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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한석내 정려비음기(孝子韓碩乃 旌閭碑陰記)
今上之十八年秋, 因歲旱, 大行疏鬱, 進覽禮部所錄孝烈特命旌孝子閭, 甚盛典也。縣人樂爲之鳩材聚糧, 官亦助其役, 不旬月工訖, 十月四日綽楔成。嗚呼! 此韓孝子之閭也, 孝子名碩, 啓下以碩乃, 因以名。其先淸州人, 襄惠公之耳孫, 判尹後琦之六世孫, 士人德麟之季子。自幼至行, 不離父側, 行必隨居, 必侍坐父母, 有疾憂形於色, 躬執爨, 以具粥飮。父母不食, 亦不食, 父母一飯, 亦一飯。家素貧, 身傭作得米穀藏庋, 伺罊乏供具, 每朝夕, 食舍半貯母鉢以食之, 身若自飽而執其事不懈, 蓋其素性然也。歲辛亥季夏十七日, 父以供祭, 入水將求魚時, 潦雨水盛, 孝子諫不聽, 遂隨而往, 在岸上, 上流大至, 父竟渰沒。隣人房生素壯健, 在近渚, 援以手, 力不及同溺。孝子方擗踊水濱, 尙冀有賴於房生之力, 而房生又至此, 乃呼天而哭曰 ‘父兮已沒, 我生何爲’, 以袖掩面, 投水以從之, 時年十六, 遠近憐之, 上下尋其屍, 僅得父屍, 而孝子之屍, 竟莫尋, 以衣招之, 藏其墓側。噫, 人子之孝於親者, 終古何限? 而以童稚之年, 不有其身, 視死如歸, 如孝子者幾人? 抑有所感焉。朝家旌表之典, 事體甚重, 雖有卓行懿蹟, 或多積久始發, 而今此孝子之事, 一經睿覽, 旋降恩典, 固可謂誠孝攸徹。而玆豈非旌淑樹風之治, 逈出今古耶? 烏頭焜燿, 使過而式者, 咨嗟而聳動焉, 則孝子之靈, 於是不死, 而是閭之關於世敎, 豈少補也哉?
정조 18년(1794) 가을에 그 해가 가물어, 막혔던 것을 소통시키는 것[소울(疏鬱)]이 크게 행해졌는데, 예부에서 기록한 효열(孝烈)로 특별히 효자로 정려(旌閭)하길 명하는 것을 어람(御覽, 국왕이 봄)하게 바쳤으니 매우 성대한 의식이다. 고을 사람들이 즐거이 정려문을 세우기 위해 재목을 모으고 양식을 모으니 관아도 또한 그 일을 도와 열 달도 안 되어 재료 모금이 마무리되어 10월 4일에 작설(綽楔)이 완성되었다. 아! 이것은 효자 한씨의 정려이다. 효자 이름은 석(碩)인데, 석내(碩乃)로 계하(啓下) 하시어 그 때문에 석내로 이름하였다. 그의 선조는 청주사람인데 양혜공(襄惠公)의 먼 후손으로 판윤(判尹) 한후기(韓後琦)의 6세 손이며, 사인(士人) 한덕린(韓德麟)의 막내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행실이 지극하여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고 나가면 반드시 따라가 거처하였으며, 반드시 부모를 모시고 앉아 질병이나 근심이 있어 얼굴색에 드러나면 직접 불을 때어 미음죽을 마련하였다. 부모님이 드시지 않으면 역시 먹지 않았고, 부모님이 한 숟갈 드시면 역시 한 숟갈을 먹었다.
집안이 본래 가난하여 몸소 품팔이를 하여 미곡(米穀)을 얻어 찬장에 저장해 놓았고, 엿보아 식기가 모두 비었으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밥을 반쯤 남겨 어머니 주발에 덜어놓고 먹으며 자신은 본래 배부른 것 같이하였는데 그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그 본성이 그러하였다.
신해년(1791, 정조15) 계하(음력 6월) 17일 아버지는 제수품을 마련하려고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할 때 장마비로 물이 한창 불어나자 효자는 들어가지 말라고 간청하였으나 아버지께서 듣지 않자 마침내 따라가서 언덕 위에 있었는데, 상류의 물이 크게 내려와 아버지는 끝내 엄몰(渰沒, 물에 빠짐)하였다.
마을사람 방생(房生)이 평소 씩씩하고 건장하였는데 물가 가까이에 있어 손으로 아버지를 당겼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고 함께 빠졌다. 효자는 물가에서 슬픔으로 가슴을 치며 발을 구르며 울며 방생의 힘에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방생 또한 이렇게 빠져버리니 이에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고 소리 내어 울며 말하길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는데 내가 산들 무엇을 하겠는가”하며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물속으로 몸을 던져 아버지를 따라갔으니 이 때 나이 16살이었다.
원근의 사람들이 그를 가엾게 여겼고 상류와 하류에서 그의 시신을 찾았으나 겨우 아버지 시신만을 찾았고 효자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하여 옷으로 그를 불러 그의 묘 곁에 장사지냈다.
아! 사람의 자식으로 어버이에 효도하는 자가 예부터 어찌 한 둘이겠는가 마는 어린 나이로 자신을 버리고 죽음을 집에 돌아가듯 여겼으니 효자 같은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며 또 감동되는 바가 있다.
조정에서 정려를 표시하는 의식은 사체가 매우 중대하여, 비록 빼어난 행실과 아름다운 자취가 있더라도 대부분 오래 되어야 비로소 나타나는 것인데 이번 효자 같은 일은 한 번 예람(睿覽)하시고 선뜩 은전을 내리셨으니 진실로 성효(誠孝)가 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일이 어찌 착한 사람을 표창하고 풍도를 세운다는 다스림을 고금을 통해서도 보기 드문 일 아니겠는가. 오두(烏頭)가 빛나고 빛나니 이 곳을 지나면서 경의를 표하는 자들로 하여금 탄식하며 용동(聳動, 몸가짐을 바로 잡음)하게 한다면, 효자의 영령이 여기서 죽지 않을 것이고, 이 정려문은 세상의 교화에 관문이 될 것이니 어찌 보탬이 적다고 하겠는가.
▶ 효자 한석내 정려비음기 한자풀이
今上之十八年秋, 지금의 주상께서 18년 째 되던(정조18년) 가을에
因歲旱, 그 해의 가뭄으로 인하여
大行疏鬱, 대행께서 울적하신 마음을 풀고자
* 大行은 임금이 돌아가시고 난 뒤 시호가 중국에서 도착하기 전의 호칭인데 이는 즉, 정조대왕께서 돌아가신 뒤 중국에서 시호가 도달하기 진에 이 글을 썼다는 의미입니다.
進覽禮部 所錄孝烈 예부에 나가셔서 효열의 기록을 보시고
特命旌孝子閭, 특별히 (한씨)효자의 정려각을 지으라고 명하시며
甚晠典也, 자상하게 법전을 밝혀주셨다.
縣人樂爲之鳩材聚糧, 고을 사람들도 기쁘게 생각하며 목재를 모으고 양식을 취합하였고
官亦助其役, 관아에서도 또한 그 부역을 도와
不旬月工訖, 짧은 기간 안에 공사를 끝내어
十月四日棹楔成, 10월 4일에 작설(旌門)을 완성하니
* 棹楔(도설)이라는 표현도 쓰지만 사실은 잘못된 표현이고 綽楔(작설)이 옳은 표현입니다. 작설은 정려각 앞에 세우는 홍살문을 말합니다.
於乎此韓孝子之閭也, 바로 이 한효자의 정려이다.
孝子名碩 효자의 이름은 석인데
啓下以碩乃因以名, 석내로 계하(임금이 명을 내림)하셔서 이름이 되었다.
其先淸州人, 그 윗대(本)는 청주인으로
襄惠公之耳孫, 양혜공의 8대손이고
府使後琦之七世孫, 부사 후기의 7대손이며
士人德麟之季子, 사인 덕린의 막내아들이다.
自幼至行, 어릴 때부터 행동이 지극했고
不離父側,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行必隨居, 반드시 아버지의 거동을 따라서 행동하며
必侍坐父母, 반드시 부모님을 시좌했다.
有疾憂形於色, 안색에 병색이나 근심이 보이면
躬執㸑, 몸소 불을 때고
以具粥, 飮 죽을 끓여 드시게 하는데
父母不食亦不食 부모님께서 드시지 않으면 자기도 먹지 않았고
父母一飯亦一飯, 부모님께서 한 술 드시면 자기도 한 술 먹었다.
家素貧 집이 가난하여
身傭作得米穀, 몸으로 품을 팔아 미곡을 얻어
藏庋 시렁 위에 갈무리하고
伺罄乏, 이내 다 없어질까 살피며
供具每朝夕, 매일 조석으로 차려서 올렸다.
食舍半貯毋鉢以食之, 부모님께서 밥을 반 남기시면 두었다가 그릇도 없이 먹었고
身若自飽而執其事不懈, 몸이 만약 싫어하는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할 때 게을리 하지 않으니
蓋其素性然也, 대개 그 소박한 성격이 이러했다.
歲辛亥 季夏十七日, 신해년 6월 17일
父以供祭, 아버지께서 제사를 올리기 위해
入水將求魚時, 물에 들어가 장차 고기를 잡으려고 할 때
潦雨水盛, 장대비가 쏟아져 물이 불었다.
孝子諫不聽, 효자가 들어가지 말라고 간청하였으나 듣지 않기에
遂隨而往在岸上, 마침내 아버지를 따라 가서 언덕 위에 올라가 있는데
上流大至, 상류에서 큰물이 닥치니
父竟渰沒, 아버지께서 물속에 잠겨버렸다.
隣人房生素壯健, 이웃 사람 방씨는 평소 장건했는데
在近渚, 근처 물가에 있다가
援以手, 손을 뻗었으나
力不及 힘이 미치지 못하고
同溺, 함께 빠졌다.
孝子方擗踊水濱, 효자가 가슴을 치며 물에 뛰어들어
尙冀有賴於房生之力, 방씨의 노력에 도움을 되길 바랐으나
而房生又至此乃 방씨 또한 물에 빠져죽고 말았다.
呼天而哭, 하늘을 부르짖으며 곡을 하며
曰 가로대
父兮已歿, 부친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니
我生何爲, 나만 살아 무엇하랴!
以袖掩面, 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投水以 從之, 물에 뛰어들어 부친을 따라가니
時年十六, 그 때 나이 열여섯이라.
遠近憐之, 모두들 가련하게 생각하여
上下尋其屍, 위아래로 시신을 찾으니
僅得父屍而 孝子之屍, 겨우 부친의 시신과 효자의 시신을 찾았으나
竟莫尋, 방씨는 끝내 찾지 못하고
以衣招之, 옷으로써 초혼(招魂)하고
葬其墓側, 그 묘의 옆에 장사지냈다.
噫, 아아,
人子之孝於親者, 사람의 자식으로 어버이에게 효도함은
終古何限, 옛날부터 어찌 끝이 있으랴만
而以童穉之年, 어린 나이에
不有其身, 그 몸을 잃고
視死如歸,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죽음을 대하니
如孝子者, 효자와 같은 이를
幾人, 어느 누가
抑有所感焉, 소감이 없을까.
朝家旌表之典, 조정에서의 정표(착한 일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에 관한 법전은
事體甚重, 일이 매우 엄중하여
雖有卓行懿蹟, 비록 큰 행적과 아름다운 자취가 있더라도
或多積久始發, 혹여 실적도 많고 시발이 오래되어야 하는데
而今此孝子之事, 지금 이 효자의 일은
一經睿覽, 한 번에 훑어보고
旋降恩典, 은전을 내리시니
固可謂誠孝攸徹而 확실히 효성이 투철하다고 말할 수 있고
玆豈非旌淑樹風之治, 逈出今古耶, 이는 맑은 것을 표창하고 바른 풍습을 세우는 다스림이며 고금에 빛나는 일이 어찌 아니랴.
烏頭焜燿, 오두(초오)에 빛이 남이며
使過而式者, 허물을 바로잡음이며
咨嗟而聳動焉, 탄식하면서도 벌떡 일어날 일이로다.
則孝子之靈, 곧 효자의 혼령이
於是不死而是閭之關於世敎, 이에 죽지 않고 이 정려각에서 세상에 가르침을 주니
豈少補也哉. 어찌 작은 보탬이라고 말할소냐.
-又玄 李應春 拙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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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헌아우~
수고많았고.
위의 번역문이 전주전통문화원 김순석원장님의 번역이고
아래의 번역문은 전국한시심사위원이신 우현선생님번역입니다.
두분의 번역문이 다른부분이 많이있는데 이것은 차차 바라잡아서 완벽한번역문을 완성하도록하여겠습니다.
효자비 전경사진도
잘 올려주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