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고난과 감사 육용국
많은 이들이 마라톤 풀코스 42.195km 완주를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으나 이를 달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나는 지난 2009년도에 이팔청춘이 아닌 육순을 앞두고 취미 삼아 마라톤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후 십수 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공인 마라톤대회 풀코스 완주에 대한 도전의 고삐를 조였다.
어쩌면 200회 완주의 과업을 이루기란 일반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공식 마라톤대회에서 공식 기록으로 200회 완주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게 산술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주변에서는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나는 고희를 앞두고 이 목표를 달성했다.
나의 지난 70여 년의 삶은 고난의 여정이었고 실로 파란만장했다. 나는 20대에 충북 옥천의 고향산천을 뒤로하고 혈혈단신 상경해 사업을 시작했다. 본래 어떤 일이든 한번 시작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끝장을 보고야 마는 집념이 강하다 보니 처음 손을 댄 문구·잡화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기대치 않은 큰 성공으로 그 분야에서 내 이름 모르면 간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그럴 정도로 나름 큰 손 사업가로 활약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만하고 교만했다. 두주불사형으로 타고나다 보니 음주와 줄담배 흡연 등 향락·유흥에 깊이 빠졌다.
결국에 역사적인 서울올림픽대회를 1년여 앞둔 1987년당시 내 나이 35세에 문구·잡화 도매상 큰손이라 해도 당시에는 거액인 50여억 원(당시 강남 아파트 50채 값)의 부도를 맞고 도산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높은 자만감에 가득 차 있던 당시 나로서는 청천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사회와 가족과 격리된 채 3년여의 영어의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하루아침에 알거지요 전과자가 된 나는 출소 후 설상가상으로 아내와 슬하에 어린 두 자녀를 둔 단란한 가정이 깨지는 천추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설상가상의 시련과 고난의 세월을 온몸으로 감내하던 내가 그동안 쌓아온 전문성과 신용과 의리를 안타깝게 여긴 많은 옛 거래처 관계자들의 성원과 격려로 심기일전해 재기했다.
그렇게 보란 듯이 나는 옛 화려한 실지(失地) 회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더욱 열정적으로 매진해 나갔다. 그 와중에 모태신앙의 소유자이자 연하 띠동갑인 두 번째 부인의 강권으로 성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두주불사형의 폭음 습관과 하루 수십여 갑을 마다하지 않는 과다 흡연자로서의 좋지 않은 습성을 떨쳐내기란 참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재기 후 15년여가 지난 2004년에 다시 40억 원이라는 거액의 부도를 맞고 도산했다. 하루아침에 단돈 천 원도 아쉬운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수십여 명으로부터 쫓기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자 다시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나를 대면한 안사람은 뜻밖에도 내 앞에서 파안대소하면서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연거푸 외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제야 하나님이 당신을 제대로 세우시고자 큰 시련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자!”며 기뻐했다. 나는 그 광경 앞에서 유구무언이었다.
구약 성경에서 살기를 잔뜩 품은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다윗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동굴 속에 숨어지냈듯 나 역시 그동안 몸담던 출석 교회를 떠나 인근의 이름 없는 개척교회 골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
나는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골방에서 3년 동안 갇혀 지내며 온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성경 전권 필사(筆寫)를 연거푸 두 번이나 마무리했다. 그 당시 내가 육필로 필사한 수십여 권의 성경 필사 노트는 내 집무실 한곳에 보물처럼 보관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탐닉해오던 술과 담배를 자연스레 끊을 수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일대일로 절대고독을 음미하며 무언의 대화를 하거나 절규의 기도를 드리며 나는 지난 내 허물과 죄악에 대해 애통하게 회개했다. 그리고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자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부도·도산 과정에서 발생한 수십여 건에 이르던 고소·고발 건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하게 모두 취하되도록 섬세하게 인도하셨다. 그러한 놀라운 기적과도 같은 영적 체험과 결실을 통해 나는 진정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교류해온 5~600여 지인들이 나의 그렇게 확 달라진 변화 앞에서 “거짓말하지 말라,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 후 나는 자연스레 마라톤 운동을 가장 중요한 취미이자 일종의 기도(祈禱) 과정으로 삼았다. 나는 지난 2009년 8월 [한강마라톤회]를 통해 마라톤에 입문한 이후 새벽이든 심야 시간이든 집 근처 한강 변으로 나가 시간과 거리 제약을 두지 않고 뜀박질을 계속했다. 어떤 날에는 집에서 35km에 이르는, 매주 수·토·일 매주 3회 [공원사랑마라톤대회(한국마라톤TV·이규운 대표 주최)]가 열리는 영등포구 도림천 변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나는 마라톤을 뛰다 보면 처음 5km까지가 힘에 부치지 그 한계를 넘어서면 무아지경에 빠져든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그러한 지경에 이르면 자연스레 여호와께 무언의 기도를 드리며 묵상을 하고 비전을 보며 꿈을 꾸게 되는 황홀경에 빠지는 데 이러한 환희는 이를 몸소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을 알 수 없는 비밀이다.
그리고 내가 마라톤 입문 십수 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200회 완주라는 과업을 달성하게 된 데는 올해 창립 22주년을 맞은 [한국마라톤TV] 이규운 대표 덕분이 크다. 이 대표는 10년 넘게, 심지어는 코로나 빙하기 지난 2년 동안에도 예외 없이 1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랑곳하지 않고 매주 3회나 [도림천(영등포) 공원사랑 마라톤대회]를 개최해 수많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기록 수립에 지대한 공헌을 해오고 있다.
술과 담배를 단칼에 끊고 취미로 삼은 마라톤 풀코스 200회 완주의 과업을 달성하는 가운데 나는 젊은 시절부터 몸에 달고 다닌 당뇨와 몇 해 전 작별을 고할 수 있었다. 이제는 주치의와 상의해 더는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늘 고주망태가 되어 늦게 귀가하다 보니 자녀들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대화도 단절된 과거의 흑역사도 단번에 떨칠 수 있어서 가정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칠순을 넘겼으나 주변에서 나를 50대 못지않은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아서 낯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나는 마라톤 풀코스 200회 완주의 과업을 이루면서 그 못지않은 고난도 달리기 도전 목표에도 쉼 없이 도전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둬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나는 여러 인생 고난을 통해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면서 “고난은 축복의 통로”라는 확신을 지니게 되었다. 아울러 나는 인생 여로의 여러 험로를 지나면서 구약의 다윗왕처럼 4행 시인으로 어느 경지에 이르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4행시로 주변을 행복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0월에는 제9회 {영동곶감 울트라마라톤대회} 101km 부문에 출전해 14시간 54분의 기록으로 울트라마라톤대회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 이후에도 관련 행사에도 꾸준히 참석해 총 일곱 번을 완주했다. 그리고 2016년 조선일보 춘천 국제마라톤대회 풀코스에 도전해 3시간 59분 10초 기록으로 골인해 이른바 ‘서브-4’의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7년 1박 2일 동안 거행된 제15회 서울 북부 5개 산(불암·수락·사패·도봉·북한산) 합동 종주 산행에 참석해 5월 13일부터 14일까지 21시간 3분 동안 쉼 없이 완주하기도 했다.
나는 지난 2년여 우리의 일상생활을 꽁꽁 묶어뒀던 코로나 빙하기에서의 해방되는 시점에 발맞춰 2022년 상반기에 영등포구 도림천 일대에서 열리는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 가족·지인들과 함께 참석해 마라톤 풀코스 200회 완주 기념식을 거행하고자 한다.
나의 이러한 마라톤 인생 후반부의 멋진 대반전은 늘 고락을 함께하며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는 칠순마라톤동호회(칠마회)의 동지들 덕분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 지면을 빌어 칠마회 모든 회원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육용국: 53.7.8생 2010.11.10.중앙마라톤에서 첫완주 후
200회를 2022.5.21.달성.3시간59분10초가 최고기록. 한강스포츠클럽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