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울트라마라톤 참가기 (한반도횡단과 성지순례) 정태환
1.한반도 횡단 울트라마라톤 308km
망설이던 세월 속에서 어느덧 80고개를 넘어섰다.
지나온 행적을 더듬으며 끊임없이 나와 대화하면서 달려간다.
늦여름의 맑은 날 강화 창우리 선착장의 아침은 5시에 시작된다. 기상과 동시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 카톨릭 친구들을 비롯한 주자들과 인사도 나누고 코스정보를 교환한다.아침 7시,창우리선착장을 떠나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한강변의 무수한 아파트와 산 그리매를 바라보며 팔당댐으로 달려간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근처 길가에서 저녁식사를 마치자 마자 길 안내판을 따라 달리다 보면 두세명이 대화를 나누며 같이 가다다 혼자 가기도 하고..그렇게 시나브로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나아간다. 목적지까지 아직 20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예정이라는 말에 긴장이 되지만 별빛이 무수히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마음의 여유를 찾고 결의도 다져본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무아지경의 경지에 다달을 때 쯤 마음 한 구석에 싹드던 의문이 계속 꼬리를 문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여서 가야만 하는가 라고 반문을 하다보면 알 수 없는 방언이 입밖으로 흘러 나오기도 한다.다시 흩어진 정신을 가다듬어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불굴의 마음으로 고통을 극복하면서 꼭 완주할꺼야"라고. 스쳐 지나가는 동료주자들의 거친 숨소리와 발 내딛는 소리와 함께 주로 주변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어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으로 들리기도 한다.
헤드램프에 의지하여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달리다 보니 어슴프레한 윤곽 속에 대관령이 서서히 다가온다.버닝 아웃~밤을 불꽃같은 정열로 태웠다.
몸은 하얗게 부서져 가도 정신은 유리알 같이 맑다. 다시 2시간이 지나면서 해는 중천으로 이동해 간다.시시각각 몸은 지쳐 가는 중에 고개를 넘자마자 눈앞에 경포대가 펼쳐지고 한순간에 기분이 업 된다.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걷뛰에 집중하며 가다보니 어느새 다시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주위의 어둠이 오늘 하루를 삼켜버린다. 드디어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하여 피니시라인을 통과한다.먼저 들어온 주자와 들어오는 주자들이 함께 어울려 웃고, 손뼉을 쳐주고 응원하면서 대회장은 온통 축제의 장으로 바뀐다. 3박4일 동안의 대장정 끝에 308키로를 완주하고 나와의 길고 긴 싸움에서 승리했다.머릿 속이 뻥 뚫리고 몸이 허공에 붕 뜨면서 날아 갈듯한 기분이다.
2.성지순례 울트라마라톤,222km
카톨릭마라톤의 성지순례 울트라마라톤대회는 한국 천주교가 이땅에 들어온 222주년을 기념하여 같은 키로를 성지순례하는 신앙체험이자 서바이벌 마라톤 대회다. 제한시간은 4월의 마지막주인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무박3일, 42시간이다.
출발지인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의 상징으로 한국 교회의 공동체가 탄생한 요람이다.
두번째 경유지인 서소문성지(한국교회 1003위 성인중 44위,하느님의 종 시성 시복대상 성인 27위가 순교한 한국 최대 순교성지)를 지나 세번째는 당고개 성지를 통과한다. 서소문과 새남터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성인을 탄생시킨 거룩한 성지다.
네번째 새남터 성지(용산구 이촌2동 소재)는 1801년 신유박해부터1866년 병인박해까지 주로 외국인 선교사와 천주교 지도급인사들이 순교한 곳이다.
여기서 다시 한강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절두산성지에 다다른다.수많은 이름없는 신자들이 처형 당했던 한국 교회사를 대표하는 성지이며 27위의 성인유해가 모셔져 있다.한강변을 내쳐 달려서 안양천을 따라 쭉 올라오면 여섯번째 성지인 수리 산성지(안양시 만안구안양동)가 나온다. 한국인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부친인 최경환 프란시스코 성인이 태어난 곳이다.
명동성당을 출발해서 이곳 수리산 성지까지 42.7km지점은 제한시간 7시간내에 통과해야 한다.간단한 음료와 간식보급을 받고 어두운 밤길을 달려 산을 넘다보면 지금은 생체리듬상으로 쉬는 시간이라 피로감이 더 몰려온다.이곳에서 비를 맞으며 9회를 알바하며 2시간을 헤메면서 달렸다.
이어서 7번째 체크 포인트인 하우현성당(경기의왕청계동)은 200년 이상된 교우촌이 형성되어 여러 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다.잠시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한다.
8번째 체크 포인트인 둔토리 성지는 청계산 국사봉 동남쪽에 자리한 아주 작은 동굴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루드비코 프랑스신부가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던 곳이다. 이곳을 쭉 내려와 9번째 성지인 손골성지는 출발지에서 73.8km지점에 있다. 당시 용인 수지 동천동에서 광교산 기슭으로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1866년 28세에 새남터에서 순교한 103위 성인중 한분인 도리 헨코 신부가 선교 준비하면서 은신했던 곳이다. 여기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탄천을 따라 달리다 보면 열번째 남한산 성지인 67km 지점에 도착한다.1791년 신해년부터 1801년 신유년1939년 기해병인년에 이르기 까지의 박해로 300명이상이 순교한 한국 최대순교지 중 하나로 이곳에서 다시 점심식사를 한다.
내리막길을 내려 오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이제 11번째 천진암성지, 126.9km 체크 포이트에 도착한다.
앵자봉 너머에 있는 주어사와 함께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곳이다.창림 선조5위의 묘역이 있고 그 아래에는 천주교 백년을 기념하며 대성전을 건축하고 있다. 이곳을 넘어 해가 지기 전에 행제봉을 넘어야 조금 편하게 밤길을 내려 갈 수있다. 12번째 성지인 양근성지, 163.1km 지점에 도착한다. 천주교 공동체의 기원이 되는 주어사 강학회를 주도한 권철선,권신일형제가 태어난 곳으로신앙공동체가 전국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기원지인 셈이다. 남한강을 따라 자전거길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별빛을 보면서 달리는 남한강 자전거 길은 조용하며 명동성당까지 야간의 내리막 길이라 편안하게 느껴지는 길이기도 하다.
마제성지,175.5km 구간의 제한시간은 33시간이다. 풀코스도 32km가 마의 구간이듯이 성지순례 울트라마라톤도 이곳이 포기냐 완주냐의 갈림길 구간이다. 혼자 가다가도 어느새 동료주자들과 잠시 만났다가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마재성지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잠시 쉬다가 날 새는 줄 모르고 주무시는 주자, 기력소진으로 기권하는 동료도 만나면서 그들을 뒤로하고 나홀로 아리랑을 하다보면 팔당대교 남단을 지나 한강으로 내려 가면서 14번째. 190km 지점의 구산성지가 나온다.이곳에서 한강 자전거도로와 기지국이 이어지고천호대교와 올림픽대로를 지나 반포대교 우측으로 돌아서 마지막 피치를 올리다 보면 15번째 명동성당,222km의 피니시 라인 선을 밟게된다.
조선의 국가일지였던 승정원일기에는 천주교의 교리를 담은 서학이 서울에서 시골에 까지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농사꾼부터 무지한 시골 아낙네까지도 천주실의라는 한글로 베낀 필사본을 신명처럼 받들고 다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성리와 주자학을 기본으로 나라의 근간을 세우려 했던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국가기반을 흔드는 도화선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민초들에게는 천주교가 시대를 구원하는 한줄기 불빛과도 같았다. 국가와 백성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15곳의 성지순례 울트라는 시대를 앞서간 성인들이 순교하면서 죽음으로 승화시킨 곳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대를 관통하며 달리는 성지순례 울트라마라톤 코스는 비신자라도 숙연한 마음으로 달리게 되는 뜻깊은 길이다.
3.울트라마라톤 에필로그
한반도 횡단 울트라마라톤은 내인생을 살아 온 족적을 반추하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여생의 의미와 목표를 되새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있다. 반면 성지순례울트라마라톤은 고난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지켜내야 했던 성인들의 발자취를 찾아 가면서 신앙의 의지를 다시 한번 다지는 달리기 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가족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하늘을 위해서 무엇을 주려고 했는가 라고 반문을 해본다. 나의 신념이나 가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로 살아 온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라는 화두도 남겨본다.
뒤늦게 칠마회에 입회하여 동료 회원님들과 공원사랑마라톤에서 같이 달리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회원님들 모두가 친절하고 표정도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계신 모습들이 잔잔하면서도 깊은 임팩트로 가슴에 다가왔다. 다방면의 인생 케리어와 좋은 인격을 갖춘 회원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거리감도 느껴지지 않아서 참으로 좋다.
매주 한번쯤 신도림 공원사랑마라톤에서 만나 같이 달리면 속이 후련하고 스트레스도 확 날아간다. 어렵거나 고민이 있을 때도 달리기에 도전하고 땀을 흘리고 피니시라인을 통과할 때 회원들의 응원을 받는 것 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는 것 같다.
이번에 칠마회 15주년 창립기념으로 책자를 발간하면서 회원들의 글을 모으고 계신다기에 용기만으로 졸필을 들게 되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고 했듯이 책자 발간에 얹혀서 처음으로 이름 석자를 남기게 되었다. 귀한 기회를 주신 회장님을 비롯한 칠마회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오래도록 펀런(fun run)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태환: 441.2.6 생 많은 울트라마라톤 경험. 칠마회에 늦은 나이에 입회.
독실한 천주교신자. 2012.11 풀코스완주 후 160여회의 달림 경력. 칠마회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