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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끝나지 않은 <단편소설>
물빛 약국 정 약사<단편소설>
海鄕 김 학 철 지음
아침 출근길은 늘 그렇듯 부산스럽기만 하다.
다리를 건너야만 하는 나에게 언제나 이곳 초등학교 앞에서 마주치는 조무래기들의 종종걸음이며 쪼르륵 쪼르륵 교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더없이 정겹고 행복한 아침을 열어준다. 초등학교 교정 교문위에는 졸업시즌을 맞이했음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눈부신 아침햇살을 받아 온몸을 뒤흔든다. 기상대의 예보대로 쌀쌀한 날씨와 바람이 아이들의 손을 호주머니에 꼭꼭 찔러 넣게 하고 있다.
“언니들, 우리를 잊지 마세요.”
“선생님, 아우들아, 사랑하는 교정아, 영원히 우리들 마음속에
잊을 수 없어요.”
“사랑하는 너희들을 영원히 잊지 않으마.”
초등학교 졸업식을 알리는 세 가지 색깔의 플래카드가 함께 어우러져 하늘 끝까지 닿아 있는 듯하다. 교정 교문위에 나부끼는 플래카드의 이색적이고도 가슴 저 끝으로 부터 아련한 추억을 불러오는 문구 때문인지 아침부터 코끝이 찡하다.
교통 신호등의 불빛은 아직도 빨간색 그대로다.
“교육이란 ...... ”
황 교수님은 약리학 첫 강의시간에 약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치 않으셨다.
“교육이란 사람마다 학자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정의할 수 있지만.....”
말씀을 하시다 말고 칠판에 판서를 하시기 시작하셨다.
“교육이란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서 선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약리학과 ‘선과 악’은 무슨 관계이며 선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무슨 말씀이란 말인가? 그리고 선의 기준은 무엇이며 악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그 날 첫 강의 시간에 황 교수님은 우리들에게 무슨 말씀을 전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대학 4학년생이면 이제 이미 성인이 다 되었건만 교수님은 첫 강의시간 내내 -지금은 아슴푸레하지만- ‘사람 사는 일’에 관해, 그리고 ‘아픈 사람’에 관해 열강을 하셨던 것 같다. 그 날 그 시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자신의 삶을 총 결산하는 마당에서 사랑하는 그의 환자들뿐만 아니라 남은 아이들과 아내, 동료 의료인들에게 마지막까지 자신의 생을 불태웠던 일본의 젊은 의사 얘기를 들려주시면서 첫 강의를 마치셨던 것 같다.
“제 마음속에는 세 가지 슬픈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아무리 해도 고칠 수 없는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하는 슬픔입니다. 둘째는 돈 없는 가난한 환자가 자기의 병 걱정뿐만 아니라 돈 걱정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바라보아야 하는 슬픔입니다. 세 번째는 제 딴에는 환자의 처지가 되려는 마음으로 진료를 해도 결국은 그 환자의 마음이 될 수 없다는 절망속의 슬픔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여러분에게 환자들에 대해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십사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그의 말씀을 전하면서 황 교수님은 말씀을 이어 가셨다.
“제 인생에 행복했던 만남을 여러분께 전하면서 첫 강의를 마칠까 합니다. 암 선고를 받고도 죽는 날까지 자신과 환자를 그리고 동료들을 사랑했던 젊은 의사선생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을 직접 만나 뵌 일도 없고 악수를 나눈 바도 없습니다. 저는 이일이 약리학 지식을 여러분께 전달해 주는 것만큼이나 제가 해야 할 커다란 의무라 생각합니다. 1년 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여러분께 미리 당부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여러분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하기 보다는 제가 책속에서 만났던 그 분을 여러분도 만나뵐 수 있는 행운이 함께하길 빌며 그 분의 말씀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여러분과 나와의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랬다. 그 날 첫 강의시간을 잊을 수 없다. 젊은 황 교수님의 말씀은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속 깊은 방, 보석함에 넣어진 보석처럼 빛나는 색깔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이 도시에 처음 도착하던 어느 겨울날도 오늘처럼 몹시 바람이 불었었지. 바람만 불었던가? 온 산이며 바다며 온 도시가 움츠러 들고 있었지. 새벽녘 얼핏 잠에서 깨었을 때, 수증기 피어나는 기차 차창 밖으로 바라본 새하얀 눈밭 세상이라니. 그날 밤 동해안을 따라 오르던 기차는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지. 드문드문 태백준령을 따라 보이던 산골짝 불빛은 마치 하늘에서 신호음을 받고 있는 것만 같았지. 기차 차창 밖 동천(冬天)을 올려다보다 쏟아질 것만 같은 무수한 별들을 태백의 깊어가는 하늘에서 만났을 때, 아! 모든 것이 아스라해져만 가고 있었지. 남겨놓고 온 땅끝 마을 내 고향, 갈두리의 아름답던 풍광들이 별과 함께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지. 찬바람이 스쳐가는 그곳 하늘아래 따스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불빛들이 산기슭에서 도란거리고 그리고 이내 떠오르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당신의 딸을 향하던 애처로웠던 눈빛. 아! 눈을 감았지. 눈을 뜨면 별빛이 알알이 내 눈에 박혀 아롱질 것만 같아 눈을 감았지.
밤기차는 긴 여운의 기적을 울리며 속도를 더해가고 있었고 그 속도만큼 내 마음도 내가 살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달리던 기차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로 후진하며 산을 오르는 것만 같았다. 예전 학창시절 때 배웠던 기억이 새롭다. 스위치 백 이었다. 높은 산을 기차가 넘어갈 때 지그재그로 철길을 놓아 산을 오른다는 스위치 백 방식이었다. 나는 지금 이 기차처럼 후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왔다 갔다 하며 지그재그로 험한 산을 오르는 기차처럼 힘겹게 숨을 헐떡이며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천 하늘가 밤하늘 별들이 남쪽마을 생각에 잠기운 내 눈동자처럼 흐릿해지고 있었다.
눈을 감자. 눈을 감어. 앞날만 생각하자. 한잠 푹 자자. 살아온 날들도 힘겨웠지만 살아갈 날 또한 쉽지만 않으리. 어머니가 그러셨지. 아버지가 배 타고 나가시던 밤, 그 밤을 잊을 수 없노라고. 밤새 내내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동네 사람들 모두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노라고. 지금은 다리가 놓여 육지처럼 된 섬 완도에서 해남 땅, 그림 같은 땅끝 마을로 시집오신 어머니는 그날 밤 뱃속의 남겨진 아이를 쓸어안고 꺼이꺼이 한없이 우셨다 하셨지. 고기잡이 갔던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폭풍우를 만나 수장된 젊디젊은 아버지는 그날 밤 하늘의 별이 되셨다 하셨지. 어머니는 아버지 얼굴도 못보고 외딸로 태어난 나를 데리고 청상과부가 되어 한평생을 살아 내셨지.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버린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나는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다 보낼 때 까지도 밤마다 바닷가에 나와 앉아 밤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하늘가 별빛에 눈물 적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지. 동네 허드렛일이란 허드렛일은 모두 다 맡으셔서 억척 같으셨던 어머니는 나를 광주로 유학 보내 대학졸업만을 학수고대 하셨지. 대학을 졸업한 내게 고향으로 내려와 함께 살기를 소원하셨고 고향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약국을 개업 하던 날 얼마나 기뻐 하셨던지. 동네에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아 주었고 늘 낯익은 이웃들과 푸른 물결이 오가는 아침과 저녁을 맞으며 약국은 그런대로 내 꿈의 보금자리가 되어가고 있었지. 조금 떨어진 건물에 개업하고 계시는 김 내과 선생님과도 다정한 이웃으로 지내며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취해 정성껏 아픈 이들을 돌보는 나날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 약국이 동네에 하나 더 들어서고 한가한 나날이 계속되며 바닷가 멀리 떠나는 보길도 뱃고동 소리가 한없이 구슬프게 들려왔지. 김 내과와 ‘물빛약국’사이에 들어 선 약국에 동네 어르신들이 한분 두 분씩 드나들기 시작하셨고 어머니는 한숨 쉬는 날이 늘어만 가셨지.
기차는 어느새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밤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쉼 없이 달려온 기차는 바닷가 작은 간이역에 관광객을 내려놓기 위해 긴 호흡을 내 뿜고 있었다. 간이역은 바닷가 바로 옆에 있어 손에 닿을 듯 하고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바닷가 찰랑거리는 파도가 내 발을 적시려 차내로 들어 올 것만 같았다.
[ 정 동 진 역]
간이역 팻말이 눈에 들어 왔다. 이곳이 수년전 모 방송국 드라마 촬영지로 최근 유명해진 그곳이구나. 역사에 보면 서울 광화문에서 빗장을 열고 동쪽을 바라 봤을 때 관동지방(關東地方)의 가장 정동(正東)쪽에 있다하여 이름 붙여졌다지. 한편으로 동해의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곳 중 가장 동쪽이어서 정동이라 했다지. 조그만 탄광촌 바닷가 마을이 이렇듯 변하여 아름다운 관광지로 바뀔 줄이야. 동해안 일출이 멋들어지다는 이곳은 흡사 내 고향 바다와 같다. 잠시 정차한 간이역사 차창 밖으로 바라다본 우측으로는 끝없는 동해가 펼쳐져 있고 좌측으로는 산들이 켜켜이 쌓여져 있다. 바다와 산맥이 연이어 서로를 흠모해 달리는 이곳의 풍광이 긴 여정으로 조름 겨운 내 눈가에 낯설지 않다. 같은 자리에서 일출과 일몰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땅끝 마을 전망대가 있는 내 고향바다와는 달리 국토를 돌아 닿은 이곳에서는 일몰을 볼 수 없으리. ‘해 뜨는 동해’라는 말은 있지만 ‘해 지는 동해’라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다. 그래, 잘 왔어. 이 도시에서는 해 뜨는 일만 있으리. 흰 눈발이 날리는 여명의 바다위로 푸른 파도가 용솟음치며 넘실거리고 있었다.
앞차의 브레이크 붉은 등이 한번 깜박이더니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다리를 건너 시내로 진입하려는 차들이 한꺼번에 흰 거품을 머플러 배기구로 쏟아낸다.
서 약사님은 아침 일찍 나와 있을게다. 전산요원인 미스 김과 약품진열과 청소를 맡아주는 미스 리도 어김없이 출근하여 나를 맞아 줄 것이다. 다리를 건너자 여고생들이 목도리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교문을 향한다.
여고 시절,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광주에 있는 대학을 선택했고 생물과 화학에 남달리 성적이 좋았던 나는 흰 가운을 입고 아침햇살을 맞이하는 약국 안에서 밝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렸다. 대학시절, 황 교수님의 약리학 강의 시간이 몹시 그립다. 캠퍼스에 수양버들이 늘어지는 5월 어느 날, 강의를 하시다 마시고 물끄러미 3층 아래를 내려다보시던 교수님의 말씀이 오늘 아침 사무치게 그립다. 때로 잊을 수 없다는 말과 그립다는 말은 이음동의어로 내게 다가온다.
“ 여러분, 주위를 한번 보세요. 초록이 어우러져 있지요. 군청색 나뭇잎과 이제 막 피어나는 아기 손 같은 연초록 나뭇잎과 감청색 짙은 색의 나뭇잎들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지요. 여러분들은 앞으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리라 믿지요. 훌륭한 약의 전문가가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갈 때 오늘 우리가 바라본 저 초록의 숲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초록을 뽐내며 아름다운 숲을 이루어가길 바라지요. 그러면 아마 아름다운 사회가 되리라 믿지요.”
여학교를 지나 좌회전 신호를 기다린다. 시내에 진입하여서 그런지 출근길 차량의 꼬리가 줄줄이 늘어져 있다.
“이 세상의 명약을 아는 사람?” 황 교수님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아무도 이 엉뚱한 약리학 교수님의 질문에 선뜻 손을 들지 못한다. 강의실 좌우를 둘러보시던 교수님은 이야기 한마디 한 후에 강의를 진행 하자고 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아픈 약리기전이니 약물이름들이 잠시 우리 곁을 벗어나는 순간이라 과 아이들 모두들 좋아라한다. 뭔가 재미있는 얘기인가 보다하고는 잔뜩 기대를 한다.
“실내 장식이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리가 좋은 곳도 아닌데 유난히 장사가 잘되는 가게가 있었지요. 손님이 늘 들끓어 장사를 새로 시작해보려는 사람들은 궁금해 했지요. 도대체 그 비결이 뭘까 하고 궁금해서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요.
가게에 들어서서 이리 저리 살펴보던 사람들은 어느 한 곳에 멈춰서는 고개를 끄덕거렸지요. 가게 사장의 책상위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지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잘못 보낸 날은 웃지 않은 날이다.-
보이는 것은 순간이지만 영원히 기억나는 법이지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만나게 될 고객과 환자와 그 가족들의 힘겨운 삶에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해 휴식을 주고, 얼어있는 가슴과 아픈 몸을 순식간에 녹여줄 수 있는 명약이 모두 되길 빌어 보지요. 따뜻한 말과 함께 더욱 효과를 발휘하는 그 명약이 그 누군가를 향해 던지는 맑고 부드러운 웃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요.”
그랬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나? 대학문을 나선지 이제 3년째 접어드는 나는 그렇게 내 위치에서 초록의 숲을 이루어가고 있었었나? 명약인 웃음을 잃지 않고 약국을 지켜 나가고 있었던가? 그리운 고향 마을, 땅 끝에 ‘물빛 약국’을 개업하고 1년 정도는 그랬었던 것 같다. 늙으신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그 모습이 그저 대견스럽기만 했다. 한참이나 시끄럽던 일들이 정리되고 의료제도가 바뀌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었던 것 같다. 아침이 오면 쪽빛 물결이 쪽빛 향기로 창틈을 타고 넘실거렸고 관광객을 태우고 보길도 뱃길로 떠나는 여객선의 쾌청한 고동소리가 한낮의 졸음을 깨워 주었다. 약국을 찾아오시는 동네 어르신들께 항상 밝은 웃음으로 맞이하여 맏며느리감이라고 칭찬을 들었고, 약에 관한 설명을 어찌나 찬찬히 잘 해드렸던지 노인정을 다녀오시는 어머니는 흐뭇해 하셨다. 낯익은 동네 이웃들도 그동안 동네에 의원 하나밖에 없었던 터라 자잘한 약을 구입하기 힘들었는데 해남읍내까지 안 나가도 된다고 하시며 고향에 돌아와 약국을 열어준 내게 고마워했다. 그럴수록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마음 다지며 인사에서부터 세세한 약물사용법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나날이었다. 하물며 동네 아낙들이 부끄러워하여 아무에게나 말 못하는 밤일에 이르기까지 여약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실한 상담자가 되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료방식이 결정되었다. 진료와 투약행위를 분업하는 의료 대개혁이 일어났던 것이다. 수년간 논의 끝에 합의에 이른 이른바 ‘ 의약분업 ’이 이루어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약협업이 본래 취지였다. 환자에게 투약하기에 앞서 의사의 정확한 진료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또한 의사가 처방한 약물의 용량과 약물선택이 적정한지, 오류가 없는지 그리고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약물은 없는지, 용법은 적정한지, 약사의 처방감사에 따른 투약의 적정화가 이루어져야함도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의사와 약사의 절대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환자중심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된 것이었다. 당분간 환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예전보다 불편해졌다. 소위 일반의약품이라고 정부가 분류해 놓은 약을 뺀 전문의약품이라고 지정된 약 만큼은 1차적으로 진료기관을 방문해야 했고 2차적으로 약을 타기 위해 약국을 방문해야 했다. 적어도 의약분업 예외지역이라고 지정된 곳이 아닌 곳에서는. 땅끝 마을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약국의 근무패턴도 바뀌게 되었다. 의원의 진료가 시작되는 시각에서부터 진료가 끝나는 시각까지 조제업무와 복약지도 업무에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게 되었고 ‘물빛 약국’역시 최적의 조제실 시설을 갖추어야만 했고 처방조제약 구입에도 신경을 써야만 했다.
‘물빛 약국’이 약국 문을 처음열기 2년 전부터 이 곳 땅끝 마을에는 참으로 귀한 분이 오셔서 의원을 열고 있었다. 서울에서 오셨다는 김 내과 선생님은 의료혜택 한 번 받으려면 읍내로 나가야만 하는 이곳 주민들에게는 더 없이 귀한 분 이셨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서울서 돈도 많이 버신 분인데 공기 좋은 곳을 찾다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 내려오시게 되었다 했다. ‘물빛 약국’을 개업하던 날 선생님도 오셔서 함께 축하해 주셨다. 50을 이제 조금 넘기신 듯 보이는 김 선생님은 사모님과 함께 인생의 후반부를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 하셨다.
그렇게 바쁜 하루하루가 지나던 어느 날, ‘물빛 약국’과 김 내과의원 사이에 서울에서 내려 왔다는 30대 후반의 이 약사라는 분이 약국을 개업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확인된 바 없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김 내과 선생님과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동문이라고 했다. 어찌된 일인가? 나도 모르게 약국이 또 생길 줄이야. 지난달 있었던 일 때문일까?
지난달 중순쯤 K제약회사 영업담당 직원이 약국을 다녀간 후 김 선생님과의 관계가 이상해지더니 그렇게 되었나? 그 직원이 말했었지. 처방하실 조제약이 이러이러하니 갖추어 놓으시라고. 일방적 통보였다. 지지난 날에도 다른 제약회사 영업담당 직원이 그런 말을 전하고 가더니 또 다시? 미처 다 쓰지 못한 조제실의 전문약이라 할지라도 의사의 처방에 의하지 않고는 함부로 투약될 수 없게끔 되어 있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실 터인데 어쩌자고 이러는 것일까? 더구나 이곳은 땅끝 마을이라 김 선생님과 ‘물빛 약국’사이의 의사교환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건만...... 환자와 동네주민들은 알 바가 아니었지만 조제실의 전문약병에 뽀얗게 먼지가 쌓여가기 시작하자 김 선생님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 진료에 방해될까 생각되어 진료가 거의 끝나는 시각을 맞춰 전화를 드렸던 기억이 어제 같다. 김 내과 선생님은 단호히 말씀하셨다.
“아, 네 약사님. 알겠습니다만 이 약물이 더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고 하니 불편하시지만 그렇게 해주시지요.”
그리고 그만 이었다. 최근 임상보고와 경험상 더 좋은 효과가 기대 되어서 새로운 처방약을 쓰는 것이니 그리 준비하시라는 말씀뿐이었다. 새로 발매 되어 나오는 약물도 ‘경험상’이라고 말씀하셨다. 드디어 나는 계속해서 드나드는 제약회사 영업직원들의 조제약 주문 요구에 주문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같은 성분의 약들이 아직도 조제실내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매달 바뀌는 조제약 재고를 바라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무슨 뾰족한 대책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해결 할 그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모든 것이 변해갔다. 동네 어르신들이 약국을 찾아 오셨지만 처방전에는 ‘대체조제 불가’라는 고무인이 찍혀 있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제약회사 영업직원들과 김 내과 식구들이 나 모르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만 같더니....... 약국에 오시던 동네 이웃들과 어르신들은 모두들 의아해 하셨다. 약국에 약이 없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셨다. 죄송하다는 말씀에 동네 어르신들은 미안해 하시면서도 어쩔 수 없어 하시며 새로 생긴 이 약사님 약국으로 발길을 돌리셨다. 그 후로 재정적 부담을 감수하고 조제약을 구비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번 돌아간 발걸음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의원과 떨어진 거리상으로도 그렇고 약이 없어 두 번 세 번 방문하기 보다는 이 약사님 약국에서 한 번에 투약받기가 편하시니 동네 분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해 내내 속병을 앓았던 내가 아니었던가? 약국은 경영적 측면에서 최악을 달렸고 월말이 되면 제약회사 결제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였다. 후회스러웠다.
황 교수님은 나를 교수님 실험반원이라고 특별히 아껴주셨다. 약리학 실험실에서 뵐 때마다 대학원에 진학할 것을 권유하셨던 분이셨다. 어머니가 문제였다. 나를 위해 고생해 오신 어머니가 내가 대학만 졸업하기를 학수고대하시는데 대학원에 머무르는 것은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더구나 어머니는 고향 바닷가에서 지금도 늙으신 몸을 이끌고 동네 허드렛일을 하러 다니시지 않는가? 그 삯으로 두 모녀가 이만큼 생활하였고 광주까지 유학시키신 일을 생각하면 그리할 수 없었다. 그동안 모아 놓으신 돈이 약간 있다고 하시며 고향땅에서 작은 점포 하나를 얻어 약국 개업하기를 소원하시는 어머니를 뿌리칠 용기가 내겐 없었다. 용기보다는 늙어 가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아가는 일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일이고 일종의 의무와도 같았다. 그해가 다 지날 무렵까지 어머니처럼 나는 밤바다에 나와 앉아 밤하늘 별빛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어머니처럼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으나 ‘아버지!’ 하고 얼굴도 모르는 그 분을 속으로 부르곤 했다. 그러면 밤하늘을 쳐다보는 내 얼굴위로 별빛이 쏟아져 내려와 앉았고 ‘힘 내거라’하는 듯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내 온몸의 귓바퀴를 틀어 아버지가 나가셨다는 바다로 향하게 하였다.
이제 좌회전을 하였으니 오거리를 지나 우회전을 하면 약국에 다다를 것이다. 오늘하루도 만만치 않겠지. 오늘은 더구나 월요일이니 휴일동안 병, 의원을 이용치 못했던 이 도시의 시민들이 아침부터 밀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모부가 운영하는 의원은 이 도시에서 근 30여 년 같은 곳에 있었고 많은 분들에게 알려진 내과의원이 아니던가? 환자들이 이모부 내과로 몰리는 날이면 약국도 정신없이 바삐 돌아갔다. 처방전을 접수하는 손길이 바빠지고 전산을 담당하는 미스 김뿐만 아니라 약품진열과 청소를 담당하는 미스 리도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였다. 서 약사님은 나보다 두 살이나 위이신 분이셨지만 ‘우리네 약국’개업 초기부터 이모부가 채용하신 이 지방출신의 여 약사님이셨다. 약국 개업초기에 함께 출발하신 덕분에 손발이 척척 맞게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내시는 서 약사님도 오늘만큼은 숨을 가쁘게 쉬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조제실의 로터리 약포장기는 하루 종일 찍찍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갈 것이다.
그랬다. ‘물빛 약국’을 정리하고 어머니의 유일한 피붙이인 이모가 사시는 이 도시에 온지도 이제 두 해가 저물어 간다. 어머니는 그 해 밤마다 내가 바닷가에 나가 앉아 있는 일이 잦아지자 그동안 소식도 없던 유일한 피붙이에게 항상 안쓰러운 딸자식의 한숨소리를 끝내 전하시고야 말았다. 때마침 이모부가 운영하는 의원 바로 옆과 길 건너편에는 약국이 하나씩 있었는데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이모부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 조카인 내게 연락을 취해 이 도시로 오지 않겠느냐고 말씀하려던 참 이었다 했다. 어머니는 자신은 괜찮으니 ‘물빛 약국’을 정리하고 이모부가 계신 곳으로 떠나라 하셨다. 이모부가 다 알아서 약국자리를 마련해 줄 거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말씀 중에 짙게 배어 나오는 어머니의 한숨소리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주름진 이마와 쪽진 흰 머리카락이 내 가슴을 아릿하게 하였다. 그러나 어쩌랴. 어머니의 한숨소리를 잠재울 방법이 내게는 없었다. ‘물빛 약국’을 정리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오히려 점포의 보증금조차 까먹을 판이었다. 조제실의 낱알로 남겨진 전문의약품은 생각처럼 쉽게 반품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경험부족도 한몫 하고 있었다. 신출내기 여약사의 말은 힘 있는 의약품 도매상과 제약사들을 쉽게 움직이지 못했고 제도는 미처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낱알 반품이 요원한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자니 속은 타들어가고 약국은 어느새 물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리해야만 했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해도 동네 이웃들이 이따금 찾아오거나 관광을 위해 땅끝 마을까지 찾아온 고객을 간혹 맞이하면서 휑한 약국을 지켜나가는 것은 너무나 버거운 일이 되어 버렸다.
‘우리네 약국’이 눈앞에 들어온다. 약국식구들 모두가 좋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었다. 약국 옆으로 기존의 ‘건강한 약국’입간판이 연해 붙어 있다. 내가 처음으로 이모부 의원에 오던 날, 이모부는 내게 약국안내를 해 주었는데 이모부 내과의원 바로 옆이었다. 약 4~5m 간격 옆으로 ‘건강한 약국’이 있었고 길 바로 건너편에 ‘빛나는 약국’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1개의 준 종합병원이 있었고 여러 진료 과목의 의원들이 밀집해 있는 의원 골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원래 이모부 내과 건물이 지금의 ‘우리네 약국’자리였고 잘 모르지만 바로 옆 건물로 어찌어찌하여 이모부가 옮겨 가면서 ‘건강한 약국’과 이모부 내과 사이에 ‘우리네 약국’이 들어선 형국이 되어 버렸다. 다시 말하자면 대로변 인도를 따라 ‘건강한 약국’, ‘우리네 약국’, 이모부 내과가 연해 있었다. 약국을 개설하고 인사차 ‘건강한 약국’의 최 약사님을 찾아뵈었다. 40대 중반의 최 약사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갑자기 나타난 약사의 갑작스런 약국개업이 못내 마땅치 않으셨으리라. 그것도 바로 자신이 경영하는 약국 바로 옆에 비집고 들어온 꼴 아니던가. 고향이 어디며 어디서 약국을 했던 적이 있냐고 묻기라도 하였으면 서먹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냥 같은 여 약사로서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 날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옆에서 약국을 하게 되었는데 만날 기회라니...... 그 날 이후 최 약사님 약국과 거리는 지척인데도 얼굴을 마주하기가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약국 뒷마당에 차를 대고 뒷문을 통해 약국 안으로 들어선다. 예상한대로 모두들 아침부터 준비에 바쁘다. 서 약사님께 인사를 하고 미스 김과 미스 리에게도 손을 흔든다. 서 약사님은 어제 부군과 또 다투시었는지 얼굴이 밝지 못하시다. 약대를 졸업 하자마자 결혼 하였다는 서 약사님은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은 듯하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이 속을 썩이고 있었다. 남의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사람은 좋은데 여러 가지 충돌이 있다고 언젠가 같이 점심식사 하면서 말씀하신 바가 있다. 사람 좋기로는 서 약사님이 그만일 터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약국에 근무하면서 언성을 높이신 일도 없고 아무리 바빠도 짜증 부리시는 일도 없으신 분이다.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가끔씩 짜증이 났다. 고객과 환자 중에는 정말 엉뚱한 주장을 하는 분이 있었다. 바쁜 월요일, 처방전을 내밀고는 조제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휴대폰을 걸며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 아이들과 함께와 판매대위 진열된 약들을 다 흩어 놓아도 야단 한번 치지 않는 젊은 엄마들, 이 약국에만 이 약이 있어 동네약국으로 갔다가 되돌아 왔으니 차비 내놓으라고 고함치시는 아저씨, 의사의 처방내역이 바뀌었는데도 지난번과 같은 약이 아니라며 약사가 약을 잘못 주었다고 호통 치시는 할머니 등등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거꾸로 내가 실수를 하여 고객과 환자에게 야단을 맞는 날이면 얼굴 표정이 밝을 수가 없었다. 너무 바쁜 탓에 저지른 잘못도 복약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나로서는 실수라 하지만 고객과 환자 입장에서 보면 용납되지 않을 상황이었다.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처방전에 있는 조제약을 잘 챙겨서 동명이인이 동시에 약국에 들어온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이름만 불러 전해 주었다 야단을 맞기도 하여 백배사죄한 일은 지금도 간담이 서늘하다. 다행히 그 환자분이 전에 드시던 처방약과 너무도 달라 다시 약국을 방문했기 망정이지 어찌할 뻔 했을까.
대학시절, 황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와 약을 담당하는 약사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어떠한 실수나 변명도 사람의 목숨과 질병의 회복에 관련되어질 수 있으므로 긴장을 풀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고. 바쁘다는 사실로 빚어진 실수나 변명은 이유가 되지 못했다. 이 길도 내가 택한 길이고 이모부 내과 옆으로 약국개설에 동의한 사람도 내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나는 지금 제대로 된 약국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제 빛을 내며 초록숲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인가? 차츰차츰 웃음을 잃어 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우리 약국을 드나드는 분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물빛 약국’에서 하였듯 자상스럽게 설명하는 일은 드물고 사무적으로 복약지도를 하고 있는,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옆 이모부 내과에서 아침부터 처방전을 들고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 약국은 정말 이름처럼 환자를 위하는 ‘우리네 약국’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그대들 약국’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모부께 인원 보충이 필요하다고 말씀 드렸을 때 내가 ‘우리네 약국’에 오기 전 2년여 동안 옆에 있던 ‘건강한 약국’의 예를 들며 최 약사는 직원 한명과 다 처리했다고 말씀을 잘라 버리셨다.
아침부터 환자들이 처방전을 들고 밀려오기 시작한다. 이모부는 진료환자가 많아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의사를 한분 더 고용하셨다. ‘우리네 약국’이 개설된 후부터 바로 옆 ‘건강한 약국’은 해남에서 ‘물빛 약국’이 빛을 바래 갔듯 ‘건강치 못한 약국’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내가 이곳에 와 약국을 개설하기 전부터 처방전 내용에 대해 바른 말을 잘하는 최 약사인지라 이모부와 좋은 관계에서 좋지 않은 관계로 되었다고 모 제약사 직원이 귀띔해 준 일이 있다. 하긴 이모부는 이곳 환자들에게 꾸준히 원내 주사를 주고 있고 처방전에는 그 내역을 기재하지 않아 복약지도를 하는 약사의 입장에 있는 나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가끔 이모부 내과에 다녀온 환자들이 자신이 맞은 주사에 대해 내게 물어올 때 난감할 때가 어디 한 두 번이던가? 그렇다고 이모부께 말씀 드려보았으나 환자가 감기 기운이 있어 놓은 진통해열제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감기기운이 있어 내과를 찾아 이모부에게 다녀온 환자는 예외 없이 주사제가 원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처방전 어디에도 체크 표시만 되어 있지 그 내역을 찾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더 더구나 ‘우리네 약국’에서 쓰는 기침을 멈추게 하는 조제약 중에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 것들이 있었는데 이모부 내과의 처방전에 상시 처방되고 있는 것이 늘 마음 한구석에 찜찜하였다. 환자들이야 기침이 잘 떨어지니까 용하다 하겠지만 약을 아는 나로서는 행여 의존성이 일어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고 그래서 그런지 이모부 의원 아니면 약이 듣지 않는다고 말하는 환자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하루 조제가 끝나면 마약류 관리대장을 정리하는 것도 신경 쓰이는 일이 되어 버렸다. 향정신의약품의 재고량과 소모량이 늘 일치해야만 했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점검은 필수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어디 그게 문제인가? 늘 그러한 처방약을 먹다보면 향정신성의약품이 가지고 있는 약물 의존성이 환자들에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내가 의사의 처방전에 오류가 없는 한 무력하게도 처방전대로 조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크나 큰 문제였다. 이모부는 내가 어쩌다 그런 얘기를 하면 환자 떨어진다고 하시며 그냥 피식 웃어 버리고 만다. 처 조카딸을 세상물정 모르는 풋내기 약사라고 치부 하시는 모양이다. 그래서인가? 유난히 이모부 내과를 찾는 단골환자가 꽤 많았다.
어제 밤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지난번 약국 여름휴가 때 땅끝 마을을 다녀온 후 세 번째다. 자주 전화 드리면 좋겠으나 눈물이 날것만 같아 오히려 어머니로 부터 전화 받는 일이 잦아졌다. 얼떨결에 받는 전화나 일하다 받는 전화는 눈물이 흐르지 않는 법이다. 어머니는 여전히 자신걱정은 하지 말라시며 잘 지내는지, 밥은 잘 먹는지, 몸은 별 탈 없는지 물어 오셨다. 전화선 저 끝에서 어머니의 축축한 목소리가 묻어 나온다. 지난번 내가 다녀온 후로 마을 사람들이 내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씀 하신다. 시집갈 때가 되어서 그러리라 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씀 드렸더니 그게 아니라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내가 햇수로 이 도시에 온지도 벌써 2년째 접어든다. 내가 해남 땅끝 마을, 그림 같은 고향 마을에서 ‘물빛 약국’을 경영 하던 때에 동네 주민들이 그렇게 편했었는데 지금은 이 약사님 약국에 가서는 그런 기분을 못 느끼신다고들 말씀 하신단다. 상세하고 자세한 설명은 놔두고라도 인사를 해도 무뚝뚝하기만 하고 아주 사무적으로 복약지도를 받는다고들 하신다. 얼굴도 웃는 일이 없어 거북하기만 하다며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들 저마다 한마디씩 하신단다. 어머니, 그게 요즈음 제 모습이에요. 수화기 저 끝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다. 네가 돌아오면 참으로 좋을 터인데..... 약국 경영악화로 보낸 딸이 그래도 못내 아쉬운 듯 말을 끊으시며 ‘나도 이제 늙나 보다’ 하시고 수화기를 놓으신다.
약국은 여전히 바쁘다. 숨 고를 틈 없이 오전이 지나간 듯하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독감에 걸린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리라.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이모부 의원에 자사 처방약을 소개하러 들렀던 모 제약사 직원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약국으로 들어선다. 바쁜 월요일에 온 것으로 봐서 이모부가 처방약을 또 새로 바꾸셨나 보다. 전에도 그랬지만 요즈음 들어 제약사 직원들이 더 자주 약국에 들러 준비할 처방약을 일러준다. 이곳에서는 월말이 되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법이 없다. 이모부가 다 알아서 하신다고 하시더니 그렇게 하시는 것 같다. 주변 약국들로 퍼져 나갔던 처방전도 되돌아오는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 주변약국도 바쁘냐고 물었다. 웬걸요. 조용합니다. 제약사 직원은 알려 주어야할 내용만 알려주고 바쁘신데 물러가노라고 한마디 하고는 사라진다. 의원의 점심시간인 오후 1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고향바다의 썰물이 밀려가듯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빠져 나가고 약국 안에 우리만이 남는다. 매식을 하고부터 얼굴이 거칠어지는 것만 같다. 지난번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밑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입맛이 없을 때 먹어 보라며 보내주신 밑반찬에는 오랫동안 음식을 만들어 오신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있다. 배달되어온 매식에 허기진 배를 채울 만큼의 푸짐한 반찬이 있지만 어디 고향 맛 같으랴.
점심을 물리고 남은 약간의 휴식시간에 녹차를 마신다. 미스 리가 고객과 환자를 위해 약국 한편에 놓여 있는 대형 TV를 켠다. 이 시각이면 유선방송뿐이라 볼만한 프로그램도 없지만 그래도 잠시 약국 일을 잊는 유일한 시간이다. 미스 리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24시간 뉴스채널에서 화면을 정지 시킨다. 나는 한번도 TV채널 선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는다. 서 약사님도 마찬가지로 간섭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미스 김과 미스 리가 보고 싶어 하면 그저 같이 볼 뿐이다. 매일 매일 약국에서 지시만 받는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될 수 없을지라도 서 약사님과 나는 그들이 선택한 채널을 응시할 뿐이다. 때때로 그들만이 볼 때도 있고 남은 시간에 서 약사님과 나는 잠깐이라도 조제실 뒤 간이 의자에 몸을 기대는 때도 있다. 약국 업무가 바쁜 날은 피로가 겹쳐와 중식시간의 휴식은 잠깐이지만 꿀맛 같았다.
그런데 뉴스가 이상 했다. 그림뉴스라는 아나운서의 설명에 시선을 고정 시켰다. 인터넷에 올려진 그림뉴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처음 나오는 장면에 벌거벗은 두 남녀가 정육면체 앞에 나란히 있다. 두 남녀가 서 있는 정육면체에는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그려져 있고 바로 맞은편으로 나오는 문이 그려져 있다. 첫 번째 정육면체 앞에 선 두 남녀는 까만 색칠을 한 정육면체 안으로 들어간다. 맞은편 문으로 나온 두 남녀의 몸이 까맣게 칠해져 있다. 마치 흑인처럼 몸이 검게 변해 있다. 두 번째 정육면체는 온통 파란 물감으로 칠해져 있다. 첫 번째 정육면체에서 나온 까만 두 남녀가 이번엔 두 번째 정육면체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몸 전체가 파란 색이다. 고향 바닷물 색처럼 푸르고 푸르다. 세 번째 정육면체에는 정전이라고 외부에 글씨가 씌어져 있다. 파란 두 남녀가 들어간 후 두 사람은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를 사이에 두고 발그레한 색깔로 얼굴을 마주한 채 나타난다. 두 사람이 네 번째 정육면체로 들어가는 다음 장면에서는 빨간 정육면체가 나타난다. 두 사람이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많이도 불어나서 정육면체를 빠져 나온다. 아마 자손을 낳았나 보다. 잠시 후 수년 전 월드컵 때 열광하던 사람들이 붉은 악마 옷을 입고 응원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정육면체가 나타난다. 불어난 사람들이 무리지어 그 속으로 들어가고 나온다. 나오는 사람들마다 태극기를 높이 치켜들며 붉은 악마 옷으로 갈아입고 열광 한다. 마지막 정육면체가 나타난다. 국회의사당 문양이 선명히 찍혀져 있는 정육면체다. 많은 무리들이 정육면체 속으로 태극기를 들고 들어간다. 정육면체 밖으로 두 사람이 주먹질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클로즈-업 되어 나타난다. 뉴스 제목은 매직 큐브(magic cube)였다고 아나운서가 전하면서 뉴스를 마친다.
나는 그림뉴스가 방영되는 그 순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한다. 뭔가 뒤통수를 치는 것만 같다. 나는 서둘러 외투를 걸쳐 입는다. 서 약사님이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주차장 까지 따라 나온다. 의아해 하는 서 약사님께 약국을 맡으시라고 하며 이모부께 모든 말씀 드려 놓겠다고 한다. 그리고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하면서 나중에 자질구레한 서류처리나 일들은 연락을 해 주겠노라 말한다. 미스 김도 미스 리도 뒤따라 나오며 의아해 하는 서 약사님을 쳐다 보다 나를 향해 다가선다. 시동을 걸며 운전석 유리문을 열고 이야기 한다. 서 약사님 모시고 나를 대하듯 해 줘. 정 약사님! 정 약사님!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오늘 아침 출근길을 되돌아 다리를 향한다.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다가온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정육면체로 들어갔다 나오고 있었던가. 황 교수님의 목소리가 동해바다 저 멀리서 들려온다. 푸른 물결 닮은 황 교수님의 목소리가 쏴-아 하고 귓전에 밀려온다. 어머니가 갈두리 바닷가에서 두 팔을 벌리신 채 나를 맞아 주신다. ‘물빛 약국’의 문이 열리면서 온 동네 어르신들과 낯익은 동네 주민들이 햇살같이 환한 얼굴로 들어오신다. 초록이 ‘물빛 약국’ 뒤 켠 산자락에 형형한 나뭇잎으로 나부낀다.
흰 눈이 다시금 날리는 아름다운 겨울 산하를 기차는 달린다.
태백(太白)준령이 하얗게 끝없는 눈밭이다.
- 끝 -
동영상-海鄕
물빛약국 정약사
그 후 |
글쓴이: 김학철(1959~ )
비바람이 빗질하듯 포구에 가 닿았다.
멀다. 남도 땅끝마을까지는.
팽나무 한 그루
노거수老巨樹로
서 있다.
한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뱃머리에 와 닿는다.
물결이 지지 않는다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해남 앞바다의
물빛은 여전히
졸지 않고
오래된 팽나무처럼
반짝이고 있다.
눈빛에 아롱지는
보석을 간직한 채
뱃머리 고동소리도
품은 채
오랫동안 기다리던
여인이
주섬주섬 늦가을
햇살을 챙긴다.
파드득거리는
윤슬을 거두어 올린
손바닥 안엔
눈빛이
형형炯炯하던 물빛약국
정약사가 있다.
보길도 뱃길 따라
닿았던 곳,
예송리 해변의 몽돌
구르던 소리에
까무룩하던 기억이
새롭다.
이 얼마만인가.
땅끝에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땅끝으로
돌아갔다.
물빛따라 다니는
머풀러가 팽나무
아래서
하늘로 솟구친다.
하얀 눈밭을 향해
그해 겨울
떠나가던 그 머플러다.
낯설다.
이상하리만치.
늦가을이 아닌
수 십년 전
초봄에 왔었던
이곳.
계절은 사람을
홀리게 하는가.
그 해 찬바람 대신
불어오는 이 바람.
바람결엔
여전히 묻어온다.
물빛이 청록색이었다.
바람결에 물든
이 색깔.
머풀러도
청록색 물빛이었다.
남도는 온통
청록색으로 물들고
그 뒤로
하얀 눈밭이
삼삼하게 펼쳐져 있다.
그해 그 겨울처럼.
세월은 눈발처럼
희끗희끗
나부끼다가
어느새 수 십년이
흘렀다.
행여
알아볼 수나 있을까.
물비늘이 솟구쳐
올랐다.
항구에 정박하려는
뱃머리에
그녀의 머풀러가
잠시 펄럭였다.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두방망이 치기 시작했다.
소식도 없이 왔다가
소식도 없이 떠났건만
또 누구를 기다린단
말인가.
내내 고요히 서 있던
팽나무가
서서히 바닷바람에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다.
그 해 겨울.
되짚어 온 고향땅,
해남 쪽빛 바다가
여전히 그녀의 품에 안기어 왔을 것이다.
기차는 달리고 달려
온 천지가 눈밭인
그곳을 달려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백두대간만을 남긴 채
고향에 이르렀을 것이다.
얼마나 멀었던가.
그녀는 눈을 감는다.
흰 파도가 그녀의 다리 위로
감기어 올라
하얀 스타킹을
돌돌 말아 올렸었지.
[정동진]
손에 잡힐 것만 같던 바닷가 간이역.
잠시 멈춘 기차는 몇몇 겨울바다 겨울사람들을 태우고
서서히 다시 움직이며
둥그런 백사장처럼
완만한 곡선의
레일 위를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지.
이제는 잊으리라
이곳을 잊으리라
어머니가 계신
고향땅
땅끝마을이
풍선처럼 커지더니
이내 하늘로 차올랐다.
그 해 그 날
눈은 푹푹 내리고
푸른 동해바다는 결코 눈에 젖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눈가에
잠시 습기가 돌았을 뿐.
이내 눈감으면
파도가 쉼없이 밀려오고 밀려갔을 뿐.
흔적조차 없이 포말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산다는 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거.
그녀는 그 날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남해에서
동해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동안
동해에서 결코
남해를 그리워하지
않은 것처럼.
땅끝마을
그 어느 곳에서도
그녀를 본 사람은
없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닌가.
보이지 않는 것.
못 보는 것.
잡힐 듯
잡힐 듯
어른거리고 있는데도
모르는 것.
사람들은 까맣게
잊었나?
물빛약국
정약사의 모습은
분명 땅끝마을에
있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단 한 사람.
그만이 이제
땅끝에 있는
그녀의 자취를 좇아
온 것이다.
동해와 남해는
무슨 끈으로
연결되었기에
그만이 알아챈 것일까.
물빛머풀러가
다시 하늘로 솟구치고
알알이 눈부신
청록색이
꽃비처럼 눈부시게
내리고 있다.
감쪽같다.
분명 보였었는데
가뭇없이 사라졌다.
청록색 머풀러도
늦가을 햇살을 줍던
여인도 사라졌다.
커다란 팽나무만
눈앞에 있다.
마치 바다가 그리워
바다를 한참 보다
돌아서 오는 길에
산등성이에 돌고 있던 풍력발전기
날개처럼.
한 발 한 발
다가갈수록
풍차는 사라지고
말더니
이내 자취를 감춘
그날처럼.
이 무슨 조화인가.
그리운 보길도 예송리 해변을
먼저 다녀와
다시 해남으로
돌아왔건만
뱃머리에서 사라진
이 광경
눈을 비비고
눈을 감았다 다시 떠도
팽나무아래엔
아무도 없다.
나는 그제야
뭔가 홀린 듯
땅끝마을을
뒤지기 시작했다.
수 십년 전처럼
그 터를 찾아보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어디서 나타났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었던 물빛머풀러도
하늘로 솟아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물빛 꽃비가 그쳐가고
있는
항구에서
바람이 웅웅거리고
있다.
막막하다.
막상 배에서 내리니.
약속한 장소.
그 팽나무 아래서
한참을 서 있는다.
이 막막함도
때로는 위로가 되는가.
낯선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이
힘이 될 때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누구나 그렇 듯
누구라도 그렇 듯
찾아가야 할 곳이
아직 남아 있기에
하루가 길다.
그곳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찾아서
만나야만 한다는.
그 애틋한 한 사람만
있다면 더욱 그렇다.
누워있는 것이
어디 바다뿐이랴
누워있는 것이
어찌 바람뿐이랴
누워있는 것이
어떻게 사람뿐이랴
절절하게
누워있는 모든 것들은
결을 탄다
바다도
바람도
사람도
깃들이며
숨결을 탄다
온통
땅끝마을이
누워있다
잠결에도
잔물결에도
바람결에도
흔들리며 누워있다
어딘가에
누워있을 이여!
밤새 철퍼덕거리던
파도도 누워
홀로 팔베개를 한다.
내일이
오면
또다시 입맞춤하고
맞이할 햇살을
미리 당겨와
잠들 수는 없을까
홀로이
들어선 여관방이
서늘하다.
밤새 철퍼덕거리던
파도는 오래된 양철지붕 위로
장대비 빗줄기 뿌렸다
낡은 대문간 사이로
이르게 깬 졸음이 힘겹게 걸어와
허름한 여관방
눅눅한 방에 함께 누웠다
행여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시는 떠올리지도 않으리라
스물 여섯
물빛 스카프
정박碇泊한 고깃배에 휘감고
밤새
카랑카랑 불던
바닷바람
빈 술병 돌아나온다
어디 너하나 뿐이냐
목울대 너머
그대 뒷모습
울컥한다
낙서다.
벼름박에 희미한 글씨.
바깥에 때아닌
비가 내린다.
늦가을에 내리는 비는 서럽다.
누가 써 놓았을까.
머리 속이 복잡하다.
얼마나 오래전에
이 방에 묵었던 것일까.
항구와 가까운
이 허름한 여관방에.
스물여섯
물빛스카프라는
글씨에
눈이 꽂혔다.
스물여섯
스물여섯
스물여섯
그리고
물빛스카프
물빛스카프
물빛스카프
땅끝마을이
요동치고 있다.
장대비는
내리고
늦가을 햇살은
사라졌다.
대부분 그렇듯
우리를
감싸안은 우연은
눈빛 한 줄기였다.
그 해 겨울에도
그랬다.
눈빛 한 줄기에서
촉촉하게 비치는
눈동자.
물빛따라
찾아온 그 곳에서
무덤덤한 표정에
건조한 목소리까진
그렇다 치고
손가락까지 야윈게
두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단지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는 속내를
기어이 알아챈
그 날.
쓸쓸함이라고
씌어져 있진 않았지만
이내
서걱거리는 갈대처럼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내가 설핏
지나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물빛약국 정약사
그후 ||
글쓴이:
김학철(1959~ )
바다는 넓다.
세상 그 어디 보다도.
그녀는 멀리 있다.
세상 그 어느 끝에서.
항구를 적시고
가는 빗줄기는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항구를 지나간
그 흔적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알까.
한 자리를 서성거리고 있는
하루를.
그 하루에 그가
왼종일 기다리는데
그 하루에 그가
어둑서니가 되어가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랴.
그도 세상 사람들을
다 모르는데.
바람은 바람으로
끝나려는가.
다시 돌아와
그를 맞이해줄
그의 바람.
그녀의 그림자가
낯설다.
빗물에 지워지는
그녀의 흔적을
또다시
지우는 빗방울이
얄궂은 날이 되어 운다.
돌이켜보면
아쉬울 건 없다.
언제
우리가 간다고 알리며 갔고
온다고 전보 띄우고
온 적 있던가.
새벽도
어둠도
울음 없이 오지 않던가.
다만
느낌으로만 알 뿐,
발작국 소리로만
짐작할 뿐,
나타나고 사라짐 또한 그러하거늘
알아챌 바 없다.
더구나
어느 방향으로 길을 잡고 갔는지,
어느 자리에서
저릿저릿 걷고 있는지,
이도 저도 아닌
무지개를 타고 있는지.
물빛약국 정약사의
흔적은 알 바 없다.
그랬다.
그녀 자신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세상 앞날을 어찌
알겠냐고.
사람 앞날 대신
세상 앞날이라고 했다.
하루가 저물면 나도 저물고
하루가 누우면 그대도 눕는다.
저무는 남도바다
물결 자는 밤바다에
한낮 푸르른 해원
달려오던 해풍
가을 하늘 별빛 끌어와
내 베갯머리
물들이는 늦가을밤
하루가 저물면 나도 그대 생각
하루가 누우면 그대도 내 생각이다.
To be continued........
그 옛날
"물빛약국"
정약사의 고향,
땅끝마을엔
해일처럼
새벽부터
우수수 늦가을 찬바람이 밀려와
한옥 민박집
문풍지를 부르르 떨게 했다
형형하던 초록이
다 진 이 계절
바닷길은 고맙게도
다시 잔잔해졌고
보길도
그 먼 옛날
나홀로 여행하던 그 때
한참을 앉아있다
아쉬움에 돌아섰던
예송리 몽돌해변에
나를 데려다 주었다
좌르르~좌르르~
파도가 밀려왔다
기어이 나를 끌고
밀려가는 이 소리
변함없는 몽돌구르는 소리에
나는 한참을
내 속의 나를 어루만졌다
그 밤
"물빛약국" 정약사를
끝내 만나보지 못하고
땅끝마을을 떠나왔지만
그녀의 한숨과
눈물방울이
보길도 예송리 몽돌해변에서
여전히 파도 되어
구르고 있음을
나는 늦게나마 알아차렸다
참으로 긴 세월이 흘렀다
보길도 예송리 해변 몽돌 구르는 소리
보길도 예송리 해변 몽돌 구르는 소리 <동영상-海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