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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강화성당은 입구의 대문부터 대가집 정문처럼 닐리리기와 지붕이다.
현판도 우리나라 사찰처럼 왼쪽부터 글씨가 시작한다.
대문에 그림은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고...
좀 더 친밀하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건축양싱을 한옥이나 사찰처럼 보이게 했다.
들어가면 바로 만나지는 성공회성당 본당 건물이다.
닐리리 기와집에 지붕위의 십자가
전통한옥 같은 건물형태에다가 기둥마다 한문으로 글이 써져 있어 정말 대가집 안마당에 온듯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유일신 기록.
뒷마당에서 본 성공회성당 성전모습~!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는데
정말 날라갈듯한 자태가 세상을 구원하여 바다위를 부유하는 방주라도 될 듯하며
지붕위의 십자가의 모습
사적 424호로 되어있는 본 성당은
'고요한'이라는 초대 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
‘성베드로와 바울로성당’이라고도 한다.
1896년(고종 33)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이곳 강화에 한국 최초의 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건립자는 한국 성공회 초대 주교인 존 코르페(C. John Corfe:한국명 고요한)이다.
정면 4칸, 측면 10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목골조를 사용하고 벽돌을 쌓아올린 기와집이며, 2층은 바닥이 없는 통층구조이다.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본떠 지은 것으로, 외형상으로는 불교 사찰 분위기를 풍긴다.
한국에 서양건축이 도입되던 시기의 초기 건축으로,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건물이면서 지붕과 내부구조는 한국적 건축양식을 많이 가미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한국 토착화를 뚜렷하게 상징하는 듯하다.
1910년대까지 강화 지역 선교의 중심이 되었으며 성공회 신학교인 성미가엘신학교가 이곳에 설립된 이후
성공회 한국선교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성공회 사제가 된 김희준 신부를 배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