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건설 산업 현장에서 크레인[起重機]을 사용하는 실무자가 크레인의 종류를 혼동하고 제원을 몰라 당황하는 것을 보고 보탬이 되고자 크레인에 대하여 약술한다
정조가 수원성을 축조하기 위하여 정약용이 고안 제작한 거중기(擧重機)가 우리 나라 최초의 기중기(CRANE)다. 이 기중기를 개량 발전시키지 못하고 현재는 거의 일본 미국 제품을 사용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현황
기중기는 1989년 12월말 3124대가 90년대 초부터 급격히 수입이 증가하여 1997년 12월말 7875대에 이르렀다. 10톤인 기중기나 1000톤인 기중기나 똑같이 1대로 통계상 집계되나 90년대부터 수입된 기중기는 50톤부터 200톤까지가 대부분을 찾이 하였다. 80년대 이전에는 50톤 이상 크레인이 매우 희귀한 시기였다. IMF 한파로 헐값에 외국에 되파는 불상사가 발생하여 1999년 12월말 6953대로 국가 보유대수가 급감 하였다. 중 대형 CRANE을 덤핑으로 역수출하는 바람에 국가적으로 다대한 손실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IMF가 시작되면서 Crane을 외국에 헐값에 매각한 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건설분야는 침체되었으니, 전반적인 산업이 활성화 되니 30톤 50톤 하이드로 크레인의 수요가 급증하여 공급이 부족하게 되었다. 산업합리화정책으로 IMF 후에, 묶여있던 수입다변화 정책이 해제되면서 중고 크레인의 수입이 허락되니 여지껏 수입 못하던 일본의 중고 Hydro Crane을 대량 수입하게 되었다.
중고 크레인의 수입이 허가되면서 1, 2년 사이에 급상승하여 2002년 12월말 7,941대로 대폭 증가하였다.
결국 새차는 팔고 헌차는 비슷한 가격에 수입하는 형국이 되고 일본은 때아닌 중고 크레인 호황을 맞아 중고 가격이 계속 상승하게 되었다.
건설 부문은 계속 부진을 면치 못하여 특히 70톤 80톤의 Crawler Crane이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2002년 봄부터 건설경기가 호황이 시작 되여 2003년까지 계속되자 70톤 80톤의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중고 크로라 크레인의 수입 러쉬가 시작 되여 일본의 중고차가 동이 나는 사태에 이르렀다. 4,-5년만에 건설 경기가 다시 시작되어 크로라 크레인의 중추격인 70론 80톤의 경기가 살아났지만 30톤 50톤의 크로라 크레인은 소형 주택이나 아파트 경기가 활성화 되면서 80톤보다 먼저 활황이 시작 되었고 150톤 이상은 월드컵경기장 건설 등으로 그런대로 IMF 후에 작업이 계속되여 70톤 80톤 크로라 크레인 보다는 IMF의 고통이 덜 하였다.
건설 경기가 장기간 침체되다보니 크레인 기사들은 타 업종으로 전환하여 떠나 버리고 새로운 기사 배출은 되지 않아 건설은 활황으로 크레인 기사를 구할 수가 없으니 기사의 급료가 천장 부지로 인상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나마도 고령의 기사만 있을 뿐이다. 기사 문제가 사회화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크레인 뿐만 아니라 건설 전체가 3D 업종으로 비쳐지면서 구인난은 계속될 것이고 기사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말이 태동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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