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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게 하는 하나님과 함께하라
2019. 1. 6(주일낮예배) 시편 30:11
이집트의 사막에서 발견된 미이라가 유명한 학자의 고고학 연구실로 운구되었다. 고고학자는 미이라를 잠깐 살펴본 후에 이 미이라는 3천년전에 심장마비로 죽은 남자입니다. 하고 이야기 했다. 그 뒤에 국립과학연구소로 미이라는 옮겨져서 몇 주일동안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고고학자가 말한대로 3천년 전에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발표에 모든 기자들은 고고학자를 찾았다. 그리고 어떻게 잠깐 동안에 미이라의 연대와 죽은 사인을 알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 질문에 고고학자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 친구 손에 이런 종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다윗에게 1만세겔(40억)
이 미이라가 왜 죽었겠는가? 미이라는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현장에 있었다. 그때 모든 사람이 골리앗의 승리에 돈을 걸었는데, 이 사람만 다윗의 승리에 전 재산을 다 걸었다. 그런데 다윗이 승리하는 순간 너무 놀라서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다.
그러면 다윗의 승리가 이 사람에게는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그런데 우리 삶을 보면 이 미이라와 같이 내 인생에 절호의 찬스인 줄 알았는데, 그 찬스로 인하여 오히려 내 인생이 더 어렵고 힘들어 질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여러분은 그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아랍어를 공부하면 인샬라라는 단어를 배운다. 친구와 약속을 했는데 약속장소에 늦게 도착했다. 그래서 친구가 화를 내고 있을 때 인샬라하고 말한다. 그러면 화를 내던 친구는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신의 뜻대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신의 뜻대라는 개념으로 어려움 앞에 선다. 그래서 다가오는 모든 문제를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고, 체념을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세옹지마의 신념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어느 부자가 말을 잃어버렸는데, 그 말이 새끼를 낳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좋아했는데, 그 말을 타던 아들이 낙마하여서 다리가 부러져서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 되었다. 그런데 나라에 전쟁이 생겼을 때 건강한 청년들은 전쟁에 나가야 했는데, 장애를 가진 아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좋은 때도 있다는 말의 뜻이 세옹지마이다. 그런데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좋을 일도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로 어려움을 이기려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면 여러분은 어려운 일 앞에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유대인에게 있어서 12살은 굉장히 의미있는 나이이다. 왜냐하면 12살이 되면 성인식을 거행하고 그 후로는 책임있는 사회인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12살인 예수님이 유월절에 친척들과 함께 성전에 올라간다. 그리고 가족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예수님은 성전에 남아서 선생들과 함께 앉아서 말씀을 듣기도 하고, 또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을 듣고 질문하는 것을 본 사람들의 생각을 누가복음 2:4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눅 2:46-47)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그런데 누가복음 2장은 예수님이 12살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놀라워 할만큼 지혜로운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에서 누가복음 8장을 보기 바란다. 12살의 예수님은 그 지혜를 통하여 사람들을 놀랍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야이로의 딸은 12살이 되었지만 병이 들어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12살이 되면 독립적 존재로 일어나야 하는데, 야이로의 딸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 딸을 살려 달라고 부탁하고, 또 예수님이 사람들은 소녀가 이미 죽었다고 더 이상 회당장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야이로의 딸에게 다가가서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순간 병들어 일어날 수 없었던 그 소녀가 일어나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무슨 말인가? 누가복음 2장과 8장에 나타나는 예수님은 키가 자라고 나이가 자라서 그 지혜로 사람들을 놀랍게 하는 그런 독립적인 자리에 서신 분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그 지혜와 능력으로 나는 독립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는 것을 드러내고 만족해 하지 않았다. 독립적으로 완전하신 예수님은 일어서야 하지만 일어서지 못하여 근심과 슬픔이 되어져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달리다굼 하고 선포하여서 그들을 일으키는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지금 시청률 1위는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이다. 시청률이 40%면 국민방송이라고 하는데, 35.9%나 되는 많은 사람이 하나뿐인 내편을 보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하나뿐인 뿐인 내편을 빛나게 하는 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라는 OST다.
천번이고 다시 태어난 데도 그런 사람 또 없을테죠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런 그댈 위해서 나의 심장 쯤이야 얼마든 아파도 좋은데
사랑이란 그 말은 못해도 먼곳에서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모든걸 줄수 있어서 사랑 할 수 있어서 난 슬퍼도 행복 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않아도 그대 웃어준다면 난 행복할텐데
사랑은 주는거니까 그저 주는거니까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지금 이 노랫말은 슬픈 뿐인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그 사람을 위하여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나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사랑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제가 한빛교회에서 사역할 때 한 집사님이 카메라를 사라고 150만원을 주셨다. 그래서 그 돈으로 카메라를 사서 제가 관리를 했는데, 어느날 카메라를 빌려준 기억은 있는데 받은 기억이 없었다. 교회는 카메라가 필요한데 카메라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제가 내린 결정은 카메라를 다시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돈을 다 모으니 90만원이 전부였다. 그 돈으로 카메라 새 것을 살 수가 없어서 인터넷에서 중고를 찾았더니 제가 가진 카메라보다 더 좋은 연식을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마침 교회 청년이 교회와 똑같은 카메라를 샀는데, 더 좋은 것을 사기 위하여 내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90만원을 주고 카메라를 사기로 하였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이 제 마음이었다.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제 인생의 소신이 꼼생꼼사이다. 저는 저를 위하여 돈 쓰는 것을 굉장히 아까와 한다. 그래서 돈 만원을 쓸 때도 손을 바들바들 떠는 사람인데, 90만원이라는 거금을 사용하는데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다. 그 후에도 그런 모습으로 신앙생활 때가 종종 있었다.
여러분은 이런 때가 없었는가? 교회를 위하여 열심을 다하여 수고하였다. 그래서 몸은 천근만근인데 이상하게 마음은 너무 편하고 즐거울 때가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에서 최선을 다하여 헌금하였는데 더 드리지 못해서 안타까워서 돈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 교회는 그런 마음을 가진 헌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성장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헌신과 수고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서 버린다. 그리고 언제부터 이만하면 됐어! 내가 김집사보가는 낫쟎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나태의 길을 간다.
이것이 일반적인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와 다르다. 예수님은 일어나지 못하는 우리를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변치않는 사랑과 헌신의 삶을 사셨다. 예수님이 이렇게 변치 삶을 산 것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성품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인 시편 30편의 표제를 다윗의 시, 곧 성전낙성가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은 다윗이 지은 시이고, 성전을 완공한 후에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성전을 건축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편 30편은 다윗이 성전낙성가를 지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역사 안에서 시편30편은 성전낙성가를 불려진 적이 있었다. 헬라의 안티우쿠스 4세는 강력한 희랍화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유대의 ①할례를 금하고 만약 할례를 행하면 할례를 받은 아이는 물론이고, 그 어머니도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②안식일도 지키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③율법책은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런데 유대인들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이 ④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안티우쿠스 4세는 제우스에게 바치기 위하여 돼지피를 성전에 뿌린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그 저항운동을 우리는 마카비혁명이라고 부르는데, 마카비혁명군은 3년동안 안티우쿠스 군대에 게릴라작전을 펼쳐서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게 승리한 마카비혁명군은 성전에 있는 제우스 신상을 부수고, 성전을 청결케 한 후 하나님 앞에 낙성식을 드렸는데, 그때 부른 찬송이 시편 30편이었다. 그러므로 시편 30편은 역사 안에서 낙성식 때 불려진 노래가 맞다.
그런데 제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시편 30편이 역사 안에서 낙성가를 언제 불려졌는가?가 아니라, 다윗이 왜 낙성가를 지었느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다 준비하였다. 그리고 다윗은 그 성전이 건축되면 하나님께 찬송을 드릴 찬양대를 조직하고, 또 그 찬양대가 부를 낙성가까지 다 준비했던 것이다.
왜 다윗이 이런 열심을 보이고 있는가? 사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어떤 학자는 오늘 본문의 배경을 밧세바 사건으로 해석하고, 또 어떤 학자는 인구조사를 배경으로 한다. 사무엘하 24장을 보면 다윗이 인구조사 후에 전염병으로 7만명이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때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고통하며 죽는 것을 본 다윗은 아픈 가슴을 안고 하나님을 향하여 이 백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차라리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면서 기도하였다. 그때 하나님이 다윗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그 진노를 멈추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시편 30편이 바로 그 인구조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사실 저는 학자가 아니라서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제가 정확하게 아는 것은 다윗이 범죄하므로 엄청나게 큰 고통가운데 있었는데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그 고통이 멈추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편 30편의 배경이다. 그래서 1-3절에서 다윗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었다, 나를 고치셨다.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렸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다윗이 5절로 고백한다. 5절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다윗이 그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시 30: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노염은 아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원래는 코, 콧구멍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기 위하여 쉼을 쉬어야 하는데, 그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코이다. 그런데 아프가 바로 그 코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만약 그 콧구멍으로 숨을 쉬지 못하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저는 비염이 심하여 하루 24시간 중에 양쪽 콧구멍이 다 뚫어져 있을 때가 거의 없다. 그런데 가끔씩 양쪽 콧구멍이 다 뚫리는 때가 있다. 그때가 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 지 모른다. 그런데 양쪽 콧구멍이 다 막힐 때가 있다. 그래서 숨이 막히기 시작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조여오는 고통을 느낀다. 만약 그때 제가 입으로 숨을 쉬지 않으면 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무슨 말인가? 콧구멍으로 숨을 쉬는 것은 생명과 연관이 되어져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진노를 콧구멍으로 해석한 이유를 알겠는가?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의 생명과 연관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 앞에 있는 사람은 이제 죽었구나 하는 답답함과 고통이 가득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토록 그 답답함과 고통 안에 두지 않는다. 처음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서 생령이 되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우리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답답함과 고통은 사라지게 하고, 그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시는 것이다.
잘 기억하기 바란다. 우리는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진로를 통하여 우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여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체험해 보았는가? 그 하
나님을 체험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오늘 본문이다. 이제 오늘 본문을 함께 읽어보기 바란다.
(시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다윗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아래서 숨도 쉬지 못하는 죽을 것같은 고통 아래 있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죄로 인하여 내 아들이 죽는 고통을 겪어야 했고, 또 인구조사로 7만명이나 되는 내 백성이 전염병으로 고통하다 죽는 신음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죄악으로 인하여 고통하고 있는데, 그런 나를 버리지 않고 온전한 사람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내 슬픔이 춤이 되게하고, 나의 베옷을 벗겨 기쁨으로 띠를 띠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나아올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그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충만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죄악가운데 나를 고치시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제 말씀을 맺는다.
앞에서 하나뿐인 내편의 OST 중에 하나인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불러드렸다. 그런데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이승철이 2009년 상영된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주제가로 부른 노래이다. 그래서 이승철씨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몇 번을 듣다가 결국 그 영화를 보았다. 권상우와 박보영이 주연인데 영화 중에 박보영이 권상우에게 너는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될래? 하고 물었다. 그 질문에 권상우는 반지, 안경, 침대가 되고 싶다고 한다.
반지, 안경, 침대의 공통점이 무엇이겠는가? 반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가락을 빛내어 주고, 안경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잘 보게 하고, 침대는 사랑하는 사람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박보영을 향한 권상우의 마음이다. 우리는 이런 마음을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권상우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 세상에서 그런 친구가 없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기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반지가 되고, 안경이 되고, 침대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픔뿐인 내 삶에 기쁨이 넘치게 하시고, 그 기쁨으로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신 것이다. 그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와 사랑이 늘 함께 하는 복된 2019년의 삶을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