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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派考證人物(분파고증인물)
-영일정씨(迎日鄭氏) 분파별(分派別) 고증인물(考證人物)
文獻備考(문헌비고)에 鄭氏(정씨)는 周厲王(주려왕)이 封少子友于鄭(봉소자우우정)하야 是爲桓公(시위환공)이니 其後世(기후세)에 因以國爲氏(인이국위씨)하다.
-①문헌비고(文獻備考)에 정씨(鄭氏)는 주여왕(周厲王-주나라 제10대 왕)이 작은 아들인 우(友)를 정국(鄭國-정나라)의 군주(君主)로 봉(封-왕이 영지를 하사하고 영주로 삼는 일)하여 이에 정환공(鄭桓公)이 되었으니 그 후세(後世)에 인(因-말미암다)하여 국명(國名)으로써 성씨(姓氏)를 삼았다.
迎日鄭氏始祖宗殷(영일정씨시조종은)은 新羅時(신라시)에 爲諫議大夫(위간의대부)니 以言事(이언사)로 貶于仁同若木縣(폄우인동약목현)하다.
-영일정씨(迎日鄭氏) 시조(始祖)인 종은(宗殷)은 신라(新羅) 태종(太宗) 무열왕(武烈王-신라 제29대 임금 김춘추) 때에 간의대부(諫議大夫-임금에게 간언하는 간관)였으니 직언(直言)한 일로 인하여 인동(仁同) 경내(境內)의 약목현(若木縣-경상도 칠곡 일대)에 유배(流配-귀양)되었다.
後孫宜卿(후손의경)은 遷迎日縣(천영일현)하야 戶長(호장)하다
-후손(後孫) 의경(宜卿)은 영일현(迎日縣)으로 이거(移居-옮겨 삶)하여 호장(戶長-촌장)을 지냈다
後孫襲明(후손습명)이 始籍迎日(시적영일)하다
-후손(後孫) 습명(襲明)이 비로소 영일(迎日)에 본관(本貫)을 두었다
●後孫襲明(후손습명)은 高麗仁宗時(고려인종시)에 文科(문과)하고 知樞密院事(지추밀원사)로 封滎陽公(봉형양공)하며 享書院(향서원)하니 爲一派(위일파)라
-후손(後孫) 습명(襲明)은 고려(高麗) 인종(仁宗) 때에 문과(文科)에 합격하여 ②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 형양공(滎陽公)에 봉(封)해져 ③오천서원(烏川書院)에 배향(配享-학덕이 있는 사람의 위패를 사당이나 서원에 모심)되었으니 한 파(派-갈래)가 된다.
十一世孫夢周(십일세손몽주)는 高麗恭愍王時(고려공민왕시)에 文侍中(문시중)이요 身與國亡(신여국망)하니 我朝(아조)에서 諡文忠公(시문충공)하고 從祀文廟(종사문묘)하다.
-정습명(鄭襲明)의 십일세손(十一世孫) 몽주(夢周)는 고려공민왕(高麗恭愍王) 때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과거에 합격)하여 시중(侍中)을 지냈으며 몸은 나라의 멸망과 함께하였으니 아조(我朝- 李朝, 조선을 말함)에서 문충공(文忠公)을 사시(賜諡-시호를 내리다)하여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배향하다)하였다.
夢周九世孫維城(몽주구세손유성)은 右議政(우의정)에 忠貞公(충정공)이라.
-몽주(夢周)의 구세손(九世孫) 유성(維城)은 우의정(右議政)을 지내고 시호(諡號-帝王제왕, 卿相경상, 儒賢유현이 죽은 뒤에 공덕을 칭송하기 위한 칭호)는 충정공(충정공)이라.
維城孫齊賢(유성손제현)은 孝宗朝(효종조)에 駙馬寅平尉(부마인평위)요 孝貞公(효정공)이라.
-유성(維城)의 손자(孫子) 제현(齊賢)은 효종(孝宗) 때에 부마(駙馬-효종의 넷째 딸인 숙휘공주의 남편)가 되어 인평위(寅平尉)에 봉(封)해졌으며 시호(諡號)는 효정공(孝貞公)이라.
齊斗(제두)는 ④逸贊成(일찬성)이요 文康公(문강공)이라
-유성(維城)의 손자(孫子) 제두(齊斗)는 은일(隱逸-숨은 학자로 과거를 보지 않아도 임금이 높은 벼슬을 제수하는 것)로 찬성(贊成)을 지냈으며 시호(諡號)는 문강공(文康公)이라.
齊斗玄孫文升(제두현손문승)은 文工曺判書(문공조판서)요 孝憲公(효헌공)이라
-제두(齊斗)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사대손) 문승(文升)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합격)하여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지냈으며 시호(諡號)는 효헌공(孝憲公)이라.
夢周十一世孫纘述(몽주십일세손찬술)은 武御營大將(무어영대장)이라.
-몽주(夢周)의 십일세손(十一世孫) 찬술(纘述)은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합격)하여 어영대장(御營大將-서울의 도성을 지키는 어영청 대장)을 지냈다.
●後孫克儒(후손극유)는 監務(감무)요 宜卿(의경)의 二十一世孫(이십일세손)이니 爲一派(위일파)라.
-후손(後孫) 극유(克儒)는 감무(監務官-고려의 군현에 파견되었던 지방관)를 지냈으며 의경(宜卿)의 이십일세손(二十一世孫)이니 한 파(派-갈래)가 된다.
五世孫思道(오세손사도)는 文政堂文學(문정당문학)이요 烏川君(오천군)이며 文貞公(문정공)이니 享書院(향서원)하다.
-극유(克儒)의 오세손(五世孫) 사도(思道)는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고려 중서문하성의 종2품 관직)을 지냈으며 오천군(烏川君)에 봉(封)해지고 시호(諡號)는 문정공(文貞公)이니 오천서원(烏川書院)에 종사(從祀-배향)되었다.
思道子洪(사도자홍)은 文知議政府事(문지의정부사)요 恭簡公(공간공)이라.
-사도(思道)의 아들 홍(洪)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조선 의정부 정2품 관직)을 지냈으며 시호(諡號)는 공간공(恭簡公)이라.
洪子淵(홍자연)은 兵曹判書(병조판서)요 貞肅公(정숙공)이라.
-홍(洪)의 아들 연(淵)은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냈으며 시호(諡號)는 정숙공(貞肅公)이라.
淵玄孫沼(연현손소)는 進士(진사)니 享鄕祠(향향사)라.
-연(淵)의 현손(玄孫-사대손, 손자의 손자) 소(沼)는 진사(進士-소과의 첫시험에 급제한 사람)니 곡수서원(曲水書院-청사서원이었으며 전남 순천 소재)에 배향(配享-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냄)되었다.
沼弟澈(소제철)은 文左議政(문좌의정)이요 文淸公(문청공)이니 享書院(향서원)이라.
-소(沼)의 동생 철(澈)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좌의정(左議政)을 지냈으며 시호(諡號)는 문청공(文淸公)이니 오천서원(烏川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澈子弘溟(철자홍명)은 文大提學(문대제학)이니 文貞公(문정공)이라.
-철(澈)의 아들 홍명(弘溟)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대제학(大提學-조선의 예문관, 홍문관 정2품 으뜸 벼슬로 한 나라의 文衡문형이라 했음)을 지냈으니 시호(諡號)는 문정공(文貞公)이라.
弘溟姪瀁(홍명질양)은 ⑤贈吏曹判書(증이조판서)니 文節公(문절공)이라.
-홍명(弘溟)의 조카 양(瀁)은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니 시호(諡號)는 문절공(文節公)이라.
澈玄孫澔(철현손호)는 文領議政(문영의정)이니 文敬公(문경공)이라.
-철(澈)의 현손(玄孫-사대손) 호(澔)는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영의정(領議政-의정부 으뜸 벼슬, 국무총리에 해당)을 지냈으니 시호(諡號)는 문경공(文敬公)이라.
澔孫宲(호손실)은 文吏曹判書(문이조판서)요 大提學(대제학)이라.
-호(澔)의 손자(孫子) 실(宲)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이조판서(吏曹判書-이조의 으뜸 벼슬로 정2품 문관)를 지냈으며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澔曾孫履煥(호증손이환)은 文參判(문참판)이니 提學(제학)이라.
-호(澔)의 증손자(曾孫子) 이환(履煥)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참판(參判-육조의 종2품 벼슬, 판서의 다음)을 지냈으며 제학(提學-조선의 예문관, 홍문관의 종2품 벼슬로 대제학의 다음)을 지냈다.
澈八世孫在和(철팔세손재화)는 莊祖朝(장조조)에 駙馬興恩尉(부마흥은위)라.
-철(澈)의 팔세손(八世孫) 재화(在和)는 장조(莊祖-사도세자의 추존시호로 장조로 추존된 해는 고종 광무3년인 1899년이다)의 부마(駙馬-임금의 사위)로 흥은부위(興恩副尉)에서 흥은위(興恩尉)에 추봉(追封-등급을 올려 봉함, 1899년)되었다.
瀁曾孫益河(양증손익하)는 左參贊(좌참찬)이니 忠獻公(충헌공)이라.
-양(瀁)의 증손자(曾孫子) 익하(益河)는 좌참찬(左參贊-조선의 의정부 정2품 관직)을 지냈으니 시호(諡號)는 충헌공(忠獻公)이라.
洪孫孝全(홍손효전)은 太宗朝(태종조)에 駙馬日城尉(부마일성위)라.
-홍(洪)의 손자(孫子) 효전(孝全)은 태종(太宗-조선 제삼대 왕) 때에 부마(駙馬-임금의 사위)로 일성위(日城尉)에 봉(封)해졌다.
洪十三世孫壽松(홍십삼세손수송)은 武摠戎使(무총융사)라.
-홍(洪)의 십삼세손(十三世孫) 수송(壽松)은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총융사(摠戎使-조선후기 총융청의 主將주장으로 종2품직이며 서울주변의 경비담당)를 지냈다.
洪十四世孫羽良(홍십사세손우량)은 文右議政(문우의정)이니 文忠公(문충공)이라.
-홍(洪)의 십사세손(十四世孫) 우량(羽良)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우의정(右議政)을 지냈으며 시호(諡號)는 문충공(文忠公)이라.
羽良弟翬良(우량제휘량)은 文左議政(문좌의정)이니 文憲公(문헌공)이라.
-우량(羽良)의 아우 휘량(翬良)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좌의정(左議政)을 지냈으며 시호(諡號)는 문헌공(文憲公)이라.
●後孫丞(후손승)은 高麗成宗朝(고려성종조)에 翰林學士吏部尙書(한림학사이부상서)니 良肅公(양숙공)이라.
-후손(後孫) 승(丞)은 고려(高麗) 성종(成宗) 때에 ⑥한림학사(翰林學士)와 이부상서(吏部尙書-고려의 관직으로 조선의 이조판서의 전신)를 지냈으며 시호(諡號)는 양숙공(良肅公)이라.
●後孫子皮(후손자피)는 高麗安宗朝駙馬(고려안종조부마)니 爲一派(위일파)라.
-후손(後孫) 자피(子皮)는 고려(高麗) 안종(安宗-고려태조의 여덟째 아들로 제8대 왕 현종의 아버지이다 1021년 현종이 안종으로 추존하였다.)의 부마(駙馬-임금의 사위)로 한 파(派-갈래)가 된다.
孫延齢(손연령)은 文科(문과)요 吏部都官佐郞(이부도관좌랑)이라.
-자피(子皮)의 손자(孫子) 연령(延齢)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이부(吏部)와 도관(都官)의 좌랑(佐郞)을 지냈다.
延齡玄孫天鳳(연령현손천봉)은 贈刑曹參議(증형조참의)라.
-연령(延齡)의 현손(玄孫-사대손) 천봉(天鳳)은 형조참의(刑曹參議-형조판서를 보좌하는 관직으로 참판의 아래)에 추증(追贈)되었다.
天鳳子德成(천봉자덕성)은 折衝將軍(절충장군)이요 贈戶曹參判(증호조참판)이라.
-천봉(天鳳)의 아들 덕성(德成)은 절충장군(折衝將軍-조선 당상관의 무관 품계)이었으며 호조참판(戶曹參判-호조판서의 아래이며 판서를 보좌하는 직)에 추증(追贈)되었다.
德成子有智(덕성자유지)는 兵曹參判(병조참판)이라.
-덕성(德成)의 아들 유지(有智)는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지냈다.
●後孫子輿(후손자여)는 高麗顯宗朝太師(고려현종조태사)요 諡文敬公(시문경공)이며 封長鬐伯(봉장기백)하니 爲一派(위일파)라.
-후손(後孫) 자여(子輿)는 고려현종(高麗顯宗-고려 8대왕) 때 태사(太師-고려의 삼태 중에 정1품의 최고 벼슬)였고 시호(諡號)는 문경공(文敬公)이며 장기백<長鬐伯-영일(포항)에 있는 장기현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조세를 거두어 쓰는 현백(縣伯)>에 봉(封)해지니 한 파(派-갈래)가 된다.
子克兼(자극겸)은 文科(문과)에 崇文館直學士(숭문관직학사)라.
-아들 극겸(克兼)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숭문관직학사(崇文館直學士-임금의 시종을 담당하는 기관)를 지냈다.
克兼子希景(극겸자희경)은 文科(문과)에 檢校將軍(검교장군)이요 왕서순검사(彺西巡檢使)라.
-극겸(克兼)의 아들 희경(希景)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검교장군(檢校將軍)이었으며 순검사(巡檢使-임시 파견직)를 지냈다.
希景孫仁壽(희경손인수)는 文科(문과)에 監察御史(감찰어사)요 直秘書省(직비서성)이라.
-희경(希景)의 손자(孫子) 인수(仁壽)는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감찰어사(監察御史-어사대의 관리)를 지냈으며 직비서성(直秘書省-비서성의 관리)를 지냈다.
仁壽子需(인수자수)는 左司諫(좌사간)이라.
-인수(仁壽)의 아들 수(需)는 좌사간(左司諫-중서문하서의 정6품의 간관)을 지냈다.
需子天龍麗朝(수자천룡려조)에 文科(문과)요 寶文閣直提學(보문각직제학)이라.
-수(需)의 아들 천룡(天龍)은 고려조(高麗朝-고려의 조정)에 보문각(寶文閣)의 직제학(直提學-정4품직)을 지냈다.
天龍子乙德(천룡자을덕)은 文科(문과)요 檢校神虎衛中郞將(검교신호위중랑장)이라.
-천룡(天龍)의 아들 을덕(乙德)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훈직(勳職-실직이 아닌 나라에 공로가 있는 이들에게 내리는 벼슬)으로 신호위(神虎衛)의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乙德曾孫世榮(을덕증손세영)은 靖國功臣(정국공신)이라.
-을덕(乙德)의 증손자(曾孫子) 세영(世榮)은 정국공신(靖國功臣-중종반정에 공훈이 있는 사람에게 내린 칭호)이었다.
世榮子承周(세영자승주)는 文科(문과)요 司成(사성)이라.
-세영(世榮)의 아들 승주(承周)는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였으며 사성(司成-성균관에서 유학을 가르치던 종3품벼슬)을 지냈다.
承周子季生(승주자계생)은 以孝行(이효행)으로 命旌閭(명정려)라.
-승주(승주)의 아들 계생(계생)은 효행(효행)이 있었으니 나라에서 정문(旌門-마을의 정려문)을 명(命)했다.
季生弟晉生(계생제진생)은 進士(진사)요 贈左承旨(증좌승지)라.
-계생(季生)의 동생 진생(晉生)은 진사(進士-조선 과거의 소과에 합격한 사람)였으며 좌승지(左承旨)에 추증(追贈-벼슬이 올려짐)되었다.
晉生孫東燁(진생손동엽)은 文科(문과)요 司藝(사예)라.
-진생(晉生)의 손자(孫子) 동엽(東燁)은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사예(司藝-조선 종4품 관직으로 성균관유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관직)를 지냈다.
季生子霫(계생자습)은 進士(진사)요 別提(별제)니 以文章鳴世(이문장명세)하다.
-계생(季生)의 아들 습(霫)은 진사(進士)요 별제(別提-조선의 여러 관서의 정.종6품 무록관직)를 지냈으며 문장(文章)이 훌륭하였다.
季生孫東老(계생손동노)는 主簿(주부)니 以詩文著名(이시문저명)하다.
-계생(季生)의 손자(孫子) 동노(東老)는 주부(主簿-조선 관서의 문서관리 종6품 관직)였으며 시(詩)와 문장(文章)이 뛰어났다.
季生七世孫奎漢(계생칠세손규한)은 進士(진사)요 贈持平(증지평)이며 性潭宋先生門人(성담송선생문인)이니 享鄕祠(향향사)하다.
-계생(季生)의 칠세손(七世孫) 규한(奎漢)은 진사(進士)로 지평(持平-조선 사헌부 정5품 관직)에 추증(追贈)되었으며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 선생(先生)의 문하생(門下生)으로 향사(鄕祠-이름난 학자나 충신의 공적과 덕행을 기리는 사당)에 배향(配享-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냄)되었다.
註(주-주석)
①문헌비고(文獻備考)-조선 영조 때에 만들어진 동국문헌비고와 대한제국 말기 고종 때에 보충한 증보문헌비고가 있다. 상고시대부터 대한제국 말기에 이르기까지의 제도, 문물을 총망라하여 분류하고 정리한 책이다.
②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고려의 왕명출납, 궁궐경비, 군사기밀을 맡던 종2품 벼슬.
③오천서원(烏川書院)-포항의 오천면 원리에 있는 서원으로 영일정씨 지주사공파의 정습명, 정몽주와 감무공파의 정사도, 정철이 배향된 서원이며 고종 때 훼철(毁撤-헐어 없애다)되었다가 1975년 복원되었다. 오천은 영일(연일)의 옛지명이다.
④逸贊成(일찬성)-숨어 사는 학자로서 학문과 덕행이 높은 선비에게 임금이 특별히 과거를 보지 않았어도 높은 벼슬을 제수하는 것을 은일(隱逸)이라 하며 그렇게 받은 벼슬이 찬성(찬성-조선의 의정부 종1품 벼슬로 우찬성, 좌찬성이 있다)임을 말한다.
⑤贈吏曹判書(증이조판서)-종2품 이상 실직관리의 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삼대를 자손의 관직 높낮이에 따라 품계나 벼슬을 주고 올리는 일을 追贈추증이라 한다. 증이조판서란 추증된 이조판서를 말한다.
⑥한림학사(翰林學士)-고려의 한림원에 속한 관직으로 국사편찬, 경서강론, 조칙 작성, 왕의 자문 역할을 하였으며 문필이 성하여 문장가가 숲을 이룬다는 의미로 문한직이다. 칠할이 재상에 올랐다고 할 정도로 정예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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