 삼위일체 교리의 라틴어 사용이 고정되었음을 증거 하는데, 삼일(三一)을 'trinitas'라고, 위격을 persona로서, 그리고 본질은 'substantia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아타나시우스신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원 받으려는 이는 누구든지 우선 그리스도교의 정통신앙(正統信仰)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구든지 이 신앙을 완전하고 순결하게 지키지 않으면 틀림없이 영원히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이 정통신앙이란 이런 것입니다. 곧 삼위(三位)로서 일체(-體)이시고, 일체 가운데 삼위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삼위를 혼동하거나 한 본질을 분리함 없이 성부의 한 위가 계시고, 성자의 다른 한 위가 계시고, 또 성령의 다른 한 위가 계십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다 하나이시며, 그의 영광도 같으며, 그의 존엄(尊嚴)도 동일하게 영원하십니다. 성부께서 계신 것같이 성자도 그러하시며, 성령도 그러하십니다. 곧 성부께서 창조함을 받지 않으신 것같이 성자도 창조함을 받지 않으셨으며, 성령도 창조함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성부께서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신 것 같이, 성자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고, 성령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성부께서 영원하신 것같이 성자도 영원하시며, 성령도 영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한 세 분들이 아니시며, 영원한 한 분이십니다. 창조함을 받지 않은 분이시며,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성부도 전능하시고, 성자도 전능하시고, 성령도 전능하십니다. 그러나 세 전능자가 아니라, 한 전능자이십니다. 이처럼 성부도 신이시며, 성자도 신이시며, 성령도 신이십니다 (역자주, 삼신이 아닌 한 하나님).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은 세 주(主)가 아니시며, 한주(主) 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진리에 의하여, 삼위의 각 위(位)가 신이시며, 주이심을 인증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이, 세 신(神) 세 주(主)가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통종교에 의하여 금지되었습니다. 성부는 만들어지지 않으셨으니, 곧 창조함 받지도 않으시고, 나(生)지도 않으셨습니다. 성자는 성부에게만 나시며, 만들어지셨거나 창조되신 것이 아니고, 낳으신 것입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생기셨으며, 만들어지시거나, 창조되셨거나, 나신 것도 아니고, 나오신(出)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성부이시고, 세 성부가 아니시며, 한 성자이시고, 세 성자가 아니시며, 한 성령이시고, 세 성령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이 삼위에 있어서 어느 한 위가 다른 한 위의 선(先)이나 후(後)가 될 수 없으며, 어느 한 위가 다른 한 위보다 크거나 작을 수도 없습니다. 삼위의 전부가 동일하게 영원하시며, 같이 동등하심으로 상술한 것과 같이 모든 것에 있어서 삼위로서의 일체와 일체로서의 삼위가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려는 이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와 같이 믿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동시에, 영원한 구원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化身)을 정확히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른 신앙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이시며, 인간이신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부의 본질에서 나신 신(神)이시며, 온 우주보다 앞서 나셨으며, 인간으로서는 성모 마리아의 본질로부터 나셔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성(理性) 있는 영과 인간의 육신으로서 생존하시는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그의 신성으로서는 성부와동등하시며, 그의 인성으로서는 성부보다 낮은 것입니다. 신이시며, 인간이실지라도 그는 둘이 아니시며, 한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 됨에 있어서는 그의 신성이 육신화(肉身化) 함으로써가 아니며, 그의 인성을 신성 안에 받음으로써 입니다. 온전히 하나인데 본질의 혼동으로서가 아니며, 품격의 통일로써 입니다. 이성 있는 영과 육신이 한 사람인 것같이 신이시며, 인간이신 그도 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음부에 내리신지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에 오르시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가 오실 때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몸으로서 부활할 것이며, 각자가 행한 행위의 연고(緣故)를 자세히 진술할 것입니다. 선을 행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이나, 악을 행한 사람은 영원한 불(火)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곧 정통신앙입니다. 이를 진실 되고 굳게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아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신조의 첫 부분은 삼위일체에 대해 다루고 있다. 동일본질의 표현에 대해, 즘 더 명확하게 본질이라는 표현이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이심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세 분이 특정한 성질을 공유하거나 한 하나님의 세 모습이라는 오류를 지적하며, 명확히 성부, 성자, 성령이 한분 하나님, 한 본질이심을 고백한다. 구조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면서 성부가 ~ 하듯, 성자가 ~ 하며, 성령도 ~ 하다 라는 구조로 삼위를 차례로 연급하며, 하나님께서 세 위격 모두가 동일본질이며, 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주고 있다.
또 삼위일체 고백의 중요 전제로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삼위 하나님이 이해불가하신 분이심을 고백한다. 이는 역사상 많은 삼위일체 이단들의 등장이 왜 이루어 졌는지를 명확히 지적하는 표현이다. 인간의 이해로 삼위일체를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아리우스주의, 사벨리우스주의 등 다양한 이단들이 각자 자신의 철학적 전제와 논리에 근거하여 삼위일체를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에, 성경이 제시하는 삼위일체와 다른 교리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삼위 하나님이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므로 성경이 증언하는 대로 '삼위의 전부가 동일하게 영원하시며, 같이 동등하심으로 상술한 것과 같이 모든 것에 있어서 삼위로서의 일체와 일체로서의 삼위가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한다.
아타나시우스의 두 번째 부분은 기독론에 대해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구조와 흐름은 사도신경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칼케돈 회의까지 이루어진 초대교회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의 발전을 반영하고 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 두 번째 부분에서, 성자는 성부와 동일본질이라는 니케아 신경의 정리가 나온 이후에, 니케아 이후 칼케돈 회의(451)에 이르기까지 논쟁이 되었던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한 교리적 진술이 제시된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 신성과 인성은 혼동되지 않고 한 품격(위격)에서 연합된다고 표현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한 대표적 유비인 영혼과 육체의 유비도 등장하면서, 가장 고전적인 형태의 삼위일체론, 기독론에 대한 신앙고백을 잘 보여준다.
- ‘개혁교회 신앙고백’, 배광식. 한기승, 포커스북, p.4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