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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호 폭발 사건
1.
공학자는 의사와 변호사와 함께 전문직 종사자로서 분류된다. 하지만 공학 직업은 다른 전문 직종과 구별되는 ‘일반 성격’을 갖고 있다. 첫째, 다수의 공학자는 의사와 변호사와 달리 직접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다. 즉, 공학자와 고객 사이의 관계는 직접적이지 않다. 둘째, 의사와 변호사 등 다른 전문직 종사자와 달리 다수의 공학자는 독립적 행위자로 여겨지지 않는다. 의사와 변호사 또한 특정 조직 체계 속에서 일하기도 하지만, 해당 지식 활용은 그들의 고유 권한에 속한다. 이 점은 생산 조직 체계에 속한 다수의 공학자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셋째, 공학자가 몸담고 있는 생산 조직 체계는 경제적 이윤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공학자는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 체계의 위계질서에 종속되어 명령 수행의 일꾼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넷째, 공학자는 조직 체계의 관심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 결과, 공학자는 조직 체계에 대한 충성(loyalty)을 강요받는다.
책임, 안전, 숙련된 능력으로 대표되는 공학의 미덕은 공학 직업이 다른 분야와의 관계 속에서 기능해온 역사적 결과로서 정착했다. 직업적 미덕은 실제 직업 활동 속에서 체득된다. 이 때문에, 그러한 미덕은 해당 종사자의 임무 수행 및 행위 속에 반영된다. 자신의 직업 활동에 충실한 공학자는 특별한 윤리 교육 없이도 책임, 안전 및 숙련된 능력이라는 미덕을 발휘한다. 공학 직업의 일반적 성격은 자율성이 공학적 가치 체계에 내재하는 미덕으로 정착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반면에 제어하기 힘든 현대 공학 지식의 효과적 활용을 위해 사회는 공학자에게 ‘양심에 따른 능동적 행위자’가 되라고 요구하게 되었다.
자율권은 자율성을 보장하는 제도나 조직 체계의 준수 사항 속에서만 실제적 의미를 갖는다. 자율성이 공학의 직업 활동에 내재적 미덕으로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율권은 다수의 공학자에게 보장되지 않는다. 다수의 공학자들은 상부가 계획한 예정표에 따른 임무를 수행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어느 공학자가 사회의 안전을 위해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조직 체계의 준수사항을 넘어 능동적으로 행위하기 힘들다.
조직 체계가 다루는 인공물이 제어 가능한 경우, 공학자들이 예정표에 따른 임무를 수행하는 것만으로 사회의 안전은 보장된다. 그러나 그러한 인공물만으로는 사회는 진화할 수 없다. 좀 더 나은 인공 환경을 건설하려면, 새로운 요구에 적합한 새로운 인공물이 필요하다. 새로운 인공물을 탄생시키는 과정은 단순한 예정표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그 과정은 아직까지 시험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복잡한 인공물은 예측하지 못한 재난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자율적 공학자의 모습이 현대에 들어와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율성은 아직 공학 직업의 내재적 미덕으로 정착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제도 및 조직 체계의 의사 결정 구조의 개선 없이 그 누구도 공학자에게 ‘양심에 따른 능동적 행위자’가 되라고 강요할 수 없다.
물론 모든 공학자에게 자율권을 보장할 수는 없다. 공학 지식은 제어 가능한 영역에서부터 제어하기 힘든 영역에 걸쳐 있다. 그만큼 공학 직업군도 다양하다. 따라서 내부고발자 보호법 등 거시 차원에서 공학자의 자율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뿐만 아니라, 공학 직군별 특성표를 짜야 한다. 이때 공학 직업의 일반 성격에서 벗어난 직군일수록 좀 더 큰 자율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각 공학 직군에 맞도록 의사 결정 구조를 개선하고 제도를 개발하지 않고서는 좀 더 나은 생활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공 환경은 생활세계의 기반이며, 공학 없이는 인공 환경을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제도 및 조직 체계의 의사 결정 구조의 개선 없이 그 누구도 공학자에게 ‘양심에 따른 능동적 행위자’가 되라고 강요할 수 없다. 이러한 준칙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우주 왕복선 챌린저(Challenger)호 폭발 사건’을 들 수 있다.
2.1. 파인만
챌린저호는 1986년 1월 28일 발사 후 73초 만에 공중 폭발했다. 물리학자 파인만은 챌린저호 참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위원회의 중책을 맞게 된다. 그의 첫 번째 임무는 참사의 물리적 원인을 밝히는 것이었고, 두 번째 임무는 유사한 사고 방지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우주 왕복선의 추진 체계는 주엔진, 연료 탱크 그리고 두 개의 로켓 부스터(rocket booster)로 구성되어 있다. 연료 탱크의 상부는 액화 산소, 하부는 액화 수소로 채워져 있다. 로켓 부스터의 추진제(propellant)가 액체 연료와 뒤섞이면서 주엔진이 점화된다. 잔해물을 분석한 결과, 챌린저호 폭발의 여러 원인 중 가장 직접적인 물리적 원인은 로켓 부스터와 연료 탱크 사이의 결합부에서 발견되었다. 온도 변화에 민감한 ‘오링(o-ring)’의 이상 기능이 챌린저호 폭발로 이어졌던 것이다.
파인만은 로켓 부스터의 설계와 생산을 담당한 모톤 티어콜(Morton Thiokol)사의 여러 공학자들이 발사지연을 요청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관심은 참사의 물리적 원인에서 나사(NASA)의 조직 체계, 의사 결정 과정 및 문화로 이동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겼다. 파인만은 조사위원회 보고서 작성을 거부했다. 파인만과 정부 관계자의 최후 합의에 의해 파인만의 의견은 보고서 본문이 아니라 부록으로 덧붙여졌다.
챌린저호의 여러 기술적 원인들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 오링 결함의 증명 과정, 그리고 참사의 내막이 알려지면서 진보와 보수를 가장한 언론계의 기회주의적 행동에 대한 파인만의 분노 등은 다루지 않겠다. 공학 직업의 일반 성격을 고려한다면, 챌린저호 폭발 사례는 단순히 개인 차원의 책임 귀속 논쟁에 귀속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자.
2.2. 러시아 룰렛
로켓의 점화는 연료 탱크에 추진제가 가해짐으로써 발생한다. 이때 그 압력은 연료 탱크의 외벽으로 전달된다. 그 결과, 연료 탱크와 로켓 부스터의 결합 부분이 뒤틀리게 됨으로써 고열이 역으로 추진제로 꽉 찬 로켓 부스터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주 왕복선의 폭발은 피할 수 없다. 이를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 오링이다. 원리적으로 볼 때 누수를 막기 위해 고안된 수도꼭지의 패킹과 오링의 작동 방법은 동일하다. 오링 또한 고무 패킹처럼 일정한 팽창 계수를 갖고 있어 고열의 누수를 막는 기능을 갖는다. 다만, 오링의 재질은 엄청난 고열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오링은 우주 왕복선 초기 계획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기능 단위였다. 파인만의 말대로, ‘언젠가는 총알이 발사되게 되어 있는 러시아 룰렛’과 같은 결합부의 설계가 어떻게 우주 왕복선에 구현되게 되었을까? 원폭의 성공적인 개발과 달탐사 계획은 정부 주도의 ‘거대과학(big science)’의 연구 방식을 대표한다. 하지만 원폭 개발 및 달탐사 계획에 참가한 과학기술자들은 의사 결정 과정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두 계획의 성공은 절차에 따른 결과를 산출하라는 식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가속화시켰다. 우주 왕복선은 그러한 압박 속에서 진행된 대규모의 계획이었다. 우주 왕복선은 유인 화성 탐사에 필요한 우주기지 건설을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미소 냉전 분위기의 약화와 함께 유인 화성 탐사 계획은 철회되었고, 우주 왕복선 개발에 책정된 재정은 절반으로 줄었다. 최초의 설계 방식과 달리, 공학자들은 저비용으로 우주 왕복선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공학자들은 연료 탱크를 바깥으로 빼내고 로켓 부스터의 추진제에 의해 점화시키는 방식으로 설계를 변화시켰다. 오링은 그러한 설계 구현을 위해 도입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산 삭감 자체가 챌린저호 폭발 사고를 가져왔다고는 할 수 없다. 공학자들은 환경 변화 속에서 그들의 설계를 변형해 나간다. 공학자들은 100만 개 이상의 기능 단위를 갖고 있는 우주 왕복선 개발을 위해 ‘단계별 구성 부분 테스트(components test)’를 요청했다. 하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나사 집행부는 ‘완성 후 역추적 테스트(all-up test)’, 즉 인공물을 완성한 후에 이상 기능을 찾는 방법을 택했다. 공학자들은 그러한 테스트 방법을 가지고는 기능 단위들의 복잡한 연결 방식에 기인한 결함을 다룰 수 없을뿐더러,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고 항변했다. 그들의 항변에 대해 정부의 납품 업체로 전략한 나사의 집행부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없었다. 연구 개발자들이 선술집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정책을 논하는 대화가 나사의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될 기회는 없었다. 나사의 의사 결정 구조는 이미 ‘조직 체계의 강성화’ 혹은 ‘탄력성을 잃어버린 조직 체계’로 굳어진 상태였다.
2.3. 컴퓨터 대 인간
챌린저호 발사 시점에 이르러 주변 온도는 매우 낮아진 상태였다. 당시 공학자들의 회고에 따르면, 주엔진에는 고드름이 달렸을 정도였다. 우주 왕복선에는 일반적으로 네 대의 컴퓨터가 장착되어 있다. 각 컴퓨터에는 궤도 계산 이외에 주변 온도와 갖은 환경 변수, 그리고 각 기능 단위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알고리듬이 담겨 있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단계별 구성 부분 테스트’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데이터는 실제 실험이 아니라 재질의 특성 등에 관한 이론적 계산에 의존해야만 했다. 게다가 어떤 이론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위험성에 대한 통계치는 달라진다. 온도 변화에 따른 오링의 결함 여부에 대한 통계치는 1/100,000에서 1/300의 변동폭을 나타냈다. 전문 공학자들이 1/1,000에서 1/300의 결함 발생률을 계산했다면, 우주 왕복선의 컴퓨터에 기록된 결함 발생률은 1/100,000이였다.
컴퓨터의 계산 결과는 변수들의 선택에 의존적이다. 변수들의 선택은 컴퓨터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예정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변수들을 선별적으로 선택하여 컴퓨터의 계산 능력을 도용하는 것을 ‘GIGO(Garbage In Garbage Out)’라고 부른다. 변수들의 선택에는 전문가의 ‘노하우(know-how)’가 개입하게 마련이다. 오링 전문가들은 실험적 데이터가 부재한 상태에서 1/100,000이라는 결함 발생률을 신뢰하지 않았다. 컴퓨터에 입력할 변수들에 대한 충분한 합의가 없다면, 계산 결과는 항상 실재와의 격차를 보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러한 결과가 나온 과정이 도외시된 채 결과의 수치에만 의존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면, 참사는 예정된 수순인 경우도 있다. 특히 나사 집행부는 효과적인 성공을 강조하는 정치적 권력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다. 나사의 집행부에게 작은 위험성의 수치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주 왕복선에 장착된 네 대의 컴퓨터 중 두 대 이상이 경고 반응을 보이면, 발사는 지연된다. 당시 로켓 부스터와 연료 탱크의 결합부에 들어가는 오링에 대한 전문가도 네 명이었다. 그들 중 최고 고참은 보이스졸리(R. Boisjoly)라는 공학자였다. 보이스졸리를 포함한 두 명은 발사 지연을 권고했고, 다른 두 명은 발사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불확실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온도 변화에 따른 오링의 결함 여부에 대한 실험 자료가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한 경우, 오링 전문가에 의한 발사 지연 요청을 받아들여야 마땅했다.
2.4. 안전모 대 경영모
보이스졸리는 티오콜사 공학자였다. 로켓 부스터 연구 개발 과정에서 하나의 의사 결정 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에, 보이스졸리의 발사 지연 요청은 자신의 임무에 따른 행위였다. 챌린저호 폭발 가능성에 대한 사전 경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사후에 폭로된 후, 보이스졸리는 내부고발자로 몰리게 되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내부고발을 한 적이 없다. 외부에 쉽게 노출되기 힘든 전문 지식이 뒤섞인 연구개발의 경우, 사전에 위험을 경고한 사람은 연구개발의 부정적 결과로 내부고발자로 몰리기도 한다.
보이스졸리가 내부고발자로 몰리기 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낮은 온도에 의한 오링의 결함 가능성을 팀장인 맥도널드(Allen McDonald)에게 보고했다. 보이스졸리와 맥도널드의 발사 지연 요청에도 불구하고, 나사 운영 계획팀의 래리 물로이(Larry Mulloy)는 티어콜 경영진과의 협의를 통해 발사를 강행하려고 했다. 보이즈졸리와 맥도널드는 동료 공학자인 룬드(Robert Lund)에게 도움을 청했고, 룬드는 티오콜 기술 기획팀에 속한 또 다른 공학자 제리 메이슨(Jerry Mason)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메이슨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너의 안전모(engineering hat)를 집어 던지고, 경영모(management hat)를 써라.”
메이슨과 마찬가지로 공학자 룬드는 기술 기획팀에 속하는 매니저이기도 했다. 위의 메이슨의 말은 룬드에게 부품의 공학적 결함을 찾는 일에 신경을 끄고 경영인의 자세로 돌아오라는 충고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이미 결정난 일에 대해 상부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학력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 어떤 경우에나 상부가 하부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것은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메이슨의 말을 가지고 경영 자체를 본질적 악으로 규정할 근거는 아무 데에도 없다. [나사와 티오콜사의 의사 결정 구조]에서 많은 공학자들이 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백만 개 이상의 기능 단위들을 갖는 복잡한 인공물을 설계하는 데 개입하는 이질적인 모든 지식들을 제어할 수 있는 공학자는 없다. 하부에서 활용되는 지식은 상부에게 투명하지 않다. 하부의 지식이 상부에 투명한 경우, 수직 상하의 위계질서를 갖는 조직 체계의 구성법은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한 조직 체계의 구성법은 우주 왕복선과 같은 복잡한 인공물의 연구개발에 대해서는 효과적일 수 없다.
[나사와 티오콜사의 의사 결정 구조]에서 화살표는 명령 전달의 방향을 나타낸다. 하부가 상부에 보고만 할 수 있을 뿐, 하부가 상부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완전히 결여된 상태다. 이렇게 ‘편향된 조직 체계’의 구성법은 첨단 인공물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효과적이다. 그러한 조직 체계는 이미 알려진 지식을 활용하여 대량 생산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효과적이다.
‘편향된 조직 체계’의 구성법으로 인해 나사의 집행부는 의사 결정 구조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가질 수 없었다. 챌린저호 발사 당시 레이건 정부는 ‘스타워즈(star wars) 방위 계획’을 대중에게 선전하기 위해 두 대의 우주 왕복선을 순차적으로 발사시키라고 나사를 압박했다. 두 대의 우주 왕복선이 동시에 귀환한다면, 스타워즈 계획에 대한 대중적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레이건은 생각했다. 레이건 정부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나사의 조직 체계가 재정적 지원을 구실로 끊임없는 정치적 압박에 시달려 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연구개발에 필요한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편향된 조직 체계’에서는 경영진과 공학자 집단뿐만 아니라 공학자들 사이의 정보 교류도 단절된다.
3. 나사 문화
보잉(Bowing)사 등은 공학적 재난이 불러올 결과를 무시하고서는 조직 체계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 터득했다. 보잉사의 관계자들은 나사의 편향된 조직 체계 구성법을 ‘나사 문화(NASA Culture)’라는 표현으로 비꼬아 왔다. 우주 왕복선의 연구개발에서 공학자들에 의한 ‘단계별 구성 부분 테스트’ 요청이 무시된 시점부터가 참사의 시발점이었다. 오링 외에도 우주 왕복선 몸체를 뒤덮은 수십만 개의 세라믹 타일들의 결함 또한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던 문제였다. 결국 2003년 또 다른 우주왕복선인 컬럼비아(Columbia)호가 그 결함으로 인해 폭발했다. 그 이후, 연구개발 과정에 비효과적인 나사의 편향된 조직 체계의 구성법은 비로소 ‘나사 문화의 비판’이라는 명목 아래 본격적으로 분석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는 나사의 조직 체계 및 의사 결정 구조가 어떤 식으로 수정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수정 결과는 나사의의 비밀 사항에 속하겠지만, 두 가지는 명백하다. 첫째, 복잡한 인공물의 연구개발은 나사를 둘러싼 수십 개의 하부 조직 체계들로 구성된다. 수정된 구성성법이 수직 상하의 명령 체계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둘째, 챌린저 참사에 대한 파인만의 분노는 오링의 결함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분노는 연구개발에 부적당한 나사의 조직 체계, 그리고 국가 권력 기관인 정부의 납품 업체로 전락한 나사의 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분노는 그로 하여금 과학기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다시 고려하도록 만들었다. 1988년 암으로 죽기 전 파인만의 공식적인 마지막 글 역시 챌린저호 참사에 관한 것이었다.
* 덧글
이 땅의 인문학자들은 다른 분야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경향이 있는 듯싶다. 특히 대학에서 정식 월급을 받으며 경건한 어투를 사용하는 철학과 교수들 중에 그러한 인물들이 많다. 어느 발표에서 모 대학 교수가 기계론 때문에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생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가 실제 기계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 어느 발표에서 모 대학 교수가 ‘비판적이지 못한 사람’을 ‘공학적 사고의 소유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나는 그에게 손에 기름칠을 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초기 스케치를 바탕으로 도면을 그리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플로우차트를 그리는 공학자들은 암암리에 ‘체계적 사고방식’을 체득한다. 빠율, 꽁트, 파레토 등을 비롯한 많은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들은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글을 보면 조직 체계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그리고 비판과 함께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왜 이 땅에서는 그러한 공학자가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공학 학제를 비롯한 현 대학에 팽배한 어떤 고질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서는 이 물음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 이 땅을 위해 할 것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무관심으로 끝까지 침묵해야한 하는 그런 물음이다.
이 땅의 인문학자들이 타 분야에 대한 존중심은 결여한 채 말하기를 좋아하는 한, 그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런 말에 동화된 사람들을 자기 세력으로 규합할 수는 있으나. 진정한 인문학으로서의 철학이라는 나무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분야의 관계를 바탕으로 뿌리를 내린 인문학의 나무들만이 쓰러지지 않는다.
이 글은 상황윤리: 현실세계 속의 공학 담론에서 ‘상식에 바탕을 둔 상황윤리’를 정초시킨 부분이 아니라, 사례 분석들로 구성된 부분을 활용한 글이다. 그러나 그 구성 방식 및 목적에서 이 글은 성격을 달리한다.
이 글을 쓰면서 왜 그렇게 글을 개판으로 썼는지 한숨이 나온다. 아무튼 이 글은 나의 강의 자료로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의 강의 자료에는 사고력 및 텍스트 분석 능력을 강화시켜주기 위한 주관식, 객관식 문제들이 각 절마다 붙어 있다.
강의는 약 5년 만에 다시 하는 것이다. 누가 연구소를 채려준다는 말에 혹해 1년을 날린 적도 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내년부터는 다시 강의를 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생계비 마련을 위해 강의를 나가는 것인지, 아니면 용돈을 벌기 위해 나가는 것인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나마 벌어 놓은 것을 까먹지 않기 위해 나간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다만, 이번 학기에 강의를 하면서 새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출강하는 대학 수업의 자료들은 모두 ‘사고훈련’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 ‘무엇을 가르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르치는가’가 중요한 것이었다. 출강하는 대학들의 이름을 밝히면, SKY 학생들은 ‘듣보잡 대학’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개한민국 교육 방식에 비추어 볼 때 SKY 대학 학생들과 다른 대학 학생들이 실력에서 얼마나 차이를 보일까? 특히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닌 정보의 활용 관점에서 얼마나 차이를 보일까? 이번 경험으로 확신한 것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SKY 학생들에 비해 적극성에서 떨어질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을 강의 자료로 작성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단순히 내용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고훈련을 활용하는 경우, 현 대학들 사이의 수준 차이는 실제로는 없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확인하고 싶다. 사실 이런 글 하나를 작성하는 데에도 몇 시간은 깨진다. 또 여기에 주관식, 객관식 추론 문제들을 덧붙이는 데에도 몇 시간 깨진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스스로를 낮추지 말라! 나의 수업에서 만큼은 SKY쪽 학생들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배울 것이며, 그 질적 측면에서 앞서면 앞섰지 뒤쳐지지 않는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 작업해봤자, 해당 대학 교수들에게는 비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운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즉, SKY 학생들보다는 뛰어난 사고력과 텍스트 분석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다는 점이다. 개한민국에 기여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또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교수법에서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자료를 만드는 데 약간의 시간을 투자할 뿐이다.
출처 : 과학과 철학
글쓴이 : 착한왕 이상하 원글보기
메모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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