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재(永慕齋) :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황죽리 구황마을 사의공(휘 季賢)의 제3자인 주부공(휘 琮)께서 함안에서 하동 옥종(운곡)으로 이거하신 후 주부공의 손자이신 신산공(휘 弘勛)은 임진왜란때 충무공(李舜臣)께서 백의종군 하실 때인 1597(정유)년 7월에 공의 집에서 4-5일간 유숙하면서 경기(經紀)와 비어지책(備禦之策)를 서로 의논하였다.(亂中日記) 신산공의 차자는 예빈시주부(主簿, 휘 承厦)이시며 손자는 감정공(監正公, 휘 次國)이시다. 감정공의 아드님(휘 尙)은 효종 7(1656)년에 태어나셨는데 참의(參議)에 증직되었는데 이 시기에 이곳 진상면으로 이거 하셨다. 백운산의 동남 기슭에 자리잡은 진상면은 어치리 황죽리 등에 종친이 세거하고 있으며 첨지공파의 일부도 구례와 이곳 진상면에 살고 있다. 이곳의 서쪽 옥룡면은 백의판서로 유명한 갈암선생(휘 玄逸)께서 71세때인 1697년 5월에 감형되어 유배생활을 몇 개월 하신 곳이다. 영모재(永慕齋)는 옥종에서 광양으로 이거하신 참의공(參議公, 휘 尙)과 세 아드님을 위한 묘재사이다. 장자는 휘가 운제(雲齊)인데 성두동(星斗洞)에 처음으로 거주 하였고, 차남은 휘가 운구(雲衢)이며 호를 호은(湖隱)이라 불렀으며 죽림동(竹林洞)에 살았고 삼자인 휘 운거(雲擧)공은 어치동(於峙洞)으로 이거하였으므로 세분이 사셨던 거리가 얼마되지 않은 구황마을에 재실을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