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절 연혁
역사시대 이전의 산북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상고하기가 어렵다. 다만 기원을 전후한 시기의 한반도 남부지역에는 삼한(三韓)이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魏志東夷傳)에 진한(辰韓) 12국과 함께 변진(弁辰) 12국(도합 24개국)이 있었다고 기록된 바, 우리 산북면지역은 진한계(辰韓系) 내지 변진계(弁辰系)의 근기국(勤耆國)[일명 건기국(巾耆國)]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근기국[건기국]은 지금까지 그 일부가 남아있는 근품성(近品城)을 중심으로 소산봉수-봉우재-근품재-현리 큰재-약석 땅재(장재)-서중 근암(近嵒) 등의 지명과 촌락이 주변에 있어서, 이곳을 중심으로 산양·산북지역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아울러 이웃한 변진계(弁辰系)의 미리미동국(彌離彌東國)은 고어 미리미-미르물(용천, 용수, 용정:산양 진정)-물밑(용궁 삼강)-물탕걸이(영순)와 깊이 관련된 지명임을 고려할 때, 지금의 용궁·산양·영순지역으로 추정된다. 이로 미루어 우리면 지역은 근기국[건기국]과 미리미동국[미르물국] 2개의 읍락국이 분할통치하면서 농경사회로 출발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1. 신라초기에는 통치구역이 확립되었다고 확정할 수가 없다. 다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상주(尙州) 예천군(醴泉郡) 본(本) 수주군(水酒郡) 경덕왕(景德王) 개령(改令) 령현(領縣) 사(四) 영안현(永安縣) 본(本) 하지현(下枝縣), 경덕왕(景德王) 개령(改令) 풍산현(豊山縣), 안인현(安仁縣) 본(本) 난산현(蘭山縣), 경덕왕(景德王) 개령(改令) 미상(未詳), 가유현(嘉猷縣) 본(本) 근품현(近品縣), 경덕왕(景德王) 개령(改令) 산양현(山陽縣), 은정현(殷正縣) 본(本) 적아현(赤牙縣), 경덕왕(景德王) 개령(改令) 은풍현(殷豊縣)이라고 기록된 바 상주(尙州:군주, 도독)의 예천군에는 영현 4곳이 있었다. 하지현·난산현·근품현·적아현이라고 하였으니, 우리 면은 이때 난산현과 근품현의 각 일부로 수주군(水酒郡, 지금의 예천군) 소속이었다.
2. 통일신라 제31대 신문왕 7년(697)에 행정구역을 정비하여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정하고 상주를 3개의 직할현과 10개 군으로 편성했을 때, 우리 면은 수주군 난산현의 일부와 근품현의 일부였다. 제35대 경덕왕 16년(757) 전국을 한자 지명으로 고치면서 상주 수주군을 예천군(醴泉郡)으로, 난산현을 안인현(安仁縣, 지금의 동로면 수평리와 인곡리 일원)으로, 근품현을 가유현(嘉猷縣)으로 고쳤다.
3. 고려 제6대 성종2년(983) 전국을 5도 양계 12목으로 하였다가 제8대 현종9년(1018) 8목으로 고쳐 영남도(嶺南道)에 1경(慶州) 2목(尙州·晋州) 30군 92현을 두었다. 상주목(尙州牧)에 직속부, 경산부(慶山府:성주), 안동부(安東府) 등 3부를 두었다. 이때 우리 면은 안동영지사부 소속의 보주(甫州:예천)의 가유현(嘉猷縣)을 지금의 이름인 산양현(山陽縣)으로 고쳐 상주직속으로 이속 시키고 감무를 설치하였다가 명종10년(1180)에 폐지하였다. 신라말 고려초의 안인현은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의 동로면 수평리와 인곡리지역으로 확인된다. (참고:여지도)
4. 조선 초에는 고려의 제도를 따랐으나, 태종13년(1413) 지방제도를 전면 개편하여 8도제를 실시할 때 경상도(경상좌우도 시행 때는 경상우도) 감영을 상주에 두고 관찰사가 상주목사를 겸하였다. 이때 우리 면은 상주목 안동도호부 예천군 화장면의 일부와 상주목 산양현의 북부 일부였다. 성종17년(1485) 경국대전(經國大典) 시행 때 방(坊)·사(社)·면(面)이라고 부르던 행정구역을 면(面)·리(里)로 통일하여 시행하게 되었으나, 전국적인 시행은 17세기 이후로 추정된다. 여지도서(1757~1765년, 영조33~41)에 산북면은 상주 관문(官門)으로부터 99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24년 후인 영조3년(1789) 호구조사 때에는 산북면이 따로 없고 산동면에 각 마을들이 포함되어 있음은 이때까지도 행정상 시행된 명칭이 아니라 임의적으로 분할만 해 놓은 명칭으로 보인다. 1895년 6월 23일 칙령 제98호에 의거 우리 면지역은 1년 3개월간 용궁군 북면(서중 대상 대하 이곡 우곡 석봉 김용 거산 전두 종곡 약석 회룡)과 예천군 화장(가좌 호암 창구 소야 내화 가곡 월천 지내 흑송)에 분할 소속 되었다가,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하여 종전대로 복구되었다. 1906년 1월 19일 내무부 주관 지방행정구역 정비에 따라 예천군 화장면(가좌 창구 소야 종곡 내화 가곡 월천 지내 흑송)지역이 먼저 문경군에 편입되고,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따라 상주군 산동면이 산양과 산북으로 분면되어 문경군으로 이속되었다.
5. 1914년 4월 1일 산북면과 화장면의 합병시 화장면의 상위리 하위리는 산양면에, 수한리는 동로면에 할양되고, 산동면의 웅창리와 산서면의 탑상리 일부가 서중리에 편입 산북면이 되어 법정 21개리로 현재와 같은 면계를 형성하였다. 이 시기 우리면 행정리는 아래 별표와 같다. 1963년 9월 5일 문경군 조례 제54호에 따라 거산출장소를 설치하였고, 1995년 1월 1일 문경군과 점촌시가 통합되어 문경시 산북면이 되었고, 1996년 2월 8일 거산출장소는 폐지하였다.
2절 형승
산북면은 문경시(聞慶市) 소재지로부터 동북쪽 13㎞지점인 대상리에 면사무소가 위치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 대미산(大眉山, 黛眉山)에서 분지한 2개의 높은 산줄기가 동서로 갈리어 남진하면서 아치형의 분수령(分水嶺)을 이루고, 그 남쪽은 충적개활지로서 산북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1. 산북면은 남한의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명산이 둘인데, 동쪽은 공덕산(功德山)이 주산으로 대승사(大乘寺)를 품었고, 서쪽은 운달산(雲達山)이 주산으로 김룡사(金龍寺)를 품고 있다.
2. 산북면의 북쪽 대미산(大眉山, 1115m)과 황장산(黃腸山, 1077m)에서 발원하여 경천(慶泉)댐에 잠시 머물렀던 큰 물줄기(동로천)는 내화리로 흐르며 반계(潘溪, 일명 北溪)가 되고, 대하리 영각동으로 남류하여 광천(廣川, 너부내)에 이르는데, 가좌리 서북쪽 마전령(馬轉嶺)과 동북쪽 도화목 (桃花目)에서 발원한 반계수(磻溪水)와 사불산(四佛山)·운달산(雲達山)·조항령(鳥項嶺)·미면골·갈골·도치골·읍실 등등의 물이 합류하여 쌍승방(雙昇坊, 이곡리 석문정 일원)을 지난 또 하나의 큰 물줄기(산북천, 일명 아천 또는 대하천)와 광천동 너부내에서 만나 대천(大川)을 이루니 이것이 곧 금천(錦川)이다.
3. 산북면의 남북으로는 59번 국도와 923번 지방도가 있고, 남쪽에는 동서로 12번 시도가 있다. 가까운 거리에는 중앙고속국도와 중부내륙고속국도가 동서 양쪽에서 남북으로 종축(縱軸)을 이루고, 3번 국도와 34번 국도와는 종횡(縱橫)으로 이어져 있으므로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4. 산북면의 총면적은 111.28㎢로 산지의 면적이 87%를 차지하고 있어 농업과 축산업을 위주로 생활하며, 각종 문화유산이 산재한 문화산촌(文化山村)이다.
5. 산북면의 법정마을(面里)은 조선 초기부터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금천과 대하천을 중심으로 서서히 형성되면서 씨족별 집성촌을 이루어왔다. 이후 행정구역으로서의 산북면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확정되었다. 이 시기 상주군 산양현에서 분면한 산북면과 예천군 화장면이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주군 산북면 (38개 마을을 14개 마을로 병합)
保村 書院(熊倉) 大上 智保 大下 新平 幕谷 廣川 梨丁 梨下 梨上 月峴 于邑 江湖 刀致 大鳥 鳳上 鳳下 桃里 石橋
新基 五山 浦村 潘溪 沙村 蘆花 田頭 倉田 九巖 召野 宗谷 新川 藥山 槐花 白石 回上 回下 伊谷
●예천군 화장면 (14개 마을을 7개 마을로 병합)
加佐目 蒼邱 內化 伊川 月沙 池內 黑松 蘇野 鍾谷 揷峴 加佐谷 上渭 下渭 水閑
군 | 면 | 1899년(광무3) 상주군 산북면 리동 명칭 | 1914년 1월 문경군 산북면 리동 명칭 | 비 고 1914.4.1 |
총 계 |
| 52 | 21 |
|
상주(31면) | 산북면 | 38 | 14 |
|
|
| 보가리 서원 | 書中里 | 웅창 합병 |
|
| 대상 지보 | 大上里 |
|
|
| 대하 신평 막곡 광천 | 大下里 |
|
|
| 이정 이하 이상 월현 | 梨谷里 |
|
|
| 우읍 강호 도치 대조 | 于谷里 |
|
|
| 봉상 봉하 도리 | 石鳳里 |
|
|
| 석교 신기 오산 | 金龍里 |
|
|
| 포촌 반계 사촌 | 巨山里 |
|
|
| 전두 창전 구암 | 田頭里 |
|
|
| 노화 | 虎岩里 |
|
|
| 소야 | 昭野里 | 예천소야 합병 |
|
| 종곡 | 種谷里 | 예천종곡 합병 |
|
| 신천 약산 괴화 백석 | 藥石里 | 신천:용호동 |
|
| 회상 회하 이곡 | 回龍里 | 예천삽현 합병 |
예천(23면) | 화장면 | 14 | 7 |
|
|
| 가좌목동 | 加佐里 |
|
|
| 창구리 | 蒼邱里 |
|
|
| 내화리 | 內花里 | 내화장:內化庄 |
|
| 이천리 사월리 | 月川里 |
|
|
| 가좌곡동 | 加谷里 |
|
|
| 지내리 | 池內里 |
|
|
| 흑송리 | 黑松里 |
|
|
| 소야리 |
| 상주소야 합병 |
|
| 종곡리 |
| 상주종곡 합병 |
|
| 삽현리 |
| 상주회룡 합병 |
|
| 상위리 |
| 산양면 위만리 |
|
| 하위리 |
| 산양면 위만리 |
|
| 수한리 |
| 동로면 수평리 |
< 1914년 4월 1일 산북면과 화장면의 법정동리 명칭 >
첫댓글 三國志魏志東夷傳 : 서진(西晉)의 진수(陳壽:233~297)가 편찬한 〈삼국지〉위지에 부기된 고대 동방의 여러 종족과 국가에 관한 기록이다.
〈삼국지〉는 위지가 30권, 촉지가 15권, 오지가 20권이다. 송대(宋代) 이전에는 위서(魏書)·촉서(蜀書)·오서(吳書)로 나뉘어 간행되었기 때문에 '위서 동이전'이라고도 한다. 위지는 총 30권에 기(紀)가 4권, 열전(列傳:傳)이 26권인데, 동이전은 제일 마지막 권30의 오환(烏丸)·선비(鮮卑) 다음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