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숲으로 (1) 향토소설가 김담 산문(散文)
어디선가 고양이와 강아지가 태어나고 있을 즈음, 밤새 나무들이 울었으며 산이 흔들렸다. 집 안에서는 수도와 세탁기 호스가 얼었으며 벽이 갈라지고, 그 틈새에는 고드름이 맺혔다. 눈도 비도 없이 겨울 강은 꽁꽁 얼어붙었다. 여울목은 얼음이 겹겹이 쌓여 너테를 이뤘고, 갈꽃이 고부라진 갈대숲은 메마르고 앙상했다. 며칠 시뿌옇던 하늘이 환히 벗개면서 쨍쨍 맑았으나 날은 맵고 몹시 추웠다. 눈물이 흐르고 귓불이 시렸으며 곱아오던 손은 마침내 붉게 변하면서 욱신거렸다. 바람을 안고 걷는 저녁 산책길이 사뭇 벅찼다. 겨울이면 나타나곤 하던 황조롱이는 온데간데없고, 언제부턴가 말똥가리 한 마리가 전봇대 꼭대기에서 꼭대기를 오갔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말똥가리는 이쪽 전봇대 끝에서 아예 숲정이 너머로 사라졌지만 아주 가끔 논들 한가운데 높이 떠올라 날개를 활짝 펴고 제자리에 떠 있곤 했다. 목이 아프게 치어다보는 동안 말똥가리는 미끄러지듯 시야에서 사라져 두리번거릴 사이도 없이 숲정이 너머로 자취를 감추곤 했다. 다음날이면 말똥가리는 어김없이 그 근처에 잠복하듯 전봇대 꼭대기에 앉아 묵언 수행했다. 산 기스락 덤부렁듬쑥한 수풀에 숨어 있던 장끼가 난데없이 날아오르고, 개울가 갈대숲에 웅크리고 있던 고라니가 뛰어나왔다. 날짐승과 산짐승에게 아무런 적의가 없었으나 그들은 인기척만으로도 혼비백산,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다. 오히려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힌 나는 놀란 토끼 벼랑 바위 쳐다보듯 멀뚱멀뚱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변을 살폈다. 수풀 속에는 먹을 것이라고는 없어 보였고, 바람과 새 떼들만 모여 앉아 옥시글옥시글 분주탕이었다. 마을 산 기스락에는 태양광 발전소가 곳곳에 자리를 잡았고, 또 진행 중이었다. 솔수펑이에 고묵은 소나무들을 줄 이어 트럭으로 실어낸 뒤엔 흙을 퍼내 덤프트럭에 싣고 동네 입새를 벗어났다. 그런 다음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메숲졌던 솔숲 대신 이제는 번쩍번쩍하는 패널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마을 주민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전봇대는 크고 높은 새것으로 바뀌고 전깃줄도 겹겹이 늘어났다. 발 디딜 틈이 없이 빽빽했던 솔숲마다 파헤쳐지고 등성이는 까뭉개지고 있었다. 지역 생태와 환경을 고려해야 했지만, 어디에도 지역 생태와 환경을 고려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숲으로 들어갈 때마다, 동물들이 마을로 들어올 때마다 불화는 깊어졌고, 돌이킬 수 없이 나빠졌지만, 소나기눈이 내려 눈 더미가 무거워지면 골짜기 계류 가까이 있던 짐승들은 계곡을 따라 마을로 내려왔고, 숲 속 짐승들은 소나무 우듬지가 막아내 눈이 적게 쌓인 소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볕바른 솔수펑이에서 멧돼지가, 노루가 웅기중기 모여서 막막한 겨울 한철을 났다. 최후의 피난처였다. 호랑이, 표범과 곰도 없이 겨우 멧돼지와 노루, 담비와 삵이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는 숲은 하루가 다르게 쪼그라들고 있었다. 멧돼지와 고라니는 농부들에게 원성을 산 지 오래되었고, 숲이 허우룩해지는 겨울이면 더 많은 산짐승들이 마을로 내려와 인가를 기웃거렸다. 겨울 한철 수렵이 허가되면 사람과 짐승이 쫓고 쫓기는 전쟁을 벌이곤 했다. 북쪽엔 첩첩한 철조망이, 동쪽엔 시퍼런 바다가 남서쪽엔 인간의 마을이 산짐승들 발길을 막았다. 지난 초겨울 우리 집 컨테이너 바닥 틈에 새끼 세 마리를 낳은 도둑고양이는 미처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을 버리고 사라졌다. 좀처럼 들개와 도둑고양이를 간섭하지 않았으나 눈도 못 뜬 새끼들이 울며 보채는 바람에 우유와 참치 캔을 컨테이너 곁에 놓아주었다. 시나브로 우유와 참치 캔의 양이 줄어들었으며 일부러 읍내에 나가 우유와 참치 캔을 사왔고, 다시 보충해주었다. 먹이를 놓아두고 멀찍이 서서 지켜보면 힘이 센 놈부터 먼저 우유를 핥아 먹은 뒤, 차례차례 세 마리 새끼가 먹이를 먹었다. 우유를 핥다가도 인기척이 나면 콩알처럼 흩어져 컨테이너 바닥 아래로 숨었다. 얼마 뒤 어미인 암컷이 수컷과 함께 나타났고, 수컷은 틈을 보아 새끼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두 마리를 죽였고, 모두 멱을 물었다. 처음엔 가장 약해 보이는 새끼가 집 앞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교통사고가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주검이 깨끗했고, 목에만 상처가 있었다. 길섶에 땅을 파고 묻어주었다. 그러자 어미가 그 무덤자리에 냉큼 올라가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다음날도 같은 자리에 또 다른 새끼가 죽어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자리에 주검을 묻었다. 어미와 수컷이 나타나면 발을 구르며 쫓았으나 역부족이었다. 새끼 두 마리가 죽고 나서 우유와 참치 캔을 담아두던 그릇들을 치웠다. 마지막 한 마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어미와 수컷도 보이지 않았다. 애써 찾지 않아도 또 다른 도둑고양이들은 시시때때로 집 앞에 나타났다. 국물을 우리고 난 멸치와 생선 대가리들을 따로 모아놓으면 제각각 색깔이 다른 고양이들이 나타나 깨끗이 먹어 치우곤 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어미가 나타났고, 제일 힘이 셌던 새끼 한 마리도 모습을 드러냈다. 새끼는 이따금 마주치면 앙앙거렸지만, 못 본 척했다. 옆집 아저씨는 아주머니가 없는 틈을 타 지나가던 개장수를 불렀다. 개들은 여섯 마리였고, 아저씨는 개들을 거추장스러워했다. 남편보다는 개가 낫다는 아주머니는 알뜰히 개들을 건사했고, 이따금 개들 목줄을 풀어놓았다. 그러다 개들은 집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을 앓으며 울던 아주머니는 또 개들을 구해왔고, 아저씨와는 자주 다퉜다. 발바리는 거저 가져가라는데도 개장수는 도축비가 비싸다며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저씨는 발바리들을 끼워 개들을 넘기는데 성공했고, 귀가한 아주머니는 또 마을을 헤매며 개들을 찾아다녔다. 갯값이 헐해지면서 집을 나오거나 버려진 개들은 들개가 되었고, 짝을 이룬 하얀 발바리 한 쌍은 산 기스락 대숲에 새끼를 낳았다. 짝을 이뤄 먹이를 찾아 온종일 마을을 헤덤벼쳤다. 때로는 이웃 마을에서 눈에 띄기도 했다. 아저씨가 개들을 모두 없앤 뒤로 아주머니는 마당가 개집에 먹이를 놓아두었고, 그럴 때마다 들개들은 귀신 같이 찾아와 먹이그릇을 비웠다. 목줄 풀린 풍산개와 들개가 된 발바리가 흘레붙어 새끼가 태어났고, 새끼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 사룟값은 오르고, 갯값은 떨어진 탓이었다. 들개가 된 새끼들은 마을에서 사라졌고, 누구도 찾지 않았다. 얼지 않은 내 복판에서는 백로 한 마리가 매일 같이 먹이활동을 했다. 그 곁에는 오리가 모여 있기도 했으나 더 많은 날 홀로 어정어정 걸으며 먹이를 찾았다. 가만히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기척을 느끼고서는 느릿느릿 날아서 멀리 떠났다. 그러고는 다음날이면 또다시 그 인근에서 저 홀로 물속을 헤집으며 냇가를 오르내렸다. 세찬 바람이 불어 앞이 깜깜해지는 날엔 어디에 잠자리를 정했는지 문득 궁금했으나 그뿐, 밭두둑에 우뚝한 감나무를 치어다보며 걸을 뗐다. 그러면서도 얼음 언 물속에 잠긴 가느다란 발목이 눈앞을 어지럽히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저녁 빛에 태양광 패널들이 뾰족하게 빛났다. 산등성이 솔수펑이를 까뭉개고 논을 뜬 두 곳, 십여 만 평에 이르는 곳도 벌써 태양광 업자에게 팔렸다는 전언이었다. 국도에서 보이지 않는 마을 곳곳 솔숲에서는 매일매일 소나무들을 파내고, 또 그 소나무들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줄을 잇고, 그 뒤를 따라 흙을 실은 덤프들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뒤따랐다. 소나무를 사고팔던 사람이 이제는 태양광 사업으로 전환했고, 새시 사업에서 태양광 사업으로 전환한 어느 출향 인사는 어느 날 벤츠를 몰고 마을에 나타났다. 태양광 사업은 그에게 노다지광이 되었다. 숲을 잃으면 그곳에 깃들어 살던 온갖 짐승은 말할 것도 없이 끝내는 사람조차 온전하지 못할 것이었다. 이 한파(寒波)가 그냥 한파일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