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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 서론
율법서에 이어 구약성경의 두 번째 부분을 '역사서'라고 한다. 역사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입성때부터 시작하여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을 추방한 뒤 왕정 국가를 거쳐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예수께서 왜 오셔야만 했고, 왜 교회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려 주고 있으며, 구약의 많은 역사서의 바탕이 된다.
1. 역사서의 성격
사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여호수아에서 열왕기하에 이르는 역사책들에 '전선지서들' 이라는 명칭이 붙여져 있다. 이는 그 책들을 후선지서들 즉, 이사야, 에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그리고 12소선지서들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서들이 선지서라고 불리웠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그 책들의 주된 목적이 가르치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메시지가 그 민족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하는 예언 성취의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러한 책들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하나의 완전한 역사적 작품으로 간주되어 왔다.
2. 역사서의 분류
구약에서 역사서를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역사서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 자체는 매우 까다롭고 그 자체가 일종의 모순을 안고 있다고 할 만하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역사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책들만을 역사서로 분류해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엄밀히 따져서 모세오경도 역사서에 포함되어야 하는 모순이 있다. 그러나 성경을 쉽게 이해하고 구분지어 생각하기 위해서는 분류가 필요하다. 따라서 본 서에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롯기, 사무엘~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 까지를 역사서로 묶어 살펴보고자 한다. 이스라엘 랍비적 전통이나 다른 분류법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이 책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정착 그리고 왕국 형성과 멸망, 포로귀한 등의 역사를 시대적으로 잘 서술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류법은 신명기 역사서와 역대기 역사서로 재분류되어 설명될 수 있다.
3. 기록 목적
① 여호수아: 기록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통치하신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가나안 땅을 열두 지파에게 분배한 내용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수 13-21장).
② 사사기: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지도자를 세워 주셨으나,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이행치 않음으로 인해 이방 민족으로부터 핍박받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③ 룻기: 이방 여인인 룻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과정과 그가 언약 백성으로 다윗 왕가이 일원이 되는 것을 통해 만민의 하나님임을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④ 사무엘서: 왕국의 성립과 이에 대한 사무엘의 역할에 관한 기사로 왕국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⑤ 열왕기서: 솔로몬 왕 때부터 유다 왕국의 멸망 때까지의 기록이다. 그러나 단순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한나라의 흥망 성쇠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⑥ 역대기서: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유다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올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선민 백성임을 강조함으로 그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기 위함이다.
⑦ 에스라: 제2성전 건축과 회개 운동을 기록함으로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영원히 지키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⑧ 느헤미아: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 건축과 율법의 강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전하며 또한 후대 사람들에게도 이를 전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⑨ 에스더: 하나님은 유대 백성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핍박하는 자를 징계하시는 분임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4. 신명기 역사서
1) 신명기 역사서들
신명기 역사서로 분류되는 것은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등이다. 오늘날 이러한 책들을 기록한 사람들을 부를 때 신명기 사가라고 부른다. 이는 그 사람들의 분명한 이름을 현재로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서로부터 열왕기서에 이르는 책들을 역사서라고 부르는 것은 이 책들의 언어적 특성 및 역사에 대한 신학적 이해에 있어서 신명기에 나타난 사상들과 언어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2) 신명기 역사서의 특징
신명기 신학의 주제는 계명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과 저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얼마나 큰 축복을 누리게 되는가를 기록하고 있으며, 불순종할 때는 징계가 따름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여호수아서로부터 열왕기서에 이르는 6권의 책은 그러한 신명기 신학의 사관에 따라 이스라엘의 흥망 성쇠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순종과 불순종의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타락했다가 징벌을 받고 회개하고 구원을 얻고, 또 얼마 있지 않아 타락하고 징벌을 받고 다시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과정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 6권의 책인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들로 볼 때 신명기 사가들은 단순한 역사나 사건을 나열하여 소개하기 위하여 이 책들을 기록한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 과정 속에서 회개와 순종 그것을 통한 구원을 강조하고 있다.
5. 역대기 역사서
1) 역대기 역사서들
히브리어 정경인 역대기 역사서는 성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이스라엘 역사의 두 번째 책이며,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으로 통일하기 위해서 에스라의 첫 몇 절은 역대하의 끝 부분을 인용하여 덧붙여 두었다.
2) 역대기 역사서의 특징
역대기 역사서는 신명기 역사서와는 다른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서술 범위에 차이가 있다. 신명기 역사서는 그 서술을 가나안 정복 시대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에 반해 역대기 역사서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족보(대상 1-9장)를 보여 준다. 이는 이스라엘의 정체성를 부각시키기 위함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 역대기 역사서가 쓰인 시기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하여 동질성과 자기의식이 절실히 요구되었던 때였기 때문이다.
둘째, 역사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불순종했던 이스라엘보다 남유다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남왕국 유다가 참이스라엘이며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심은 예루살렘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셋째, 다윗 집안의 정통성이 변함없이 강조된다. 아울러 다윗 집안이 일으킨 예루살렘 성전과 그 제의에 대한 강조가 나타난다. 이는 백성들로 하여금 찬란했던 다윗 왕조를 회복하자는 희망을 갖게 한다. 시오니즘(Sionism) 사상을 부추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고레스 왕의 명령으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포로의 기간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주체성을 지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성전을 향한 열심과 재건에의 뜻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한마디로 성전과 제사의 중요성을 인식케 해주는 것이다.
6. 신명기 역사서와 역대기 역사서의 비교
1) 공통점
신명기 역사서나 역대기 역사서는 모두 이스라엘의 타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가져왔으며, 그로 인하여 회개가 필요하며 회개하면 구원을 입을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두 역사서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쓰여졌다고 할지라도 그 근본적인 주제는 같은 것이다.
2) 차이점
신명기 역사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함께 취급하며 소개하고 있는 반면, 역대기 역사서는 남유다와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신명기 사가의 시각이 선지자적이라 할 때 역대기 사가의 시작은 제사장적이라 할 수 있다.
역사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대한 순종과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알려 주고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그 죄악이 온 백성에게 미치듯이, 한 나라의 흥망 성쇠는 그 통치권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의 순종 여부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여호수아 개관
1. 저자에 관한 문제와 결론
1) 저작 연대의 문제와 결론
여호수아서는 저작 연대와 그 저자에 대해 많은 이견을 낳았다. 대체로 진보적인 비평학자들은 여호수아서가 유대 역사의 훨씬 후기에 여러 시대의 많은 문서로부터 편집되어 구성된 책이라고 추정했다.
대표적으로 벨하우젠(Welhausen) 같은 학자는 여호수아서를 바벨론 포로 후에 이스라엘을 재건키 위해 누군가가 민족 신앙과 부흥의 지침서로 상상하여 지어낸 책이라고까지 단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여호수아서는 주전 12세기 이전에 기록된 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첫째, 고대 히브리어 정경 자체가 여호수아서를 모세오경 바로 뒤에 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의심 없이 본 서가 모세의 죽음 직후와 사사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둘째, 고고학의 증명이다. 알브라이트(Aibright) 박사의 「팔레스틴 고고학」이라는 책에 '여호수아에 등장하는 고대 지명은 고고학을 통해 거의 사실임이 증명되었다'고 말한다. 그 성읍의 이름, 특히 여호수아 21장에 등장하는 레위족의 성읍들은 그 명칭이 주전 12세기 이전의 것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셋째, 여호수아서 자체가 그 당시 기록된 책임을 인증하는 내적 증거를 지니고 있는데, 돌무더기로 기념비를 삼는 풍습이라든지, 또는 '큰시돈' 등을 언급하면서 두로보다 시돈을 더 큰 성읍으로 말했는데(<수11:8; >수19:28,29), 이는 주전 12세기경 시돈이 페니키아 지방에서 두로보다도 더 번성했다는 사실과 부합되는 것이다.
또한 부족간의 영토 분할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증언은 그 당시 사람이 아니면 기록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몇몇의 예만 들더라도 본 서는 주전12세기 이전에 기록된 책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저자 문제와 결론
본 서가 여호수아가 기록하지 않고 후대의 편집인의 상상물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한 가지가 바로 여호수아의 사후(死後)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갈렙의 헤브론 지경의 정복은 <수15:13,14, >삿1:10,20에 일어난 일이요 그외에 옷니엘의 드빌 정복이나 단지파의 레센 성 정복 기사도 마찬가지이다(<수15:15-19; >삿1:11-15). 그러나 모세오경의 마지막 부분인 신명기 34장처럼 여호수아의 죽음이나 그 이후의 사건들은 그 후계자들이 추가로 기록하여 삽입한 것임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제사장 엘르아살과 그 아들 비느하스가 추가 기록자로 지목되고 있다(수24:33).
2. 본서의 도덕적인 내용에 대한 문제와 대답
1) 타민족에 대한 침공과 멸절의 부당성
우리가 일반적인 윤리 기준의 시각으로 볼 때 여호수아의 내용 중에는 섬뜩한 면이 있다. 자비의 하나님께서 평화롭게 거하던 팔레스틴(가나안 지역) 지역의 이스라엘 민족을 침공시키사 전쟁의 참화를 겪게 하고 또 그 부족들을 멸절하도록 명하셨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인해 예전부터 여호수아서의 정경성에 대해 혼란과 의구심을 야기시키는 난점이 되기도 했다. 사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민족의 분쟁 중 가장 난해한 문제가 이스라엘과 PLO(팔레스틴 해방기구)간의 갈등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시거나 무자비한 살육을 당연히 여기시는 분이신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2) 타협적인 의견들
이와 같은 의문과 물음에 대해 여호수아의 도덕성과 정경성을 수호하기 위해 타협적인 의견이 제시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인데, 첫째는 그 내용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즉 후대에 상상으로 꾸민 얘기이지 진정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어 왔다. 이 견해는 앞에서 저작 연대 문제와 관련하여 실효성이 없는 견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계시의 상대성을 언급하는 학자들도 있다. 즉 하나님의 명령과 뜻은 그 당시 사람들의 윤리와 도덕 수준에 걸맞게 상대적으로 계시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부족간의 침공과 약탈과 멸절이 당연시되었던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고 명하신 것을 도덕, 윤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3) 신앙적인 결론
그러나 그와 같은 회피적인 결론만으로 여호수아서의 도덕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서도 신앙적인 안목, 즉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섭리 안에서 관조해야 한다. 하나님은 일찍이 극에 달한 타락상을 보인 부족들을 천재지변을 통해 멸절하셨다.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절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거민들도 그 부도덕하고 야수적인 생활로 인해 그 땅에서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고하신 것이다.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레18:25) 낼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천재지변 대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심판하신 것뿐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후에 타락했을 때 열강을 통해 심판하신 것과 같은 섭리이다.
그 다음 멸절의 의미는 선민의 성장과 성결의 예방책이었다. 그들 가나안 거민들의 우상 숭배 풍습, 야수와 같은 도덕적 문란 풍습이 잔재하는 한 하나님 나라의 못자리와 같은 선민 왕국의 건설은 불가능하다. 결국 선민 이스라엘의 타락은 가나안 거민과의 혼합 생활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사사기는 증거한다. 이와 같이 구속사적인 섭리 안에서 회개치 않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심판 섭리의 일환으로, 또 하나님 백성의 보전을 위해 침공과 멸절의 방식을 명하신 것이다.
3. 여호수아서의 특징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는 영웅들의 역사라고 말한다. 물론 역사 전체의 개념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웅, 위인들이 역사의 기수 역할을 한 것을 인정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때 구약성경의 여호수아서는 그야말로 여호수아의 전기서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의 소명과 활동 그리고 죽음은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가나안 땅에 대한 언약 성취와 선민들의 승리적인 삶과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서는 하나님의 구속 섭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위대한 첫 예언서인 동시에 선민 이스라엘의 신앙적인 역사의 기원을 다루는 역사서로서 양면적인 가치를 지닌 책이다. 여호수아서의 가장 큰 특징을 이스라엘 역사상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전쟁의 역사' 라는 점이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 속에서도 아이 성 싸움에서 패한 단 한 번의 패전 외에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스라엘의 승리는 그들의 전술이나 무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해설
1. 여호수아서의 명칭
이 책의 제목은 모세의 후계자로서 하나님께서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정복 전쟁을 영도한 대지도자 여호수아의(Joshua) 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칠십인역(LXX)의 본서 제목인 '이에누스 나우스' (Iesous Naus ; 눈의 아들 여호수아), 벌게이트(Vulgate)역의 본 서 제목 '리메르 요수에' (Liber Josue ; 여호수아의 책)와 일치하는 제목이다. 이런 제목들은 모두 주 내용이 여호수아가 영도한 가나안 정복정착의? 기록임을 반영한 것이다.
2. 역사적 배경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시기는 청동기 후기 시대(B. C. 1550-1200)인 B. C. 1406년이었다. 그는 B. C. 1400년경에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였고, B.C. 1390년 이후까지 생존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시기를 B.C. 1300년 직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당시, 바로 아멘호텝 3세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였다. 대부분의 팔레스틴과 수리아 지방의 소왕국들은 애굽을 반역하거나 조공을 바치는 것은 그만두었다.
아멘호텝의 아들 악헤나텐의 통치시 수도였던 애굽의 헬 엘아마르나에서 발견된 설형문자들은 당시 통치자들의 공문서였다. 문서들 중 대다수가 인접 국가, 또는 용병에 대항하기 이하여 바로에게 도움을 청한 내용으로서 팔레스틴과 아람 방백들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다. 여호수아서에 애굽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는 아마도 애굽이 아멘호텝 3세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진군한 이후에 바로가 된 세티 2세까지 무력한 외교 정책을 수립하여 왔기 때문일 것이다.
3. 여호수아서의 내용
1) 여호수아 1-12장
1장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전 민족이 뭉쳐서 정치적, 영적 전쟁 준비의 마침을, 2장은 군사적 준비의 완료함을 보도한다. 2-5장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하나님의 이적의 도움으로 건너는 역사적 장면을 보도한다. 뒤이은 6-12장까지는 가나안에 진입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및 정착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가나안 전국의 주요 거점을 본격적으로 공격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할 때는 승리가,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패배가 있었음을 밝히 보여 준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과분한 승리를 얻은 이스라엘이긴 하지만, 아직 완전 정복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분명히 밝혀 두고 있다.
2) 여호수아 13-21장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일단 가나안 땅을 각 지파별로 나누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 편에 서서 악한 무리들과의 전투에 가담하면 훗날 천국에서 자신의 기업을 받을 것을 우리에게 강력히 교훈 하여 준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주요 거점을 정복하여 기본적인 정착 거점을 확보하게 되었고, 여호수아는 점점 노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제는 단일 지도자의 지휘 아래 전 민족이 함께 정복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각 지파가 지역을 나누어서 세부 정복 사업을 개별적으로 펴나가는 것이 더 효율적인 방법임을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일단 가나안 땅을 각 지파별로 나누게 되었다.
3) 여호수아 22-24장
이 부분은 이스라엘이 이제 정복하고 나눈 이 가나안 땅에서 영원히 평화롭게 정착하기 위한 단 두 가지의 조건으로 여호수아가 땅 분배 직후 발생한 요단 동편 지지파들의 제단 사건 및 자신의 임종과 관련하여 제시한 사실을 강조한다. 그것은 출애굽은 물론 가나안 정복 전쟁까지 이기게 해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신앙과 한 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12지파의 단결이었다.
4. 구속사적 의미
여호수아서의 저작 동기는 약속을 지키시는 여호와의 신실성을 보여 주는 데 있다.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는데, 여호수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되었다.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생활하면서 선민으로서의 역사 전개해 갈 삶의 터전을 하나님의 과거의 약속과 그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현재의 도우심으로 마침내 얻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여호수아에 나타난 이스라엘이 상징하는 것은 구약교회이다. 그들은 신약 구속사의 중심인 우리 신약 성도들의 선구자로서 구약 구속사의 주역들인 것이다. 그들의 가나안 땅을 구약 구속서의 전개를 위한 공간과 배경이 되었고, 이것은 하나님의 오랜 언약의 성취로서 현대 성도들에게 실로 큰 의미를 준다.
사사기 개관
1. 사사기의 명칭과 저자
1) 명칭
본 서는 히브리어 성경에 !yfpv(쇼페팀)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이 뜻은 지도자들 혹은 사사들이라는 뜻을 가진다. 즉 여호수아로부터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려 왔던 지도자들로부터 그 명칭을 얻은 것이다. 쇼페팀이란 문자적으로는 재판관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것은 왕이 없던 시대에 이스라엘의 각 지파별로 일어나는 분쟁들에 대한 재판을 하며, 비세습적으로 이어지는 자리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즉 사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지도자로서 그리고 재판관으로서 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2) 저자
본 서의 저자에 대한 유대교의 전설을 보면 "사무엘은 자기의 이름을 지닌 책과 사사기와 룻기를 썼다."라고 기록하면서 본 서의 저자가 사무엘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삿17:6; >삿19:1)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사무엘을 본 서의 저자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무엘이 본 서의 저자라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본 서의 내용이나 문체나 구성을 보면 한 사람이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기록도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삿1:21에 보면 예루살렘에 여부스 족속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울의 통치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록 연대는 주전1050-100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기간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이나 다윗이 다스리던 기간이다.
2. 사사기의 특징과 중심 사상
1) 특징
사사 시대는 배교와 불신앙 그리고 패배의 사건들이 순환되는 순환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에 대해 순종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승리케 하신다는 약속을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앞에서 갖은 악을 행하였다(<삿2:11; >삿3:7-12).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민족에게 대적들을 보내신다(<삿2:14; >삿4:2). 이스라엘 민족은 대적들로부터 고통을 당하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신다(<삿2:16; >삿3:9).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사사기는 그저 암울한 시대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사사기의 사사 시대 속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배교와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해 주신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로부터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순종하여야 했다. 사사 시대를 통하여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을 알 수가 있다. 즉 왕이 없었으며, 이방신들을 섬기는 죄악이 난무하였던 것으로 보아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하나의 구심점을 잃은 상태였던 것을 볼 수 있다.
2) 중심 사상
본 서의 중심 사상은 이스라엘의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출애굽기에 와서 성취하셨다. 이 언약은 사사 시대에 와서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가나안의 주변 국가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그들이 서로 뭉쳐야만 했다.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여호와의 신이 임한 사사를 세워 구원케 하셨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버렸다. 그들의 삶 속에 이제는 사악한 우상 숭배의 삶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타락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타락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통하여 용서하시며 새로운 삶을 주시었다. 즉 사사기는 그저 이스라엘의 암울한 상황만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한없이 용서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사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3. 사사기의 기록 내용과 목적
1) 기록 내용
사사기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불 수 있다. 첫째로는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착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였다. 즉 사사 시대의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한 것이다(삿1:1-2:5). 두 번째로는 각 지파별로 나오게 된 사사들의 활동 사항들을 기록하였다(삿2:6-16:31). 세 번째로는 사사 시대에 있어서 두 가지 사건-우상 숭배 사건과 베냐민 비류들의 만행 사건-을 다루고 있다(삿7-21장). 즉 이방인들로부터 받는 이스라엘의 압제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세워 구원시켜 주신다. 사사기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민족의 타락과 그로 인한 징계 그리고 회개와 구원 그리고 또다시 타락하는 과정의 연속을 다루면서 그 속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2) 목적
사사기의 목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먼저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가져온 결과로 왕정 정치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배반과 배교가 끝없이 순환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용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압제와 구출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사무엘 시대에 예언자 제도를 낳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사사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그분의 계명을 굳게 지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며, 만약 언약의 관계를 인간 스스로가 파괴하게 되면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4. 사사기서가 주는 의미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도우신다.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또한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인간들의 마땅한 본분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며 그 언약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행해질 때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다.
해설
1. 기록 연대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사기의 기록 연대를 사울이나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었던 때로 추정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사기에서 네 번이나 기록된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삿17:6; ><삿18:1; ><삿19:1; >삿21:25)라는 말씀이다. 이 말은 본 서의 저자가 사사기를 기록할 당시 왕이 통치하던 왕정 통치의 기간인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사사기가 기록되어질 때에도 여부스 족속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삿1:21). 여부스 족속이 예루살렘에서 다윗 왕이 등극한 후 최초로 쫓아낸 족속이다. 다윗왕은 당시의 시온 성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그 성 이름을 개칭하여 다윗 성이라 불렀다. 바로 이 지역이 예루살렘 지역인 것이다. 따라서 사사기의 기록 연대는 다윗 왕이 여부스 족을 쫓아내기 이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셋째는 가나안 족속이 게셀 땅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삿1:29). 게셀 땅은 애굽 왕 바로가 자신의 딸을 솔로몬의 아내로 주면서 선물로 이스라엘에게 준 땅이다(왕상9:15.16). 이 같은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사사기의 기록 연대는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하기 이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정경에서의 위치
구약성경은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로 구분이 된다. 사사기는 예언서에 속하는데, 에언서에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 예언서는 가나안 정복 개시에서부터 B.C. 586년에 예루살렘 함락시까지 하나님의 경륜하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서이다. 사본에 따라서는 룻기가 사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있고, 따로 독립된 명칭으로 실려 있는 것도 있다.
사사들의 활동 시기는 대체적으로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부터 엘리 제사장 시대까지로 잡는다. 또한 다른 학설에는 사울 왕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자리잡을 때까지로 보는 이 학설이 더욱 타당성이 있다. 그 이유는 엘리 제사장 이후에 사무엘까지를 사사로 인정하기 때문이다(<삼상4:18; >삼상7:15). 이 학설에서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은 사무엘에 대한 기록이 사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무엘에 대한 기록이 별도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스라엘 왕국 설립에 중요한 역학을 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왕국 설립의 역사를 다룬 책에 기록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사무엘서와 사사기를 면밀히 살펴보면 두 책의 저자가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사사들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
1) 도덕적 결함의 실제
① 에훗의 경우 모압의 에글론 왕을 죽일 때에 정정당당하게 싸움을 해서 죽인 것이 아니라, 암살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즉, 에훗은 자객으로 묘사된 것이다(삿3:12-30).
② 겐 사람 하벨의 아내는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말뚝에 박아 죽였고, 이러한 행위가 칭찬 받았다(삿4:17-21).
③ 기드온은 미디안 군대를 멸하는 중에 자기 가족의 원수를 갚는 것이 묘사되어 있다(삿8:18-21). 입다는 암몬 자손과 전투하러 갈 때에 경솔하게 서원 함으로 자신의 딸을 희생시키는 인격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삿11:1-12:7).
④ 삼손의 경우에는 이러한 인격적인 결함이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그는 나실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방탕하게 처신함으로 나실인의 세 가지 규례를 모두 어기었으며, 또한 이방 여인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음으로 정욕적인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삿13:2-16:31).
2) 이 문제에 대한 해답
첫째, 당시의 도덕적 부패상이다. 그 시대에는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수준이 매우 낮은 시대였다. 그 이유는 모세의 율법을 거의 잊은 상태였기에 종교적,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되어 있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배교 행위와 성적 타락이 편만 하던 시대였다.
둘째, 성령의 역사에 대한 구약적 이해이다. 하나님께서 사사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이유는 이들의 도덕적 결함을 치유하기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구약에는 사사들의 도덕적인 성품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계시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셋째, 하나님의 주권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만약에 사사들이 본래부터 능력이 충만하여 능력을 나타냈다면 이들의 공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불완전하고 겁쟁이고 연약한 사람들을 택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을 물리치셨다. 이러한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룻기 개관
1. 저작 시기
룻기의 저작자와 저작 시기에 대해 「탈무드」(Talmud)와 「바바 바드라」(Baba Bathra)에서는 사무엘이 사무엘서와 사사기 그리고 룻기까지 기록하였다고 한다.
학자들간에는 룻기 내에 아람어 문체가 있다고 하면서 룻기의 저작 시기를 포로 시대 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도 하다. 룻기 내에 간혹 아람어의 문체가 있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초기의 구약 문서에는 아람어풍의 문서들이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될 것이 없다. 룻기 내에 다윗 족보의 출처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룻4:18-22) 이 책의 작품연대가 포로 시대 후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며, 그보다도 훨씬 이전의 작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룻기의 작품 연대가 만일 포로 시대 후의 산물로 추정된다면 다윗 이후의 왕에 대한 기록은 그후시대에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2. 저작 목적
룻기의 저작 목적에 관해 많은 학자들은 흥미를 가진 이야기식 문체로 문학적 가치를 보여 주기 위한 책이라고 서평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경이 유대인들의 역사만이 아닌 이방인들의 역사를 이어 주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유대인들에 의하면 룻기는 케투빔(Kethu-bim) 혹은 성문서 가운데 일정한 위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오순절 기간에 읽히는 의식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고, 이러한 사실은 여러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도 관련된다.
3. 문학적 특징과 역사성
1) 문학적 특성
룻기와 에스더서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문학의 양식과 소재는 정서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소설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에스더서와 가장 비슷하다. 특히 정경의 분류상 역사서로 구분되어지나 여호수아와 사무엘상부터 느헤미야까지처럼 수사법적인 문체를 구사하지 않으며, 표현력에 있어서도 소설적 가치성이 높다.
2) 역사성
요세푸스(Josephus)는 본 서를 고대의 히브리어로 된 정경 중 사사기의 한 부분(삿 17-21장)으로 보고 있다. 칠십인역(LXX)에도 유대교의 전승과 같게 본 서를 독립된 책으로서가 아닌 사사기에 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대인들에 의하면 본 서는 히브리어로 된 구약의 3개 부분 중 마지막 부분에 속해 있는 케두빔(Kethubim)과 헬라어로는 성문법이라 밝히는 다섯 권의 두루마기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된다. 룻기는 다윗의 혈통을 중심으로 하여 이스라엘 왕통의 근거를 나타냈으며, 원시적인 통치의 세계와 왕정 통치를 이어 주는 고리가 된다. 본 서에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사건은 위대한 왕의 혈통이 유다 족속에서 이어진 것이라는 점이며, 따라서 에스더처럼 사실적인 주인공의 이름에서 그 제목을 취하고 있다.
4. 룻기의 신학과 구속사
1) 룻기의 신학
본 서는 사사 시대 동안 믿음의 빛이 되었던 사람들의 생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갖게 해준다. 한 모압 여인의 신앙을 들어 다윗의 혈통을 보여 주며, 다윗의 증조모가 된 모압 여인 룻이 어떻게 다윗의 혈통의 근원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제시해 준다.
특히 룻기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신학의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첫째,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대상을 막론하고 전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설파하신 구원의 보편성을 시사해 준다(막16:16). 그리고 둘째, 하나님께서는 섭리의 역사를 이루시는 데 있어서 낮고 천한 모압의 한 여인에게 은혜를 내리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룻기의 주인공은 룻기를 이어가는 모압 여인이라기보다 흐름 뒤에서 숨어 섭리하시는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2) 룻기 속의 구속사
룻기에 나타나는 인물의 중심은 상징적인 것으로서 기업을 무를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룻과 보아스의 결혼을 통하여 다윗의 혈통을 잇게 됨을 암시한다. 특히 룻이 고난 속에서 기업을 무를 보아스와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은 이 땅에서의 교회의 승리와 궁극적인 구원을 예증한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인류에게 자신을 내어 주셨다. 사망으로 형벌을 받을 자들에게 이스라엘의 고엘 제도처럼 우리에게 천국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다. 룻이 보아스와의 결혼을 통하여 기업을 무른 것이 고엘 제도에서 온 것처럼 우리에게 고엘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천국을 기업으로 주심으로 우리는 영원한 삶의 희망을 얻게 된 것이다.
5. 구속사적 의미
성경의 역사 가운데 룻의 가정을 통하여 고난과 환난 속에서도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깨닫을 수 있다. 성경에 나타난 율법서에서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는 것조차 금지하시며(신7:3), 모압인과 암몬 사람조차 이스라엘 회중에 오는 것을 금하셨다. 그러나 본 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고엘을 상실한 보아스에게 룻이라고 하는 이방 여인과의 계대 결혼을 통해 고엘을 삼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시고, 고엘 되시는 그리스도를 약속하심으로 룻의 가정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하신다. 인류 역서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내하는 신앙인에게 삶의 승리와 영광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본 서를 통하여 계시하시고 있는 것이다. 룻은 마태의 족보 속에도 그리스도의 한 조상으로 영광스럽게 명시되어 있다(마1:5). 룻처럼 믿음 안에서 거룩한 의지와 인내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의 길을 걷는 성도들은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다.
6. 내용 분해
Ⅰ. 헌신적인 룻의 사랑(1-2장)
1. 룻의 결심(1:1-22)
2. 룻과 보아스의 만남(2:1-23)
Ⅱ. 보상받은 룻의 사랑(3-4장)
1. 룻의 간청(3:1-18)
2. 룻의 상급(4:1-22)
해설
1. 룻기의 저작시기에 대한 이론
현대 자유주의자들은 룻기를 편집된 것으로 인식하여 그 연대를 포로 시대 후기로 보았으며, 현대주의 신학 비평가들은 책의 내용과 형식을 예로 들면서 연대를 포로 시대 전으로 보았다. 그러나 룻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본 서의 저자는 다윗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이었고, 그 연대도 B.C. 1,000년 이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룻기는 역사성을 부인하여 본 서를 한 단편 소설로 취급하는 어떤 이론과는 달리 문장의 미와 섬세함을 갖춘 하나의 문학적인 형식을 띤 엄연한 정경임을 확신하여야 한다.
1) 언어학적 증거
첫째, 자유주의자들은 룻기 속에 아랍 사상과 후기 히브리어의 특성을 포함한 단어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히브리어의 형태와 단어가 고대 히브리어와 다른 시기였음을 보여줌으로써 기록 연대가 매우 이른 시기였음을 증거해 주고 있다. 특히 룻기의 문학과 법은 분명히 사무엘 시대의 형태와 단어들에 근접하다.
둘째, 룻기의 단순성, 간결성, 진실성 등은 이스라엘 초기 문학의 특징임을 확신한다. 또한 룻기에 포함되어 있는 언어들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셋째, 혈연자의 직무는 분명히 이른 시기이다. 즉 혈연자가 신발을 벗어 주면서 포기하는 것은 수혼 제도가 성문화된 후대와는 분명히 구별된다는 것이다.
2) 고대 문서의 증언
유대의 전설적인 문헌 「바바 바드라」(Baba Bathra)에 의하면 사무엘은 그의 책(사무엘서) 뿐만 아니라 사사기와 룻기도 기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보아스가 낳은 오벳이 다윗의 증조부라는 사실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3) 정통적 입장
룻기의 배경은 이스라엘에 통치자 없었던 사사 시대임이 분명하다(삿1:1)는 이론이다. 룻의 가족들은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잠시 동안 모압 나라로 이주하였다. 사사 시대에는 이방 나라와의 상호 교류가 있었으며 또한 통상 교류를 비롯한 도구들의 제조와 기술의 교류가 있었다. 따라서 룻의 가족이 잠시 이방 나라로 이주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포로 시대 전/후에는 이방인과의 결혼뿐만 아니라 이방 종교에 대해서도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룻기에는 이방인과의 결혼은 물론 신앙의 상호 관용적 입장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룻기의 연대는 사사 시대와 사무엘 시대 사이인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2. 룻기의 목적
1) 보편주의(Universalism)
선민의식에 강하게 사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에게 신앙과 진리에 굳게 선 이방 여인 룻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더욱이 그녀가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을 더욱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매우 보편적임을 알게 되는데, 하나님은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순종하며 진리에 굳게 선 사람을 들어서 귀하게 사용하신다. 즉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인종이나 그 밖의 이성적 사고에 의해 제한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2) 친절(Friendship)
룻기에는 나오미에게 행한 룻의 친절이 잘 드러나 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건과 친절한 행위에 대한 귀감이 된다. 즉 룻은 나오미에게 해야 할 자신의 의무를 잊지 않았고, 엘리멜렉에게도 그러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죽은 남편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하여 보아스에게 결혼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3) 다윗의 족보
룻기의 또 다른 목적은 다윗의 족보를 열거하는 데 있다. 즉 룻을 포함한 다윗의 조상들을 언급함으로써 앞에 나타날 다윗 왕의 경건한 조상들을 전기적으로 기술하려고 의도했던 것이다. 따라서 룻기의 최고의 목적은 족보의 열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수혼 제도의 언급(Levirate marriage)
룻기에는 그 밖에 수혼 제도에 대해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죽은 남편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하여 남편의 형제들에게 결혼을 요구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결혼 후에 출생하는 첫째 자녀는 바로 죽은 자의 자녀가 되어(신25:5) 대를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가 창세기 38장에도 언급되어 있다.
5) 하나님의 절대주권
룻기의 가장 귀중한 진리는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인데, 본 서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 주권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진행되었다. 또한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간섭하시는데, 이것이야말로 진리 중의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사무엘상 개관
1. 명칭
히브리 맛소라 성경은 사무엘상/하의 이름을 분리하여 각기 다른 이름으로 정하지 않고 두 권을 통합하여 하나의 이름, 즉 '사무엘의 책들'이라고 불렀다. 이렇듯 한 권의 책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사무엘서는 헬라어역인 칠십인역(LXX)에 와서 비로소 두 권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모음 없이 자음만으로 되어 있던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함으로써 책의 부피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칠십인역자는 사무엘서를 상/하로 나누어 '왕국 제1서'와 '왕국 제2서'(The First and Second Books of Kingdoms)로 불렀고, 열왕기상상/하는 '왕국 제3서'와 '왕국 제4서'(The Third and Fourth Books of Kingdoms)로 불렀다. 고대 이탈라(Old Itala)역과 벌게이트(Vulgate)역 역시 이러한 칠십인역의 구분에 따라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각각 두 권씩 분류하였다. 그 명칭은 칠십인역의 명칭과 달리 사무엘 상/하는 '열왕 제1서'와 '열왕 제2서'로 열왕기상/하는 '열왕 제3서'와 '열왕 제4서'로 칭하였다. 이러한 분류법은 영역성경과 한글개역성경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영역성경은 사무엘서를 '제1, 2사무엘'로 칭하였고, 한글개역성경은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로 분류하였다. 한편 사무엘서의 명칭이 사무엘의 이름을 따라 불리운 것은 사무엘이 본 서 첫 부분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사울과 다윗 왕에겐 기름을 부어 준 위대한 선견자였기 때문이다.
2. 저자와 시대적 배경
1) 저자
본 서의 저자는 미상이다. 단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첫째는 사무엘이 저자라는 견해이다. 하지만 삼상25:1에 그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기에 사무엘상의 첫 부분은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본 서를 다 기록했으리라 보기는 어렵다.
둘째로 다윗이라는 견해이다. 왜냐하면 본 서에 나타난 모든 사건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사람은 다윗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주장이다.
셋째로 선지자 생도 중 한 사람이 편집했다는 견해이다. 즉 <대상 29:29>에 나오는 '선견자 사무엘의 글' 과 '선지자 나단의 글' 그리고 '선견자 갓의 글' 과 함께 '야살의 책' 등의 자료들을 모아 편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견해들도 추측일 뿐 정확하지는 않다.
2) 시대적 배경
본 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윗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다윗에 관한 기록은 사무엘상 16장에서부터 시작되어 그의 죽음을 기록한 열왕기상 2장까지 계속된다. 따라서 본 서는 다윗의 40년 동안의 통치 기간이라 할 수 있는 주전 1011-971년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다윗은 40년 동안의 통치 기간 중 7년(B. C. 1004-1004년)은 헤브론을 중심으로 다스렸고, 나머지 33년 (B. C. 1004-971년)은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면서 이스라엘 전역을 다스렸던 것이다.
3. 기록 연대와 기록 목적
1) 기록 연대
기록 연대는 본 서의 저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바 저자가 미상이다보니 연대도 정확히 알 수 없고 단지 추측만 가능할 따름이다. 대체적으로 본 서의 기록 연대는 솔로몬의 죽음(B. C. 931년) 이후로부터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기까지(B. C. 722년)의 어느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본 서의 내용이 다윗 통치의 말기에서 끝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으며, 또한 삼상27:6에 분열된 이스라엘에 대한 암시적인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 서의 기록 연대를 솔로몬의 죽음 이후로 보고 있다. 그리고 본 서에는 B. C. 722년에 있었던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 없기에 B. C. 722년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2) 기록 목적
본 서는 본래 사무엘상과 함께 사무엘서라는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사무엘서라는 한 권의 책에서부터 비롯되어져야 할 것이다. 본래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의 왕정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부터 다윗 왕조가 수립되어 정착하기까지의 역사를 제시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동시에 본 서는 왕정 통치 제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또한 완전하고 이상적인 통치자로서의 메시야에 대한 대망을 암시하고자 하는 기록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편 다윗의 일생을 통하여 한 개인과 민족의 죄가 어떠한 결과와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경고하기도 한다.
4. 특성
본 서에는 세 가지 특성이 서술되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신정 정치가 등장하고 있는데, 조직적인 면에서 인간 왕을 세워 하나님께서 간접적으로 통치하는 형태가 나오고 있다. 사실 인간들이 요구한 왕정 통치는 불완전한 제도이다. 하지만 본 서에는 하나님께서 왕정 체제를 통한 간접 통치 방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곧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계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섭리에는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는데 앞으로 임하게 될 완전하고 불변한 메시야 왕국을 대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둘째는 인간 심령의 죄악성과 그 죄의 인과 응보를 보여 주고 있다. 다윗은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었으나 사무엘과 엘리처럼 하나님을 거역한 자식들을 갖고 있었다. 또한 성군이라 칭함받던 다윗도 음행과 살인을 범하였다. 다윗은 진실로 회개했으나 그 죄의 형벌을 매섭게 치루어야 했던 것이다. 즉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의 죽음, 장자인 암몬이 저지른 음행 그리고 아들인 압살롬의 반란 등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죄악 때문에 엄청난 비극을 맛보았던 것이다. 셋째로 다윗 언약이 기록되어 있다. 이 언약은 다윗에게 영원한 왕위와 나라를 약속해 주는 언약으로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예언해 주는 약속이었다. 한편 이 언약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확충시키고 있다.
5. 기본 사상
사무엘서의 기본 사상은,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민족의 삶 전체를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심판하시고 때로는 축복하시면서 당신의 예정하신 목적, 즉 세상의 빛이 되며 구원의 섭리를 성취하시기 위해 메시야를 예비시키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기본 사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몇 가지 부수적인 주제를 사용하셨다. 예를 들어 나이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범죄한 백성 위에 임박한 진노를 계시한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제사장과 은혜를 저버린 백성들을 심판하신다는 불변의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해설
1. 사무엘의 지파에 대한 해석
삼상1:1을 보면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역<대상 6:28, 33>을 보면, 사무엘은 분명히 레위 지파의 자손이다. 그리하여 위의 두 구절들이 사무엘의 지파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 모세오경을 보면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들처럼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고 12지파 중에서 48성을 얻어 그곳에서 살았던 것을 볼 수 있다.(민35:1-8). 따라서 사무엘의 아버지가 살던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도 특별히 레위 지파에게 준 성읍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사무엘은 에브라임 지파가 아니고, 레위 지파임을 알 수 있다.
2. 사무엘상의 특별 주제들
1) 인접 국가와의 관계
① 블레셋: 사사 시대 말에서부터 사무엘 시대까지 이스라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었던 그들은 헷 족속을 패배시키면서부터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대적 중의 하나로 부상하였다. 그들은 헷 족속을 패배시키고 애굽에까지 진출하려 하였으나 라암세스 3세에게 대패한 후 지중해 연안의 가드(Gath), 가사(Gasa), 아스글론(Ashkelon), 아스돗(Ashdod), 에글론(Eglon) 등에 거주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이들 지역에 거하던 블레셋 족속은 처음에는 지중해 연안의 제한된 지역에 만족했으나 점차 팔레스틴 동쪽으로 진출을 꾀하다가 결국 11세기가 시작되면서 이스라엘의 동쪽과 남쪽 지역으로 침공하여 사사 시대에는 단과 유다 지파의 여러 지역들을 차지하였고(<삿14:4; >삿15:11), 사사 삼손의 활약으로 다소 위축되기도 하였으나 사무엘 당시에는 에브라임 지파의 영역 깊숙이까지 침입하여 실로(Shiloh)를 파괴하고 법궤를 빼앗아 감으로써(삼상 4장), 결국 이스라엘이 사무엘에게 왕정을 요구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② 앗수르와 그외의 강국들: 이스라엘의 눈에 가시 같은 블레셋보다 실상 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족속은 앗수르인들(Assyrians)이었다. 이들은 블레셋이 헷 족속을 격파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B. C. 1200년경까지 헷 족속을 타도한 후 계속하여 티그리스 강 북쪽 주위의 온 땅을 정복하고 그 위세를 몰아 바벨로니아로 진군할 정도로 막강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영토 확장은 B. C. 1100년까지 중단되었다.
그 이후 다시 위세를 나타내려고 할 때, B. C. 1050-930년에 애굽 및 미타니 왕국과 헷 족속 그리고 아람 및 앗수르 나라들이 서로 세력을 견제하면서 서로 세력 다툼을 하는 동안 팔레스틴은 이들 세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주위 세력들의 배경으로 이스라엘은 왕정 시대가 출범하게 되고, 다윗 시대에는 이들을 지배하는 막강한 이스라엘로 성장하게 되었다.
2) 사울과 다윗의 전쟁
사무엘서의 특징은 거국적인 대사건의 기록과 개인적인 사소한 일의 동시적 기록이다. 사무엘서에 나타난 전쟁 기록의 대 부분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과 그 뒤를 이은 다윗과 연관되어 있다. 이 전쟁에 대해서 중요한 부분만을 고찰해 보면 암몬은 두 차례에 거쳐 공격을 했으며(<삼상11:1-11; >삼상14:47), 블레셋은 네 차례에 거쳐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삼상13:3,5-14:46; ><삼상17:1-54; >삼상31:1-6). 그리고 아멜렉의 침투(삼상 1-9장)와 모압, 에돔, 소바 등이 동맹이 되어 이스라엘과 대적이 되었다(삼상14:47). 다윗 시대에는 이방 민족들과 11차례의 전쟁 가운데서 모두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3) 사울의 왕국
사울은 이스라엘 왕정 시대의 최초의 왕이었다. 사울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멍에에서 구원하였을 뿐 아니라 주위 모든 국가들과 전쟁을 벌여 영토의 확장과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기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다윗과의 끝없는 갈등으로 인해 밖으로의 정복 사업에는 그리 활발하지 못하여서 그의 수도와 매우 근접해 있는 이방의 여부스마저도 정복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결국 사울과 아들 요나단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전사하므로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로 이양된다.
4) 다윗의 시대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었지만 그의 앞길이 그리 평탄한 것 만은 아니었다. 특히 사무엘상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정식 왕으로 추대되기 전까지의 방랑 생활을 기록하고 있다. 사울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피난 생활을 하게 되는 다윗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침으로써 얻은 높은 명성 때문에 사울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고, 그에게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피난 생활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처럼 사무엘상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정식 왕으로 추대되기 전까지의 피난 생활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하 개관
1. 서론
본 서는 본래 사무엘상과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칠십인역(LXX)이 사무엘서를 처음으로 두 권의 책으로 나누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본 서는 사무엘상의 연장선상 내지는 하권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사무엘서의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사무엘서는 사무엘이 역사의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본 서인 사무엘하는 다윗 시대의 찬란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유대 지역을 통치한 후 이스라엘마저도 다스림으로 명실상부한 다윗 왕국을 건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간음 및 살인 등의 범죄와 그로 인한 매서운 심판마저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2. 후대 기록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무엘상의 서두 부분부터 24장까지는 사무엘이 기록했고, 사무엘의 죽음 이후인 25-31장과 사무엘하 전체는 대상29:29을 근거로하여 나단과 갓이 기록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는 분명하지 않다. 현대신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달리 한다. 어떤 비평가들은 <대상2:26, 3:1>에 나오는 내용들을 통해 볼 때 사사 자신(사무엘)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일부 비평가 역시 사무엘상 일부(<삼상5:5, 8; ><삼상30:25; >삼상9:9)와 사무엘하 일부(<삼하4:3; ><삼하6:8; ><삼하18:18; >삼하21:2)는 후대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이 부분을 에스라가 삽입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견해는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으며, 실제로 사무엘서가 열왕기나 역대기가 씌여지기 이전에 존재했으며 고대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성경의 내적인 증거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성경의 열왕기와 역대기의 내용 중에는 명백히 사무엘서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불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무엘서의 많은 부분이 에스라에 의해서 씌여졌다는 고대 유대인들의 견해는 매우 타당하게 보인다.
3. 사무엘서와 오경과의 관계
수시로 하나님께 범죄를 저질렀던 사사 시대에는 모세오경에 언급된 여러 제사 의식에 대한 규례들이 대부분 무시되었다. 특히 사무엘서에 나타난 대로 그 당시에는 모세오경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습이나 사무엘 저자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무엘서에는 구약성경의 다른 책들보다 모세나 그의 글들에 대한 언급이 훨씬 적다. 예를 들어 모세라는 이름이 여호수아서에는 56번, 사사기서에는 3번, 사무엘서에는 2번, 열왕기서에는 10번, 역대기서에는 31번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모세의 율법은 사무엘서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4. 사무엘서가 주는 의미
사무엘서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 우리는 사울과 다윗의 생애를 통해 인과 응보는 반드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특히 다윗은 그가 지은 커다란 죄악 때문에 그의 집에 칼이 영영히 떠나지 않는(삼하12:10) 징벌을 받았다. 즉 그의 죄로 인해 그의 아들이 병들어 죽었고(삼하12:15-19), 그의 딸 다말이 오빠인 암논에게 강간당하고 암논은 동생 압살롬에게 살해당하는(삼하 13장) 엄청난 비극을 맛보았던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는 절대적인 순종이 요구된다. 다윗은 자기 생각대로 소가 끄는 수레에다 법궤를 싣고 오려고 했으나 결국 웃사가 그 법궤에 손을 대었다가 죽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삼하6:6,7). 그러나 석 달 뒤에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 레위인들의 어깨에 메고 오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법궤를 옮겨 올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될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셋째, 진실된 회개가 필요하다. 부정한 간통과 배신, 살인에 대한 형벌이 무겁게 다윗을 억눌렀다. 이때에 나단 선지자가 작은 암양 새끼에 대한 비유로 그를 질책하자 그는 진실로 회개의 눈물을 흘렀다. 그라 시편 51편에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회개의 노래를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잘못과 죄를 의식적으로 회개의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회개의 간구를 해야 됨을 깨닫게 해준다.
넷째, 자비(선)를 베풀 줄 알아야 한다. 다윗은 자신이 신뢰하고 아꼈던 압살롬이 죽자 그가 비록 자기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반란을 일으켰던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한다(삼하18:33). 그는 또한 의형제를 맺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었다(삼하9:6-8). 그리고 웃사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께 속죄의 제단을 쌓음으로써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는 것을 방지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자비로운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
5. 내용 구성
본 서는 사울에 이어 왕으로 즉위한 다윗의 생애을 서술하고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본 서는 다윗의 승리와 그의 죄 그리고 죄의 결과로 맺게 되는 다윗의 재난 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본 서를 약간 세분화해 본다면 첫 단락은(삼하1:1-5:6) 다윗 왕의 즉위를, 두번째 단락은(삼하5:7-6:23) 다윗 왕권의 확립을 기술하고 있다. 세 번째 단락은(삼하7-10장) 다윗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을, 네 번째 단락은(삼하11-20장) 다윗 왕의 범죄와 고난을 기록하고 있다. 끝으로 다섯번째 단락(삼하21-24장)에서는 다윗 왕의 말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6. 사무엘하를 통한 언약
다윗은 구약성경의 인물들 중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주권적인 하나님의 섭리로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도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연약한 인간인지라 패역한 범죄를 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진실된 회개로 용서함을 받았으며 항상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 열정을 소유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서 훗날 이스라엘의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특별히 그는 다윗 왕조에 대한 언약을 받게 되었다. 이 언약으로 북이스라엘과는 달리 남유다는 다윗의 왕조를 계승하였으며, 이 언약은 마침내 다윗의 자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이러한 구속사관을 지니고 있는 사무엘하는 다윗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애를 예고하고 있으며, 고난중에도 왕권을 확립하여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구하는 왕조의 역사는 십자가상에서 온갖 고난과 수난을 겪으시면서도 온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역을 깨닫게 한다.
해설
1. 사무엘하의 주제
1) 신권을 통한 왕정의 발전
다윗 왕정은 다윗의 개인적인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해 발전된다는 예 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의 창세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메시야의 예언적인 예시를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본문을 이해하는 데 있어 당시의 직접적인 상황과 본문에 관심을 기울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2) 하나님의 절대주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권하에서 일들을 추진하셨다. 이러한 관점은 사무엘하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니면서도 역력히 나타난다. 다윗은 죽음과 자신의 사이가 한발자국이라고 말하면서 여호와께서 지키시는 발걸음에서 자신의 생이 이어감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다윗 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므로 죄악을 저질렀을 때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하에 다윗을 징벌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이 가장 역력하게 나타난 곳은 다윗 왕을 통하여 창세기에서부터 예표된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다. 그리고 다윗 왕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야의 탄생을 성취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경의 역사속에서 자신의 주권을 한 번도 변개함이 없이 이루어 오심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을 바라보면서 만물의 찌끼만도 못한 인생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참다운 지혜이다.
3) 하나님의 의의 승리
객관적인 자료를 기준으로 역사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준엄한 공의가 일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방법과는 다르다. 또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인간의 시간표와는 다르다. 그래서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어떠한 일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섭리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하에는 사울 왕의 죽음과 다윗 왕의 등극, 죄악, 발전 등이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이루어지며, 또한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의하여 사람의 죽음과 삶을 이루고 계심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미약한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 만을 겸손히 섬기는 것이 지혜요 참 기쁨이다.
2. 저작 관점
1) 연대적 전기가 아님
본 서를 검토해보면 저자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하여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특정 인문에 대한 사소한 사항을 부각시켜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 반면, 역사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들에 대하여는 사소하게 지나가는 예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네 장에 있는 내용들은 앞장들에 언급된 사건들과 직접적으로 역사적인 연관성이 없다.
본 서의 저자는 연대적인 역사를 기록하기보다는 다른 의도에 의하여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 세상 왕국에서의 하나님 나라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에 의하여 통치되는 시기가 끝나고,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을 하나님이 세우시면서 하나님의 왕국은 세상 다른 국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가시적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이 왕국은 다른 이방 국가들을 이기고 결국은 승리할 것이라는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나 권력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이나 인간의 본성적 이기심과 오만함에 빠지면 하나님은 과감하게 그 왕국을 벌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 왕국의 통치자와 백성은 하나님 안에서 그분만을 섬기고, 그분의 뜻 안에서 그분의 기뻐하심에 따라 살 것을 명하셨다.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이 왕으로 세우심을 받았기에 선지자들은 왕의 곁에 두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는 발전되어 가며 종국에 가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하고 그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있다.
3) 구속사적 구조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통하여 영원한 계약을 체결하신다. 그것은 다가올 메시야에 대한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실현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 약속은 인간의 죄악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실함을 저버리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 약속을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일점 일획의 변함도 없이 완전히 이루셨고, 종국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다. 따라서 본 서의 저자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바라보면서 그분의 뜻을 따라 본 서를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열왕기상 개관
1. 명칭
열왕기서의 본래 히브리어 명칭은 !yklm(멜레킴; 왕들)이며, 열왕기서는 원래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지 않고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다. 열왕기란 명칭에 맞게 이 책들은 솔로몬 왕에서부터 마지막 시드기야 왕까지 유다와 이스라엘 나라 왕들의 생애를 통해 일어난 사건들은 기록한 것이다. 칠십인역(LXX)에서는 이 책을 제3왕국기, 제4왕국기로 언급하고 있으며, 한글개역성경은 열왕기라 명하고 상/하 두 권으로 분류, 편집하였다.
2. 저자와 기록 연대
열왕기의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아직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유대 전승 탈무드는 예레미야가 저자라고 말하지만 반대의 학설도 상당히 많다. 아마 포로기를 거치며 자기 민족의 역사를 후대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제1차 포로귀환 이전 한 익명의 편집자가 모든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했으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는 보다 많은 자료, 즉 솔로몬의 행장(왕상11:41),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왕상14:19), 유다 왕 역대지략(<왕상14:29; >왕상15:17) 등을 가지고 그의 시각에 맞게 열왕기를 기록했을 것이다. 열왕기는 주전 586년 유다가 멸망하고 모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고 남은 사람들이 유린되었던 후부터 주전 537년 1차 바벨론 포로귀환이 일어나기 이전의 어느 시기, 즉 주전 586-537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3. 배경
사울의 즉위(B. C. 1050년경)로 시작된 이스라엘 신정 왕국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번영하였으나, 곧 3대를 넘기지 못하여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다(B.C. 930년경). 다윗 언약을 간직한 남왕국 유다 그리고 10지파로 구성된 북왕국 이스라엘도 몇몇 선한 왕들의 시대를 제외하고는 하나님 앞에 내내 타락하여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상실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당신의 선지자들을 이 땅에 세우셨고 위로와 경고의 말씀을 주셨다. 그러나 끝내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의 심판을 행하시게 되었다. 그 결과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게, 남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 제국에게 각각 함락당하였다.
4. 내용
전반부에서는 택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권세나 번영이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윗 왕이 여러 전쟁들을 성공적으로 끝냄으로써 국경은 크게 확장되었고, 에돔, 모압, 암몬 같은 변경 국가들의 많은 영토가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 세력은 솔로몬의 통치 기간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솔로몬은 전쟁을 치룬 경험이 적지만 그의 통치는 내적으로 견고한 나라를 구축해 나갔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건축한 성전과 그의 궁전은 이웃 열방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후반부인 12장부터 이스라엘은 점점 기울기 시작하는데 솔로몬의 우상 숭배 허용과 지나친 세금 정책은 백성의 불만을 사게 되고, 그가 죽은 후 르호보암 때 두 나라로 분리되어 분열 왕국이 시작되었다. 열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를 토대로 세워졌기에 급격히 악화되었다. 왕비 이세벨은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의 종교로 공인하기에 이른다. 또 이세벨의 악한 딸 아달랴가 유다의 여왕으로 앉게 되자 유다의 영적 생활도 파괴되기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전반부에는 성전 건축과 성전 예배를 중심한 신정 정치를 부각시킴으로써 후반부의 분열 왕국 시대의 부패한 세속 왕정의 타락상과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왕국 분열이나 패망의 원인이 국력의 쇠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상 숭배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으며, 단순한 역사 사실의 나열이 아닌 여호와 신앙의 가부에 따라 역사가 결정된다고 하는 특수한 관점에서 역사를 편집/저술하고 있다.
5. 구속사적 의미
열왕기 속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 전개 섭리의 새로운 일면을 드러낸 점이 많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그의 선민과의 관계를 왕과 백성의 관계로서 계시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윗 언약을 통하여 장차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될 메시야 왕국의 특성을 어느 때보다도 더 명료하게 계시하셨다. 또한 끝내 불순종하던 남북 왕국의 멸망을 통하여 하나님과 선민간의 왕과 백성으로서의 관계 유지는 근본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은총의 결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인 선민들에게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순종과 그 말씀의 준수가 절대 요청된다는 구속사적 교훈까지도 보여 주신 것이다. 왕정 시대를 통하여 선민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불순종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 택한 이스라엘을 성실하게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에 그치지 않고, 바벨론 포로기를 거쳐 신약 시대까지 이르고 있다.
6. 타성경과의 연관성
열왕기와 역대기의 대부분의 장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국 시기의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다. 열왕기와 역대기는 전체적으로 같은 시기의 것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내용들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쓰여졌다. 열왕기와 역대기와의 관계는 요한복음과 공관복음과의 관계와 비슷하다. 둘 다 동일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러나 열왕기와 공관복음은 소견이나 해설 면에 더 많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왕국 시기 동안에는 선지자들의 영향이 컸음을 인식해야 한다. 분열 왕국 시기의 전반부에 나타난 선지자들은 구약의 어떠한 예언서도 쓰지 않았다. 이 가운데 엘리야와 엘리사도 포함된다. 그들의 선지자직은 예언서를 직접 쓴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같은 대선지자에게 계승되었다. 그러므로 열왕기는 예언서에 대한 배경이 되고, 반대로 예언서는 열왕기에 많은 빛을 던져 준다.
7. 내용 분해
Ⅰ. 통일 왕국 시대(1-11장)
1. 솔로몬의 계승(1:1-2:46)
2. 솔로몬 왕의 통치(3:1-8:66)
3. 솔로몬의 타락과 징계(9:1-11:43)
Ⅱ. 분열 왕국 시대(12-22장)
1. 남북 분열의 과정(12:1-14:31)
2. 두 왕의 남유다 통치(15:1-24)
3. 다섯 왕의 북이스라엘 통치(15:25-16:28)
4. 아합의 북이스라엘 통치(16:29-22:40)
5. 여호사밧의 남유다 통치(22:41-50)
6. 아하시야의 북이스라엘 통치(22:51-53)
해설
1. 기록 목적
1) 역사적인 목적
열왕기의 역사적인 기록 목적을 단순히 히브리 민족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기록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보이지 않는 통치자이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적 맥락에서 삶의 근원적 문제인 신정사(神政史)를 기록하려는 데 있다. 열왕기서는 많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기록들 가운데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흉하고 번영을 누렸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신앙과 순종의 결과이며, 반면에 나라가 쇠퇴하고 패망하게 된 것은 여러 왕들을 비롯하여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우상 숭배한 결과임을 말해 주고 있다.
2) 교리적인 목적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던 열왕기 저자는 자기 나라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크게 나타났음을 가르쳤다. 그리고 율법의 약속과 경고들이 하나도 어김없이 성취된 사실들을 기록함으로써 백성들이 순진하던 옛 신앙과 순종의 자세로 돌아갈 것을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함께 포로 되어 온 종족들에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세우신 그들과의 언약을 준수하고 유일신 하나님을 끝까지 섬기며 살 것을 권면하고자 하였다.
3) 기독론적 목적
열왕기서가 쓰여진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법, 곧 신명기적 율법과 모세 율법의 완전한 성취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또 따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 법칙을 이스라엘 역사의 왕정과 백성들의 삶을 통해서 나타내려는 것이다.
2. 특징과 구조
1) 특징
열왕기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열왕기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역사의 핵심부를 신명기적 신학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역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으로 이루어진 역사이며, 또 그것은 궁극적으로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법칙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열왕기서는 그 어떤 계명보다도 우상 숭배에 대한 계명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으며, 우상 숭배를 가장 극심한 죄악으로 단정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명기와 동일한 맥락을 이루며 그 문체에 있어서도 거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둘째, 열왕기와 역대기를 비교 검토해 볼 때 마치 공관복음과 요한 복음의 관계처럼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잇다. 역대기에서는 성스러운 계통적 역사, 즉 정통적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반면에 열왕기서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적 왕권적 흥망성쇠를 비교적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2) 구조
일반적으로 열왕기상 전반부는 솔로몬 왕의 통치에 관한 기록이고, 그 후반부는 백성들의 불순종과 환난을 기록하면서 남/북 두 왕국을 번갈아 서술하고 있으며 엘리야의 사역을 부각시키고 있다. 반면 열왕기하의 첫째 부분이 분열 왕국의 약 130년간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면(왕하1-17장), 후반부에서는 남왕국 유다의 135년간의 역사를 언급하고 있다(왕하18-25장).
3. 솔로몬의 통치
신정 국가의 본질은 평화이며 신정 국가의 가시적인 표현은 성전이다. 그러므로 성전이 솔로몬에 의하여 건축된 것은 평화를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그에게 합당한 일이었다. 열왕기에 묘사된 솔로몬의 모습은 솔직하고 정확하며, 그의 왕국의 위대했던 사실들의 묘사는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여 한층 더 확실히 입증되고 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예배함에 있어서 처음에는 열심이었으나 말년에 이르러서는 이방 여인을 첩으로 삼으며 여호와의 성전을 우상 숭배의 터전으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일부 신학자들은 열왕기서 저자가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칭찬하고 있으나 반면 솔로몬이 신명기적 율법을 위반한 데 대해서는(우상 숭배) 분하게 여기고 있다.
4. 열왕기서가 주는 의미
열왕기서는 신정 국가의 역사가 바벨론 포로 당시까지 계속 된 것을 기록하려 하고 있다. 유다 왕은 삼하7:12-16에서 다윗에게 베푸신 약속을 따라 연단을 받았고, 북쪽 이스라엘 왕들은 모두 정죄를 받았으니 이는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가 그들 후손에게도 계속하여 임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왕기서는 초기의 역사적 선지자주의를 연결시키는 책으로써 엘리야와 엘리사의 예언적 사명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남쪽 유다 왕국에 관하여는 다윗의 표준에 충실했던 왕들을 특히 저자가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죄할 일이 있으면 분명히 정죄하였다는 사실과 또한 포로된 것도 하나님의 징계였다는 사실을 저자는 분명히 밝히려 하고 있다.
열왕기하 개관
1. 명칭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 원전에서는 열왕기상과 분리되지 않은 한 권의 책이었으므로, 한글개역성경에 명시된 열왕기하의 명명 과정에 대해서는 열왕기상의 서론에서 언급하였다.
2. 저자와 기록 연대
열왕기하는 주전 852-561년 사이의 사료를 제공해 준다. 그리고 본서에는 주전 538년 이후의 사실들이 기록되지 않았다. 주전 538년은 유대인들이 스룹바벨의 영도하에 바벨론으로부터 1차 귀환했던 해이다. 본서의 저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 사실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록 연대는 바벨론 1차 귀환 이전이 된다. 물론 히브리 원전에는 열왕기하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으므로 본 서의 저작 연대는 열왕기상과 함께 주전 561-537 사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3. 배경
열왕기상/하는 원래 히브리 원전에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으므로, 그 기록 내용의 관련 연대나 범위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열왕기상과 동일한 집필 동기와 배경을 갖고 있다. 참고로 당시 주변 강대국들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고대 최강국이었던 이집트가 쇠퇴하면서 이스라엘 주변에는 이렇다 할 강대국이 나타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주전 730년경 앗수르가 갑자기 강성해지기 시작해 주전 722년에 사르곤 왕이 북이스라엘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한편 앗수르의 남쪽에 바벨론의 세력이 서서히 확대되기 시작했는데, 느부갓네살 왕 때에 이르러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와 앗수르의 연합군을 무찌르고 최강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느부갓네살은 곧이어 팔레스틴을 침공했고, 예루살렘을 세 번씩이나 공격하여 마침내 주전 586년 남유다를 정복하였다.
4. 내용
전반부는 남북 왕국이 서로 공존하다가 북왕국이 먼저 앗시리아에게 주전 722년에 함락됨으로써 분열 왕국 시대가 종결될 때까지, 즉 주전 840-722년 사이의 남북 왕국 각각의 역사를 번갈아 가며 다룬다.
왕을 중심으로 하자면 북왕국은 제8대 왕 아하시야로부터 마지막 제19대 왕 호세아까지의 역사이다. 그리고 남왕국 유다는 제5대 요람 왕때부터 제12대 아하스 왕 때까지의 역사이다.
이런 일련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은 계속 오래 참으시며 사랑의 보호와 심판의 경고를 주심으로 백성들이 돌아올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남북 왕국이 공히 범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늘 남왕국 유다에 대해서는 더 기회를 주셨고, 또한 징계도 약하게 주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윗 왕가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 옛날 다윗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다윗 왕가의 왕권을 연결시켜 주심으로 결국 다윗 왕가를 영원한 왕가로 삼아 주시겠다고 하신 언약의 말씀을 성실히 지키기 위함이었다.
후반부는 일단 북왕국이 앗수르에게 하나님이 심판으로 함락된 이후에, 그래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각된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남유다 왕국은 잔존하였지만 그들도 역시 타락하여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즉 주전722-586 년까지의 136년간의 역사를 이룬다. 왕을 중심으로 아야기하자면 제12대 아스하에서 제20대 히스기야 시대까지의 역사이다.
본 서의 특이한 점은 이러한 인간의 타락을 통렬하고도 여실히 드러내시는 하나님이 유다 왕국의 멸망이라는 결정적 심판을 가하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은 결코 멸절시키지 않고 선민의 역사를 계속시키심을 강조하고 있다. 열왕기하는 주전 970-840년경까지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대에서 분열 왕국 초기의 역사를 다룬 상권에 이어 주전 840-586년까지 남북왕국 후기 역사를 보도하고 있다.
본 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할 때까지의 남북 완조의 역사를 다루는 전반부 1-17장과 그 이후 주전 586년 남왕국 유다까지도 바벨론 왕에 멸망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후반부 18-25장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본 서는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 이르는 대부분의 주요 선지서의 시대적 배경을 이루고 있음에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5. 구속자적 의미
다윗 왕조 사람들도 북왕조 사람들처럼 타락했고 부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왕조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즉 예수 그리스도에까지 이어질 다윗 언약과 그를 통한 구속사의 성취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라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향하여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던 엘리사 등의 선지자들과 타락한 선민 국가의 종교를 개혁하며, 또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히스기야나 요시아 같은 선한 왕들은 택한 성도에게 선지자요, 왕으로서의 사역을 담당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해 준다.
6. 내용 분해
Ⅰ. 남북 분열 왕국 공존 시대(1-17장)
1. 아하시야의 북이스라엘 통치(왕상22:51-왕하1:18)
2. 여호람의 북이스라엘 통치(왕하2:1-8:15)
3. 요람과 아하시야의 남유다 통치(왕하8:16-9:29)
4. 예후의 북이스라엘 통치(왕하9:30-10:36)
5. 아달랴와 요아스의 남유다 통치(왕하11:1-12:21)
6. 여호아하스와 요아스의 북이스라엘 통치(왕하13:1-25)
7. 아마샤의 남유다 통치부터 북이스라엘의 멸망 까지(왕하14:1-17:41)
Ⅱ. 남왕국 유다의 잔존 시대(18-25장)
1. 히스기야의 남유다 통치(왕하18:1-20:21)
2. 므낫세, 아몬, 요시아의 통치(왕하21:1-23:30)
3. 여호아하스의 유다 통치와 애굽의 포로됨(왕하23:31-34)
4. 여호야김의 유다 통치와 바벨론 제1차 포수(왕하23:35-24:7)
5. 여호야긴의 유다 통치와 바벨론 제2차 포수(왕하24:8-16)
6. 시드기야의 유다 통치와 바벨론 제3차 포수 및 남유다 멸망(왕하24:17-25:21)
7. 그달리야 총독의 유다 통치(왕하25:22-26)
8. 여호야긴의 석방(왕하25:27-30)
해설
1. 열왕기하의 주제 및 특징
1) 주제
열왕기상의 중심 내용이 성전 건축과 왕국의 분열이라면 열왕기하의 중심 내용은 성전의 파괴와 왕국의 멸망에 관한 사건이다. 즉 열왕기하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되고, 이스라엘과 유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각각 멸망당하여 포로로 잡혀간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열왕기하의 주제는 '율법 준수에 따른 축복과 율법의 거역에 대한 저주' 라고 할 수 있다.
2) 특징
열왕기서는 선지자적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선지자들의 활동 및 사역이 크게 부각되어 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이 그 대표적인 경우로서, 그들은 선민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모든 우상과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다. 따라서 열왕기서는 남북 두 왕국의 멸망 원인이 바로 그러한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리고 열왕기서는 선민 이스라엘을 통치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신정사적(神政史的) 차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열왕들의 업적 및 선악을 판단함에 있어 그 기준이 하나니의 말씀과 언약 준수 여부에 따라 결정되었다. 즉 선의 기준으로는 '다윗'을, 악의 기준으로는 '여로보암'을 들고 있다. 또한 열왕들의 말씀 순종 여부에 따라 왕국의 흥망성쇠가 바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다.
2. 열왕기하와 그리스도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파괴당하고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와 지식층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 이 당시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천하고 연약한 사람들이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애굽으로 피난 갔다. 이처럼 견고한 이스라엘의 지상 왕국은 멸망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다윗 언약(삼하7:12-16)을 통해 약속하신 것처럼 이스라엘의 남은 자(the Remnant)들을 통해 영원한 위(位), 곧 메시야 왕국을 소망케 하셨다. 한 때 사악한 왕후 아달랴가 다윗 가계를 완전히 진멸시키고자 시도했으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다윗 혈통은 보존되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언약대로 다윗의 가계를 통해 탄생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외쳤던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은 장차 이 땅에 성육신 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연상시킨다.
3. 열왕기하가 주는 의미
열왕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들인 열왕들의 역사를 선지자의 관점에서 기록한 선지자적 역사서이다. 저자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하에 있는 이스라엘 열왕들의 순종과 불순종의 여부에 있었다. 열왕기상에 있어서 열왕기하에서도 이런 저자의 관점을 가지고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의 행적으로부터 사마리아의 함락을 거쳐 예루살렘의 함락과 바벨론 포수까지 이스라엘 남북 열왕들의 역사를 추적하여 기록하였다. 그리고 언약을 저버리고 멸망과 심판을 향해 달리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배교 및 쇠퇴 과정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타락과 배교의 역사 가운데서도 당신의 종 엘리사를 통하여 은혜를 베푸셨고,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어 택한 백성을 깨우쳐 그들의 타락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은혜와 자비를 베푸셨다. 따라서 열왕기하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이 비록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당하나 만일 죄로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면 구원과 회복을 받게 됨을 알려 주고 있다.
4. 열왕기서에 사용된 자료들
열왕기서의 저자는 솔로몬 행장(行狀) (왕상11:41), 유다 왕 역대 지략(왕상14:29),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왕상14:19) 등의 문헌들을 자료로 사용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외에도 열왕기서가 기록될 당시에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에서 살았던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책들도 자료로서 사용되었다.
5. 왕국 분열의 역사적 배경
왕국이 분열하게 된 것은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하여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스라엘 각 지파 사이에 누적되어 있던 불화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한 솔로몬에 의해 비로소 징계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솔로몬의 왕위를 계승한 르호보암은 각 지파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가졌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는 백성들의 탄원조차 듣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로 잠재되어 있던 각 지파들간의 반발감은 더욱 격화되어 결국은 왕국 분열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역대상 개관
1. 제목과 저자
1) 역대상의 제목
히브리 맛소라 성경에 의하면 역대상과 역대하는 원래 한 권의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은 !ymyh yrbd(디브리 하야밈)으로 이 말은 곧 각 시대의 말들(words of days)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주전 3세기경 칠십인역이 편집되면서 오늘날의 성경처럼 상하 두 권으로 나뉘었는데, 그 때 이 책의 제목을 paraleipomena(파랄레이포메나)라고 칭하였다. 그 뜻은 '간과한 일들' 또는 '빠뜨린 기록들' 이란 의미인데, 곧 열왕기서에서 빠뜨린 것들을 보충한 책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역대기서가 두 권으로 나뉘게 된 이유는 다니엘 봄베르그(Daniel Bomberg)에 의해 히브리 성경 초판(A.D. 1511-1517년)이 간행되면서부터였다. 즉 봄베르그는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성경 분류법 대신 칠십인역에 의거해 역대기를 두 권으로 나누었던 것이다.
2) 저자
역대기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본 서에 그와 같은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본문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제사장이자 학사이며 서기관이었던 스가랴의 아들 에스라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도 에스라가 에스라서와 더불어 역대기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역대기의 끝맺는 말과 사건이 에스라의 서론 및 첫 사건과 서로 연결된다는 것에 근거하는 것이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를 역사서의 한 부류로 분류하고 있는 점에서 더욱 신빙성이 있는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역대기의 저자는 각종의 시대적 자료와 기록을 자주 사용하고 있고, 또한 율법과 예배 의식에도 능통한 사람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역대기 저자는 제사장직 위치에 있으면서도 서기관과 관련이 있었던 자임을 우리는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에스라가 쉽게 부합되며, 많은 학자들은 이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2. 기록 연대와 목적
1) 기록 연대
에스라가 역대기의 기록자라는 전제에서 살펴볼 때 역대기의 기록 연대는 주전 450년을 넘어설 수가 없다. 기록 연대를 고찰해 보면 먼저 본문에는 주전 538년, 바사 왕 고레스가 반포한 유다인 포로귀환 허가 조서가 언급되어 있다. 또 주전 537년 유다인들을 이끌고 1차로 귀국한 스룹바벨과 주전 500년경 인물인 그의 두 손자 블라댜와 여사야가 언급되어 있음을 볼 때(<대상3:19, 21>) 역대기는 적어도 주전 500년 이후에 기록된 책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에사라가 팔레스틴으로 돌아온 때가 주전 458년이므로 이 연도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본 서의 기록 연대는 주전 450년경으로 귀결할 수 있다.
2) 기록 목적
역대기서는 제사장의 압장에서 신정 체제의 재건을 촉구하기 위하여 역사를 사술하고 있다. 역대기서가 쓰여지던 당시는 에스라가 모세 율법을 재확립하려는 정열을 가지고 바벨론에서 팔레스틴으로 돌아온 때였으며,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함께 성전 제사 회복에 힘을 쓰던 시기였다. 그러나 유다 총독 느헤미야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성벽재건 사업은 진전이 없었으며, 따라서 모세의 율법도 확립되어 있지 않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역대기의 저자는 신정 체제의 재건을 촉구하기 위해 이 책을 기술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본 서의 저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였던 열왕들의 영광을 부가시킴으로써 다시금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3. 주제
역대기는 아담에서부터 시작하여 주전 538년 고레스 왕의 칙령이 내릴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역대기는 그 내용에 따라 3기로 구분되는데, 제1기는 아담에서부터 다윗의 즉위까지이며, 제2기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기, 제3기는 솔로몬 사후의 분열 왕국에서부터 고레스의 칙령이 반포되는 시기까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역사의 서술에서 역대기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였던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를 경외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기대할 수 있으며 만약 하나님의 기대대로 살지 못할 경우 바벨론의 포로 생활과 같은 뼈저린 경험도 할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 서의 주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라는 대명제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명제에 따라서 역대기서 전채가 쓰여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중심 사상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거의 동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책이 있는데, 열왕기서와 역대기서가 바로 그 책들이다. 그러나 이 두 책은 거의 동시대를 다루고 있다는 유사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 분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책들이다. 그 차이점은 이 두 책의 근본적인 역사관이 다르다는 것이다. 열왕기서가 분열된 남북 왕국의 역사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한 신명기적 역사관에 의해 서술되고 있다면, 역대기서는 오로지 유다 왕국만을 제사장 국가로 인정하고 그곳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역대기적 역사관에 의해 서술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다윗 왕국에 대해 전적으로 긍정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대기서는 이러한 제한된 관점으로 말미암아 그 내용도 한정적이며 자료도 많이 내포하지 못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하지만 본 서에는 시종일관 '여호와 중심주의' 라는 대요지가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주지해야만 한다.
5. 내용 분해
Ⅰ. 아담으로부터 다윗까지의 족보(1-9장)
1. 다윗에서 야곱까지(1:1-54)
2. 야곱에서 포로 시기까지(2:1-3:24)
3. 열두 족장들의 족보(4:1-8:40)
4. 예루살렘 거민들과 사울의 가계(9:1-44)
Ⅱ. 기름부음 받은 다윗(10-12장)
1.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등극(10:1-11:3)
2. 예루살렘 정복과 다윗의 용사(11:4-12:40)
Ⅲ. 다윗의 통치(13:1-29:21)
1. 다윗과 법궤(13:1-19:27)
2. 다윗의 정복 사업과 인구 조사의 죄(18:1-21:30)
3. 성전 건축의 준비와 레위인의 직무(22:1-26:32)
4. 다윗의 말기(27:1-29:21)
Ⅳ. 솔로몬의 등극과 다윗의 임종(29:22-30)
해설
1. 역대서의 책명
역대기가 오늘날과 같이 역대기(Chronicles)로 불리우기 시작한 것은 초대 교부였던 히에로니무스 때부터였는데, 그는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역대기를 가리켜서 크로니콘(Chronicon), 곧 '흐름의 사건들의 책'이라고 명명하였다.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의 역사적 입장에서 생략된 것들이 하나님의 경륜적 입장,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의 관점에서 필요한 것들로서 기록되었다.
2. 역대서의 특징
흔히 같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선지자적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기술되었다고 한다. 반면 역대서는 제사장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내는 의미에서 기술된 것으로 본다. 즉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역사적으로 사건 중심으로 기술되었으며, 사건 자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역대기서는 역사의 사실 자체에 중점을 두지 않고 그 사건에 부여되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의 흐름을 중점 삼아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역사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단순히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 왕국 시초부터 다루지 않고 아담부터 다루고 있다. 이는 인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과 경륜을 이루어 가심을 함축하고 있다.
② 사무엘서나 열왕기서가 이스라엘 역사, 남왕국과 북왕국 사건을 중심으로 고루 다루고 있는 반면, 역대서는 남왕국 유다 왕국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다윗 왕가를 정통성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을 나태내고자 하신 뜻이 담겨 있다. 이 다윗 왕가는 육신적으로 그리스도의 육신적 계보가 되고(<마1:1-18; >롬1:3), 그리스도가 다윗 왕좌에 올라 성도들을 다스리신다(<눅1:32, 33>).
③ 다윗 왕계를 중심한 역대서는 하나님의 종들의 실수보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 면을 중심으로 기술되어진다. 예를 들어 다윗이 왕으로 위임된 장면과 그 수하들의 언급(대상11:1-13:14), 궤 이동시 다윗의 찬양(대상15:1-16:43), 우리아의 아내로 인한 다윗의 실수의 언급이 없음(삼하11:1-27), 성전 건축에 대한 열성과 준비 및 성전 섬기는 자들의 배열(대상22:1-26:3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다윗의 유언(대상29:1-22), 르호보암의 왕권 계승(대하9:22-31), 유다 왕국 중 가장 흉폭하고 불의 왕 중 하나로 꼽히는 므낫세 왕이 하나님의 징계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고난당하는 것과 그가 회개하여 하나님께 자폭하고 돌이키는 것(대하33:10-19),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귀환 선고(<대하36:22, 23>) 등이다.
3. 역대서의 자료
역대기서 안에는 필요한 보충 자료가 될 만한 것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①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견자 나단의 글 그리고 선견자 갓의 글(대상29:29).
② 선지자 나단의 글과 실로 사람 아이야의 예언 그리고 선견자 잇도의 묵시책 곧 잇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 대하여 쓴 책(대하9:29).
③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 (<대하6:11; ><대하25:26; ><대하28:26; >대하32:32).
④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대하27:7; ><대하35:27; >대하36:8).
⑤ 이스라엘 열왕기(대하20:34).
⑥ 이스라엘 열왕의 행적(대하33:18).
⑦ 열왕기 주석(대하24:27).
⑧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기록(대하26:22).
⑨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대하12:15).
⑩ 선지자 잇도의 주석책(대하13:22).
⑪ 하나님의 아들 예후의 글들(대하20:34).
⑫ 호새의 사기(대하33:19).
위의 많은 자료들이 역대기서에 기술하는데 직접적으로 인용되고 참고되었다는 언급은 없다. 그러나 이런 자료들이 역대기서에 기술되고 그 내용들이 참조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4. 역대상의 저작연대에 대한 변론
일반적으로 본 서는 B.C. 450년경 에스라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 후 기술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일부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본 서가 그보다 더 후반대에 기록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혹자는 B. C. 350-400년경으로, 어떤 사람들은 B. C. 250-200년경까지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후반대에 기록되었다는 증거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거절되어진다.
① 본서의 언어와 흐름의 정신이 이를 거부한다. 본 서의 언어는 에스라와 느헤미아의 것들과 유사하다.
② <대상 3:17-24>에 근거하여 후대설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본문만으로는 기록 연대를 정확히 산출할 수 없다.
③ 에스라와 느헤미아의 저작 연대를 같이 늦추어 기록 연대를 후대설로 잡는 것도 역사적 이치에 맞지 않다.
역대하 개관
1. 저자
유대의 전승은 에스라가 역대기의 저자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역대기의 용어를 대체로 에스라의 일반 시대에서 온 것으로 보고 저자를 유대 전승과 같이 에스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랑게(Lange)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것을 고레스 왕이 허락하는 칙령을 역대기 끝에 기록하였고, 대상3:19-24에 스룹바벨의 6대 손들을 열거한 것으로 보아 스룹바벨 이전에는 역대기가 기록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에스라 시대 이후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에스라의 저자설을 부인하며 에스라서의 저자에 대해 "그는 바사 왕조의 말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제2성전의 레위인이며, 특별히 음악에 깊은 조예를 가진 음악가였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더불어 그의 직무를 항상 수행한 사람이었다"고 확신한다.
2. 저작의 시기
저자 문제와 같이 기록의 시대적 배경을 찾는 데도 상당한 논란이 있다. 주전 450-400년을 저작 시기로 보는 학자들이 있는 반면, 역대기, 이스라, 느헤미야가 통일된 한 권의 책이 아니며, 바사 시대의 말기나 희랍 시대 초기에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대설을 주장한다. 그래서 에스라서도 에스라가 기록한 것이 아님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3. 주제와 기록 목적
1) 주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역대하 전체에 흐르는 주제이다. 역대상에서 다윗을 통한 신정 국가가 확립되고 나서 역대하에서는 솔로몬을 통한 신정 국가 완성 및 유다 열왕들의 통치를 중점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역대하를 통해 저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를 경외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기대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천명한다. 이미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 멸망과 포로 생활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한 사실이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백성들에게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2) 기록 목적
제2차 포로귀환민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에스라는 고국의 암담한 현실을 목도하였다. 에스라는 동포들에게 신정 사회 재건을 촉구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신정 체제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불어 넣어줄 필요성도 느꼈다. 역대기는 이와 같은 목적하에 지난날의 유다 왕국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4. 저작과 기록 의도
일단 저자는 다윗 가문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서 아울러 성전 건축과 왕궁 건축을 언급하여 솔로몬 왕궁의 화려함을 말하려 하였고, 솔로몬과 요아스와 아마샤의 우상 숭배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부정적인 면을 삭제 하려 했다. 그러나 유다 말기 왕들의 실정을 자세히 기록함으로 저자의 어떤 특정한 의도를 말해 주고 있기도 하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찬란한 역사가 이어지지만 배교의 시대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벌을 받는다고 하는 사실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지시키기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예배와 예배의 직분에 특별한 우선권을 두는 역대기의 특성은 레위적인 것이 의도되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모든 구원과 축복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5. 구속사적 의미
역대기 저자는 구원과 축복의 대상이 되는 하나의 백성을 목표로 설정함을 인정하게 될 때에, 그의 의도가 새로운 모습을 갖추는 영원한 나라를 염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저자는 이전의 다윗 왕국의 역사를 조명함으로써 새로운 다윗 왕국, 즉 메시야 왕국을 미리 내다보는 시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 메시야 왕국의 모습을 보여 주는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에서 허물 되고 수치스러운 모습을 삭제한 것은 찬란한 메시야 왕국을 위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기에 성전과 예배, 제사장들과 레위인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역대기는 하나님의 언약을 뼈대로하여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다윗의 그림자 그리고 솔로몬의 그림자와 그 후대의 왕들의 그림자를 통하여 겨냥하고 있는 것이며,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6. 타성경과의 연관성
역대하와 다른 역사서(사무엘서, 열왕기서, 에스라서)가 지닌 연관성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대하1:2-13, >왕상3:4-15
② <대하9:1-28, >왕상10:1-29
③ <대하21:5-10, 20, >왕상22:2-35
④ <대하21:5-10, 20, >왕하8:17-24
⑤ <대하26:1-4, 21-23, ><왕하14:21, 22 15:2-7>
⑥ <대하32:1-21, >왕하18:13-19:37
⑦ <대하36:22, 23, ><스1:1, 2>
7. 내용 분해
Ⅰ. 솔로몬의 역사(1-9장)
1. 솔로몬의 기브온에서의 엄숙한 자세와 그의 부귀(1장)
2. 성전 건축과 봉헌(2-7장)
3. 솔로몬의 통치와 종말(8, 9장)
Ⅱ. 르호보암에서 시드기야까지의 유다 열왕들(10-36장)
1. 르호보암(선지자 스마야) (10-12장)
2. 아비야(13장)
3. 아사(오벳의 아들 선지자 아사랴와 하나니) (14-16장)
4. 여호사밧과 선지자 미가, 예후(17-20장)
5. 요람(선지자 엘리야) (21장)
6. 아하시야(22:1-9)
7. 아달랴(22:10-23)
8. 요아스(여호야다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 (24장)
9. 아마샤(25장)
10. 웃시야(26장)
11. 요담(27장)
12. 아하스(선지자 오벳) (28장)
13. 히스기야(선지자 이사야) (29-32장)
14. 므낫세 아몬(33장)
15. 요시야(여선지자 훌다) (34, 35장)
16. 여호아히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36장)
해설
1. 역대기서의 위치
역대하 역시 역대상과 같이 바빌론 포로귀환민들에게 신정 사회 재건을 촉구하는 책이다. 역대상에서의 선민의계보, 다윗 언약을 통한 신정 국가 확립에서 포로 귀환까지 연속선상에서 제사장적 관점으로 쓰여진 책으로 상하권의 통일성은 어느 책보다 강하다. 우리는 종종 '열왕기서를 읽었으니 역대기서는 그냥 넘어가도 되겠지'하는 우를 범한다. 그만큼 역대기는 열왕기에 가려 빛을 못보고 소외당해 왔다. 이것은 열왕기보다 객관적이지 못하고 남유다에만 치우친 역사 서술로 인해 별로 많이 읽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대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성경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2. 역대하의 특징
역대하는 역대상과 함께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먼저, 왕과 제사장들을 강조한 사무엘서와 열왕기와는 달리 성전과 제사장을 강조하고 있고, 다윗과 솔로몬의 행적 기록 중 성전 건축 과정을 집중적으로 기록 묘사하고 있다. 또한 열왕기서가 남북 왕국을 객관적을 다룬 반면 본 서는 다윗 왕권을 계승한 유다 왕국에만 치중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쓰라린 역사 중에서도 그대로 유지된 신앙의 명맥과 개혁 운동 등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그리고 열왕기하가 유다의 패망 상태에서 끝나는 반면 역대하는 고레스의 포로귀한 조서 부분에서 끝남으로써 심판 역사에 뒤이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서광이 비침을 보여 준다.
3. 역대상과의 관계
역대기의 상하의 구분은 다윗의 죽음을 기점으로 하여 다윗 왕국에 관한 역사가 상권에, 솔로몬 왕국 이후에 관한 기사가 하권에 실려 있다. 역대상을 하나님 왕국의 형성사라고 하면, 역대하는 하나님 왕국의 몰락사로서 하나님 왕국의 회복 이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역대사에서는 다윗이 강조된 반면, 역대 하는 솔로몬의 치세와 이후의 열왕들의 역사가 남유다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하나님의 역사, 곧 구속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서 등장한 획기적인 인물이 다윗과 솔로몬이다. 다윗과 솔로몬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에 의해 왕이 된 인물들로 하나님의 통치의 대리자 곧 신정국의 통치자로서 전형적인 왕들이다. 따라서 역대기 저자는 이 두 왕을 앞으로 도래할 메시야의 모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4. 역대하와 그리스도
먼저 역대하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솔로몬 성전은 임마누엘 예수의 예표이다. 성전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라는 데 있었다. 물론 하나님은 전 우주에 편재하시지만 그곳을 특별히 하나님이 게시는 처소로 알고 거기서 하나님께 회개와 감사의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 성전은 바로 장차 도래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둘째로는 다윗 왕조를 통한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해서 예수의 메시야로서의 도래를 암시하는 다윗 언약의 보존이 역대하 전체에서 강력히 전개되고 있다. 미약했던 남유다의 다윗 왕조의 장구한 존속은 왕들이 동일한 범죄를 자행했음에도 더 많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이다. 분열과 패망 이후에도 민족적 존재를 유지하다가 다시 회복된 것은 실로 우리 주 예수에게까지 다윗 혈통을 보존하여 다윗에게 약속한 영원한 왕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이다.
5. 역대하서의 내용 요약
성전 건축 준비에 초점을 맞추었던 다윗의 치세를 중심으로 기록한 역대상이 이어진다. 먼저 전반부 제1-9장은 솔로몬의 즉위와 성전 건축 과정, 부귀를 누리는 모습을 상세히 기술함으로써 다윗 언약이 성취되어 가고 있는 모습과 제사장적 관점에서 성전 제사 제도의 부흥이라는 주제하에서 보도한다.
다음 제10-36장가지는 다윗 왕조를 이은 남왕조 유다를 중심으로 타락상 및 그 결과 성전 함락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지는 과정이, 그 당시 선민이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성전 제사 제도의 불이행 등 때문에 여호와를 행한 신앙의 상실로 징계 받아 심판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관점에서 기록되어 있다.
6. 멸망과 회복(대하36장)
본 서는 유다의 역사를 멸망으로 끝맺지 않았다. 말미에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기사를 실음으로 해서 귀환한 자들에게 구원의 새 소망을 주고 있다. 또한 순종-축복, 타락-심판이라는 신명기적 신학을 백성들에게 전달함으로써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다.
바벨론 포로 귀환이라는 제2차 출애굽을 경험한 저자는 출애굽 완성을 소망케 함으로써 구원의 완성, 즉 새로운 구원이 있음을 선언한다. 이것은 구약 전역사의 의미를 요약하여 진정한 메시야의 출현과 하나님 왕국의 본격적인 도래를 소망케 하려는 것이다.
에스라 개관
1. 제목과 저자
1) 제목
본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에즈라'로 불렀다. 그러나 에스라 2장의 내용이 느헤미아 7장에서 반복되며, 이 두 책이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닌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두 책은 별개의 것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헬라어 칠십인역에서는 본 서를 '에스라1서'라고 했으며, 라틴어 벌게이트역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에스라'로 칭하였다. 그러므로 본 서의 제목은 본 서의 저자인 동시에 중심 인물인 제사장 에스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2) 저자
에스라서의 저자는 지금까지 학사인 에스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에스라서에서 저자에 관한 정확한 언급이 없고, 문장도 1인칭과 3인칭이 섞여서 나온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서로 다른 몇 사람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탈무드의 기록에는 본 서의 저자를 에스라로 밝히고 있다.
또한 문장의 주어가 바뀌는 경우는 저자가 한 사람일 때도 나타나는 것으로서 고대 바벨론 문서나 다니엘서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에스라가 자신을 가리켜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 (스7:6)라고 부르는 것이 에스라 저작설에 대해 약간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이러한 묘사도 역사 문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오히려 에스라의 지식과 그 심오한 사상의 제시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본 서는 제사장적 관점에서 역대기와 비슷한 문체로 기록되었으며, 사건 묘사의 치밀성으로 보아서도 에스라의 저작인 것이 유력하다.
2. 기록 연대와 기록 목적
1) 기록 연대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와 역대기는 그 시대적 배경이 연속적이어서 기록 연대상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에스라서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① 후기 연대설: 에스라서를 느헤미야서보다 더 늦게 기록되었다고 보는 견해로서 비평주의적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모빙켈(Mowinckel)은 본 서의 기록 연대를 주전 200년경으로 잡았으며, 토레이(Torrey)는 주전 250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초의 비평주의자 학자들은 <느12:11, 22>에 나오는 얏두아가 요세푸스의 책에 나오는 알렉산더 대왕의 얏두아와 동일 인물임을 내세워 주전 30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② 전기 연대설: 이 견해를 따르는 학자들은 <느12:11, 22>에 나오는 얏두아가 요세푸스의 책에 나오는 얏두아와는 동명 이인이라고 주장하며 후기 연대설을 반대한다. 에스라서는 느헤미야의 귀국 후인 주전 444년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에스라서에서는 전기 연대설을 지지하며, 에스라가 느헤미야 때의 대제사장인 여호하난의 방에 들어간 기록을(스10:6) 통해 볼 때, 에스라서는 에스라 생애 말기인 주전 444년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2) 기록 목적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거의 같은 시기의 포로귀환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라나 느헤미야의 기록 목적이 유사하다.
에스라서의 기록 목적은 첫째, 포로귀환 이후에 벌어진 성전 건축의 역사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둘째, 성전 건축과 같은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에스라 3장에 나오는 성전의 기초 건축을 위한 백성들의 일치 단결(1절), 방해 세력에 맞서는 용기(3절), 자발적인 예물 헌납(4-7절), 조직적인 역할 분담(8, 9절) 등에 관해 기록되어 있다. 셋째, 70년이라는 바벨론 포로 기간과 포로귀환 그리고 성전 재건을 통해서 드러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포착될 수 없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3. 주제 및 특징과 구성
1) 주제 및 특성
본 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과 성전 재건이 주제를 이루고 있으며, 특징으로는 먼저 포로 후기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데, 느헤미야와 더불어 포로귀환 이후의 사건을 다루는 구약의 마지막 역사서이다. 또한 역대기와 느헤미야서와 유사하게 이스라엘 전통 종교의 회복을 염원하는 제사장직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와 신앙의 구심점인 성전이 재건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을 보아서도 이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에스라서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 관계가 강조되고 있다. 언약은 족장 시대 이래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포로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언약 백성들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돋보일 뿐만 아니라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이 강조되고 있다.
2) 구성
예스라서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의 조서로부터 시작된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의 포로 생활이 끝나고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약 5만 명에 달하는 귀환민들이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런 본 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반부(스 1-6장)와 후반부(스 7-10장)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에스라 이전의 사실에 관한 내용으로 주로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일어난 제1차 귀환과 귀환자의 명단(스1:1-2:70) 그리고 성전 재건의 시작과 중단, 재개와 완성(<스 3:1-6-22>)등이 기록되어 있다. 전반부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성전 재건이다. 후반부는 에스라 이후의 사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는 약58년의 공백 기간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여인과 혼인하는 등 신앙의 순수성을 상실해 갔다. 이런 시점에서 에스라 인도하의 제2차 귀환(스7:1-8:36)이 이루어졌고 그후 에스라의 종교개혁(스9:1-10:44)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언약 갱신이 완성되어 갔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해설
1. 에스라서의 저작 목적
에스라의 중요성은 서두에서 말하고 있는 저작목적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서는 히브리 사람들이 70년동안이나 포로로 잡혀 있다가 막 해방되려는 시기를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의 고레스 왕을 세우셨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하나님께 불복종하고 사악하므로 바벨론 사람들에 의하여 벌을 받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바벨론 역시 잔악하고 사악하므로 패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렘25:11-25).
이사야도 그 사건이 일어나기 백 년 이상 이전에 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사로잡혀 포로가 되고, 그 잔악하고 사악한 나라도 계속해서 패망할 것과(<사13:19, 20>),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고레스에 대해서(사44:28) 예언했다. 따라서 예스라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욱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민족들을 어떻게 주관하시는가를 명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이란 B.C. 605년에 처음 유대인들이 사로잡혀 갔던 때로부터 B.C. 538년 고레스가 칙령을 발하여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돌아온 때까지를 말한다.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서를 통해서도 에스라서의 연구에 도움을 얻을 수 있으며, 제1진으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의 운명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 두 권은 모두 귀환 초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최초의 총독인 스룹바벨 통치하에서의 성전 재건을 다루고 있다.
2. 저자와 저작 연대
에스라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역대기뿐만 아니라 에스라서의 저자를 제사장이자 서기관인 에스라라고 말한다. 에스라는 서기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학자였으며 모세 율법의 교사였다. 그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제2진의 귀환자들 혹은 대표관들과 함께 B. C. 457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최근 학자들 사이의 지배적인 견해는 어떤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혹은 연대기 편자가 역대기-에스라-느헤미야의 3부작내용을 참조하고 그외의 다른 많은 자료들을 모아서 역대기-에스라- 느헤미야 역사서의 한 부분으로서 에스라서를 편집하여 썼다는 것이다.
에스라서의 일부분은 이스라엘의 동쪽과 북동쪽에 인접한 나라들에 의해 사용되던 아람어로 씌어졌는데, 고대의 중근동에서는 외교적인 언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에스라서는 주로 일반적인 기록과 공식적인 문서의 필사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연결된 역사서와 함께 아람어로 되어 있다. 또한 유대 관리들이 바사 왕에게 보낸 서신이나 그 관리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왕의 답신과 칙서도 아람어로 되어 있다. 여러 가지의 역사적인 기록과 기자 작신이 쓴 연결된 역사서에서 취한 유다의 극적인 역사를 포함하고 있는 에스라의 나머지 부분들은 히브리어로 쓰여 있다. 에스라의 특징은 역사가들이 그것은 에스라의 개인적인 전기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점이며, 또한 그것은 그 저자가 원본에서와 같이 1인칭 대명사인 '나'와 '우리'로 썼다는 것이다. 그 책의 나머지 부분은 주로 3인칭으로 되어 있다. 에스라서는 책 속에 있는 것을 근거하여 볼 때 제사장이나 서기관인 에스라가 인도한 제2진의 귀환자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B.C. 457년 이후에 씌어졌음이 틀림없다. 더욱이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가 하나로 연결된 역사서라고 가정할 때 그 저작 시기는 더욱 늦어진다. 즉 연대기에 언급된 다리오 왕(Darius Codomannus B. C. 335-330)과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가 언급한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B.C. 336-323)의 시대만큼이나 늦게 저작되었다. 그렇지만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에 있는 역사와 관련된 주요 사건을 볼 때 유대인의 역사적인 에스라서는 그 저작 시기를 약 B. C. 432년까지 거슬러 생각할 수 있다.
3. 에스라의 특징
① 역대기서, 이스라서, 느헤미야서는 서로 연결되어 이스라엘 왕정 초기부터 왕정의 몰락과 회복의 전과정을 파노라마(Panorama)식으로 개관한 책이다.
② 선민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야기된 포로 생활을 하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귀환하여 새로운 신앙 공동체로 회복되는 과정을 묘사하였다.
③ 역대기가 솔로몬 성전 건축과 파괴를 줄거리로 진행된 반면, 에스라서는 스룹바벨 성전의 건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는 저자인 제사장 출신 에스라의 집필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느헤미야 개관
1.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주제나 문체의 유사성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에스라서와 본 서의 저자를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본문의 1인칭 화법 사용과 체험적인 내용과 목격에 대한 현장감 있는 묘사로 보아서 본 서의 주인공인 느헤미야가 본 서의 저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물론 느헤미야가 느12:26에서 '느헤미야의 때'를 회고하듯이 자신을 3인칭으로 묘사한 부분도 있다. 그러한 이것은 느헤미야가 동시대 인물들과 공직에서 은퇴한 후 과거의 행적을 회고하며 쓴 글인 것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2) 기록 연대
비평주의적인 학자들은 본 서를 에스라서의 저작 연대와 비슷한 주전300년경으로 본다. 그것은 느12:11,12에 나오는 얏두아를 요세푸스의책에 나오는 알렉산더 대왕 시절의 얏두아와 동일 인물로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서에 나오는 사건들이 주전 444년의 제3차 포로귀환에서부터 느헤미야의 제2차 귀국(주전 432년)까지 약 10년 사이의 기록인 것으로 보아서 본 서는 느헤미야가 총독에서 은퇴한 후인 주전 420년경에 과거를 돌아보며 기록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2. 기록 목적과 주제 및 특징
1) 기록 목적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와 같은 바벨론 포로 후기 생활과 포로귀환에 대해서 다룬 성경은 우리에게 비교적 생소한 편이다. 그 중에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유다 땅으로의 3차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중건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정착과 종교적 상황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리고 선택하신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이에 대한 순종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록하였다.
2) 주체 및 특징
본 서의 주제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종교개혁을 통한 예루살렘의 실제적 회복과 영적 회복과 영적 회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회개와 부흥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 서의 특징은 첫째, 회복의 책이라는 데 있다.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과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 언약의 갱신 등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 관계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이스라렐 백성의 성결에 큰 비중을 둔 책이다. 본 서나 에스라서는 한결같이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이방인과의 결혼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셋째, 언약 백성을 보호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드러내는 책이다. 이사야의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에 대한 예언(사10:21,22)이 하나님이 섭리하에 그대로 성취되는 사실이 본 서와 에스라서에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자들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Diaspora)의 수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인데, 그들이 결국 유다 땅으로 돌아온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3. 느헤미야의 구속사적 의의와 구성
1) 느헤미야의 구속사적 의의
본 서는 저자인 느헤미야가 바사 제국에서의 높은 지위를 버리고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온갖 고난과 수모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겪었다는것과 ' 회복'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 서는 에스라서에 이어 언약 백성의 귀환과 재건이라는 구속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성벽 재건과 언약 갱신을 통해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이 선민을 보호하고 보존하시는 놀라운 섭리가 드러난다.
2) 구성
이스라엘 백성의 부흥 운동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 할 수 있는 본 서는 에스라서에 이어서 구약 역사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그 당시는 바사 제국의 융성기요, 그리스와 로마도 서서히 세계 무대에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본 서에서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과 상황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본 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기록되어있다. 첫 번째 부분인 1-7장은 예루살렘 귀환과 성벽 재건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으로 주전 444년경에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과 성벽 재건 준비와 성벽 재건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번째 부분인 에스라가 주도한 언약의 갱신은(8-10장) 율법의 낭독과 해석 그리고 언약 갱신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인 언약 민족의 개혁(11-13장)은 백성들은 재 정착과 성벽 낙성식 그리고 백성들의 부흥 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4. 느헤미야가 주는 의미
3차에 걸친 바벨론 포로귀환 과정에서 마지막에 해당되는 3차 귀환을 주로 다룬 느헤미야서는 구약의 역사 중 맨 마지막에 해당된다. 느헤미야서 이후 그리스도가 나타나기까지 약 400년간의 공백 기간이 있다. 그러므로 본 서는 우리에게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신앙을 보여 주고 있다. 본 서는 성벽 재건과 부흥 운동을 통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우리는 여기에서 예루살렘의 현실적, 영적 회복을 통해 회복의 중재자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예표를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과 백성들의 부흥 운동은 우리에게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심을 보여 주며, 안일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5. 내용 분해
Ⅰ. 느헤미야가 주도한 성벽의 재건(1-7장)
1. 느헤미야가 에루살렘으로 귀환함(1:1-2:20)
2. 성벽의 증축(3:1-7:4)
3. 돌아온 백성의 계보(7:5-73)
Ⅱ. 에스라가 주도한 언약의 갱신(8-10장)
1. 율법의 낭독(8:1-8)
2. 백성들의 슬픔과 기쁨(8:9-18)
3. 백성들의 회개(9:1-38)
4. 언약서에 인침과 책임(10:1-39)
Ⅲ. 민족의 개혁(11-13장)
1. 지역과 인구의 재조정(11:1-12:26)
2. 새 성벽 봉헌식(12:27-47)
3. 백성의 부흥 운동(13:1-31)
해설
1. 느헤미야서의 특징
에스라가 역대기의 속편인 것처럼 느헤미야서도 에스라의 속편이다. 그 세 권 모두는 아마도 같은 저자에 의해 쓰여졌던 것 같으며, 하나의 연속적인 연대사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역대기가 앞 부분 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 책은 느헤미야에 대한 영웅적인 파란만장한 이야기와 에스라의 인도로 제2진이 도착한지 13년 만인 B.C. 444년에 포로로 잡혀 있다가 돌아온 제3진의 귀환을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왕에 의하여 유다의 새로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느헤미야와 그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바사의 수도인 수산에서 귀환한 반면에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사람들은 바벨론에 귀환하였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을 때 제사장이자 서기관인 에스라는 그의 성서인 율법서를 가지고 신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느헤미야의 주요 임무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예루살렘을 강한 도시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바사 왕으로부터 권위를 받아서 정부 비용으로 요새를 건립하고 전에 그 성벽의 건립을 연기하게 하였던 강한 이웃들의 적의와 음모에 저항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왔다.
원래의 히브리 성서는 느헤미야서와 에스라서가 한 권의 책이었다. 그것들은 원래의 히브리 성서를 헬라어 번역자들이 번역한 칠십인역에서도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고, A.D. 390-405년에 번역된 제롬의 라틴어역 성서인 벌게이트(Vulgate)역이 나왔을 때까지도 역시 한 권의 책이었다.
2. 저자에 대한 새로운 고찰
느헤미야서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유대의 전통에 의하면 역대기-에스라-느헤미야 3부작의 저자는 제사장이자 1서기관인 에스라였다고 하는데, 에스라는 모세 율법에 대한 뛰어난 작가이자 학자였으며, 자기 시대에 가장 특출한 교사이자 설교가였다. 그러나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 자신이 썼다고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느헤미야서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1인칭 화법은 주인공 느헤미야가 본 서의 저자라는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한다(<느1:1-7:5; ><느12:27-42; >느13:4-31). 뿐만 아니라 본서에 나타나는 생동감 있는 표현과 자세한 통계자료는 본 서의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본 서를 썼을 것이란 사실을 보여 주는 바 자료들을 참조하여 기록하였음이 확실하다(<느7:5-73; >느12:1-26).
3. 역사적 배경
느헤미야가 '술 맡은 자'의 신분으로 섬겼던 아닥사스다 1세는 에스더를 왕비로 삼았던 아하수에로(Xerxes)의 아들이었다. 아닥사스다 1세가 왕위에 오르기 8년 전인 B. C. 473년 3월 8일에 부림절이 제정이었다. B. C. 457년 봄에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의 축복을 받으면서 유대인들의 한 무리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듬해 봄까지 이방 민족들과의 결혼 풍습을 백성들 사이에서 근절시켰다.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은 에스라가 주도한 부흥 운동의 한 부분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분노한 르훔과 심새는 아닥사스다에게 재건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자 왕은 새로운 조서를 내릴 때까지 역사를 중지하도록 명했다. 이 조서를 손에 쥔 르훔과 심새는 아닥사스다에게 재건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자 왕은 새로운 조서를 내릴 때까지 역사를 중지하도록 명했다. 이 조서를 손에쥔 르훔과 심새는 예루살렘으로 급히 올라가 성벽을 허물고 성문을 불태우면서 강제로 역사를 중지시켰다(<스4:23; >느1:3). 느헤미야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 이유도 이러한 비극적인 소식 때문이었다. 느헤미야서는 B.C. 445년 12월에서 B.C. 425년까지 최소 20년 동안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B.C. 425년 무렵 느헤미야는 B.C. 433년 이래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예루살렘과 각지에 퍼지기 시작한 여러 가지 악습을 척결하고자 다시 귀국하였다.
4. 느헤미야 성벽재건의 신학적 의의
이스라엘의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통해 성전을 회복시켰으며,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권위를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 느헤미야는 성을 재건하고 유다 민족의 정치/사회적인 제반 여건을 충실히 재정리하였다.
폐허가 되었던 성벽이 재건됨과 동시에 그 성은 견고해져 가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하여 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불의는 하나님 말씀의 권능으로 제거되었다. 그러나 이 회복은 엄밀한 의미에서 온전한 회복이 아니었지만, 이러한 잠정적인 회복은 그리스도를 통한 완성된 삶에의 구원을 필요로 하며,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삶의 근원적 관계가 궁극적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느헤미야의 개혁적 회복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나타날 공의를 지칭하는 예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회복시킨 예루살렘 성벽은 장래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도래하고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에스더 개관
1. 저자와 역사성
1) 저자
본 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만한 증거는 없으나 어떤 역사가(Josephus)는 모르드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에10:2, 3 볼 때 신빙성이 없다. 또 에스라를 저자로 보는 학자들도 있는데, 이러한 주장 또한 신빙성이 없다. 왜냐하면 에스라의 주된 사상인 성별된 선민 사상과 에스더서가 나타난 사상은 차이가 있으며, 단어나 문체에 있어서도 에스라가 쓴 책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본 서의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저자는 페르시아에 있었으며, 주전 5세기 후반에 살았던 어떤 사람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역사성
본 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 아니라 이방인에 대한 복수심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본 서를 정경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본 서의 기록 목적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무지의 소산이라고 본다. 즉 외면상으로 나타나는 서술 방식과 그 모습에 근거하여 정의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것보다는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참된 신앙인의 삶과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사상을 보아야만 한다. 본 서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에1:3, 6; 에2:16)은 고고학을 통하여 그 사실성이 입증된 것들이다. 따라서 에스더서를 놓고 정경성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2. 에스더서에 나타난 예표론적 의미
1) 에스더와 그리스도
에스더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섭리를 인식할 수 있다. 유대 민족을 향한 사단의 증오 속에서 하나님은 유대 민족을 구원하신다. 이 구원 사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에스더는 온 인류를 온갖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로 예표 될 수 있다. 한나라의 왕후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 영화에 연연치 아니하고 자신의 백성들을 향해 죽을 각오(에4:16)를 한 채 왕 앞에 담대히 선 에스더를 통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신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갈 때 받은 사랑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심(빌2:9-11)을 나타낸다. 그리고 모르드개 역시 부분적으로 예수님을 예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은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은 부분(에3:2)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받으실 때 승리하신 모습을 예표한다고 볼 수 있다.
2) 하만과 적그리스도
많은 성경학자들은 사악한 하만이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미래의 적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본다. 그 근거는 에7:6에 나오는 '이 악한 하만'에 두고 있다. 즉 이 단어를 숫자로 환산하게 되면 적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666이 되기 때문이다(계13:18). 하만이 적 그리스도라고 하는 요소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하만은 한 나라의 큰 실권자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경배 받기를 원했던 것을 본다(에3:1, 2). 이것은 적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있는 권세를 나쁘게 사용하여 세상을 지배하며(계13:2),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 아래에 두기를 원하는(딤전3:6)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만은 자신에게 절하지 아니한 모르드개와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실패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그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자기와 연관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끌고 가게 된다. 미래에 나타날 적 그리스도 또한 이러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계11:19).
3. 기록 목적과 주요 사상
1) 기록 목적
본 서에는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나 기도, 성소 등이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내용 전체에 걸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다. 본 서에 등장하는 등장 인물들의 역할 가운데 늘 함께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즉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이 온 우주를 어떻게 통치하시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서는 늘 보호해 주신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많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이 세상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신앙을 소유하여야 할 것이다.
2) 주요 사상
본 서는 많은 세월에 걸쳐 윤리적인 면에서 공격을 받아 왔다. 왜냐하면 본 서의 내용이 신약성경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으며, 유대인의 적들에 대한 학살 사건이 잔인하게 다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서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적하는 대적자들이 누구이든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따라야 하며, 특히 선택된 백성들의 삶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축'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그 백성들의 신앙적 표현(에4:12-14; 에6:1)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본 서에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 선택된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은혜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음에 우리는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4. 에스더서가 주는 영적 의미
한 여인의 대단한 활약상을 통하여 드러나는 백성들의 구원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움이 있었다. 본 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직접적으로 깨우쳐 주는 선지자들이 없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선택된 백성들을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는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삶이 어둡고 고통스러울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의 진실한 모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감사하며 그분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해설
1. 에스더서의 역사적 배경
에스더는 룻기와 요나서처럼 짧은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바사 왕국의 세 수도 중의 하나인 수산 왕국으로 되어 있다.
그 이야기는 에스더에 나타나 있는 B.C. 483년에 시작하여 B.C. 470년에 끝맺는다. 이야기 속의 아하수에로는 바사의 크세르크세스(B.C. 485-465)왕이며, 그가 바로 그의 웅대한 육/해군 병력으로 B.C. 480년에 그 유명한 티모빌레와 살라미 전투에서 헬라인들과 싸웠던 왕이다.
이 책의 첫 장은 그 왕이 헬라 원정을 계획한 즉위 3년(B.C. 483)에 수산에 있는 왕국의 모든 지도자들을 모아 잔치를 베푸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헬라 원정을 떠나기 전인 B.C. 482년경 왕후 와스디를 폐위하고, B.C. 478년경 헬라와의 비참한 전쟁을 치루고 돌아온 후 유대 여자 에스더와 결혼을 했다고 나타나 있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사로 잡혀 있는 유대인들에 관하여 그리고 바사와 바사 왕국 남방에 있는 유대인들의 적들이 유대인을 어떻게 대우하였는가에 관하여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에스더서는 외국 땅 바사에 있는 동포를 위한 유대인들의 강한 충성심과 애국심을 주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이 책에 대해 대규모의 대량 학살과 심지어 멸절시키려는 증오와 위협을 받고 있는 유대인들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씌여진 역사적인 로망스(전기 소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이야기는 바벨론과 바사에 유배되어 있는 후기에 하나님께서 섭리하시어 이스라엘을 멸절의 위기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데 더 깊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 원전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하여 단 한 번도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그들이 호된 시련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나 간청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그런 목적으로 이 책이 씌어졌다는 것이 독자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을 보면, 매우 위험했을 때에 씌어진 것이라고 추정된다(단6:7-17).
유대인들이 그들의 하나님께 울부짖었다는 것을 쓰지 않으려고 매우 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가 왕후 에스더에게 말하고 있는 것(에4:14)을 통해 에스더가 그녀의 민족을 구하기 위해 보내어진 하나님의 도구였음을 알 수 있다.
2. 에스더서의 저작연대
에스더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저자가 누구이든간에 그는 바사 제국의 관습과 바사의 언어 그리고 왕궁과 궁전의 배치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에스더서의 저자는 에스더서에서 모르드개에 의해 쓰여진 기록뿐만 아니라 바사 제국의 역대 일기를 적어도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들이 에스더에 나오는 몇몇 사실들의 근거가 되었으리라고 추정된다(에2:23; 에6:1; 에10:2).
또한 그는 수도 수산에 있는 바사의 지도자들의 모임과 같은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를 잘 알고 있었으며, 에스더서의 끝에서 독자들이 그 이상의 사적을 알게 하기 위하여 그의 주요한 전기인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를 언급하였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시기적으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다. 즉 에스라서에 나오는 사건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B.C. 538-516년과 B.C. 457-444년에 걸쳐 일어난 이야기이며, 느헤미야서는 B.C. 444-432 혹은 B.C. 432년보다 조금 후에 일어났던 일이다. 에스더서에 관련된 사건들은 바사 왕 크세르크세스의 통치 기간인 B.C. 485-465년에 일어났던 일이며, 그 왕이 바로 에스더에 나오는 아하수에로이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 왕의 통치가 에스더서가 기록된 시기를 기준해서 과거였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언어적 표현(에10:2)이 있는 것을 볼 때 에스더서는 에서더서의 이야기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난 후대에 기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책의 저작 연대가 이 책에 기록된 사건이 일어난 시기보다 그렇게 뒤늦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저자가 크세르크세스가 죽은 후 약 30년 이내에 화재로 파괴되었던 궁전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그와 같은 자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시기의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더욱이 에스더서는 분명히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서와 문체가 비슷하며, 또한 유대의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그 저술 시기를 크세르크세스의 통치 기간(B.C. 462-464)이라고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