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이렇게 엉망인데 우리가 무언가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게 기적이야. 바닥이 꼭대기에 갔다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줄리언은 한숨을 쉬었다. “물론 자기 위치를 아는 사람은 어딜 가든 상관없지만.” 어머니가 말했다.... “거기 사람 대부분은 우리하고 다른 부류야.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 수 있어. 나는 내 위치를 아니까.” “사람들은 어머니의 친절에 관심 없어요. 어머니는 지금 자신의 처지도 위치도 전혀 몰라요.” 어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번득이는 시선을 던졌다. “나는 내 위치를 잘 알아... 네 증조할아버지는 이 주의 주지사셨어. 할아버지는 부유한 지주셨고 할머니는 가다이가 출신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주변을 좀 보세요. 지금 어머니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그가 빳빳한 목소리로 말하고, 팔을 휘둘러 주변을 가리켜 보였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풍경은 어쨌건 낮보다는 덜 추레해 보였다. “사람의 위치는 변하지 않아. 네 증조할아버지는 노예가 200명인 대농장주셨어.” 어머니가 말했다. “이제 노예는 없어요.” 그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그 사람들은 노예일 때가 나았어.” - 플래너리 오코너 <오르는 것은 모두 한 데 모인다>
.
초겨울인데도 봄날 같아서 동네 산책에 나섰다가 몇 해 전까지 살던 집에 올라가 보았다. 올라갔다는 건 그 집이 높은 데 있다는 뜻이다. 오래된 동네에선 대개 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높은 데 산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 집은 높은 데 있었고 경사는 무릎이 꺾일 정도로 가팔랐다. 산비탈 3층짜리 다가구주택의 가운데 층. 처음 그 집에 들어섰을 때 사방이 옆 건물 아니면 축대에 가려 창으로 내다 볼 아무런 전망이 없었다. 해가 들지 않아 한낮인데도 새벽 아니면 저녁 같았다. 나무로 된 화장실 창문틀이 갈라져 서늘한 산바람이 들이쳤다. 두 짝 자리 싱크대는 따로 떨어져 동선이 이어지지 않았다. 햇빛처럼 보이는 전구 색 조명을 달고 틀어진 창문 틈을 막고 따로 놀던 싱크대를 다시 이어붙이고 부속이 망가져 덜렁대는 세면대를 고정시켜 살만한 집으로 만드는 데 두어 달쯤 걸렸다.
그 집에서 좋구나, 노래가 나오기 시작한 건 석 달쯤 지났을 때였다. 눈으로 볼 수 없어 몰랐는데 여긴 공기가 정말 좋구나, 살아보지 않아 몰랐는데 이 집은 조용해서 너무나 좋구나, 집안이 컴컴하니 대낮에도 편히 잠들 수 있어 좋구나, 화장실 쪽창으로 약간의 산자락이 보이는 것도 참 좋구나. 좋은 게 하나만 있어도 다 좋아지는구나. 이렇게 좋으니 여기서 한 십 년쯤 살아도 좋겠구나. 그러니까, 가난해서 높아지고 쓸쓸해진다는 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집장사에게 그 좋은 집이 통으로 팔렸으니 한 달 안에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통보를 받은 건 계약기간이 일 년쯤 남았을 때였다. 오래도록 안 나가던 집이 갑자기 팔린 터라 집주인도 세입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을 부수고 새로 지을 계획이어서 (집장사는 다 계획이 있는 법이다) 계약 승계도 어려웠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보름 만에 이사를 마치고 대충 짐정리까지 마친 다음날 아침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지친 몸을 일으켜 그 집에 다시 올라가 보았다. 앞뒤로 차량 소음에 분진까지 넘나드는 이면도로 새로 이사한 집에서 며칠을 지내다 보니 내가 살던 그 집이 여전히 좋은 지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인부들이 집안을 철거하느라 현관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 나는 집주인이 살던 3층부터 올라가 보았다. 두 가구가 쓰는 평수를 터서 혼자 쓰고 있었다. 앞 건물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으므로 사방이 탁 트여 거실 통창으로 인왕산 자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주방 싱크대는 넉넉하게 일자로 뻗어있었고 집안 구석까지 해가 들어 화장실 바닥도 보송보송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살던 2층 집을 지나쳐 아래 집으로 내려갔다. 말이 1층이지 절반이 땅에 묻힌 반 지하였다. 내가 딛고 살던 바닥 그 아래, 새벽에 나가서 한밤중에 들어오던 남자가 혼자 살던 집. 천장부터 벽까지 물이 새서 갈라진 틈으로 곰팡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위치를 옮긴 우리 집 싱크대 배수관에서 물이 흘렀을 가능성이 높았다. 월세가 밀려 보증금까지 절반을 까먹은 상태라고 집주인이 불평하던 걸 생각하면 그는 집에 문제가 있어도 없는 척 살았을 것이다. 바깥으로부터 집안을 보호하기 위해 박아놓은 방범창살은 그 집에서 내다 볼 바깥을 촘촘하게 막고 있었다. 나는 끝내 내가 살던 집을 들어가 보지 않고 새로 이사한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이른 아침이었으므로 다시 잠이 들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긴 악몽을 꾸었다.
봄 같은 초겨울 몇 해만에 다시 올라가 본 그 높은 집은 알아볼 수 없게 변해 있었다. 화사해졌고 번듯해졌으나 앞뒤로 더 높은 집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3층까지 전망이 없어졌다. 화장실 창문으로 보이던 산자락마저 새로 들어선 건물이 가리고 있었다. 아래 층 반 지하는 더 깊어졌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집의 땅 밑. 여전히 거기 누군가가 이전보다 더 높은 세를 내며 살고 있었고 그 창문엔 바깥이 없었다.
집을 갖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면 집을 갖고도 더 가지려는 욕망이 전부인 세상의 외부를 볼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내가 딛고 선 땅 밑에 사는 사람들에겐 바깥이 없다는 걸 보지 못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위치만큼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 위치를 오인하고 있었다. 내가 가난해도 좋구나, 노래하는 동안 우리 집에서 흘러내린 오수가 아랫집에 곰팡이를 피우고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노예가 해방된 지 언젠데 여전히 흑인 소년만 보면 동전과 친절을 함께 건네며 주인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어머니에게 그 어머니가 보지 못하는 걸 보게 된 가난한 아들은 말한다. “어머니의 위치는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요.” 집을 떠나서야 비로소 그 집에 살던 내 위치를 보게 된 나는 그 가난한 아들의 목소리를 빌어 말한다. 내 위치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위치를 넘어서려면 먼저 내가 상상하는 내 위치로부터 나를 떼어내야 한다고. 바닥보다 더 아래, 아예 바닥도 바깥도 없는 그곳까지 내려가 거기 닫힌 창으로도 바깥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첫댓글 저도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런 집에 살았어요. 가장 견디기 힘든 건 2층인데도 하루종일 캄캄한 방과 옆 건물 모자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알 만큼 달라붙어 있다는 거였지요.
그런데 저도 그 집을 탈출하면서 좋아만 했지 길가로 난 창문으로 세간살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제 밑의 반지하방을 보지 못했네요.
그러게요. 보지 못하던 걸 보게 되는 순간이 관점이 바뀌는 순간인 거 같아요. 그러니 관점은 계속 열어가는 거겠죠. 뭐든 열려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에요. 상희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캄캄한 방, 옆집 소음이 고스란히 들리는 방. 하지만 그런 방의 기억에서 좋은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생각해요.^^
언제나 제 문제에 갇혀 발밑을 보지 못했네요. 시야를 좀 넓혀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발밑엔 바닥이 있지만 그 바닥 밑에는 바닥 없는 심연이... 가장 어둡고 가장 절망적인 데서 궁지에 처한 인간이 바깥을 만들기 시작할 때 다른 하늘이 열리리라 생각해요. 잘 읽어줘서 저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