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13회 예고편분석] 이방원을 그렇게 만든 것은 이성계의 편견이었다
를 보고나서..
https://www.youtube.com/watch?v=lryIcPlYaYk&lc=UgxTQSsm9dyZ72mX7U94AaABAg.9XQqLIeXo_j9Xss5wgixCG
이방원에 대한 평가는 저는 부정적입니다. 물론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큰 문화적 유산이지만 말이죠. 일단 성계가 무엇을 생각하며 세자를 책봉했는지 이해하다 보면 태조 이방원이 그 권력 다툼의 중심에 설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게 되지만 말이죠.
이성계는자신이 오래도록 상왕이 되더라도 관여 할 수 있는 어린 세자를 세우고, 그 입장의 연장에서 장성한 자식들이 자신에게 오지 못하게 막고, 경처 소생들만 가까이 했는데, 이는 제가 볼 때 편애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듯 싶습니다.
자신의 소생들 가운데 편가르기는 성계 본인의 판단이고,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황에 호구처럼 그걸 받아들일 자식들은 거의 없으니까요. 첨부터 성계가 그런 견제를 하지 않았다면, 전혀 얘기가 달라졌을 거 같은데.. 이성계 자신이 왕의 자리에 있는 동안 철저하게 자신의 하는 일에 다른 왕자들이 세력다툼을 하지 않도록 멀리한 거 자체가 성계의 패착이고, 권력의 본질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세자의 자리는 새롭게 나라를 만드는 과정에 모든 왕자들이 그 자리를 노리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왕위 계승 문제에선 상당히 어리석은 우를 범한게 이성계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지분이 거의 없는 어린 풋내기를 세운 건 결국 왕조가 세워진지 얼마 안되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공유한 왕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가는데 주변의 권신들이 힘을 지원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울러 저는 이성계와 이방원이 생각하여 판단한 내용 모두 최악의 결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 원흉이라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그는 신하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데 동의한게 앞으로의 조선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데, 큰 역할을 했는지도 모르고 이성계는 죽었는데, 신분 상하 이동도 없고, 고려시대 무신 정권처럼 천민이 출세할 일도 없거니와 신분제에서 면천의 기회도 거의 없으면 어떻게 나라를 말아먹을 수 있는지 생각을 못한 듯 싶습니다.
애초에 저는 조선 시대가 고려를 세운 왕건과는 상당히 많은 국가관의 맹점을 지닐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계 지방 호족 출신인 왕건이 나라를 건국하면서 훈요 10조를 그 스스로 만들어 북진 정책과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라는 이름 또한 조선시대의 신진사대부처럼 나라 국호를 누구에게 의존해 사대하는 왕이 아니었던 반면에,
이성계는 그 고조부까지 올라가면 그의 출신이 원래는 원의 지방 군벌로 자란 고조부시대부터 다루가치라는 직위를 세습받았고, 그 고조부는 테무게 옷치긴이라는 칭기즈칸의 막내 동생이 만주를 다스릴 때 천호장에 있던 인물이고, 원의 문화와 원의 말, 그리고 몽골 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자가 두만강 유역에 자리잡으면 고려와 여진족을 다스리던 자였으니, 중국 역사상 통틀어 가장 약했던 송시절의 성리학을 받아들이고, 신하들의 나라를 만들자고 하는 유학자들의 의견에 백프로 동의하고 자신이 나라를 세우는데 필요한 가치관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려 중기까지도 지방 호족들이 세력의 기반이 되는 사병과 무역에 의한 부의 축적으로 개경이 함락되어도 지방은 그 세력을 그대로 유지했던 반면, 조선시대에는 호족이란 개념 없이 노비에게 모든 군역을 지게 해서 도망간 노비도 있는 것처럼 기록하고, 양반이 노비로 전락하면 신분 면천의 기회도 거의 없고, 신분의 이동도 금지되고, 게다가 국가에서 무역을 관리하니,
지방에서 무역을 통해 부를 쌓는 패턴과 다른 조선시대는 그 스스로 분열을 향해 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라를 지킬 힘이 지극히 미약해지면서 200년이 지나 임진왜란에 속수무책 당한게 조선시대인데, 갑자기 이렇게 약해진 이후의 조선은 여기저기 눈치보면서 살면서 나약한 조선은 진즉 멸망해야 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말 족보를 알 수 없는 사대주의.. 이건 왜 유학자들이 추구한 걸까요? 자주국방은 전혀 모르는 신진 사대부들은 대체 누가 만든 허상인지. 큰나라 밑의 작은 나라라는 말은 결국 자주국가를 포기하고, 사대주의라는 악습을 만든 자가 정치를 하고, 그게 관학파뿐 아니라 고려 말에 지방으로 내려간 사림파가 백년 이백년 지나 지속적으로 관직으로 진출하고,그런 악습의 생각을 가진 유학자들이 신분 이동을 엄격히 금지하면서 세도 정치로 씨족사회처럼 정계에도 씨족 정치를 하고 그래서 조선시대 말까지 호위호식 하는 자들이 실상 그들이 세습한 양반이란 직위가 바로 음서제와 똑같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전 태종 이방원이 과연 성계가 동의한 사대주의 사농공상에 대해 따로 확고한 철학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처-향처가 있던 시절의 고려시대를 지낸 성계의 건국 이후로는 경처 향처 자체가 없어지고, 첩과 본부인으로 바뀌고, 자유롭게 무역을 하던 고려때와 달리 폐쇄된 국가로 출발하는데, 이방원이 많이 개입했다고 생각합니다.
세자 책봉에서 후처가 세자 책봉에 영향을 미친것에 대한 적개심이 커서 고려시대와 조선 개국공신들중에 신분이 비천했으나 똑똑하고 혁신적인 인물들이 있음을 알고도 서얼에게는 현직을 금한다는 규제를 만들어 똑똑한 첩의 자식은 관직에 등용을 금했고, 서얼 차별이 태종부터 시작된 이후로 경국대전에도 그 법이 기록되었으니까요.
태종은 그 스스로 나라에 현명한 자를 등용할 수 있는 기회와 뛰어난 무인을 등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거라 생각합니다. 방원이는 그 스스로 과거에 합격해 정계에 진출했지만 원의 지방 군벌시절에 이성계 주변에 모였던 인물들은 신분 차별이 있었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은 듯 한에ㅛ.
정도전은 그 외할머니가 승려와 노비 사이에 나은 여식이고, 그 자신 또한 서자신분이었고, 당시에 그런 신분의 문제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는데, 근데 정도전과 신덕왕후 때문에 적자만이 왕통을 잇고, 적자만이 관직에 오를 수 있게 되었던 건, 신하들이 만든게 아니라 이방원 스스로 그렇게 나라의 기조를 그리 만든거라 생각합니다.
원래 왕이 될 자질이 아니었음에도 고려시대때 몽골의 지배를 받으며, 화포와 조선 건조를 강제로 많이 하면서 이후엔 명교 세력이 넘어온 홍건적의 난 평정, 북원의 군벌 세력 중 하나인 나하추세력 토벌로 입지를 다진 이성계가 애초에 나라를 세우는데 왕건처럼 훈요 10조 같은 기본 뼈대를 만들지 못했던 건 그 스스로도 나라를 세우는데 필요한 기본 이념을 사대하는 신진사대부들에게 맡긴 결과는 결국 ...
신하의 나라.... 대한민국 국회 의원들에게 대통령이 가진 현재 권력의 반을 나눠 준다면 어찌될까요? 무역을 국가에서 통제하고 관여하고, 결국 벽란도 시절의 풍요로운 고려시대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음란의 문제와 불교의 부패는 사대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면서 부정부패뿐만 아니라 나라의 국방도 책임지지 못하는 선비들이 자신의 기득권과 목숨 부지에 힘쓰면서 임진왜란 이후 어리석은 선조의 판단으로 인해 원균이 3등공신으로 책정되는 어리석은 일만 자초한 것은 역사에서 집단이기주의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싸울 능력도 재능도 없으면서 신분의 세습이 정말 악습이었음을 몰랐던 걸까? 음서제의 악습은 알면서도 엄격한 신분제가 악습인걸 모르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 집단 이기주의임을 모르고, 족보도 없는 큰나라 섬기느라 자주 국방에는 늘 뒷전이고, 병역은 늘 노비에게 맡기는데 도망간 노비가 수없이 많음에도 군권을 가진 관에 등록되는 우스운 일들이 조선시대에는 항상 매번 일어났던 일은 누군가는 들고 일어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건 뭔지...
사대주의에 쩔은 신진사대부와 조선시대의 정치를 하는데 익숙한 관학파, 이후에 등장하는 고려시대의 사림파 또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않고, 붕당을 만들어 권력을 신하들이 나눠서 갖고, 왕의 정통성에 대해 지들이 지분을 가지고 좌지우지 하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나면 무책임하게 대응한 결과가 바로 임진왜란-정묘호란-병자호란 그리고 삼전도의 굴욕...
이후에 나왔던 왕들은 군사적 기반이 지극히 약해서 정조 때는 중앙군을 강화시켜 만명이상까지 군사들을 길렀지만 이후에 신하들에 의해 독살을 당한 건지 뭔지는 몰라도 정조 이후에는 적자가 귀해졌고, 헌종 철종 처럼 그 부모, 조부, 고조부까지 서자출신들이 왕이 되고, 세도 가문이 나라 말아먹고, 결국 일본에게 먹힐 때까지도 빈약한 조선을 유지하는게 기여했지.
풍양조씨,여흥민씨, 신안동김씨.... 결론을 내보면 이 모든 것의 사단은 조선이 신분제 타파도 없고, 군역을 오롯이 노비에게 부담시켜 조선왕조 200년이 지나 임진왜란 때 그 제도적 모순이 있었음에도 조선이란 나라가 망하지 않도록 그 알량한 충성심과 사대주의, 그리고 왕을 우습게 만들도록 군사적 기반을 구차하게 만든 것에서 비롯된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