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당 안도섭론 - 살아 있는 한국의 대표적 민족시인, 우당 안도섭 ..........................................................
※월간<문학21> 2005년3월호, 월간<시사문단> 2005년3월호 동시 게재
== 살아 있는 한국의 대표적 민족시인, 우당 안도섭 ==
□ 한국 문학사의 큰 山, 참 文人 안도섭
우당(牛堂) 안도섭(安道燮) 선생에 대해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 문인이며 민족시인이라 표현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안도섭 선생을 평소 잘 아는 사람들은 흔히 그를 ‘서정을 바탕으로 역사와 시대에 항거한 문인’, ‘한용운, 김영랑, 이육사, 김광섭, 신석정, 윤동주 등과 같은 민족시인’, ‘자연의 생명력과 삶의 진실을 노래하는 서정시인’ 등으로 일컫기도 한다.
안도섭 선생에게는 20권이 넘는 저서가 있다. 1959년에 시집『地圖 속의 눈』을 낸 이래 서사시집『황토현의 횃불』(1969),『풀잎 序章』(1984),『하늘을 아는 사철나무』(1986),『어느 火刑日』(1987),『사랑을 말하라면』(1988),『일억의 눈동자와 사랑을 위한 백의 노래』(1989),『살아있는 기적』(1990),『내 얼굴 벌거벗은 혼』(1991),『나무나무와 분홍꽃 아카시아는』(1991),『아침의 꽃수레 타고』(1994),『지리산은 살아 있다』(1999),『돌에도 꽃이 핀다 했으니』(2004) 등의 시집을 연이어 상재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문학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에세이집으로 『한 잔의 찻잔에 별을 띄우고』(1986),『책과 어떻게 친구가 될까』(1993),『스푼 한 숟갈의 행복』(1993),『문장작법 101법칙』(1995) 등 4권, 소설집으로『청춘의 역설』(1981),『한씨一家의 사람들』(1983),『암수의 축제』(1985),『녹두Ⅰ·Ⅱ·Ⅲ』(1988),『방황의 끝』(1996),『세월이 가면』(1997),『김시습』(근간) 등 7권이나 출간하는 등 시 이외의 장르에도 대단한 관심을 쏟아 왔다.
안도섭 선생은 1960년 제6회 전라남도 문화상(문학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1994년에는 제5회 한글문학상 본상을, 그리고 탐미문학상 대상(1997), 허균문학상 대상(1999), 설송문학상 대상(1999) 등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일찍이 1957년 현대문학사 편집기자를 시작으로 전남매일신문 문화부장, 대한일보 기자, 매일경제신문 기자 등 주로 언론 출판계에 종사하여 왔고, 현재는 <월간 문학21> 발행인으로 있다.
□ 서정을 바탕으로 역사와 시대에 항거하다
안도섭 선생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기 위해 백수인 교수(현 조선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가『조대문화 50년 발자취 문학 12 <690호>』(1998.5.4)에서 밝힌 안도섭 선생에 대한 기록을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전남 보성 출신인 시인 안도섭은 1952년 우리 대학 문학과에 입학, 수학하였다. 그는 재학 중 당시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김현승과 서정주에게서 문학을 배웠다. 특히 김현승의 강의 시간이면 거의 예외 없이 습작시를 제출하여 강평을 받았고, 휴일이면 양림동 소재의 김현승 교수 자택을 방문하여 따로이 지도를 받기도 하였다. 그는 문학과 동기인 박홍원(시인, 현재 우리 대학 교수), 주길순(소설가, 현재 우리 대학 명예교수)과 함께 재학 시절부터 문학에 두각을 나타낸 사람 중 하나였다.
재학 시절부터 문학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안도섭이 문단에 나온 것은 1958년의 일이다. 그는 이 해에 ‘조선일보’와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시 ‘불모지’와 ‘해당화’가 각각 당선되어 화려하게 등단하였다. 등단 직후 ‘연가’(자유문학, 1958.4), ‘거울’(신태양, 1958.8), ‘조감도’(자유문학, 1958.10), ‘인생송가’ ‘너와 나와의 합창실’(현대문학, 1958.11), ‘지도 속의 눈’(조선일보, 1958), ‘우리 더욱 사랑을 위해’(사상계1958.12), ‘을지로입구 시론’(자유문학, 1959.5) 등을 계속 발표하여 50년대 후반 우리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1959년에 전봉건 등과 함께 사화집『신풍토』를 주재하였고, 이 해에 첫 시집『지도 속의 눈』(향문사)을 내놓았다. 이 시집은 3부로 나뉘어 총 35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그가 초기부터 꾸준히 견지해 온 시정신의 요체는 민족 분단의 문제,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한 시대와 현실 인식에 있다고 하겠다. 민족 분단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그의 시편들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초기 작품 ‘지도(地圖) 속의 눈’을 들 수 있다.
이 피비린 지도 우에, 여기
1958년의 눈이 오네
그럼 우리 이 밤을
신화를 엮어내듯
꽃다이 살자
내 귀여운 소녀의 고동우에
코카서스의 눈 언 폭포에
너와 나의 지역 슬픈
눈이 오네, 그 사랑을 말하듯
지금 황량한 겨레여
거리마다 숨거둔 형해와 남은 터에
쓰러져 우는 세기의
가슴에 분노처럼 이르는
그 역사함·지도함·설계함······
합창대의 내일 시간을 몰아
보꾸러미처럼 뒤집는 마음
그럼 이 밤을 다시
신화를 엮어내듯 꽃다이 살자
내 귀여운 소녀의 고동우에
징기스의 샛별타는 나루에
이 피비린 지도우에, 여기
1958년의 눈이 오네
-안도섭의‘지도(地圖) 속의 눈’전문
이처럼 그는 민족 분단의 슬픔을 ‘지도 속의 눈’으로 함축하고 있다. 즉 ‘지도’라는 추상적 평면 공간을 구상적 현실 공간으로 확장해 내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구조적 특징이다. 그가 파악한 현실은 ‘피비린 지도’, ‘황량한 겨레’, ‘거리마다 숨 거둔 형해’이다. 그러나 그는 분단 현실의 비참함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 밤을 신화를 엮어내듯 꽃 다이 살자’라고 하여 미래에 대한 희망적 의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의 이러한 현실 인식은 1960년대를 거치면서 4월 혁명을 주제로 한 장시『누가 막을 수 있었으랴』(교육시론, 1961), 동학 혁명을 주제로 한 서사시집『황토현의 횃불』(문광당, 1969)에서 절정을 이룬다. 서사시 ‘황토현의 횃불’은 6천행이 넘는 방대한 작품이다. 이는 신동엽의 ‘금강’과 함께 동학혁명을 다룬 서사시로서 문학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의 암울한 시대를 거쳐 1980년대에 이르면 그의 시의 초점은 ‘광주민중항쟁’에 모여진다. ‘항쟁의 노래’, ‘광주에 부치는 노래’, ‘못잊을 그날’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이 그것들이다.
안도섭 선생에 대한 이상과 같은 백수인 교수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역사와 시대에 항거한 안도섭 선생의 면면들이 다른 여러 작품과 자료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 우당 안도섭 評傳
김희수 교수(시인·문학평론가)는 그의 평론집『21세기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한 한국 민족문학과 민족시인론』(푸른사상사刊, 2002)에서 “이 저서에서 다루어진 민족문학의 개념과 대표적 민족시인들은 많은 객관적 자료분석과 여러 작가들의 고견을 참고하여 검증된 내용이므로 문학사적 가치는 충분히 있겠다”라고 밝히면서, 평론집에 거는 기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 논집을 통해서 민족문학과 민족시인론을 연구중이거나 관심있는 여러 단체와 여러분에게 보다 폭넓고 신선한 의미에서 좋은 참고자료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본 평론집에 대한 해설을 쓴 신규호 문학평론가는 “민족문학의 정의 원리에 입각하여, 김희수는 한용운을 위시한 김영랑·이육사·김광섭·신석정·윤동주·안도섭 등 탁월한 시인들의 작품을 꼼꼼히 분석 평가하여 민족시인으로 자리매김 함으로써, 우리의 현대시문학의 변천사에 새로움과 푸짐함을 보태었다.”고 기술했다.
김희수의 평론집은 모두 3장(제1장 현대시의 변천, 제2장 민족문학이란 무엇인가, 제3장 한국의 대표적 민족시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제3장에서 한국의 대표적 민족시인인 한용운(제1절), 김영랑(제2절), 이육사(제3절), 김광섭(제4절), 신석정(제5절), 윤동주(제6절)에 이어 안도섭(제7절) 시인을 차례대로 서술하고 있다.
* 지리산 * / 안도섭
사시사철
어머니의 품처럼
의젓한 산 지리산
부채 살 꽂는
연하봉 아침해 뜨면
산이 고와 날고 싶으다
도도한 역사의 숨소리
솔바람에도 흐느끼고
피아골의 아픔이 등걸인 듯 저려온다
한 번 어둠이 걷히고도
누가 누굴 겨누던
그 밤낮 피 가름의 불길이더냐
봄이면 철쭉꽃
푸른 산맥 넘나든
청노루
그 보람마저 앗아가 버리고
오 지리산,
침묵의 산 지리산이여
말을 해다오
혈맥처럼 산줄기 뻗어
연이은 고을과
웅크린 마을 휘둘러 섰는
우뚝 우뚝한 봉우리
바라보면 갈매 빛
하늘 맞닿은 천왕봉
그 날의 메아리 달려가는 듯
한여름 구름 휘몰리고
깊은 골 우뢰치면
천지간에 몸을 떠는 지리산
산이 운다
안도섭 시인에 관해 김희수 교수가 평론집에서 서술한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안도섭은 현대시단에서 그의 문학적 능력과 가치에 비해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Byron)이 ‘시용 성(城)’이라는 민족시를 썼다는 사실을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적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생전에는 이름조차 없던 ‘무명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안도섭을 연구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난다.(중략) 지금까지 그의 시를 연구해 온 작가 및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평가를 하고 있다.
안도섭 시인의 시는 체험과 상념의 육화된 詩이다(김규동,『안도섭 평전』).
안도섭 시인의 한 가지 일관된 점이 있다면 그것은 강렬한 시대 정신과 시정신의 일체감이라고 보고 싶다. 여기서 시대 정신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점은 대부분의 시적 근저를 이루는 시대의식이나 인식이 다분히 비판적이라는 점이고, 이를 시정신으로 용해 내지는 여과 변용한다는 점이다(박진환, 『안도섭 평전』).
안도섭 문학이 전통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형태미와 동양적 정서를 소화 발전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통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선배 시인들이 이룩한 틀을 깊이 존중하며 그것을 기초로 삼는 데 있어 인색함이 없다는 것이다. 가령 이육사나 이상화 같은 리듬이라든가 철학성을 그대로 인계하고 있다는 것은 시에 있어서의 인격이나 체격을 결코 도외시하지 않는다는 뜻이 될 것이다(김규동,『안도섭 평전』).
안도섭 시인의 시 전체의 흐름은 이향아, 조봉제 두 시인이 언급했듯이 현실적 서정의 시각에서 공동체 의식과 서정의 조화를 이루었다고 본다(장석향,『안도섭 평전』).
분단의 비극을 청산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물처럼 부드러운 시가문학을 통해 겨레의 화해와 통합의 터전을 닦아 가는 안도섭 시인의 의의 또한 ‘민족사적’이라 할 만하다(신규호,『안도섭 평전』).
현실 저항적 인식이 강하게 표출된 체제 저항적인 작품들에서도 서정성을 바탕으로 상징, 풍자, 알레고리 등의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비판의 강도를 조절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안도섭의 문학을 관류하고 있는 것은 역시 짙은 서정성이다. 그의 시는 이 서정성을 바탕으로 역사와 시대에 항거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구호라는 늪에 빠지지 않고 예술적으로 승화되고 있다(백수인 교수, 조선대 신문, 98.5).
철저하게 현실을 인식하면서도 시를 ‘정치적 구호’로 타락시키지 않는 것은 지성적인 자제와 뛰어난 미적 감각 때문이다(윤석산,『안도섭 평전』).
그의 시는 ‘너와 나’, ‘우리’의 공동체 의식으로부터 더 멀리 확산하는 원심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선은 안으로 응축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지평으로 열려 있다. 그의 시적 과정은 혼자 떠나는 길이 아니며 동반자를 대동한다. 그리고 그 동반자들은 혈연 이상의, 운명 이상의 질긴 밧줄로 묶여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역사의식 혹은 상황의식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이향아,『안도섭 평전』).
김희수 교수는 저서에서 또 “이처럼 많은 작가와 평론가들로부터 안도섭은 시대적 인식, 민족적 역사의식, 문학적 가치에 대하여 높게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신적정의 작품세계에서처럼 역사와 시대적 인식을 근간으로 하는 현실 참여적 서정시를 쓰기 때문에 그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하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면서, 안도섭 시인에 대해 회자되는 다각도의 평가를 “그의 작품은 서두에 많은 작가와 전문가들이 언급했듯이 1950년 이후 또 다른 민족의식을 시대인식과 시정신으로 시적 형상화시킴으로써 한국의 현대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라고 함축한 뒤,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민족현실의 역사인식과 도덕성이다. 안도섭은 우리 문학이 서정주 시인과 청록파 시인들에 의해 문단이 지배되던 1960~70년대 본격적인 문단생활에 접어들면서 현실 참여적 저항시는 홀대를 받게 됨으로써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공명보다는 민중과의 호흡을 하며 일관되게 현실 참여적 시작 활동에 전념했다.
둘째, 안도섭의 문학적 가치이다. 안도섭의 시는 민족현실의 역사인식과 더불어 이를 시적 가치로 승화시켜주는 마니에르(maniere)기법과 아울러 짙은 서정성이다. 그의 시가 현실 참여적 저항시이면서도 부드러움과 평온함을 주는 것은 바로 서정성이다. 그의 사상적 기원을 본다면 한용운이나 이육사와 같고, 서정성은 김소월이나 신석정과 맥락을 같이 한다.
* 풀잎 서장(序章) * / 안도섭
풀잎은 이슬을 머금고 무지개를
그 품에 안고 산다
풀잎은 흙의 의지를 닮아서인지
메마른 황토나 습지에서도
무성히 자란다
풀잎은 어느 국경도 휴전선도 없다
푸프른 꿈을 안고
대지 그 어디까지나 뻗는 혼
풀잎은 또 평화의 옹호자처럼
뿌리와 뿌리를 흙에 묻고
해사한 햇볕에
끝없는 초원을 이룬다
풀잎은 사나운 태풍도 두려워 않는다
산이 분노하는
화산이 터지고
하늘에 우레 치고 지진이 일어도
그래도
풀잎은 흙의 지지자일 뿐이다
□ 새야 녹두새야 (대하서사시)
안도섭 시인이 쓴 대하서사시『새야 녹두새야』(푸른사상사刊, 2002)는 감히 이르건대, 한국 문학사에 있어 영원불멸의 대작으로 평가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새야 녹두새야』의 책머리에서 안도섭 시인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서사시 ‘黃土峴의 횃불’이 처음 <농민문화>에 연재(1978.11~1979.10)된 후 1980년 출간되었으나 신군부의 검열로 판금된 시집이다. 그때 5천 부가 고스란히 창고에서 묶여 버렸다.
그것이 22년 만에 다시 ‘새야 녹두새야’로 이름을 바꾸어 <월간 문학21>에 9회에 걸쳐 연재되고, 각고의 조탁 끝에 햇빛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서사시집은 ‘판금’이라는 시대의 수난뿐 아니라 그 작품의 됨됨이에 있어서도 실로 22년이라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하나의 시집이 나오기까지 이처럼 험한 고비와 아픈 산고를 겪으면서 이 작품은 탄생을 본 것이다. 그 감회는 어찌 붓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이 시집은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서사시로, 조선시대 농민의 한과 겨레의 꿈을, 전봉준의 영도 아래 민중적 항거로 떨쳐나선 농민 항쟁의 이야기다.
나는 이 서사시를 쓰면서 소리 없이 울고 또 수없이 몸을 떨었다. 흙의 아들이요 태양의 자손인 녹두장군은 그래서 파랑새 민요와 함께 지금도 내 핏속에 생생히 살아있는지 모른다.”
하늘이 내려앉는
오백 년 앓음 소리
어디 울리랴
구름 속 우레 치면
진종일
산은 진노하여 울고
그 참음으로도
그 달램으로도
잠잠할 수 없는 황토땅
뿌리 엉킨 죽순
밋밋한 대숲 이루고
산골짜기 폭포 굽이쳐 내리는
더운 핏줄 타고 흐른다
이 동맥
저 젖가슴
온 산야에 진달래
초롱초롱 눈 밝혀
봄을 부르면
말하라
이랴차차 쟁기 갈며
등 땀 흘리는 농군이어
쇠북 소리 높이 울리렴!
땅도 금이 가는 떙볕
보릿고개
허리띠 졸라매고
손에손에 죽창 든
함성-검은 밤 휘모는
횃불 밝히고
화산이 불을 뿜을 때
포르르 참새 떼도
놀라 고부 들녘을 날아 갔다
하늘이 무너앉는
묵은 찌 곪아 터지는 소리
어디 들리랴
- 『새야 녹두새야』‘서시’ 1절 -
그렇다.『새야 녹두새야』는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대하서사시 시집으로, 조선시대 농민의 한과 겨레의 꿈을, 전봉준의 영도 아래 민중적 항거로 떨쳐나선 농민 항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집의 편제는 전체 7장으로 나뉘고, 앞뒤로 ‘서시’와 ‘훗날의 노래’로 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1~34로 구성되어 있다. 장별로 살펴보면 서시, 제1장 울음 터뜨린 만석보(萬石洑), 제2장 서면 백산(白山)이요 앉으면 죽산(竹山), 제3장 전주의 무혈입성(無血入城), 제4장 높아가는 농민군의 기치, 제5장 구월 재기와 왜구(倭寇), 제6장 동학년(東學年) 곰나루, 제7장 새야 녹두새야, 훗날의 노래 등이다.
대하서사시로서의『새야 녹두새야』는 그 문학적 가치가 가히 역사적이라 아니 할 수 없겠다.
□ 존재론적 세계 인식과 이중 구조
안도섭 시인의 작품세계를 좀 더 폭넓고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이시환 문학평론가(월간 동방문학 발행인․한국문학평론가협회 평론부문 대상 수상)가 40인의 명시 40편을 선정해 명쾌하고도 치밀하게 분석한 내용을 담은『명시감상(名詩鑑賞)』(도서출판 신세림刊, 2000)에 수록된 안도섭 시인의 ‘서정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하, 복사꽃 피기로서니
복사꽃 두 닢 지기로서니
나는 붉은 그 사랑을 몰라라
하, 복사꽃 웃기로서니
복사꽃 슬히 울기로서니
나는 미쁜 그 얼굴을 몰라라
삼월, 저 하늘까
숨막히는 가슴 그뿐이더라
빈 항아리 마음 그뿐이더라
-‘서정가’전문 -
위 작품은 안도섭 시인의 ‘서정가’전문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도 소리 내어 읽으면 맛이 나는 시다. 숨과 쉼이 잘 맞아 떨어질 뿐 아니라 의미 전개상의 긴장이 끝까지 유지되는 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자연스럽게 읽히는데 그것은 우리의 호흡에 맞는 가락을 지녔다는 이유도 있고, 또 의미 전개상에 수반되는 사고력의 진폭이 상당히 크지만 같은 크기로 3번 되풀이 되는 데에서 오는 익숙해짐 혹은 그로 인한 편안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시는 전체 3연 9행으로 짜여졌는데 각 연마다 딸린 3행이 3, 3, 4 음보로 이루어지고 있고, 이같은 음보율이 각 연마다 되풀이됨으로써 더욱 자연스럽고도 쉬이 읽히게 한다. 굳이 음수율을 따져보아도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거의 같은 음수율이 각 연마다 되풀이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중략) 더욱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복사꽃의 피고 짐을 ‘사랑’이라는 인간적 차원의 일로 관계를 지움으로써 자연현상에서까지도 인간의 사랑을 보듯 하나의 큰 생명 에너지의 흐름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복사꽃이 피고 지는 현상을 통해서도 숨막히는 긴장을 맛볼 수 있으며, 동시에 빈 항아리 속 같은 정반대의 정적인 세계로도 직시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피고[有] 짐[無]이 하나라는, 動과 靜이 같은 것이라는 존재론적 세계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바로 그것을 인간적인 따뜻한 정감으로 싸고 있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존재론적 성격의 시이면서도 인간의 사랑 그 자체를 노래한 시로 이해가 가능하고, 또 그만큼 깊이가 있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진다.(名詩鑑賞, p.67~p.69)
□ 인간성 측면에서 살펴본 안도섭 시인
안도섭 선생의 인간성에 대한 측면도 궁금해진다. 이계진 의원(방송인·제17대 국회의원)은 그동안 ‘아나운서 되기’, ‘남자도 가끔은 옛사랑이 그립다’, ‘정말, 경찰을 부를까’, ‘바보화가 한인현 이야기’ 등 7권의 에세이를 펴낸 바가 있다. 그 중 ‘이계진이 쓴 바보화가 한인현 이야기’에 안도섭 선생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이계진 의원이 그 글을 쓸 때가 1990년대 중반으로 현 <월간 문학21>은 당시 <앞선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되고 있었다.)
한인현 화백을 알아주고, 그에게 항상 따뜻한 사랑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한인현 화백이 좋아하고 즐겨 만나는 사람들이다. ‘시인들’이다. 의외였다. 그러나 만나 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얼마 전 이 글을 쓰기 위하여 그 시인들 중에 한 사람인 안도섭 선생을 만났다. 월간 <앞선문학>의 발행인이다. 한인현 선생이 가끔 말하기를 “그림을 제대로 보는 시인”이라고 해서 어떤 분인지 궁금했는데, 젊은 시절부터 오지호 화백을 존경했고 그의 그림을 매우 좋아하는 시인이었다.
그의 첫인상은 순수 그 자체였다. 인사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였다. 저녁 상에 반주로 마신 한 잔 술에 상기된 얼굴로 안도섭 선생은 시인의 역사 의식에 대한 일갈부터 시작했다.
“시인은 역사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시류에 따라 변절하는 사람들은 머지 않아 가버립니다. 윤동주는 젊어서 죽었지만 영원한 민족 시인이 되어 영원히 살고 있지 않습니까? 돈에 대한 유혹, 권세에 대한 유혹에 지면 안됩니다. 실패하면 그 시인은 사라집니다!”
나는 안도섭 선생의 이야기를 ‘시인’에서 ‘화가’로 바꾸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한인현 화백에 대하여 질문했다. 그의 그림, 그의 삶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고 했다.
“한인현 선생은 한마디로 예술가의 표본입니다. 진실과 순수를 지키고 있고 현실적인 것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한인현 선생의 그림에는 원초적인 향수가 있지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채 순수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지키는 분입니다. 아마 실향민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죠. 그의 도자기 화를 봐도 그렇고, 그의 캔버스 화를 봐도 그렇고, 그의 삽화를 봐도 그렇습니다.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서 그 향수를 자극하지요. 절대 추상으로 얼버무린 것이 아닙니다!” 안도섭 시인은 거의 웅변을 하듯 말을 이어 갔다.
그의 그림에는 모성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한 맺힌 살의 유랑이 강렬한 이미지로 승화된 ‘한의 예술’이라서 더욱 좋다고 했다.
“해골을 그려도 아름답지요.” 놀라운 증언이었다. “꽃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꽃 같고, 사슴을 그리는 화가라고 사슴 같을까요? 어두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그 마음이 어두울까요? 아닙니다. 세상을 착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그는 화폭에 어두움을 그릴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 한인현은 꽃 그림으로 대중을 현혹하려 했던 적이 없다. 항상 가족의 고단한 삶과 이웃의 아픔과 세상의 어두운 빛을 안타까워하며 사랑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화가와 시인의 만남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까?” 혹시 ‘초록은 동색’이라는 넋두리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질문을 했다.
“나는 한 선생님의 그림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고 한 선생님은 또 우리의 시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니까요. 프랑스에서도 옛날부터 화가와 시인들이 뜻을 모아서 문예 사조의 거대한 흐름을 이끌었잖습니까?" 그 순간 나는 안도섭 시인의 생활을 연상해 봤다.
“이분도 가난하시겠구나.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집에서 그냥 밥 먹고 사셨겠구나. 남에게 주는 걸 좋아하시겠구나. 불쌍한 사람을 보면 우시겠구나. 시집이고 <앞선문학>이고 나오기만 하면 펴 돌리시겠구나. 돈 될 만한 축시 같은 것은 기회도 돌아오지 않겠구나. 그리고 뼈 있는 문학을 하며 코피를 흘리시겠구나.” 나도 술 한 잔으로 목을 씻었다. 한인현 선생과 안도섭 선생은 난형난제인 듯 했다.
한인현 선생이 안도섭 선생을 만난 것은 80년대 초 안도섭 선생이 혜원출판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할 때라고 한다. 안도섭 선생이『영원한 한국의 명시』의 해설을 쓸 때 한인현 선생이 삽화를 그리게 되면서 두 분이 만났다. 첫인상이 서로 어떠했느냐고 물었더니, 안도섭 선생이 먼저 말했다.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 같았지요!” 한인현 선생이 화답했다. “안 선생은요, 유치원생만도 못해 보였지요!”
둘이서 그렇게 말해 놓고는 한바탕 통쾌하게 웃었다. 아이와 노인은 괴는(사랑하는)데로 간다는데, 거기에 이 말 하나를 더 보태면 좋을 것이다. “아이와 노인과 예술인들은 괴는 데로 간다!” (‘바보화가 한인현 이야기’ 중에서)
위에 나타난 내용만으로도 안도섭 선생의 인간성이랄까 성품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안도섭 선생의 성품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은 꾸밈없고 소탈한 가운데 대쪽같고 전형적인 선비 정신의 소유자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안도섭 선생의 최근 시집『돌에도 꽃이 핀다 했으니』(안도섭 저, 문학21刊, 2004.1.12)의 서문을 보면, 시와 시인의 현실과 존재에 대한 안도섭 선생의 분명한 철학과 선생 스스로의 겸손한 자세를 쉽게 감지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안도섭 선생은 시집『돌에도 꽃이 핀다 했으니』에 거는 기대와 수록할 작품을 고르느라 고심한 점에 대해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에 스스로나마 읽고 싶은 시를 쓰고 또 그것을 엮어서 시를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읽고 싶은 생각 때문이라 할까. 시가 읽히지 않는 것은 시대의 탓도 있지만, 비단 그것만이 아니고 시가 덜 익었다든가 설된 탓도 없지 않다. 그리고 시인의 눈길이 여느 사람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도 여겨본다”고 피력한다.
그러면서, 안도섭 선생은 “시인이란 한 자리에 안주하거나 꾸물거리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존재이다. 그럴 때 고인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대지의 푸나무처럼 한겨울에도 새싹을 준비하는 시인의 자세가 필요하고, 시가 숨을 쉬고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의 언어로서의 형상적 성공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 할 것이다.”라는 여운이 담긴 말을 남기고 있다.
이 시대의 시인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크게 공명하지 않을 수 없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