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 신선한 일탈의 순진성
김지숙(문학평론가)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삶은 그 모습이 유사하다. 그래서 출생 성장 죽음 재생이라는 달의 변화를 인간의 삶에 비유하기도 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국면으로 인간의 일생을 나누어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자연과 인생이 순환성을 지니는 한편, 질서 정연한 법칙을 따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을은 우주적 물질적 정신적 비옥함을 상징하며 추수를 통한 풍요 감사 축제와 같은 긍정적인 면과 조락 쓸쓸함 생명력의 정지라는 부정적인 면의 양면적 성격을 모두 지닌다. 지난 12월호에 수록된 시들은 가을이라는 이미지를 토대로 시적 상상력이 표출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탱자나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을 아직도 기억한다 / 들녘엔 다시 황무의 강물이 밀려오겠고 / 다 식은 저녁놀을 베어먹고 한참을 우짖다 가는 / 그리워라. 까마귀 떼들 낙조에 물든 날개 / 한데 아궁이서 타고 있는 장작불빛 / 따뜻하게 펄럭이며 멀리멀리 달려가는데 / 마른 풀잎 시드는 향기를 내려놓는 땅바닥 / 다문다문 찍혀 있는 고양이 발자국으로 / 소문도 없이 적시고 가는 가을비소리 / 걷어 올린 소매 풀어 내리는 가을을 아직도 기억한다.
-김석규, 「저물무렵」전문
기억이란 과거 경험을 다시 생각해 내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이 기억은 경험 사실을 그대로 저장하고 인출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기억은 단순하게 과거를 재생이나 복사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적 맥락에 따라 변형․저장․인출의 과정을 거치기기 때문이다. 김석규의 시 「저물 무렵」에서 화자는 회상 속의 가을을 붉은 기운이 도는 따뜻한 색깔(박명수, 2003)로 느낀다. 흔히 계절을 표현하는 색은 자연 변화와 유관하며 이는 인간의 유전적 요소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노랗게 물드는 가을’은 화자가 과거에 경험했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일부가 어떤 사물을 접하는 순간 기억 속에서 포착되고 재구성된 색이다. ‘황무’ ‘저녁놀’ ‘아궁이’ ‘장작불빛’ 등과 같은 따뜻한 사물들이 공감각적으로 그려지는 회상 속에서 화자는 스스로에게 따뜻한 말을 거는 한편 이로써 자기 삶의 원천을 한층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이헌구 편저의 시편에서 / 베를레느의 가을 노래를 읽는다 / 뭘 몰라도 명역(名譯)같다 / 가을노래를 읽다가 / 시의 언어는 분위기의 언어라는 / 시인 최정석의 말을 떠올린다 / 시도 이쯤은 돼야 한다고 / 이 한편의 시를 마음에 적는다. / 시를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 / 가을 바람 속에서. -이석근, 「가을 노래」전문
프랑스 상징파 베를렌느의 시「가을의 노래」에서는 낙엽을 매개로 가을에 느끼는 우수 비애 쓸쓸함을 화자 자신의 처지라 여긴다. 낙엽이나 바이얼린의 흐느낌과 같은 시청각적 요소와 더불어 내면 깊이 느끼는 고독감이 표현되는가 하면 시의 음악성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시이다. 동일 제목으로 쓰인 이석근의 시 「가을 노래」는 베를렌느의 시를 감상한 형식으로 쓰였다. 시의 화자는 시에서 보편적 고독감을 드러내기보다는 최시인의 시어에 대한 자각에 동조하는 한편, 그의 시에 대해 화자 자신만이 느끼는 은밀한 감흥을 토대로 이러한 삶이 기쁘고 다행으로 여기는 담대함이 나타난다. 화자는 한편의 시에서 받는 감정의 변화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안도감과 삶의 여유를 갖게 되는 긍정적인 삶의 모습이 나타난다.
문득/ 어릴 적/ 순이를 만났다./ 코흘리개 어린 동생을 업고 /멀리 당산 나무 아래 숨어 /사르르 / 초가을 햇살같은 눈웃음을 짓던 서투른 부끄럼을 만났다. / 투명해서, 맑디맑아서, 환하기만 하던 /고요한/ 응시/ 그 가느다란 마음결을 -양병호,「저물 무렵」일부
유년기에 형성된 인간의 양심 인지능력 사회적 태도는 성인이 된 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시기에 형성된 세계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원형이 되므로 성년이 되어 겪는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유년 시절의 경험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괴테 빌헬름마이스터) 양병호의 시「저물 무렵」에서 화자는 유년 시절로 돌아가는 과정 속에서 현실과 잠시 거리를 두게 된다. 타국에서 만난 소녀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초가을 햇살같은 눈웃음을 짓던 순이를 떠올린다. 인간의 여러 기억 중 ‘일화적 기억’(Tulving & Squire 1994)이란 개인이 경험한 각종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일컫는다. 이 기억은 지속적으로 뇌에 쌓이므로 앞선 기억들은 쉽게 망각된다. 하지만 다른 기억에 비해 비교적 자주 인출 연습이 이루어져 반복 학습 효과가 일어나므로 이는 다른 기억들에 비해 비교적 오래 기억이 되는 편이다. 시의 화자의 회상은 일화적 기억에 해당되며 화자의 기억 속에 순이는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이는 긍정적 기억으로 성인으로 성장한 후인 현재의 화자의 삶에 위안이 되는가 하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중략>가난한 가을 냄새 솔솔 익어가는 뜨락 저편으로 / 속눈썹이 긴 소년 하나 / 자전거바퀴로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 붉은 감이 도레미솔로 층층이 매달리는 가지 사이로 /소년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러보고 싶었는데. 감나무는 이명 속에 손을 넣어 소년의 실루엣과 /가을 감나무를 반으로 접었다가 다시 펴 놓는다. / 빛의 각도로 내려앉은 바람이 / 데칼코마니 식으로 가을 그림 한 장을 완성해 놓았다 / -감나무가 서 있는 풍경 - 한컷
-박명자, 「데칼코마니」일부
데칼코마니는 화가인 오스카 도밍게즈가 종이 위에 그림 물감을 바르고 두 겹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안착시켜 떼어내는 그림기법이다(위키백과). 박명자의 시 「데칼코마니」에서는 ‘가을 감나무를 반으로 접었다가 다시 펴 놓는’ 표현기법에서 데칼코마니 기법을 시어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차용한다. 시에서 화자는 가을 감나무를 중심으로 접었다가 펼치자 엉긴 물감처럼 명확하지 않은 추상화와 같은 내용으로 화자가 느끼는 한 면은 현재 속에서 화자는 감나무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이르는 속 깊은 성찰을 하는 상황으로 포착되고, 다른 한 면은 감나무가 서 있는 유년 시절의 속눈썹이 긴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이 떠오르고 또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하지만 데칼코마니의 그림 밖에 서 있는 현실 속의 화자에게 이미 감나무가 있는 풍경은 서로 다른 두 면이 모두 풍경이라는 점을 감지한다. 데칼코마니 방식으로 그려진 그림 밖에 서 있는 화자 자신은 감나무라는 회상과 현실을 가르는 그림 속에서 뚝 떨어져 화자가 바라본 현실과 회상에서 거리를 둔 채 현실과 과거를 두 편의 그림을 보듯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밤톨이 옷을 벗는다고 일러라 댕댕이 덩굴이 엉큼한 손을 뻗는다고 일러라 알몸 그냥 푸석 내려앉는 적막과 순수, 시린 하늘이 이불 덮어주더라고 일러라 해 뜨는 쪽인지 잠자리가 이따금 날아다닌다고 일러라 / 생명보험 봉투를 옆구리에 낀 바람. 밤톨 숨소리에 귀를 대고 있는 엉큼한 미적거림을 누가 보았다 저녁 숨소리가 들리곤 했다.
-유병근, 「가을산막」전문
영국의 시인 존 던은 ‘가을의 우아함’을 최고로 여겼다. 하지만 수확과 결실의 향연을 노래하는 가을은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식물이 더 이상의 생장하는 것을 막고 성장의 절도를 조절하는 계절이 되기도 하다. 유병근의 시「가을산막」에서 화자는 지복(至福 kief)이라는 부동의 만족 상태에 근접해 있다. 산막에 누워 밤톨 댕댕이 덩굴이 가을 채비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화자는 조용하면서도 어떤 규제나 방해도 없는 자유로운 자연 환경 속에서 그것을 맘껏 누리는 만족스러운 시공간 속에 놓여 있다. 어떤 세속적인 것도 인식하지 않은 채 ‘산막’이라는 화자만의 공간에서 누리는 무시간적 자유로움이 나타난다. 바람의 숨소리도 듣게 되는 화자의 몸은 현실에 있지만 정신은 이미 자연과의 일체감을 맛보는가 하면 스스로는 내면적 현실로 깊이 몰입하고 있다.
대지 끝에 매달린 초록이 힘겹다 / 그 가벼움이 뼈마디에서도 세포가 분열되고 /여름내 달궈진 울음 사이로 진통이 시작된다.// 자고나면 수북이 쌓이는 말들 / 아무것도 되어주지 못하는 것들이 내게 올 것이다 / 이 계절은 금지된 표지판 앞에서 / 가장 쉬운 일 하나 던져 놓고 / 늘 제 몸처럼 나를 쓰다 버린다. 인적 없는 곳으로 자주 나를 불러내는 바람 / 그 길에서 / 떠나가고 있는 것들을 만난다 / 들꽃 같은 짐을 지고
-윤지영, 「진통제」일부
초록은 들판 비옥함을 상징한다. 또한 적색이 의미하는 동화(同化) 능동 집중에서 청색이 의미하는 이화(異化) 수동 쇠약 등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놓인 색이다. 희망 재생 등과 같은 긍정적인 면을 의미하지만 인생무상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이승훈 1995) 윤지영의 「진통제」에서 화자의 시선은 대지 끝에 매달린 초록에 향해 있다. 그리고 그 초록은 자연환경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존재로 진통을 겪으며 서서히 사라진다. 이 점은 화자 자신이 주변의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으로도 파악된다. 그리고 초록의 존재가 어느새 아무 것도 아닌 말처럼 수북이 쌓이고 버려지는 존재로 전락하는데 화자는 이를 자신과 동일시 여긴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물들은 마치 쏟아낸 ‘말’이 버려진 ‘낙엽’이라는 상관물로 대처된 점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초록의 사라짐에 ‘허망’의 의미를 부여하는 화자는 ‘가벼움’ ‘진통’ ‘울음’ ‘쌓이는 말’ 등과 같은 감각적 언어를 사용하여 대상에 대한 보다 정확한 묘사를 하면서 화자의 존재를 그 바람에 싣고자 한다.
오동잎에 비는 내리고 //집앞 전기줄 위에 새 한 마리 앉아 있네 // 아까부터 앉아 있었는데 우두커니 앉아 있네 //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려다 그만 두네 //발이 춥지 않느냐고 하려다가 그도 그만 두네// 무슨 생각이 그리 깊냐고 마당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라도 주워서 깨
우고 싶지만 //나는 피우던 담배마저 피우고 그냥 들어오네 // 오동잎에 비는 내리고, 하마터면 너도 오동잎처럼 그렇게 물들고 싶어 그러냐고 되물을 뻔 했네
-구종현, 「오동잎에 비는 내리고」전문
일반적으로 비는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점에서 비는 빛과 동일시되기도 한다.(이승훈 2003) 또 새는 정신 천사 초자연의 도움 환상적 비상을 상징한다. (융 1963) 구종현의 시「오동잎에 비는 내리고」에서 화자는 힘겨운 상태로 비를 맞는 작은 새와 대화하기를 자처하기만 정작 화자는 애처로운 새의 모습만 관찰하는데 그친다. 전깃줄 위에 앉아 내리는 비를 모두 맞는 잠이 든 새를 대상으로 여러 내용으로 혼자말로 하다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풍요로운 화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동잎이 떨어지듯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화자는 비 맞는 새와 자신을 동일시 여기고 여겨 고독한 존재로 남는다. 진쿠퍼(1995)에 따르면 비는 세상을 비옥하게 만드는가 하면 신의 축복이라는 상징성을 지니며 또한 신화 속에서 내리는 비는 천상의 정신적 영향을 상징한다. 시에서 비는 ‘축복’ 혹은 ‘비옥함’ 보다는 화자에게 ‘정신적 영향을 미친다’ 또 시에서 새는 ‘비상’의 의미를 지니지만 비를 맞고 있기에 더 이상 비상하지 못한다. 비맞는 새와 화자는 내면적으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화자가 다가섬으로 새와의 거리는 좁혀지고 화자는 날지 못하는 새에 대해 자신과 동일시 하게 된다. 이로써 화자와 새는 겉모습이나 심정적으로는 유사성은 갖지만 화자와 새와의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좁혀지지 않은 상태로 대상과의 완전한 일체감은 획득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