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라톤 완주기
(늙다리 전업 농부의) 이철로
환갑 진갑 다 지난 2003년(64세)에 시작한 아주 단순한 동기, 그리고 첫 “춘천 마라톤대회”에서의 완주와 환희…!
어려서 이후 달리기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뒤늦게 왜 마라톤을 시작했고, 칠십 고개를 훌쩍 넘어서까지 달려야 하는지?
장장 5시간여의 지루한 시간에 105리를 달리면서 내 인생의 춥고 배고프고 힘들고 어려웠던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속울음으로 눈시울을 적시며, 때론 통쾌한 너털웃음을 쏟으면서 달리는 쏠쏠한 재미에 오늘도 달리고 있는 사연은 아주 단순하다.
내가 사는 동네의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테니스코트에서 테니스를 즐기던 2003년 7월쯤인가? 초등학교 운동장(둘레가 약 350m 정도)을 조금은 빠르게 뛰어 돌고 있는 아줌마 두 분을 따라 달리다가, 두 바퀴를 돌지 못하고 숨이 차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젊어 30대 이후 매일 테니스로 몸을 단련했고, 한라산 백록담,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천왕봉 등을 오르면서도 함께한 동료들로부터 산을 잘 오른다고 칭찬을 듣기도 했는데, 400m도 미치지 못하는 트랙을 두 바퀴도 못 돌다니 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군대에서도 피우지 않던 담배를 제대 후 30대부터 피운 담배…? 분명 숨이 가쁜 이유는 하루에 2~3갑씩 피워대는 끽연(喫煙) 때문이다. 담배를 끊기로 작심하고, 3개비를 피우고 남아있는 담배갑을 휴지통에 버렸다.
다음 날 새벽 운동장에 나가 트랙을 천천히 다섯 바퀴를 돌았다. 한참 여름인지라 등에 땀이 흠뻑 젖었다. 조금은 숨이 차나 어제처럼 빠르게 달리지는 않아서인지 몸이 가쁜 하다.
매일 운동장을 7바퀴, 10바퀴, 20바퀴로 하루하루 거리를 늘려가며 달리기를 계속하던 중 《조선일보》에 춘천마라톤 참가 신청을 받는다는 기사를 읽고 즉시 PC를 열고 참가 신청을 하고 40.000원 다음날 우리은행에 가서, 송금했다.
PC에서 “춘천마라톤” 창을 열고 마라톤 훈련법에서 열심히 이것저것 탐독을 하면서 안양천을 달리고 현충탑을 오르며 약 3개월간 몸을 만든 후 2003년 10월 19일 <춘마>에 출전한 것이 마라톤 입문의 계기가 되었다.
내가 태어난 이후 난생처음 유니폼을 입고 배번을 달고 마치 마라톤 선수처럼 “K그룹(배번14869)” 중반쯤에서 춘천종합운동장 트랙을 꽉 매운, 선수들의 인파에 밀려 출발선으로 이동 10시 30분쯤인가 출발하여 막무가내로 달리기 시작, 5km까지 25분, 10km를 50분에 돌파 이대로 달린다면 3시간 50분 안에 피니스 라인을 밟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오른쪽 종아리가 굳어지면서 쥐가 난다. 약 13km 지점부터는 아예 걷기조차 힘들어 주로에서 옆으로 빠져 나와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배번에 꽂은 핀을 빼서 종아리를 찌르니 피가 흐른다. 여러 차례 찌르고 또 찌르고, 피는 오른쪽 다리를 흥건하게 젖어 발등까지 흘러내린다. 약 10여 분 동안 다리를 웅크렸다 폈다를 반복하니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아 다시 달리길 시작했다.
5분쯤인가 천천히 달렸는데도 다시 쥐가 나기 시작한다. 아직 갈 길이 까마득한데, 핀으로 찔러보았자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왼쪽 손목에 찬 스톱윗치를 쳐다보니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자판은 00:00으로 나타난다. 스톱윗치를 잘못 건드렸나 보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춘천호반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넜다.
반절은 조금 더 달린 것 같은데 오르막이 또 시작이다. 그냥 포기해 버릴까? 구급차를 탈까 말까…? 자꾸 주저앉고만 싶다. 내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하는가? 다리만이 아니다. 이젠 왼쪽 옆구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숨을 들어 마시니 갈비뼈가 뒤틀리면서 온몸이 옆으로 꼬인다. 걸을 수조차 없다. 가로수를 붙들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스트레칭을 해보지만 아무 효과가 없다. 처음 달리는 길이라 여기가 어디인지조차도 모르겠다. 다시 한참을 걷고 뛰다 보니 음료수 거치대가 보인다.
한쪽 거치대에서 압핀 같은 수지침을 놓아주는 봉사자들로부터 열 손가락에 수지침을 꽂았다. 서브-4는 진즉에 물 건너가고, 수려한 경관도 쳐다볼 겨를이 없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이 바스러지는 통증과 싸움일 뿐이다. 위아래 이를 얼마나 힘을 주어 앙당물었는지 볼 아래턱까지 아프다.
군부대를 지나 시내로 들어서니 널따란 공간과 올곧게 멀리만 보이는 주로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여기저기 인도에 앉거나 서서 가로등 또는 가로수와 씨름하는 달림들 만 점점 늘어난다. 어떻게 왔는지 “소양강 처녀”의 노랫소리가 들려 오른쪽을 쳐다보니 베적삼을 입은 처녀의 동상이 보인다.
여기서부턴 발목, 발가락, 발바닥이 한꺼번에 저리고 아파온다. 머릿속으론 포기할까…!, 그만둘까…!, 이것 미친 짓이지? 하는 달리기를 그만두라는 부정적인 생각만이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발가락을 폈다 오무렸다를 해보아야 양쪽 엄지와 검지 발가락이 운동화 앞쪽을 접촉하는 순간 무릎까지 주저앉아지며 입이 절로 벌려지고 아야! 하고 나도 모르게 비명의 된소리 되어 울린다.
넓디넓은 주로는 어느 골목길로 들어서면서 좁아지고, 운동장에서의 확성기 소리와 양쪽 인도에서 응원해주는 시민들과 벌써 완주를 하고 추리닝 또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집으로 향하는 선수들의 박수에 힘이 솟구쳤는가…?, 통증은 잃어버리고 오직 끝까지 달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은 전환되어버렸다.
운동장 입구를 들어서 트랙을 돌고 있다. 직선으로 보이는 Finish Line과의 불과 200~300m의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질 않는다. 죽을힘을 다해, 기를 쓰며 달리고 달리는데 왜 그리 꼴인 지점을 멀기만 한지….온몸이 몽그라지는 통증에 달리길 그만두고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은데, 사람들의 쳐다보는 시선 때문에 이를 악물고 뛰고 또 뛰어 드디어 Finish Line에 깔려있는 타임벨트에 접지, 42.195km를 완주했다.
절룩거리며 칩 반납처에 가서 운동화 끈에 묶어둔 칩을 빼려고 엎드리려고 하니 허리도 고개도 숙여지질 않는다. 봉사요원의 도움을 받아 칩을 반납하고 완주 매달과 간식거리를 받아 셔틀버스에 승차 좌석에 앉으려니 허벅지에 또 쥐가 나기 시작한다.
기다시피 하여 집에 도착 2층을 오르려니 발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이때에서야 몇 시간에 완주했는지? 몹시도 궁금하여 몸 동아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서재에 들어가 PC를 열어 4시간 48분 08초의 기록을 확인했다.
통증에 온몸을 가눌 수가 없지만 해냈다는! 석 달 전 400m도 채 않돼는 운동장을 두 바퀴도 돌지 못했던 내가 백오리를 뛰어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승리의 쾌감이 온몸에 전율되어 느껴진다. 저절로 양손에 힘이 느껴지며 손이 꽉 쥐어진다.
소리를 크게 지르고 싶다. 팔을 벌려 손을 높이 들어 기지개를 켜니 목, 허리, 어깨에 통증이 느껴지며 아! 악! 하고 비명의 소리가 절로 난다. 나는 해냈다는, 마라톤을, 42.195km를 완주했다는, 절대 승리자의 통쾌 명쾌한 즐거운 비명이다.
잠자리에서도 온몸을 뒤척이며 통증과 씨름을 하고, 다음날 아래층에 내려가려고 하니 계단을 오를 때보다 더 힘이 든다. 양쪽 엄지와 검지 발톱은 퍼렇게 멍이 들어버렸고, 일주일 내내 사우나와 정형외과를 오가며 통증과 싸움을 하면서 다시는 마라톤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춘마”와 동시에 다음 2주일 후의 “중앙마라톤”을 신청한 4만 원이 아까워 또다시 통증과 싸워가며 뛴 것이 테니스도 골프도 마다하고, 오직 기록이라고 할 것도 없는 "5시간대의 거북이 마라톤"에 중독이 되어버린 계기가 되었다.
※이철로: 1941.8.22.생 72세가 되는 2003년 늙깍이로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참가하여
첫 완주후 지금까지 195회를 완주했는데
현재는 전주 익산에서 농사 짓는 재미에 톡톡히 빠져 있어서 자칭 전업농부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