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92 ㅡ 밤의 봉소리 (사소)
산책을 할 생각이었으나 해가 점점 기울어 가는 것을 보고 파랑이에게 향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봉소리에 도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요새는 망각의 은총을 입어 대부분을 잊고 산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각난다. 엊그제 순성면 봉소리 옆 땅에서, 농사를 짓는 술쟁이 아저씨의 전화를 받았다. 땅 앞으로 도로가 나니, 와서 보고 이러고 저러고 신청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름처럼 순하고 사람들도, 술쟁이 욕심쟁이 아저씨만 빼면, 다 착하고 욕심 없게 살고 있을 것 같은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봉소리 비닐하우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맞은 편에서 해 넘어가는 것을 보는 일상을 생각했었지.10분도 안돼 한 바퀴 돌 수 있는 아주 작은 동네. 그렇지만 초등학교도 있고, 농협도 있고, 문방구도 있고, 병원도 있고, 무엇보다 조그맣고 정갈한 성당이 있는 조용한 동네. 이름도 어여쁜 아미산도 있고, 5분 거리면 아미 미술관이 있어 할머니 도슨트가 되어볼 테다는 희망도 이뤄질 성싶었지.
바다 옆을 달릴 때 기분이 좋은 것은 시야가 탁 트이기 때문이야. 하늘이 피워내는 우주의 그림놀이를 맘껏 구경할 수 있어서지. 삽교호를 관통하는 도로가 어느새 뚫려 몇 년 전 보다 더 오래, 사위어가는 하늘을 보며 달렸어. 막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도착한 나의 봉소리.
미안하다.
오래 너를 기다리게 해서. 너를 맡겨두고,
너를 기억하지 못한 시간을 꺼내보는 게 두렵더군.
농막 주인 얼큰히 취한 술주정뱅이 아저씨가 이럴줄 알았으면 연애라도 걸 것을 안팔거면 서류한 장 써야지 않냐 술친구 시청 공무원에게 했던 말을 또하고 또하고 나는 듣는듯 마는 듯 웃는듯 마는 듯 차 한잔을 마셨고, 도지대신 기어이 먹으라는 밥 한그릇을 먹었다. 그리고 설겆이를 해드리고 나중에 쥔장이 없을 때 농막에 찾아온다면, 한 번은 차 한 잔 실례하겠다는 인사를 하고 어둠을 나왔다.
고요히 친절하고 정갈한 순성성당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첫댓글 파랑이는 차 이름일까요?^^ 덕분에 잠시 토미 웅게러의 <꼬마 구름 파랑이>를 생각했습니다.
아! 맞아요. 꼬마구름 처럼 날 어디로든지 데려다주는 친구예요.
이름'도' 멋지'군' 만나'면' 어떠'리'---중학교 때 유행했던 표현. 봉소리--> 봉 소리? 봉소 리? 가만히 새겨보니 봉소리 소리가 좋습니다.
ㅎ '멋진 걸!' '웃긴 걸~' ㅎㅎ '순성면' 은 담백하고 향긋한 들기름 메밀국수 같아요. 거기서
'봉봉소소리' 간판걸고 국수장수나 할까요?
아산에 가게 되면, 한번쯤 들러보고 싶은 봉소리네요... 술쟁이, 욕심쟁이 아저씨도 스치듯 만나보고요~
요새 일만 하시는 것 아니시죠? ㅎ 충청도에 가시려거든 술쟁이 욕심쟁이 아저씨는 아예 없는 청보리가 넘실대는 계절에 당진 '피어라' 에도 들르시구요. '미당면옥'에서 놋그릇에 뜬 반달같은 국시도 드셔 보셔요. 그러다가 근처 옛집책방 '오래된 미래' 에 찾아가 친구처럼 책들과 인사하시고 봄볕 환한 옥상에 책펴고 앉아 졸음도 즐기시구요.
봉소리에 맡겨둔 땅이 있으신 건가요? 봉소리 지주님... ^^
그니깐 제가 아마 땅에게 바람이나서요. 오죽과 소나무에 홀려가지구요. 덜컥 ㅎ 뽕나무 은행나무 옆에 햇볕 가득 창문을 내고, 무덤 고요한 자락 구부러진 적송 내려다뵈는 창 앞에 앉아 책을 읽다가... 그런 설계가 막 머리속에서 돌아가고 있었더랬죠.
봉 sound라고 생각하여 대체 이건 무슨 sound인가 했더니.. ㅋㅋ
ㅎㅎ 그니깐 큰 봉 작은 봉 짧은 봉 긴 봉~ 봉을 여러개 꽂아 놓고요.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봉봉 소리 소리 공명이 아미산까지 가면 좋겠어요.
'봉소리' 이름처럼 호젓하고 예쁜 마을일 듯합니다. 사소님과 어울리는..^^
충청도에 가보셔유. 느리고도 조용하더래유~. 공주랑 당진이랑 아산이랑 오래 전부터 있던듯 없던듯 소박하고 한적하구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