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만나는 무지개.
잠시 비 개인 하늘에 반짝 나타 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무지개는 어린 날의 영롱한 꿈이었다.
무지개를 잡겠다고 뜀박질을 하던 순수했던 동심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걸까.
그런 감정이 남아 있을 리도 없겠지만 설령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이내 찬밥신세가 될 게 뻔하다.
그런 유아적인 꿈 이야기를 할라치면 아직도 철이 덜 든, 밥술깨나 더 먹어야 된다는 소리를 들을거니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말지.
외근을 나갔다가 치악산에 뜬 무지개를 발견하고 저 아름다운 무지개가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 남겨놓고싶은 욕심에 후다닥 집으로 들어왔다.
옥상에 올라 급하게 사진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니 아내가 물끄러미 바라다 본다.
"왜?"
"내가 아무때나 불러도 그렇게 빨리 들어 올거요?"
황순원의 소나기마을에 들렀다.
작품에서 만나는 소나기의 배경은 들과 산이 잘 어우러진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황순원 문학관은 외진 산골이어서 기대감에 미치지 못했지만 황순원의 묘역이 이곳에 있어서 그 이유가 될만했다.
소나기마을에는 소설 속의 배경들을 비교적 섬세하게 재현해 놓았는데, 주인공들의 발길을 따라가며 소년 소녀가 이성에 눈 떠가는 풋풋한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색다른 재미였다.
소나기를 피해 소년 소녀가 들어갔던 수숫단으로 얽은 움막
소년은 이곳에서 첫사랑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감정을 느낀다.
소나기라는 자연이 만들어준 순백의 여린 사랑은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민초들의 가슴 밑바닥에 옅게 고여 있다가 어느 날 불쑥 찾아온다.
아무런 맛이 없는 맹물이 생명의 근원이듯 가슴에 남아있는 백지 같은 첫사랑도 삶으로 피폐해진 검은 마음에 남은 한 조각 무지개다.
1978년에 영화로 발표되었던 "소나기"
당시 서울의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조윤숙, 이영수 어린이가 주연을 맡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극적 재미를 위해 소설에 나타나지 않는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아 그 후에도 몇 편의 영화가 더 나오게 된다.
단편소설 소나기에 나타나는 주옥같은 단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메밀밭, 허수아비, 개울 ,조약돌, 갈꽃, 메밀꽃, 비단조개,수숫단, 메뚜기, 싸리꽃, 무명 겁저고리, 잠방이, 망태기,얼룩수탉, 쇠파리,소 잔댕이, 남폿불, 대추, 도랑, 원두막...
짧은 단편소설에 이만한 우리말들이 나타나기도 쉽지 않다.
요즘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매우 거칠어졌다는 어른들의 걱정은 책망으로 그칠게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 어느 정도 치유될 수 있음이 자명하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보고 듣노라면 분명한 효과를 볼 것임에도 우리들은 너무도 거리가 먼 이야기에 우선권을 둔다.
"아니, 안 그래도 허구한 날을 유행가나 CM송을 부르는데 학교에서까지 저럴게 뭐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침마다 동요가 아닌 희한한 노래가 자꾸만 들려오자 나온 이야기다.
"시대가 달라졌잖아. 그런 틀에 박힌 생각부터 고쳐져야 한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학교에서라도 동요를 들려주고 불러야 할거 아니겠어?"
"건의를 해 보셔."
그러나 여전하게 그런 노래는 흘러나왔고, 나도 서서히 면역이 되었는지 대수롭지 않게 듣게 되었다.
"초등학교에서 무슨 저런 노래를.."
주방일을 하던 아내가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보라고 .
소나기 마을의 전경
공원안쪽에 황순원 문학관이 위치해 있다.
문학관 내부에는 작가의 작품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방문 날 하필 휴관이어서 내부를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다.
소나기마을을 나와 고속도로가 아닌 지방도로 접어들자 풍광이 빼어난 마을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소나기마을이 괜히 이곳에 들어선 게 아니었다.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를 떠나 이천 여주를 거치면서 숲 터널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국도를 지나왔다.
이 글을 대하는 독자들도 가을쯤에 한 번 들러 보기를 권한다.
일상을 떠나 호젓하게 만나는 소나기마을과,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가을 풍광에 빠져보노라면 틀림없이 지나간 첫사랑의 감정이 솟아날 것이다.
첫댓글
부회장님 구석구석 가보기 포스팅 해 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을 잘 쓰시니 자주 올려 주세요.
소나기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부회장님은 어디서 샘이 솟아나시는지 부럽습니다 ~~♡♡♡
고맙습니다.
좋은분들이 옆에 계시니 글을 쓸 용기가 납니다.
부회장님의 글은 제게 관찰대상 1호 입니다^^
뚜럿하게 보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와~~
오늘 점심부터 세끼는 굶을까해요.
최고의 댓글을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동안 글을 많이 올리셨던데 시간을 내어 읽어볼게요.
어깨가 급 무거워짐ᆢ
ㅎㅎ감사합니다 ^^
감칠맛나게 잘 버무리는 효과 너무 좋은 마음의 글 늘 감사합니다 소나기마을 또 가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언제나 소녀감성으로 살아가시니 이 또한 복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