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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
벼들의 속삭임
문병란
- 내 어느 날 황금의 들판 위에서
오지게 익은 수많은 벼 들
저희들 끼리 은밀히 주고받는
비밀한 속삭임을 엿들었노라 -
「여보게 維新벼,
자네는 퍽이나 뽐내고 있네그려
남보다 일찍 익어 多收穫을 자랑하며
자네는 남달리 특혜를 받네그려.」
「여보게 통일벼
자네는 항상 늦장을 부리며
모가지 움추리고 앉아
어째 그리 결실이 더딘가.
주인님의 알뜰한 정성도 소용없이
자넨 아무래도 파농을 시킬 작정일세그려.」
「여보게 維新벼,
南國의 햇볕이 아직 남았으니
秋穀 수매 전까진 빨리 익어야겠네.
월급 받아먹는 나리들이
무작정 권장한 덕분에
우리 주인님 減收가 큰데
나로선 시기상조라 미안해 죽겠네.
이름마저 統一벼
어찌 통일이 막막한 땅 위에
내가 인기품종, 多收穫王이 되겠는가
아무래도 금년엔
維新벼 금년엔 자네의 해일세
우리 주인님 아침에 다녀가며
목 움추려 병든 나를 보고
길이길이 장탄식 늘어 놓았네.
농지세 재산세
주민세 방위세
비료대 농약대
둘째 아들 등록금
시집보낼 맏 딸 혼수감 걱정
태산 같은 빛 더미 탄식하고 가더군.」
「여보게 統一벼.
자네 주인님 사연 듣고보니
정말 가슴이 아프네그려.
어쩌다 이름이 維新벼!
자네나 나나 똑같은 벗인데
우리끼리야 뭐 못할 말이 있는가
새마을 지도자 우리 주인은
모범 경작생 표창을 받고
나 때문에 하사금도 받을 모양
과학하는 영농!
녹색 혁명!
높은 분들이 다녀가며
금년은 사상 큰 大豊이라 하더군.
모범 재배 단지 표말이 서고
카메라도 찰칵찰칵 신이 나더군.
나는 조금 부끄러워
잎 사이에 고개를 푹 파묻었지.
維新벼 만세!
維新벼 만세!
多收穫王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말이
나는 더욱 더 부끄러워 고갤 푹 숙였지.」
「維新벼.
자네는 참으로 부러운 처질세.
선택받고 표창받고 하사받고
널리 칭찬받고 선전되고
자네는 이 들판의 王이군 그래.
그런데 維新벼.
자네는 농촌지도소 직원을 어떻게 생각하나?
논두렁에 뒷짐지고 버티어 서서
適期이앙 適期시비 떠들어가며
平年作 豊年作
눈어름 통계 끄적거리며
주인님께 큰소릴 마구치더군.
우리가 미처 익기도 전
몇 만 석 수확
몇 만 석 남아돌아
신문에 큰 글자로 야단법석
움추린 목이 잘 나오지 않는
나의 처지로선 체면이 안 서네.」
「統一벼, 선배,
나도 자네와 同感일세
내가 시집온 건 얼마 되지 않지만
작년에도 大童소식 파다한 다음
며루님 덕분에 검불풍년 아니었나
골탕먹은 건 우리 주인님 뿐
통계는 간 곳 없고
주인님 곡간엔 검불만 쌓였었지.」
「그래 그래 유신벼
주인님 보기 민망한 일이야
비료대 농악대
인부대 경운기대
묵갈림 소작료
이것 저것 다 제하면
짚다발 몇 단 남는다는 농사 아닌가
땅밖에 모르고
이 땅에 자라는 우리밖에 모르고
아침 저녁 알뜰히 보살펴 준 우리 님
검버섯 핀 얼굴에 굵은 주름 보면
그냥 목이 메어 울음이 솟는다네
그것도 자기 논이나 있으면 多幸,
묵갈림 소작농 대리 경작
문서 주인 따로 있고
진짜 우리 주인 남의 땅 위에
항상 헛농사 빈 손바닥 뿐이라네.
자갈밭 깽변논
산비탈 천수답
목이 타는 가뭄속에
하늘만 쳐다보다 늙어온 주인님,
기다리다 지친 60년
쨍하고 해뜰날 찾아 오겠는가
그 옛날 땅을 잃고 떠나간
불쌍한 주인님을 생각하면
불현듯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네.」
「그런데 統一벼,
금년 우리들의 대접은 괜찮겠는가.
항상 푸대접 받으며
싸구려로 팔려가는 우리 신세
구장 반장 말씀만 지당하더군.
비료값 농약값은 70% 인상인데
금년 추곡 수매소식
15% 인상 20% 인상
우리를 놓고 흥정이 한창
오늘 아침 주인님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전망이 어두운 모양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며
논두렁에 주저 앉아 먼 하늘만 보더군.」
「여보게 維新벼,
이내 사설 들어 보게
일 년에 몇 천만원 월급타는 의원님들,
보너스에 세비에 거마비에
젊은 비서 좌우에 거느리고
금의환향 자가용에 뿡뿡거리며
고무신 막걸리에 신바람 나더니
요새는 웅변 솜씨 소식이 감감
금년엔 달력마저 걸렀다더군.」
「統一벼 선배,
듣고 보니 배꼽이 웃네그려.
뛰어난 웅변 솜씨
파당 싸움 일삼느라
보리밥 된장국은 구미가 없나 보지.
이 들판을 통째로 생킨대야
그 커다란 야심에 양이 차겠나.
선거만 끝나면 떠나가는 임
십리도 못가서 발병날 임.」
「여보게 維新벼
자네 <운동> 이란 말 알고 있는가
축구 배구 탁구 송구 야구
기계 체조 도수 체조
달밤에 맨손 체조
아니 아니 아니야
퇴비 증산 보리 증산
유실 녹화 절대 녹화
아니 아니 아니야
농협 어협 신협
종친계 대동계
관광계 유친계
아니 아니 아니야
푸른 마을 새마을
재배 단지 모범 단지
좋아졌네 좋아졌어
자네는 신나는 노래를 알고 있는가.」
「統一벼님 옳은 말씀,
그 많은 운동 지나간 다음
심심하게 말뚝만 남았고
남은 건 딱 뿐
남은 건 쭉정이 뿐
밀가루 시멘트 지나간 다음
펄펄 날리는 먼지 뿐
농협 사무소는 높이 솟아도
우리님 고무신 구멍이 날 뿐
삼학 소주 진로 소주
우리님 창자도 구멍이 날 뿐」
「답답한 주인님 벙어리 냉가슴
우리들의 노래는 소리가 없네
이땅에 명사님 수없이 많고
연감마다 그득그득 명당 자손
기자님 군수님 면장님 계장님
교수님 선생님 이장님 반장님
그보다 정이 깊은 애잔한 주인님
끔벅끔벅 졸고 있는 외양간 황소님
그 누굴 붙들고 하소연할까」
「여보게 統一벼
노래 솜씨가 굉장하군 그래.
답답한 우리 주인님을 위하여
남은 며칠 사이 빨리 여물어
저울에 앉을 때 힘을 내서
무게가 나가도록 알차야겠어.
허리띠 졸라 매고 땡볕 아래
우리에게 비료를 먹여 주고
좋아하는 소주도 꾹 참으며
30리 밖 읍내에서 농약을 구해다
우리를 알뜰히 보살펴준
주인님 수고에 보답해야지.」
「그래 그래」
「그래 그래」
사방에서 일제히 일어나는
착한 벼들의 속삭임 들으며
나는 씁쓰름한 한숨을 쉬었다.
으슬으슬 추워오는 들판 위에
노을은 곱게 타오르는데
나는 다음 논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엔 옛날의 벼들이 모여
색다른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Ⅱ.
「여보게 , 통일벼 , 유신벼
정다운 후배를 자네들은 아는가
다마금 은방주 아국벼
농림6호 농림7호 농림8호
지금은 모두 다 조상이 됐지만
자네들이 이 들의 왕자였지.
돌아가신 웃마을 金進士
안골 넉 섬지기 개똥 논에서
인기가 좋았던 아국벼 은방주
점잖게 꺼시락 수염 달고
세도 높은 양반님 흉내내며
進士님 큰기침 소리에
산더미 벼놀이
여기 솟고 저기 솟고
농주에 신명난 머슴들은
남의 풍년 즐거워
농사는 천하지대본 깃발 나부끼며
창자 속은 비어도
쿵닥쿵 쿵닥쿵
농악에 신이 난 상모춤이 흥겨웠지.」
「아국벼님, 은방주님
옛날 옛날 아주 옛날
5대조 10대조 할아버지 적
그 보다 더 아득한 옛날
이 들판에서 대대로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 들려주세요.」
「유신벼, 통일벼 자네들은 아는가
이내 사설 들어보게
넓으나 넓은 들 오지게 익은 벼
박 참봉 김 참봉
양반 지주 집으로 죄다 들어가고
진짜 주인들은 배를 곯던 시절
상놈 머슴들은 손톱이 빠지고
지게 밑에서 골병이 들었지.
타작이 끝나기 바쁘게 홅이 밑에서
우리들은 모두 멱서리에 담겨져
부잣집 창고로 끌려갔지.
터져 죽고 곯아 죽고
굶주리는 주인님 그리워하며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우리들은 창고에 갇혀 낮잠을 잤지
놀고 먹는 양반이 있고
일하고 굶주리는 상놈이 있던 시절
우리들은 쌀이 되어 밥상에 올라
득군의 기름진 수라가 되고
박 판서 김 판서 창자속에 들어가
뭉글뭉글 피어나는 욕심이 되고
탐관오리 시커먼 뱃속에 들어가
냄새 고약한 더러운 똥이 되고
세도 싸움 벼슬 낚시 밑천이 됐지.
「어디 그뿐인가
오욕으로 얼룩진 이조 5백년
한양에서 내려온 양반 불가사리
만경벌 나주벌 통째로 삼키고
걸신들린 변학도놈
환장한 조병갑이 설치던 시절
뺏고 빼앗기고
훑어가고 긁어가고
백성의 똥구멍에 불이 나고
매우 친 엉덩이에 사꾸라 피고
백성은 깻다발
두들기면 쏟아지는 밑천이 되고
金 나오너라 또드랑
銀 나오너라 또드랑
윽모 방망이 밑에서 박살난 씨알들
우리들은 울면서 빼앗겨 갔다네,
바리바리 실려서 문안을 갔다네,
풍년이 들어도 걱정,
흉년이 들어도 걱정,
줄 것 없어 걱정,
줄 것 많아 걱정,
땀흘려 일한 어진 우리 주인님들
기나긴 보릿고개 굶주리며
지집 쑥국 자식 쑥국
초근 목피 도토리죽
부황난 금수강산
하늘은 청청
솔잎 절개
댓잎 지조
쾌지나 칭칭 나아네.」
통일벼, 유신벼, 그대들은 아는가
머나먼 나라의 전설보다 슬프고
트로이 전쟁 장미 전쟁
그보다 더 슬프고 아득한 얘기
우리들을 둘러 싸고 벌어졌던
이 들판의 뺏고 뺏긴 역사
슬픈 草賊의 아우성을 아는가
大同江에 수장당한 만적이를 아는가
이조 머슴의 쟁기 끝에 엎어지던
그날의 한숨, 그 날의 분노
벌떼같이 일어났던 만경벌의 아우성,
白山에 시퍼렇게 솟아났던
甲午年 전봉준의 죽창을 아는가.」
「田政, 軍政, 환곡
三政의 수탈 정책 가렴주구
그 날의 피어린 역사를 아는가.
血稅 骨稅 白骨稅
人稅 水稅 穀稅
송충이보다 더 많았던 人虫
여기서 저기서 우글거리고
해가 떠도 도둑
해가 져도 도둑
날마다 계속되는 도둑 정치
도둑 왕 도둑 정승
큰 도둑 작은 도둑
代代로 물려온 도둑의 역사,
황구첨정 이름 좋다!
어린 아이 나이 늘려 병정세로 빼앗아가고
백골징포 가증하다!
죽은 사람 백골도 세금을 내고
勒貨,강제 환곡
가을에 고리채로 곱질러 뺏고
공지세 백지세,
억지 문서 조작하여
빈 땅 자갈땅도 세금 메기고
들쌀 죽저쌀
폭리 환곡제도
봄에 주고 가을에 몽땅 뺏고
가분, 증고, 입본, 탄정
수많은 명칭 문구
공자도 한 몫 끼고
맹자도 한 몫 끼고
공범이 되어가는 석가모니
山 절로 水 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
설록마다 열전마다
명분으로 한몫 잡고
실속으로 한몫 잡고
도둑이 따로 있나
앉으면 도둑이지
만석보 과다징수
수세로 뻇기고 공사비로 뻿기고
조병갑이 출세자금
변 학도 오입자금
東人, 西人, 南人, 北人
李哥, 金哥, 朴哥, 張哥
둘째 첩, 세째 첩, 네째 첩
더러운 뱃속에 들어가
요분질 , 도둑질 , 서방질 , 싸움질
물고 도는 역사 속에서 썩어간 우리
도둑 배짱 되었네
구린 똥이 되었네
원통하고 서러운 상놈 팔자
만경벌 나주벌 황금벌 버리고
감영으로 한양으로 실려 올라가
세도 싸움 양반 싸움
기름 낀 배꼽 속에 정력이 되었네
탐관 오리 뱃속에 가서
썩고 썩은 욕망의 구린 똥이 되었다네,
차라리 보리죽 되어
쌍놈 뱃속에 가서
마알간 창자 채워 주고
알뜰한 사람 되어 아기 만들고
상놈 여편네 수지운 방구나 될 것을
얄리 얄리 얄라라
얄랴리 얄라.」
「아국벼님 , 은방주님
그만 그만 그치세요
무슨 역사가 냄새 뿐인가요
구리고 썩은 냄새
코가 썩고 귀가 썩고
두 눈이 어질어질
역사는 다름아닌 도둑 족보
우리도 도둑님 뱃속에 갈까 봐
쌀밥 될 일 두려워요
차라리 보리 속에 섞여
상놈 밥상 찾아가고 싶어요.」
「여보게 , 통일벼 , 유신벼 ,
그뿐인 줄 아는가 일제 시대
우리들은 익자 마자 타작이 끝나면
공출 가마니에 가득가득 담겨져
정든 땅 버리고 현해탄 건너
일본 땅으로 끌려갔다네,
쭉정이만 남기고
껍질만 남기고
하얀 쌀이 되어 알맹이 되어
대판으로 동경으로 실려 갔다네.
일본 놈 창자 속에 들어가
더러운 똥이 되고
악한 피가 되고
제국주의 군국주의 총칼이 되고
이등박분 배꼽속에 기름이 되었네
천황놈 척추속에 양기가 되었네
왜놈의 어금니에 박살나고
왜놈의 혓바닥에 으깨어지고
역적놈 이 완용이 뱃속에 들어가
나라 팔아 먹는 역적 모의 되고
五賊놈 창고 속에 논공행상 되고
우리들은 모두 다 똥이 되었다네
슬프다! 소작농 묵갈림
빼앗긴 땅 위에도 봄은 오고
立稻先賣 논두렁에 주저앉아서
아이고 아이고 통곡하던
그 날의 우리 주인 생각하면
피가 타는 분통 참을 수 없다네.」
「아국벼님,은방주님
듣고 보니 저희들은 천만 다행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속 검은 北郭先生 죽고 없고
이 완용 나리 죽은지 오래니
선배님 보다는 나은 편이군요.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
가엾은 주인님 곁을 떠나
도시로 호텔로 부잣집 창고로
우리도 모두 다 팔려가지 않는가요,
주인 집 창고엔 쥐들만 끓는데
호텔에 가서 비후가스 따라가고
놀부 뱃속 들어가서 구린 욕심 되고
청상배 뱃속 들어가서 파당 싸움 되고
군인 뱃속 들어가 동족 상잔 되고
갈보 뱃속 들어가 양놈 왜무시 빨고
종이 장사 뱃속에 들어가 곡필되고
밀수꾼 뱃속 들어가 딸라 되고
깡패 뱃속 들어가 주먹 되고
변학도 뱃속 들어가 오입 기운 되고
우리들도 헛되이 썩는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우리들은 모두 다 뱃속에 들어가
구리고 더러운 똥이 되는 신세,
언제나 좋은 주인님 만나
어질고 착한 뱃속에 들어가
양심이 되고 정의가 되고 평화가 될꼬,
유신벼, 통일벼
너무 슬퍼하지 말게나
자네들은 틀림없이 어진 님 만나
참된 피 만드는 원동력이 될 걸세.」
「으시시 추워 오는 해름참
수수깡 언덕에 노을이 타는데
서러운 벼들의 속삭임 들으며
나는 벼들에게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Ⅲ
「여보세요 , 詩人님
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울고 계셔요
얼굴이 파리한 걸 보니 병중인가요
저희들이 뱃속에 들어가 힘이 될까요
우리들이 여물면 제일 먼저 잡수셔요
우리들은 모두 다 詩人님 윗속에 가서
양심이 되고 피가 되고 눈물이 될께요」
「고맙소 벼 들이여 , 부끄럽게도
나는 詩人이라는 이름으로
눈물 콧물 짜며 펜대 쥐고
시시한 사랑 노래 끌적끌적
농부들의 피나는 고통도 모르고
벼님들의 서러운 사연도 모르고
헛된 공상만 노래해 왔다오.」
「아니에요 . 詩人님 울고 계시군요
왜우시는지 저희들은 알아요
말못할 괴로움이 있다는 것도
詩人님 눈만 보면 대번 알아요
이제 우리를 잡수시고 힘을 내세요
저희들의 속삭임을 전해 주세요
저희들의 주인님 얘기를 노래해 주세요
詩人님 , 꼭 부탁이에요.」
「詩人님 ,詩人님 ,
구름에 달가듯이 가시지 마시고
술 취해 노을 속에 흔들리지 마시고
꽃길에 옷소매 적시지 마시고
一竿明月 赤君恩 一片丹心마시고
슬픈 땅의 울음 소릴 들어 주세요.」
「나는 나는 싫어요 놀부가 싫어요
변 학도가 싫어요 조 병갑이 싫어요
이 대감 김 대감 홍 판서 박 판서
꼬물꼬물 창자 속에 들어 가기 싫어요
춘향이 비단결 고운 뱃속에 가서
님 그리는 상냥한 방구가 될래요
詩人님 뱃속에 들어가 맑은 피가 되고
놀부놈 꾸짖는 대포 방구 될래요
왜놈 드나드는 호텔은 안 갈래요
노린내 풍기는 갈보에겐 안 갈래요
갑돌이 뱃속에 들어가 사랑이 되고
갑순이 뱃속에 들어가 이쁜 아기 될래요
왜냄새 싫어요 노린내 싫어요
詩人님 詩人님 詩人님 좋아요 .」
「나는 벼들의 속삭임을 듣는다
으시시 깔리는 어둠 속에서
벼들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다
만경벌 나주벌 김해벌
오지게 익어가는 들판에서
詩人의 귀에만 들려 오는
벼들의 슬픈 合唱을 듣는다.
1976년 10월
고향의 들 위에서
첫댓글 내 어느 날 황금의 들판 위에서
오지게 익은 수많은 벼 들이
저희들 끼리 은밀히 주고받는
비밀한 속삭임을 엿들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