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연 축사
(초등학교 은사 최석문 선생님의 회갑을 맞이하여. 1981.4.5.)
오늘 즐거운 이 자리에 우리 제자들이 은사님의 회갑연에 참석하여 축하의 마음을 전하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고래로 일러오는 말에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하였듯 칠십을 살기가 드물었다 하였으니 사람이 장수하는 사실이 얼마나 귀하고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옛 왕실에서는 사십 고개만 넘으면 망오(望五) 즉 오십을 바라본다 하였고, 오십만 넘으면 망륙(望六)이라 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선생님께서는 경사스럽게도 환갑을 맞이하시어서 망칠(望七)의 큰 복을 누리게 되셨으니 얼마나 큰 축복이십니까. 거기에다 젊은이 못지않게 기력이 왕성하시니 백 세 장수는 문제가 없을 것이며, 부덕이 뛰어나신 사모님과 슬하에 삼남삼녀와 손자 손녀를 두셨으니 인생의 복은 두루 갖추셨다 하겠습니다.
일찍이 선생님께서는 교육계에 투신하신 후 귀중한 청춘 시절을 오직 이 나라의 교육을 위하여 청렴결백하게 헌신하셨으니, 그 족적이 후세까지 길이 빛나실 것입니다.
회고해 보건대 저희가 선생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문학리에 있던 구 정남분교의 어려웠던 시절, 게향리에 있는 정문학교로 이주해 오던 그때의 시련과 환난 속에서도 오직 교육에 대한 불같은 신념으로 저희를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국가와 민족의 방패요 일꾼이니 열심히 공부해라. 정직하고 성실하며, 진실하고 겸손하여 선행으로 덕을 쌓아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어라. 너희도 이다음 내 나이쯤 되면 모든 것 이해할 것이다”라고 하신 교훈들을 되새기며 이제 저희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우를 범하지 않고 선생님의 말씀에 힘입어 반석 위에 집을 짓겠습니다.
서울시내 용강 초등학교에 서정옥이라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교편생활 38년 동안 15개 초등학교를 근무하던 중 1961.5.29. 용강 초등학교에서 가난을 이긴 링컨의 이야기를 하다가 졸도하여 59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합니다. 그분은 청렴결백하여 아내에게 배척을 당하고 학교 숙직실에서 자취하다가 돌아가셨다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접하는 순간 어릴 때 모교의 은사이신 선생님을 연상하며 그 은혜를 무엇으로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오늘의 저희는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이웃의 조그만 험을 책하며, 물질 만능과 명예와 교만과 극심한 이기주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서도 동심들을 올바로 지도하시는 숭고한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화란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는 말년에 가난하고 헐벗어서 보다 못한 제자들이 안타까워 돈을 거둬드리며 의식을 해결하시라 권했으나 그 돈으로 그림물감을 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이제 다시 태어나셔도 그 화가와 같이 교육계에 또 뜻을 두시리라 생각됩니다. 지금껏 후회 없고 보람된 생활을 하셨으니 말입니다.
사모님! 지금까지 내조하시기에 얼마나 노고가 크셨습니까. 어진 아내는 진주보다 더 귀하고 그런 아내를 둔 남편은 어떠한 환난과 시험도 견디며, 악을 잊게 하고 선을 행하게 한다고 합니다. 옛말에 “아내는 젊어선 남편의 여주인이고, 중년에는 친구가 되며 노년에는 유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사모님은 우리의 은사 털보 교장 선생님을 어린아이처럼 돌보시는 유모가 되시고 선생님께서는 사모님을 보석보다 귀중히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뿌린 씨앗은 이제 심은 그대로 거두어지고 있습니다. 그 씨앗이 저희를 통하여 아름답게 열매 맺어 선생님의 머리에 영광의 면류관으로 빛날 것입니다. 선생님! 바라옵기는 앞으로 더욱 건강하시어 천세 장수하시기를 기원하오며 이만 축사에 갈음합니다.
1981.4.5.
정문초등학교 제2회 졸업생 최병우(3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