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途)’와 ‘길/장(長)’의 어원
장(長)은 흔히 머리카락이 긴 노인을 그린 글자로 설명하지만, 그림글자만으로 보는 시각의 한계이다. 사람[인(人)]과 그 머리 부분의 형태로 말미암아 나타난 시각의 착시에 지나지 않는다. 장(長)의 갑골문은, 기호문자로 보면, 인(人) 위에 분명한 일(一)과 길[도(途)]의 형태처럼 나타낸 글로 이루어진 기호 글자이다. 직선으로 나타낸 모양은 곡선으로 출렁이는 머리카락을 나타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곧게 뻗어가며 비어지게 꺾이는 길의 모습이 보다 더 타당하다. 물론 고불고불한 길도 많지만, 길은 가장 빠른 직선의 지름길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네거리를 나타냈다는 행(行)과 비교하면 서로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다.
도(途)의 갑골문이고,
행(行)의 갑골문이다. 참고적으로 길을 뜻하는 도(道)와 로(路)는 금문부터 나타난다. 갑골문의 도(途)에서 점차 두 가지 뜻으로 보다 분명하게 서로 구분하여 나타냈다는 반증이다. 어쨌든 다닐/행(行)은 네거리를 그린 것으로 설명하지만, 네거리와 ‘다니는’ 행위는 결코 같지 않다. 다니는 행위는 발로 걸어 다니는 일이다. 네거리를 그렸다면 ‘길’에 더 가까운 뜻이다. 오히려 발이 그려진 도(途)가 걸어 다니는 뜻에 가깝다. 언뜻 서로 뜻이 바뀐 글자처럼 보인다.
갑골문의 행(行)을 단순하게 축약하여 나타내면, 십(ㅣ)의 중간에 입(∧)이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십(ㅣ)은 뚫을/곤(丨)이기도 하다. 길을 내는 것은 길을 뚫는 일이다. 사람이 오갈 수 있게 일정한 폭을 가진, 마치 오고가듯 두 줄[∥]처럼 뚫는다. 길을 뚫다 막히면 비키어 비어지게[//] 낸다. 갑골문 장(長)의 윗부분 모습(자형)이다. 또는 네거리처럼 양 옆으로 가지 치듯 샛길도 뚫어서 낸다. 갑골문 행(行)의 모습이다.
네거리를 마치 입(入)의 자형처럼 나타낸 것은 길 위에 들어가는 상징을 나타내기 위한 뜻임을 알 수 있다. 즉, 다니는 행위는 일단 ‘길 위에 들어서다’는 뜻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글말 ‘행’으로써 그 행위를 지시하여 ‘다니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해죽대며(가볍게 팔을 내저으며 걷다) 오다(어떤 기준이나 정도에 이르다, 어떤 행동이나 상태가 계속하여 진행됨을 나타냄)/오가다(왕래하다)’의 준말이다. 다시 말해 ‘길에 접어들어 걸으며 오(가)다’는 뜻이다. 글말(음)의 뜻이 없는 한자 행(行)은 그냥 네거리의 의미뿐이지만, 글말에 의미가 있을 때 비로소 ‘다니다’는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말 ‘다니다’는 ‘다다르게(목적한 곳에 이르러 닿다, 어떤 기준에 이르러 미치다) 니서(반치음)티다[<옛>이어(계속하여, 잇대어) 치다(치르다, 겪다, 해내다)]’의 준말이다.
길은 사람들이 오가며 걸어 다니면서 생긴다. 발로 다져지며 마치 땅이 뚫어지듯 트여진다. 그렇게 길은 길이 나며(버릇처럼 되어 버리다, 윤이 나거나 쓰기 좋게 되다) 생기는 것이다. 도(途)의 갑골문은 입(入)과 ‘∨’기호 아래 철, 초(屮) 가 덧붙여진 글 그리고 지(止)로 얼개(구조)된 글자이다. ‘∨’는 입(∧)이 뒤집혀진 글자이다. 들/입(入 < ∧)은 ‘양 옆으로 비어져 내리며 감싸[/ \] 입다(옷을 몸에 꿰다, 손해를 받거나 누명 따위를 뒤집어쓰다, 은혜나 도움 따위를 받다, 어떤 일을 치르거나 당하다)[입]’는 얼개의 뜻이다. 즉,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옷을 입듯, 옷 그 대상의 안으로 꿰고(뚫고) 가는 행위이고, 옷 그 대상으로 감싸 뒤집어쓰는 행위처럼 상징적으로 나타낸 상대적 개념이다.
반대로 입(入)이 뒤집혀진 ‘∨’는 ‘양 옆으로 비어져 오르며 벌려(떠받들어 올려)[\ /]’ 밖으로 ‘드러내다(트다)’는 뜻이다. 즉, 옷을 벗듯 껍질을 벗으며 속의 알맹이를 드러내는(트이는) 행위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 입(∧)은 ‘일어 보듬는(감싸는)’ 행위이고, 뒤집혀진 반대의 입(∨)은 ‘일어 바르는(벗기는)’ 행위의 뜻임을 알 수 있다. 보다 쉽게 비유하면, 입(∧)은 입[구(口)]의 먹는(들숨) 행위와 뒤집힌 입(∨)은 입[구(口)]의 말하는(날숨) 행위와 비견될 수 있다.
철, 초(屮)의 갑골문이고,
목(木)의 갑골문이다. 철, 초(屮)는 초(艸/草)의 갑골문이다. ‘얼(씨)을 뚫고[십, 곤(丨)] 초들어(어떤 사물만을 입에 올려 말하다, 쳐들다/들어서 올리다)[초, 철] 드러내다(일어 바르다)[∨]’는 얼개의 뜻이다. 그리고 우리말 ‘철’은 ‘사리를 가릴 줄 아는 힘’의 뜻이기도 하다. 그러면 철(屮)은‘철이 나다’는 뜻이고, 초(屮)가 ‘풀’의 뜻이다. ‘얼을[십(ㅣ)] 초들어[초] 일어 바르는(드러내는)[∨]’ 것이 풀이다. 즉, ‘푸어(푸다/물 따위의 액체를 자아올리거나 떠내다, 그릇 속에 든 곡식이나 밥 따위를 떠내다) 일다’의 준말이 우리말 ‘풀’이다. 그래서 ‘풀다(매이거나 얽히거나 묶인 것을 끄르거나 흐트러뜨리다, 무엇을 찾게 하려고 모여 있는 것을 헤쳐 흩어지게 하다 등등)’의 여러 뜻을 머금은 말임을 알 수 있다.
나무/목(木)은 ‘얼[십(ㅣ)]을 들이어[입(入)] 그 목(<옛>몫, 꿰미)[목]을 가지 치듯 여럿으로 비어지게 드러내다[\ /]’는 얼개이다. 곧 ‘나뉘어/나탈(여러 가닥으로 어지럽게 드리워져 한들거리는 모양)대며[나] 가지 치듯 모내다(모를 못자리에서 논으로 옮겨 심다, 모종을 내다)[모]’는 준말로 ‘나무’의 옛말 뜻이다. 다시 말해 ‘풀’은 얼(싹)이 풀어지며 자라나는 의미이고, ‘나모(나무)’는 얼이 여러 목[몫]으로 나누어지며 자라나는 의미로 서로를 구분했다.
‘∨’에 철(屮)이 덧붙여진 의미는 ‘철이 나 드러나는’뜻이고, 초(屮)가 덧붙여진 의미는 풀처럼 풀어헤치듯 ‘초들어 일다는’곧 답을 찾아가듯 길을 트듯 목적지를 골라 가는 뜻이다. 더불어 입(∧)과 입(∨)이 덧붙여진 얼개는 들숨과 날숨처럼 들랑날랑 대는(다니며 오가는) 의미도 또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의 머리 길과 걷는 발의 길을 상징하는 의미를 함께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止)는 이미 살펴본 것처럼 몸을 지탱하는 발의 의미이다. 땅을 굳게 다진 기틀의 의미이다.
따라서 도(途)는 ‘ 철이 나게 또는 얼이 풀어지게 들이어[余] 도도아(돋우어)[도] 굳게 다진 틀[지(止)]’의 얼개 뜻이다. 그러면 ‘(얼/땅을) 기르는 틀 곧 기틀(일의 가장 중요한 고동)’의 준말이 우리말‘길’의 뜻이다. 점차 천명을 실현하는 마음의 기틀 그 지름길을 도(道) 곧 ‘머리[수(首)]를 도스르며[도] 가는[착(辶)]’ 머리의 기틀(길)과 로(路) 곧 ‘치대어(夂) 구르며 다지듯(口)여러 각각의 사람들이[각(各)] 노상 노닐며[노(로)] 머무르는[족(足)]’ 발의 기틀(길)로 분명하게 구분지어 나타냈다.
장(長)은, 그 윗부분을 행(行)과 같은 맥락의 길[도(途) 이전의 글]로 보면, ‘사람의 키만큼[인(人)] 자아올린[장] 한[일(一)] 길[도(途)]’의 얼개로, ‘길이, 키’등의 뜻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한 길 사람’의 길이, 키 등을 나타낸 글임을 알 수 있다. 또는 ‘사람 무덤 한 장(무덤을 헤아리는 단위)의 길’의 얼개로도 단위의 길이를 나타낸다. 무덤은 사람의 키로 장이어진(쟁이어진/묻은) 의미에 따른 길이의 단위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옷 따위의 길이를 나타내는 ‘기장’의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면 ‘하나 더 기티어(남기어) 장이는 길’의 얼개로, ‘기티는 장’의 준말이다. 옷도 무덤처럼 사람을 감싸며(장이며) 넉넉하게(남기게) 나타내는 길이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늘의[일(一)] 마음 길[도(道)] 그 얼이/을 장이어진/자아올린[장] 사람[인(人)]’의 얼개로는 ‘어른, 우두머리’등의 뜻이 된다. 그리고 ‘사람 각자의 기준치(키)에 따라(견주어)[인(人)] 한[일(一)] 길[도(途)] 더 자아올리다[장]’는 얼개로, ‘기다랗다’그 준말 ‘길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우리말 ‘기다랗다’는 ‘(길이) 기티어(<옛>남기다, 끼치다)[기] 다ᄅᆞ게(<옛>다르다)[다라] 하다(크다, 많다)[ㅎ다]’의 준말이다. 즉,‘견주어 남길 만큼 다르게 길이가 크다’는 뜻이다. 그럼 ‘오래다’는 뜻은 어떻게 나타낸 뜻인가?
‘길다’는 공간의 길이가 기다랗다는 뜻이고, ‘오래다’는 시간의 길이가 기다랗다는 뜻이다. 물론 오늘날은 그 의미의 구분 없이 쓰이고 있지만, 본래는 서로 분명히 다른 뜻이었다. 우리말‘오래다’의 옛말은 ‘오라다’이다. ‘오라’는 지난날 도둑이나 죄인을 묶던 붉고 굵은 줄 곧 오랏줄을 뜻한다. 그러면 ‘오라다’는 ‘오라지다’곧 오랏줄에 묶여 죄여지는 상황으로 견주어 나타낸 말이다.
‘길다’ ‘오래다’등은 심리적으로 느껴지는 상대적 개념이다. 각자의 심리적 기준에 따른 판단일 뿐이다. 똑같은 시간이라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보내는 재미있는 시간과 지긋지긋하고 지루하게 보내는 징글징글한 시간은 서로 하늘과 땅 차이로 느껴진다. 이렇듯 오라지어진 답답한 마음의 상태를 기준으로 느껴지는 시간의 차이 그 죄여지는 마음이 클수록 오래된 시간으로 나타낸 의미임을 알 수 있다.
흔히 매우 오래된 시간을 ‘장구(長久)한 세월’로 표현한다. 여기서 오랠/구(久)는 본래 뜸뜰/구(灸)였는데, ‘오래되다’는 뜻으로 가차되어 쓰이자 보다 구체적인 불/화(火)를 덧붙여 새로 그 뜻을 분명히 구분했다고 설명한다. 구(久)와 구(灸)는 소전부터 나타나는 글자이다. 즉, 소전시대에 뜸뜨는 기술이 널리 쓰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쨌든 구(久)가 ‘오래다’는 뜻으로 가차된 까닭은 무엇인가?
장그랍게(징글징글하게)[장] 마주치는[마] 비를 장맛비 그 준말을 ‘장마’라 하듯, ‘(마음이) 장그랍게[장] 구겨지는/구가마하는(쌀가마니 따위를 법식대로 묶는)[구]’시간(세월)을 ‘장구(長久)’로 음차(音借)하면서 각각 ‘오래다’는 뜻이 가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는 음차이전의 장(長)을 ‘사람들이[인(人)] 장그랍게 느끼는[장] 마음의 한[일(一)] 길[도(途)]’의 얼개에 따라 ‘오랠’ 뜻이 전주되어 쓰였다고도 볼 수 있다. 《설문해자》에서 가차(假借)의 예로 설명한 것은 ‘장구(長久)’의 음차에 의한 설명임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장구(長久)는 ‘길게[장(長)] 뜸뜨다[구(久)]’는 의미를 담아 마음이 장그랍게 구겨지는(쪼려지는/오라지는) 심리적 상태를 오감(五感) 나아가 육감(六感)으로 느껴지듯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시각을 바꾸어서 바라보면, 장구한 세월은 또한 인고(忍苦)의 힘든 고난을 참아낸 시간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울어야하는 시간과 그 꽃이 시드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시간을 지내고도 다시 열매를 맺혀 씨앗을 장이며 떡메에 짓이겨지듯 마음이 치대어 다져지는(여물리는) 시간을 참아내야 비로소 새로운 씨앗이 탄생된다. 즉, 마음의 장(열, 씨)을 장이어[장] 구티는(<옛>굳히는)[구] 시간이 또한 장구한 세월이다. 한마디로 된사람[대인(大人)]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의 역설이다. 따라서 ‘오랜’ 시간은 오라에 묶여 죗값을 치르는 시간이고, ‘장구한’세월은 된사람이 되는 시간이다. 우리의 언어 습관이 ‘오랜’은 주로‘시간’과 어울리고, ‘장구한’은 ‘세월’과 짝을 이루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