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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서 서론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가장 부담 없이 읽고 은혜를 쉽게 받을 만한 부분이 시가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가서 전체가 시로 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시적 운율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으며, 종교적인 교훈을 주로 담고 있다. 구약의 시가서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의 5권의 책을 의미한다. 이 시가서를 특별히 '지혜서'라고 하는데, 이는 시의 요소는 물론 일부의 부분은 지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가서에는 아름다운 시와 찬양, 지혜와 교훈의 말씀들이 잘 함축되어 나타나고 있다.
1. 시가서의 분류
구약성경은 많은 부분이 시로 되어 있다. 엄밀히 말할 때 구약의 약 1/3이 시로 되어 있으며, 포괄적으로 본다면 히브리어의 특성상 구약 전체를 시가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대부분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도우심을 노래하며, 종교적인 교훈을 주는 감동적인 시구(詩句)들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구약에서 시가서라 할 때는 주로 시편, 잠언, 욥기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맛소라 학자들이 현재의 성경을 편집할 때 위의 세 권만을 시가서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섯 두루마리 혹은 오축, 즉 아가, 전도서, 룻기, 애가, 에스더라고 불려지는 책들 중에서도 시가서로 분류할 때 큰 하자가 없는 책이 아가서와 전도서이다.
아가서는 그 의미가 '노래 중의 노래' 라는 뜻이며, 전도서 다른 시가서가 가지고 있는 지혜의 요소는 물론 시적인 장르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서에서는 분류상의 편의를 위해 기존 세 권의 책에 아가서와 전도서를 포함하여 시가서로 소개하고 있다.
2. 히브리 시가의 성격
1) 대구법(parallelism)의 발달
히브리 시에 있어서 대구법은 '의미상 운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사상의 균형이나 분배로부터 연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753년 성경 학자 로버트 로드(Robert Lowth)는 이러한 대구법의 형식을 유사식, 대조식, 종합식의 제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유사식 대구법(Synonymous Parallelism)은 비슷한 말을 사용해서 같은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며, 대조식 대구법(Antithetic Parallelism)은 뒷행에서 대조적인 사상을 반복하여 앞행의 사상을 강조하거나 확인하는 작시법이다. 종합식 대구법(Synthetic Parallelism)은 생각을 계속하여 표현하는 것으로서 뒷행 이하에서 첫 행에 무엇을 더하거나 그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 운율성
히브리 시가의 운율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대의 히브리 시그 인들은 시를 매우 정서적으로 썼으며 그 나름대로의 운율을 맞추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후대의 서양이나 헬라인들에게 있었던 것과 같은 엄격한 작시법 아래서 쓰여졌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3) 상징성
히브리 시는 함축적인 의미를 띤 언어들과 강한 상상력 혹은 숫자로 수식된 것이 많이 나타난다. 이렇게나 말들은 명유(明喩), 암유(暗喩), 전유(轉喩), 대유(代喩), 과장법, 두운법, 의인법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4) 반복법
히브리 시가의 대표적인 성격 중 하나가 반복법이다. 특히 히브리 시가의 반복과 운율은 그 구절을 배나 더 기억하기 쉽고 또 인상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복은 가나안 사람들이 즐겨 쓰는 하나의 기법이었고, 또 성경에 나오는 시들 중 몇몇 편이 반복적으로 강조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 반복법은 가나안 사람들이 사용하던 기법을 성경에서 자주 인용하였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3. 시가와 지혜 문학
구약의 시가서 중에 잠언, 욥기, 전도서 그리고 시편 중 일부(시 1, 37, 49, 73, 112, 119, 127편)는 지혜 문학으로 분류된다. 외경에는 솔로몬의 지혜서와 벤시락의 지혜서가 있는데, 이들은 정경의 지혜 문학을 많이 모방하고 있다.
1) 지혜의 어원적 분석
히브리어 h!qj(호크마; 지혜)는 고대 근동의 아카우디아어와 우가릿어의 어원과 뿌리를 같이 한다. 아카디아어의 지혜는 '하카무' (akamu)이며 우가릿어에 있어서의 지혜는 '하큼' (hkm)이다. 이 단어들의 뜻은 '어떤 사람을 성공시키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는 히브리인들의 이해한 지혜의 개념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있어서의 지혜는 주로 온전한 지혜를 지칭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고 생각되었다(사31:2).
2) 히브리적 지혜
일반적으로 지혜는 재치와 통찰력 그리고 올바른 판단력 등을 바탕으로 인간의 가치와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능력이라 정의 될 수 있다. 따라서 지혜는 지식, 즉 어떤 사물에 대한 명료한 의식이나 앎과는 구분된다. 그러나 히브리적 사상에서의 지혜는 현재 우리가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이 명확히 구분 지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잠1:7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한 것과, 잠9:10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라고 한 말씀을 볼 때 잘 알 수 있다. 히브리적 사고에 있어서는 지혜나 지식이 분리된 것이 아니며 서로 상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혜나 지식이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아울러 히브리적 사고에 있어서의 지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연유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소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로서 오는 것이다.
3) 히브리적 지혜의 기능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히브리인들의 지혜는 궁극적으로 종교적인 요소와 맞물려진다. 그러므로 지혜는 선과 악을 분별하는 절대적 확실한 수단이 되며, 악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며, 의로운 자에게는 상을 주는 근거가 된다.
4. 시가서의 편집
일반적으로 시편과 지혜서들이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추고 읽혀지기 시작한 것은 포로기 후기의 일로 여겨진다. 이러한 시가서는 많은 저자들에 의해 짧은 단편으로부터 시작하여 매우 오랜 역사를 두고 형성된 것이다.
특히 시편은 율법의 수여자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왕국 시대의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그 저자가 다양하다.
현재 시가서의 편집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시126, 137편)들로 미루어 볼 때 학사 에스라의 활동 시기와 그 이후의 시대로 봄이 가장 타당하게 여겨진다. 익명의 편집자에 의해 편집되고 정리된 시가서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지속되어감에 따라 서서히 그 가치와 영감성을 인정받고 결국은 정경으로 채택되어 읽혀지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5. 기록 목적
① 욥기: 시가서 중에 욥기는 '의인이 왜 고난을 받는가'라는 문제에 답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첫째, 하나님은 의인의 영혼을 순결하게 하며 강하게 하는 수단으로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생각과 그분이 하시는 일은 인간의 마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대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욥기를 기록했다.
② 시편: 본 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인생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시적인 고백과 기도와 찬양들로서 개인 신앙 생활에 위로나 교훈을 주며, 공중 예배 때 찬양의 책으로 쓰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또한 종교적인 깊은 경건의 내용들은 신앙인의 발전을 위한 지침서가 된다.
③ 잠언: 본 서는 그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신앙 생활에 필요한 가장 실천적인 지혜,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이를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 저술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율법들을 지켜 순종하는 것을 그 기초로 삼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표준대로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형통하리라고 말하고 있다.
④ 전도서: 본 서는 다른 시가서와는 달리 하나의 뚜렷한 목적을 보여 주기 보다는 전통이나 일관성이 없는 지혜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비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는 모순되는 것 같은 말들이 하나의 통일된 교훈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세상에 새로운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헛된 것 같으나, 우주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⑤ 아가서: 본 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아름다운 사랑을 통해 인간의 고뇌하고 순수한 사랑을 찬미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이런 사랑의 근원자이시며 완성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구약 성경의 형성사에서 시가서는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지만은 결국에는 정경으로서 아무 문제점이 없음을 드러났었다. 그것은 다른 성경과 비교해 볼 때 시가서들에는 하나님의 구언 업적과 말씀에 대한 직접적인 찬미와 응답 그리고 확고한 여호와 신앙을 기초로 한 지혜의 언어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욥기 개관
1. 욥기의 특성
1) 특수한 전개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욥1:1)라는 이 책의 첫 마디 부터가 다른 책과 구별되어지는 독창적인 문학 형태임을 시사하고 있다. 주인공 욥은 사람이 바라는 최고의 행복의 표상인 부와 명예와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의까지 갖춘 순전한 인물이다.
그러나 사단에 의해 시험을 당하게 되고 삽시간에 비참하도록 몰락한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위로한답시고 있지도 않은 그의 죄를 들추어 내려고 협박 어린 열변을 토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한계성을 넌지시 나무라시며, 화해의 방법을 제시하시고 갑절의 회복을 허락하심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2) 천상의 회의
창조주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요 순전하고 정직한 의인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천상의 회의 장면을 통해서 알게 된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피조된 하나님의 아들들만 모아 놓은 편파적인 회의가 아니라, 유배당한 적대사 사단도 참석을 허락하신다. 뿐만 아니라 공개석상에서 사랑스런 의인을 칭찬하시며 참소자의 확인을 받아 두시려고 한다. 사단은 의인의 순전함은 하나님의 사단의 방해 작업을 한계 안에서 허락하시는데, 그것은 사랑스런 의인의 믿음을 거룩한 자부심으로 신뢰하시기 때문이다.
3) 풀 수 없는 의문점
왜 어떤 사람은 불행을 옷처럼 이고 고통당하고 멸시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그 행실이 방자하고 극악스러운 데도 건강하여 장수하고 그 산업이 번성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계신 다면 어째서 무고히 고난받는 자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시는 것일까? 과연 하나님은 공평한 선을 베푸시는가? 무엇 때문에 침묵하시는가? 인간이 살아오면서 고래로부터 현재까지 가지고 있으며 품고 있는 이 심각한 의문이 욥기 3장에서부터 38장에 이르도록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지식의 한계성을 말하는 것이다.
2. 욥기의 주요 사상과 역사성
1) 고난의 의미
욥기의 대주제는 고난이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다" (욥5:7)는 말이 실감될 만큼 사람의 삶은 험난스럽다. 더욱이 의인에게는 더 고난이 많다(시34:19). 그것은 창조주로부터 공급되어지는 은혜와 축복의 줄을 끊고, 자기에게 굴복시켜 자기의 종을 삼으려는 사단의 극성스러운 획책 때문이다. 결국 사단은 의인을 시험하는 승인을 받아내고야 만다.
그러나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고전10:13)라는 말씀처럼 감당할 만큼만 허락하시는 주님이심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자에게 부과되는 이 시련을 통하여 주권자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할 것을 가르친다.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시인하고 순종할 때 바로 지혜의 눈이 열리며 그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2) 욥기의 역사성
욥기가 가상적인 작품인가, 아니면 역사적 작품인가, 또는 둘 다 겸한 작품인가의 논쟁이 계속되어 왔다. 벤 게르솜(Ben Gershom)과 스피노자(Spinoza)는 본 서를 하나의 소설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탈무드에 인용된 레쉬 라키쉬(Resh Lakish)와 나흐만(S. B. Nachman)의 대화를 보면서 본 서가 유대인의 역사적 성서에 인정되지 못했고 이야기의 신빙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 랍비달과 초대 교부들은 본 서를 절대적인 역사적 작품으로 취급했고, 무엇보다도 욥은 역사적인 인물로서 욥의 실존이 약5:11과 <겔14:14, 20>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또한 소설이라면 그 시대의 배경과 인물의 성격을 그처럼 조화롭고 생동감 있게 사실화하지 못할 것이며, 그 시대의 사람들은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터무니 없는 가상 설계에 전혀 익숙하지 못한다. 따라서 본 서는 역사적인 작품이면서 또한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영감 어린 창작품이라 할 수 있다.
3. 욥기의 가치성
1) 보여지는 하나님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지식으로 문제를 풀고자 하면 문제의 저변만 겉돌므로 고난의 시간만 더 가중시킬 뿐이다. 핵심에 다가가서 그 정곡을 찔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의 핵심을 주재하는 주권자에게 다가가 그 통치의 온전하심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 욥은 고통에 겨워 울분을 터뜨리던 자세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에 온전히 굴복하는 순간, 지금까지 그를 압제하던 세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뿐만 아니라 귀로 듣기만 하던 하나님을 눈으로 뵙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가 진심으로 회개하며 전심으로 찾을 때 아낌없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시다.
2) 은혜로운 목적
욥은 위로하러 왔다는 세 친구들로 인하여 더 큰 성처와 심적 괴로움을 겪는다. 세 친구들은 모두 고난은 죄로 말미암아 온다는 것이며, 욥에게는 분명히 감추어진 대단한 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니 어서 속히 고백하라고 강요한다. 친구들의 야속함에 탄식을 하면서도 욥은 언젠가는 하나님이 보증해 주시리라는 확신을 굽히지 않는다. 결국 그는 자신의 고난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겸허히 순응함으로써 본 서를 절정으로 이끌어 간다. 하나님은 인간 자신의 공의에 대한 자만심을 제거시키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순전히 순응시키려고 의도하신다. 이 놀라운 믿음의 승계는 장차 오실 구속자의 사역으로 인한 승리와 부활의 소망으로 연결되어진다.
4. 욥기서가 주는 영적 의의
욥기는 유일하게 인간과 영의 세계와의 연관성을 밝혀 주며, 인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인간의 철학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인간의 한계성을 지적해 준다.
또한 고난 자체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의 첨가가 있음을 알게 될 때에 그 고난이 축복의 매체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본 서의 이야기는 "인전에 한 번 있었던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에 귀속되는 문제이며,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천사들을 그 관람자로 하는 한 인간의 시련에 관한 희곡이다." 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해설
1. 욥기의 저자와 저작 시기
1) 저자
초대 고인들에게 인내에 대한 모범이 되며 한 신실한 족장을 소개하는 책인 '욥기'에는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욥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욥기의 저자에 관하여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모세의 저작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것은 모세가 애굽에 관하여 능통했으며(행7:22), 고상한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을 수유했고(출 15장; 신 32, 33장). 무엇보다도 미디안에 있을 때 역사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시를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욥기의 몇몇 부분들은 전승된 시나 격언으로 나온 것으로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도 있다(<욥12:13-25; >욥15:20-35).
2) 저작 시기
욥기의 저자 시대에 관하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지는데, 모세 시대라는 견해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다음의 이유들 때문에 후자의 견해를 지지한다.
첫째, 저술의 스타일과 특성
둘째, 진보된 예술적 배경.
셋째, 특별한 표현들의 사용.
넷째, '지혜'의 개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다섯째, 시편과 잠언에 나타나 있는 죽은 자들에 관한 묘사에서 감정과 용어의 유사성 때문이다(<대상15:19; >시88, 89편).
2. 욥기의 정경성과 영감성
욥기의 영감성과 정경성은 대체로 인정되고 있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인 B.C. 6백여 년경에 이미 에스겔 선지자에게 알려졌고(겔19:14), B.C. 270년경에는 히브리 성경의 한 부분으로 핼라여로 번역되었으며, 기록된 것이 예수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욥기는 사도 바울에 의해 두 번 인용되었는데(<고전3:19; >히12:5), 그 중에 후자는 '기록된 바'라는 일상적인 도입구와 함께 기록됨으로써 정경성을 더욱 뒷받침해 주고 있다. 욥기에서 드러나고 있는 도덕성과 신학은 다른 성경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올바른 입장을 피력함으로써 그 자체로도 정경성을 확고하게 입증하고 있다. 그 밖에 욥기는 구속사의 단계에서 인간의 타락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중간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3. 욥기의 주제
욥기의 주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욥이 겪게 되는 시련이다. 즉 욥기에는 욥이 겪게 되는 시련의 시기와 본질에 대하여 그리고 시련에 대한 욥의 인내와 여기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하여 심각하게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은 욥을 통하여 세상이 죄악으로 만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신실한 백성이 남아 있음을 드러내기를 원하셨다. 때문에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기를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욥의 친구들은 혹독한 고난의 원인을 욥의 은밀한 죄로 돌렸으며, 이것은 엘리후에 의해 재차 강조되었다(<욥5:17; >욥33:19-30).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욥을 시험하셨는데, 급격한 변화에 당황하기는 하였으나 결국 자신의 신앙을 고수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예고된 갑절의 복을 얻었다.
4. 욥기의 의도
첫째, 참된 종교의 실체와 믿음의 본질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둘째, 의인은 아무리 큰 고난을 겪더라도 결국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하나님에 의해 의로운 백성이 된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적극적이고 예리한 통찰력 있는 보호에서 결코 제외될 수 없다.
셋째, 참된 신앙은 지혜이며, 인간을 가장 큰 행복에 도달하게 하는 지름길의 역할을 한다.
넷째, 욥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의 불가사의함과 공의로움과 자비가 드러나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신신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죽은 신이 아니며, 현재에도 개인의 생활에 적극적이고 궁극적으로 간섭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섯째, 계시의 진리와 하나님의 섭리의 활동 사이에 일관성을 보여 준다.
여섯째, 시련받는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하여 고난을 이겨내는 욥의 예를 소개하고 있다.
일곱째, 성도들은 고난을 통하여 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실제로 인정하게 된다.
여덟째, 의인이었던 욥에게도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부분이 있었음을 소개함으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부족하고 그릇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아홉째, 하나님은 궁극적인 승리자이시며, 성도들도 그의 능력을 힘입음으로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시편 개관
1. 시편의 명칭과 표제
1) 시편의 명칭
시편 전체를 대표하는 실제적인 명칭이 시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한 히브리어로는 mylht(테힐림)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이 말은 '찬양'이라는 뜻을 가진다. 또 칠십인역(LXX)에는 yavlmoiv(프살모이)라고 정하였다. 이말은 yalmo"(프살모스)의 복수형으로서 '줄을 튕기다'를 뜻하다가 현악기의 '연주'를 뜻하는 말로 되었다. 이것은 시편에 50회이상 사용되었다. 또한 필로(phillo)는 시편을 나타내기 위해 u{mno"(휨노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와 바티칸 사본에는 '현악기의 음악'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찬양의 노래가 되었다. 시편(Psalms)이라는 단어는 영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성경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시72:20에 나타나 있듯이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혹은 역대기(대하29-30)에 '다윗과 선지자 아삽의 시'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것도 시편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기에 적합한 것은 이 시편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표현이기에 히브리어 명칭인 테힐림이라는 명칭이 무난할 것이다.
2) 시편의 표제
시편에서 말하는 표제란, 히브리 본문의 첫 절에서 따온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그 시의 내용이나, 저자, 또는 그 시가 어떻게 쓰여졌는가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특히 그 시의 형태나 특징에 대해서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면 rmrm(미즈몰)은 57편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악기를 잡아 당긴다는 뜻이다. 즉 57편은 악기와 함께 노래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또 55편의 표제로 나타나는 림나체라 하는 음악 예배와 관련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편의 표제는 150중 116편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시편 속에 나타나는 hls(셀라)라는 말의 뜻에 대해 몰(moll)은 '음성을 들어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150편중 39편에서 71번에 나타난다.
2. 시편의 저자와 기본구성
1) 시편의 저자
시편의 저자는 모두 일곱 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윗은 73편을, 아삽은 12편을, 고라의 자손은 11편을, 솔로몬은 2편을, 모세는 1편을, 에스라인 헤만은 1편을, 에스라인 에단은 1편을, 각각 지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중에서 다윗의 저작권에 대해 몇가지 증거를 나타내보면, 먼저 성경 자체가 다위의 저작권을 증거하고 있다. 18편의 표제가 그러하고, 13편의 시는 다윗의 생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그 증거들을 찾아볼 수 있다(<마22:42-45; ><행4:24; ><롬4:6; >히4:7). 그리고 그의 인격에 비추어 볼 때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으며,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자임을 알 수 있다.
2) 기본 구성
시편의 구성은 모세오경의 구성과 비슷한 유형을 갖추었다. 그 주제와 내용에 따라 총 다섯권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러한 구분은 모세오경에 나타난 각 책의 주제들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제1권은 창세기에 대응하며, 주로 나타나는 내용은 인간에 대한 것이다.
제2권은 출애굽기에 대응하며, 주요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것이다.
제3권은 레위기에 대응하며, 주요 내용은 성전에 관한 것이다.
제4권은 민수기에 대응하며, 방황과 불안에 관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제5권은 신명기에 대응하며, 주요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이다.
3. 시편의 특징과 목적
1) 시편의 특징
성경 총66권 중 시편에는 가장 짧은 장(117편)과 가장 긴 장(119편)이 나란히 기록되어 있으며, 가장 많은 저작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예배시 찬양이나 기도 혹은 낭독으로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탁월한 음악성을 지니고 있는데, 여기에 나타나 있는 믿음의 표현들로 인하여 당시 신앙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구약성경 가운데 신약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인용해 왔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시편이 뛰어난 예언서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시를 통한 신앙고백이 곧 우리의 고백이요, 찬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2) 시편의 목적
인간의 감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을 든다면 시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시가 구약성경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시편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하나님 백성들이 지닌 감정과 신앙에 대해 알게 된다.
"시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객관적이 아니고 주관적임을 시사한다."라고 프란시스 브라이쉬(Francis Breish)는 말한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내면 깊숙이 들어오셔서 우리의 사고와 사상을 주관하신다는 뜻인 것이다. 따라서 시편은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게끔 하는 신앙 지침서요, 신앙 고백서이며, 기도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4. 시편이 주는 영적 의미
시편은 이제 단순한 시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경배하였던 조상들이 겪었던 시련과 고통들을 가장 현실성 있고 실제적인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는 시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대 시편은 곧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신앙의 끈이 이 시편을 통해 끊임없이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5. 내용분해
Ⅰ. 제1권(10-41편)
무명의 시(1, 2, 10, 33편), 다윗의 시(329, 11-32, 34-43)
Ⅱ. 제2권(42-72)
고라 자손의 시(42, 44-49편), 무명의 시(43, 66, 67, 71편), 아삽의 시(50편), 다윗의 시(51-65, 68-70편), 솔로몬의시(72편)
Ⅲ. 제3권(73-89편)
아삽의시(73-83편), 고라 자손의 시(84, 85, 87, 88편), 다윗의 시(86편), 에단에 마스길의 시(89편)
Ⅳ. 제4권(90-106편)
모세의 시(90편), 무명의 시(91-100, 102, 104-106편),다윗의시(101, 103편)
Ⅴ. 제5권(107-150편)
무명의시(107, 111-119, 135-137편), 다윗의시(108-110, 138-145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120-134편), 할렐루야시(146-150편)
해설
1. 기록연대
성경에서 가장 장수가 많은 시편은 모세 시대로부터(B.C. 15세기) 에스라시대(B.C. 6세기)에 이르는 거의 1세기 가량 오랜 기간 동안의 여러 제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시편들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인 통일왕국 시대(B.C. 1050-930)에 기록되었으며, 다윗의 시 가운데 일부(시 3, 7, 18, 30, 34, 51, 52, 54, 56, 57, 59, 60, 63, 142편)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편 정경으로서 시편의 수집이 언제부터 일어났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그 수집 과정이 오랜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편은 크게 다섯 조각으로 구분되는데, 그 수집 시기로는 각각 1권은 다윗 사후 솔로몬에 의해, 2권 고라 자손에 의해, 3권은 히스기야 시대의 아삽에 의해, 4권, 5권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최종집결은 에스라 시대로 추정된다.
2. 시편의 히브리적 특성
고대의 문학적 특징들로는 직유법 / 비유법 / 은유법 / 과장법 등의 수사법을 사용한다. 형식에 있어서도 서정시, 교훈시, 주시, 서사시, 율법, 역사, 족보, 전기, 단편설화, 예언서, 묵시록, 서간문 등 매우 다양하였다. 그런데 성경의 문학도 바로 이러한 특징을 띠고 있다. 성경의 주목적이 예술성을 띠기 위함이 아니요,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신령한 뜻을 전파하는 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문학들은 예술성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히브리적 특성들을 몇가지 살펴보면,
첫째, 하나님 중심적이다. 본래 히브리인들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는 사람들로 그들의 문학 역시 이러한 정서적 배경을 갖는 것이다.
둘째, 직관적이다. 히브리인들은 헬라인들처럼 논리적 전개나 추리보다는 진리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직접적 사고에 익숙해 있으며, 성경 문학 역시 이렇게 기록되었다.
셋째, 구상적이다. 헬라인들은 논리적이고 다분히 추상적인 반면 히브리인들은 구체적인 사물을 매개로 자신들의 사상을 전달하기 때문에 그들의 문학 역시 매우 구체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다분히 감각적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히브리인들은 매사에 사물을 직접 만지고 겪어 본 이후에 행동한다. 따라서 그들의 신관 역시 자신들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왕래하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단편적이다. 그들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사고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성은 오히려 여운과 장엄한 단순성을 남기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훨씬 쉽고 빠르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3. 정경의 결정의 원리
구약의 39권은 불변의 정경이요, 이외의 어느 것도 빼거나 더할 수 없다(계22:18). 따라서 시편도 불변의 정경 속에 포함되는데, 그렇다면 정경으로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에발드(Ewald)는 구약의 모든 책들은 그 기록되던 때에 거룩한 글이라는 척도가 없었는데 단지 후대인들이 그것을 신성시한 것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정경의 결정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므로 이스라엘은 그만 섬기고 그의 말씀에만 순종하기로 계약된 원리이다. 따라서 정경으로 인정되는 모든 내용속에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성 원리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구약의 모든 책들은 그 자체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은 그 전체가 신령한 전능자의 말씀이며 선지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시야 왕과 그 시대의 모든 백성들은 없었던 권위를 새로 선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글에 순종할 것을 선포한 것이다. 정경은 정경화와 정경 집성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인도에 의하여 진행된다. 교회는 단지 이러한 정경에 따를 뿐이다.
4. 신학적 특성
1) 그리스도와의 관계
첫 사람 아담이 타락한 이래 인류는 사망이라는 영멸의 단계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구속적인 사랑에 의해 새 생명을 얻게 된다, 즉 메시야를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속적 내용이 시편 전체에 걸쳐 암시되어 있고, 특히 시편2, 45, 72, 110, 118편에는 메시야에 대한 내용이 두드러진다. 비록 다윗과 솔로몬이 탁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는 하나 메시야적 소망의 완전한 실현은 다분히 미래적이며 종말적이라는 것이다.
2) 율법과의 관계
시편에는 하나님께서 거룩한 예배를 드리기 위한 외적 형식들에 대한 언급이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면을 강조하며 외식에만 그치는 형식들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다(시40:6; <시 51:17>). 시편의 이러한 내용들은 온전한 신앙을 이루려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제시하는 것으로 외식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온전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잠언 개관
1. 저자와 기록연대
1) 저자
일반적으로 잠언서의 저자는 솔로몬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 이유는 잠1;1; 잠10:1; 잠25:1에서 본 서의 저자를 솔로몬이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서의 본문에 의하면 다른 저자들, 즉 아굴(잠30:1)과 르무엘(잠31:1)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의 말씀(잠22:17)이 언급되어 있다.
학자들에 따라서 잠언서 저작 문제에 대해서 세 가지의 극단적인 견해가 있는데, 솔로몬이 본 서 전체를 기록했다는 견해와, 솔로몬과 본 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견해 그리고 솔로몬이 본 서의 대부분을 기록했고, 다른 저자들의 작품들이 그것에 추가되었다는 견해 등이다. 따라서 학자들간에 잠언이 솔로몬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으나 성경 자체의 내용으로 판단해 볼 때 잠언은 솔로몬이 지은 대부분의 작품과 다른 저자가 지은 작품이 합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2) 기록연대
잠언의 기록 연대를 결정하는 데에는 두 가지의 문제들이 결부되어 있다. 첫째는 각 부분의 저작 시기에 관한 것이고, 그 둘째는 여러 가지 단원들을 한 책으로 수집, 또는 편집한 시기와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학자들은 30, 31장을 제외하고는 본서의 잠언 저작 연대를 주전 10 C경, 즉 솔로몬의 통치 말기에 나온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잠언의 다양한 부분들이 한 권의 두루마리 책으로 집성된 것은 보통 주전 700-400년 사이에 이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비평적인 학자들은 솔로몬의 저작을 부인하면서 전통적인 견해의 연대보다 훨씬 후대의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본 서 전체의 집성 연대를 페르시아시대의 말기나 그리스 시대로 보고, 잠언의 최종적 편집 시기를 주전 5-4C로 잡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적인 발굴 물들과 언어학적인 발견들을 통해 비평적 견해들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것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지혜 속담들의 발견과 우가릿 문서 나타난 가나안 원주민의 언어적 유형들과 비교해 본 결과 잠언서가 포로 이전의 작품임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2. 기록 목적
1) 보편적인 목적
잠1:2-4에서 저자는 자신의 의도가 지혜와 참다운 분별력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맥락은 솔로몬을 제외한 나머지 저자들에게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본 서는 매일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 인격적인 도덕성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설명하며, 명백한 생활의 지혜를 되풀이하여 강권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생활의 지혜는 철학적이면서 사변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 속에서 경험해 가는 실천적인 지혜라는 것이다.
따라서 잠언서는 개인의 건전한 인격과 성격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삶의 훌륭한 지침서가 된다.
2) 특정 계층을 위한 목적
이스라엘의 대부분 지혜 문헌들은 젊은이들을 훈육하거나 교육하는데 좋은 지침서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잠언서도 일반인들에게 생활의 지혜를 제공하며, 특히 젊은이들을 위한 가르침의 내용이 많다.
더 상세히 말하자면 잠언서는 젊은 여인들보다는 젊은 남성들 특히 상류층에 속하는 청년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훈육 지침서가 되었다. 그 이유는 상류층의 자제들일수록 본 서가 금하는 어리석은 행동에 빠지기 쉬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 서가 권장하는 많은 미덕과 베풂들을 실행할 수 있는 기회와 조건들을 많이 지니고 있었고 지혜를 가르치는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여건과 혜택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3. 특징과 구조
1) 특징
잠언서는 지혜 문학으로 분류된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사사나 왕에 의해서 통치되었으며, 제사장, 예언자, 서기관들에 의해서 인도되었다. 이러한 통치와 인도함의 원리들을 지혜의 양식으로 발전시켜놓은 것이 히브리의 지혜문학이다. 실제로 다윗과 솔로몬은 통치자이면서 지혜자였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지혜자들은 인생과 세상에 관한 자신들의 실제적인 지식을 그 민족에게 나누어 주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잠언과 같은 유형의 글은 이스라엘만의 독작적인 것이 아니었다.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논의되고 규명된 바와 같이 잠언과 유사한 지혜 문학들은 타민족에게도 많이 있었다. 이스라엘과 이방의 잠언들이 인간 생활의 윤리적 측면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이스라엘의 잠언은 하나님의 법을, 이방인의 잠언은 인간 생활의 평범한 진리를 그 관점으로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잠언의 두드러진 특징은 참다운 삶에 이르는 근본적인 원리로서의 실천적 철학을 하나님의 법에서 찾으며 인간들에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2) 구조
잠언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어리석음과 죄악을 떠나 지혜를 구하라는 교훈(잠 1-9장)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는 교훈의 성격을 가진다.
지혜로운, 혹은 어리석은 행위들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잠10-29장), 특히 이중에서 여러 가지 의무와 규칙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잠22:17-24:22).
덕 있는 여인에 대한 언급(잠 30,31장)을 하고 있다. 30장은 '아굴의 말'로서 그의 고백과 여러 가지 교훈들을 호소하고 있으며, 잠31:1-9은 르무엘의 교훈이고, 잠31:10-31까지는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서 덕 있고 현숙한 아내에 대해서 찬양하고 있다.
해설
1. 잠언서 저자에 대한 비평적 견해
잠언 비평가들은 시편의 저자가 정확하게 누구라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시편이 오랜 시일 동안 여러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것을 수집한 것임과 마찬가지로 잠언도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인 체험에서 얻고, 또 구전되어져 내려온 격언들이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수집/통합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평가들에 의하면 솔로몬을 비롯한 본문에 나오는 이름들은 그 자신들이 말한 지혜임과 동시에 그 이전 사람들에 의해서 구전되어 내려온 잠언들을 수집한 편집자라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비평가들은 솔로몬의 이름이 언급 되어진 부분까지도 솔로몬의 저작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솔로몬의 이름이 나온 부분을 분석하면 한 사람의 저작이라고 하기에는 그 문체나 문장의 형태, 나타난 신학 사상(야훼 신앙) 등이 솔로몬 시대보다 훨씬 후대의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왕이 자신을 가리켜 이야기할 때 개인적인 문제를 강조하는 점도 솔로몬 시대와는 시대적 거리가 있다고 본다.
2. 잠언의 정경성
drmlt(탈무드)에서 잠언은 전도서, 아가서와 더불어 '정경성'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규정하였다. 그 이유는 잠언은 '정경'이 될 수 없고 하나의 교훈집에 불과 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로몬의 다른 책들인 전도서와 아가서가 정경으로서 아무 문제가 대두되지 않자, 이 책들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잠언도 정경으로서 별 논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전도서와 아가서의 정경성에 관해서 이견들이 기록되어 있는 탈무드의 !dy(야다임)에서도 잠언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으로 보아 더욱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약4:6이 잠3:34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도 A.D. 1세기에 경전으로 채택되었기에 아무런 문제의 여지가 없음을 보여 준다. 그 외에도 잠언이 칠십인역(LXX)에 포함된 것은 일찍이 잠언이 정경으로 채택된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3. 잠언의 윤리적 교훈
본 서는 철저하게 가르치기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자는 부모의 입장, 연장자의 입장, 왕의 입장 그리고 심지어는 인격화된 하나님의 모습으로 지식과 명철 그리고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잠언서에 나타난 윤리적인 교훈은 자녀는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 어머니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1:8)고 권고하고 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려면 (sex)문제에 있어서 깨끗해야 함을 권고하고 있다. 즉 소극적으로는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말기를 강권하고 있으며(잠5:3), 적극적으로는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고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연모하라(잠5:18,19)고 교훈하고 있다. 인간의 성실한 생활을 권하면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기'를 권하고 있다(<잠6:6; ><잠7:10; >잠26:13). 겸손과 덕을 배우고 교만을 물리치라고 말한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가 되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된다"는 것이다(<잠15:33; >잠16:18). 자신의 입을 지키고 혀를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가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잠10:19; ><잠11:13; >잠12:19). 즉 패역을 말하는 악인의 입을 가지지 말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을 아는 의인의 법을 가지라고 권고한다(잠10:31,32). 술과 독주를 피하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독주는 백성을 다스리는 주권자로 하여금 법을 망각하게 하여 공의를 굽게 하므로 피하라는 것이다(<잠23:30-35; >잠31:4,5). 사회의 정의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즉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악한 관리자가 되지 말며(잠28:15), 포악을 행하는 무리한 치리자가 되지 말라(잠28:16)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자를 못 본 체하지 말며(잠28:27), 불의의 재물이 얼마나 무익한 것임을 알고(잠10:2), 거짓말하는 관원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잠29:12). 반면에 구제하기를 좋아하며(잠19:25), 선을 간절히 구하고(잠19:25), 선을 간절히 구하고(잠11:27),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말라(잠14:31)고 권고하고 있다. 사람이 아무리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하지라도 그 걸음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잠16:9) 그를 찾고 항상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마땅한 길이라고 교훈하고 있다.
전도서 개관
1. 전도서의 명칭과 저자
1) 명칭
히브리 원문에서는 전도서가 tlhq(코헬렛)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말을 하거나 전달하는 사람, 전도가, 토론가' 등이다. 즉 많은 대중 앞에서 강연한다는 뜻이다. 본 서의 시작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설교자의 말'이라는 표제로써 시작하고 있다. 이 말은 솔로몬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본 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는 견해를 가지게도 한다. 한편 코헬렛은 칠십인역에서는 ejkklhsiasth"(에클레시아스테스)로 번역하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설교자'라는 것인데, 그 어원은 집회라는 말에서 나왔다. 결국 이 말은 집회에 있어서 그 집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기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잇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도자라는 번역은 바른 것이라 할 수 있다.
2) 저자 문제
본 서에서 저자는 스스로 자신을 말하고 있다(전1:1). 그러나 비평주의자들은 본 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왕과 신하가 관련된 금언을 기록할 때(전8:1-10)에는 저자 자신이 신하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터 이후 많은 학자들은 솔로몬을 본 서의 저자로 보지 않았다. 진보적 신학자들에 의하면 마카비 시대(B. C. 150년경)에 5본서가 기록되었다고 한다. 즉 본문에 사용된 언어가 미슈나에서 사용되던 언어로 발전했다. 따라서 본 서는 포로기 시대 이후에 기록되었으며, 저자는 포로기 시대 이후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메시지 전달의 효과를 위해 솔로몬의 입을 도용한 것 같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본 서의 저자는 본 서 스스로 증언하듯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전1:1), 즉 본문 중에서 다른 사람과 비길 수 없는 지혜와(전1:16) 재산(전2:7), 그리고 대규모 토목 사업(전2:4-6)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것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솔로몬을 가리킨다.
2. 전도서의 구성과 주요사상
1) 전도서의 구성
전도서의 구성은 한마디로 자유롭다. 시편 속에 보여지는 것처럼 일목 요연한 질서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성상의 특징으로 이해 독자들에게는 더욱더 다양한 표현 방식과 넘치는 인생관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서는 진술 금언의 양식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이 금언은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지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에 있어서 참다운 가치를 부여한다고 볼 수 있다. 본 서는 그 문체상 자유스럽지만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즉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구원의 진리를 독자들에게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2) 주요 사상
자칫 잘못 본 서를 대하게 되면 '헛되다'라는 표현으로 인해 염세주의자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본 서 전체에 흐르는 사상은 인간의 참다운 삶의 의미는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무의미한 삶의 연속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한 새로운 차원의 삶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사에 나타나는 모든 학문도 성경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본 서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사고 능력과 자연 종교가 가져다 주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질문과 답변 뒤에는 항상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본 서 전체에 흐르는 사상은 인본주의도 염세주의도 아닌 신본주의 사상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전도서의 내용과 기록 목적
1) 내용
본 서는 정확한 문학 양식에 의거하여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서의 내용은 보는 사람들마다 그 해석들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동일한 주제를 말하고 있다. 저자 스스로는 인생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낭비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제 와서 그러한 부분들을 되돌려 놓기에는 너무나 늙었으며, 젊은이들은 인생에 있어서 낭비하는 부분이 없어야 함을 말한다(전12:1).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는 참다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한다(전1:2). 그러나 인생은 인간들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면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라고 한다(<전3:12,13; >전9:7-9). 전도자는 인생에 관한 모든 것을 사랑하였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2) 기록 목적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인간이 육체적인 쾌락만으로는 참된 삶의 가치를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 안에 거할 때만이 참다운 이생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즉 인간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으로는 오는 영광과 축복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때는 좌절과 공허함만이 존재하게 된다. 본 서는 인간 스스로의 수준을 넘을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이념들은 모두 무용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결국 노년의 전도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인생에서 다가오는 많은 함정들을 피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늦기 전에 인생의 참다운 변화를 갖기를 원한다, 결국 전도서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 안내자가 되어 준 셈이다.
4. 전도서가 주는 의미
인생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있다. 전도서는 과거나 현재의 삶이 무의미한 삶일지라도 미래에 대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으라고 한다. 인간들은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결여된 상태에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인생의 가치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 안에서 살아갈 때 찾아오는 것이다. 세상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면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 전도서는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생을 사용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해설
1. 솔로몬의 저작설을 반대하는 학설들
1) 영(E Yong)의 견해
그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반대한다.
첫째, 본 서의 저자는 자신이 어떤 폭군 아래 있었던 시민이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성립 될 수 없는 것이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그렇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본 서의 어투가 솔로몬의 시대보다 후대의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까닭이다. 즉 기록된 말들이 아람어풍에 속한다는 것이다. 알데스(G.Ch.Aalders)도 이 의견에 동의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역시 성립 될 수 없는 것이 아람어풍 이라고 해서 반드시 후대 저작의 증거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루폴드(Leupold)의 견해
그는 솔로몬이 회개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구약에 없는 이유로 솔로몬의 저작설을 반대한다. 즉 솔로몬이 전도서의 내용과 같이 회개한 사실이 있었다면 그것이 구약에 기록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전1:2의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고백은 솔로몬처럼 이세상의 온갖 쾌락을 누려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구약의 다른 부분에 그의 회개 사건도 대하33:12,13,18에는 기록되었으나 열왕기에는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의 저자들은 관점에 다라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도 침묵하는 일이 있다.
3) 기타
위와 같은 견해들 외에도 문체가 솔로몬의 잠언과 다르다는 이유와 잠언과 아가서에서는 저자가 솔로몬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전도서에서는 침묵하였다는 이유에서 솔로몬의 전도서 저작설을 반대하지만 모두가 선입관에 편증된 견해들이므로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다.
2. 전도서의 특징
전도서는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책 중의 하나로 해석과 정경성에 있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전도서 속에는 "인생은 궁극적으로 허무하며 창조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만 비로소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뚜렷한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 특징들을 살펴보면
첫째, 땅과 하늘을 구분함으로써 곤고한 인생이 하나님의 은총을 믿음으로 늪에서 벗어나 참 기쁨과 의미를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전2:25,26; ><전3:12,13; >전5:18,19).
둘째, 창세기의 앞 부분과 유사성을 보인다. 즉 본래 하나님은 정직하고 올바르며 흠이 없는 인간을 지으셨으나 죄로 인하여 저주받고 축복을 상실했으며 죽음이라는 죄의 대가를 받았던 것처럼 본 서에도 본래 인간은 정직하였으나 죄로 인하여 재앙과 저주를 감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전7:20,29).
마지막으로 구약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언약적 명칭인 hwhy(야훼)나 하나님의 율법, 선민 이스라엘의 언급 등이 본 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저자가 신앙적인 결론을 먼저 말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깊은 신앙의 경지로 이끌려는 의도로 생각할 수 있다.
3. 신학적 가치
전도서는 복음이라는 직접적인 결론에 바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깊이 연관되어 있거나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사고하여 하나님 중심주의 세계관을 갖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복음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 신약의 내용과 유사하며 실제로 비슷한 내용도 발견할 수 있다.(약4:13-17). 당시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삶 속에서 예측하지 못하는 많은 상황들에 당면하게 된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그 문제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적지않게 문제에 당면한 장본인들이 좌절하거나 낙담하여 실패자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전도서는 신앙의 좋은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전도서는 그 내용에 있어서도 결코 신학적으로 손색이 없는데 하나님의 이름이 60회나 언급되었고, 6회에 걸쳐 '하나님 경외'를 강조하였다(<전3:14; ><전5:7; ><전7:18; ><전8:12,13; >전12:13). 저자는 인생을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하였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류(전3:14)와 사악하여 죄악을 일삼는 어리석은 부류(<전3:17; ><전5:4; >전7:26)가 그것이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것은 단순히 지혜가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완악하여 하나님의 뜻을 무시함으로 불손하게 행한다는 의미이다. 본 서에서 특히 특이한 것은 회개나 죄사함의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러나 회생 제사에 대해서 언급함으로 이것도 역시 문제되지 않는다(<전55:1; >전9:2).
아가서 개관
1. 정경성
성서 중에서 아가서처럼 해석이 분분하고 의견이 많으며 많은 주석을 요하는 책은 없다. 그것은 이 책의 적나라한 사랑의 용어들을 문자적인 시각으로만 바로 보고 해석하려는 편협한 경건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가서에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아8:6에 단 한 번 뿐이며, 죄와 종교적인 문제들이 취급되지 않았다고 불평한다.
또한 성경의 어느 한 구절도 인용되지 않았고 다른 성경에도 아가서의 본문이 어느 한 구절 인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서를 영감성을 가지고 깊이 연구해야하는 신양적인 기본 자세의 결여에서 오는 착오이다. 편협하다 할 만큼 선민의식과 하나님 섬김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유대인들의 아가서에 대한 태도는, 본 서를 가장 귀한 하나님과의 '사귐의 책'으로 지정해 놓고 혹시 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는 어린아이들이 잘못 해석할까 하는 우려에서 13세 이전에는 금독하도록 조치하는 조심성을 보이고 있다. 유대인들의 가장 존경스런 랍비 아키바(Rabbi Akiba)는 미쉬나(Mishna)에서 "아가서의 정경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중에 아무도 없다. 모든 성문서(Kethuvim)를 거룩한 것이라고 한다면 아가서는 거룩한 것 중에 거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야다임3:5)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가서가 이미 성경 66권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며, 정경 채택자들이 성령의 조명하심에 의해 선택한 것임을 인정한다면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
2. 역사성
1) 우화적인 시각
모든 해석 방법들에서 솔로몬이 본 서의 저자라는 데 큰 이의가 없다. 그러나 본 서를 우화적이며 풍유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유대인들에게서 발견된다. 그들은 아가서가 여호와의 선민들 사이의 사랑의 관계를 표현한 노래라고 한다. 이 방법에 의하면 여기 등장하는 목자 여인은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술람미 여인은 기독교 신자의 모형이며 솔로몬은 신자를 첫사랑으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죄악의 세상이라고 한다. 이 방법은 타당성이 없다 그것은 저자 자신이 유인하는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왕(주님)이 거룩한 사랑을 가장하여 신자에게서 아첨하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2) 자연적인 시각
자연적 시각자들에겐 아가서가 인간 사랑의 아름다운 찬가로 보인다 그래서 아가서는 인간에게 사랑의 방법을 가르쳐 주고,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를 인간 육체를 통해 우러러보게 하며 부부사랑을 밀도 있게 지도해 주는 성교육서라고 본다. 이 견해는 육체적인 사랑이 과감하게 묘사되었으면서도 품위와 순결의 맥이 잔잔히 깔려 있음으로 해서 많은 지지를 얻지만. 한 가지 부당한 면이 있다. 그것은 이 견해를 따르다 보면 아가서 어디에도 예수님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눅24:27, 44-48>).
3) 모형적(역사적)인 시각
본 서에 나오는 신부는 교회의 모형을,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보며, 성경 안에서 아가서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찾아보고자 하는 시각이다. 그 이유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에 걸쳐 이 세상의 신부를 얻기 위해 하늘의 높은 영광을 버리고 목자로 오신 이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메시야로서 이 땅의 역사 속에 오리라고 예고 되어졌고 실제로 인생들 가운데 오셨으며, 다시 오리라고 약속하신 역사적인 존재이시다. 아가서는 한 구절 한 구절 모세나 미리아, 드보라, 한나와 다윗의 노래들과 영감으로 연결되고 있다.
3. 특징과 내용
1) 아가서의 특징
노래 중의 노래(The Song of Songs)인 아가서를 대할 때 우리는 지극히 평화로움이 곁들인 경건함과 함축된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게 된다. 더러 몇몇 신학자들과 보수주의를 표방한 일부 신자들은 본 서의 진한 사랑의 표현들을 불경건한 것으로 여겨 정경성을 시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 서야말로 주님과 성도가 어떻게 경건한 사랑으로 진지하게 연합되어야 할 것인가를 언어 중에 가장최고의 언어를 사용하여 적시한 예배의 향연서라고 자부할 수 있다.
2) 아가서의 내용
솔로몬의 아가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아1:1-3:5로 첫사랑의 기쁨을 묘사한다. 사랑받는 자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자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자 애정의 기쁨을 노래한다.
둘째 부분은 아3:6-5:1로 결혼의 기쁨을 묘사한다. 혼인잔치에 대한 묘사와 신랑과 신부 서로간에 기뻐하는 내용을 전개한다.
셋째 부분은 아5:2-8:14로 헤어짐과 다시 만남에 대한 내용이다. 아내의 부주의로 신랑과 떨어지게 되고 결혼의 기쁨이 잠시 사라지지만 다시 만난 남편과 아내는 완전한 사랑으로 성숙해진다.
4. 문학성과 영감성
1) 문학성
예루살렘 북구 산지에 솔로몬 왕의 포도원이 있었는데, 그 관리인 가족 중에 처녀 딸이 있었다. 그 처녀에게는 이복형제로 보이는 오빠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 처녀를 몹시 부려 먹었다. 처녀는 포도원도 가꿔야 하고 양도 쳐야 하기 때문에 자기 몸을 단장할 겨를이 없어 검게 그슬린 모습이었지만 매우 아름다웠다. 어느날 솔로몬이 그 처녀를 보고 서로 한 눈에 반하여, 장래를 약속하고 멋진 결혼을 한다는 흥미진진하고 사랑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극히 매혹적인 세련된 문장으로서 보석과 같이 빛나는 글이지만 전적이 문학 작품은 아니다.
2) 영감성
성경의 영감 문제에 관한한 오늘날의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것과 동일한 구약성경을 가지고 계셨고 그 성경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약 곳곳에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음서와 신약 곳곳에 아가서의 인용적인 표현들이 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적어도 신약의 12군데 정도나 아가서의 표현을 연상할 수 있는 대목들이 나온다. 본 서를 음미해 보면 성도가 주님을 사모하여 순종하면 언젠가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영적인 사람은 이 속에 담겨 있는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만이 이 책을 바로 이해할 수 있고, 주님의 그 지극한 사랑이 역사를 신앙 생활에 적용, 승화시킴으로 진정한 비밀의 열쇠를 받게 된다. 내 마음이 온통 주님으로 가득했을 때 주님과의 진정한 사귐이 시작되며 그것이 예배자의 모습인 것이다. 한 고대의 랍비는 "잠언이 성전의 뜰이라면, 전도서는 성소에 버금간다 하겠고, 솔로몬의 아가는 지성소에 비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설
1. 아가서의 저자
본 서는 솔로몬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주장되는데 어떤 위경은 "히스기야와 그의 동료가 아가를 기록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아가서는 솔로몬의 다른 책들과 약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왕국분열 이전의 시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저자가 국가 전역의 여러 곳들을 같은 왕국에 속하는 것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예: 예루살렘, 카르멜, 샤론 레바논, 엔게디 등). 저자는 또한 동물과 외국산 식물에 관한 지식을 보여 준다. 따라서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 노래는 솔로몬이 지은 것이 분명하다. 아가서는 그가 지은 노래 1005편의 일부(왕상4:32)라는 견해가 학자들간에 지배적이다.
2. 아가서의 저작권에 대한 비평
현대 비평학자들은 본서의 솔로몬 저작권을 부인한다. 오히려 솔로몬 시대보다 늦은 저작 시기를 지시하는 언어적 증거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전통주의 신학자는 이 언어들의 형태는 아가서에만 적용해야 할 사실임을 주장했다. 따라서 본서 자체는 솔로몬의 작품이며, B.C. 3세기에 기록한 것을 보이는 언어적 현상들은 단지 편집상의 수정으로서 판명되었다. 또한 아가서에 헬라나 바사를 의미하는 단어가 나왔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솔로몬 시대의 무역은 매우 거대하게 행해졌으며, 외국어가 널리 통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아가서에 대한 해석
아가서는 학자들간에 그 형식과 해석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1) 유대인들의 풍류적 해석
이쉬나, 탈무드 등의 구절들에서 풍류적 해석이 나타난다. 즉 택한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도우심을 보고 아가서를 이스라엘 역사의 의미로 해석한다.
2) 기독교의 풍류적 해석
기독교 교회에 이 풍류적 해석이 소개된 것은 주로 오리겐(Origen)과 히폴리투스(Hippolytus)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 학자들은 아가서를 이스라엘 반성의 역사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기 교회의 대변적 입장으로 해석하여 왔다. 이 견해는 교회에서 아주 보편적인 견해로 되어 있다.
아가서 1-3장 :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간의 사랑.
아가서 4장 : 교회에 대한 은혜.
아가서 5장: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
아가서 6,7장 : 교회는 그의 사랑과 요구를 고백함.
아가서 8장 :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사랑.
여기에 한 가지 더 보충을 한다면 아가서 어디서나 주님과 그 백성간의 결혼적 비유가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비유는 어디서나 상징적으로 사용되며, 교훈적 설명의 바탕을 이룬다.
3) 희곡적 해석
델리취는 아가서가 솔로몬 왕이 술람미 소녀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수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는 희곡 즉 감각적인 것에서 순수한 사랑으로 승화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밖에 유명한 에발트, 스트락, 쾨니히, 드라이버 등은 소위 목동 가설(hte Shepherd Hypothesis), 즉 술람미 소녀는 솔로몬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목자인 남편에게 충실한다는 내용을 말한다. 그러나 히브리 문학 가운데는 그러한 종류의 희곡은 없다. 또한 아가서를 풍류일망정 희곡이라고 지지하는 사람은 몇 사람 이외에는 거의 없다.
4) 에로틱한 가설(The Erotic Hypothesis)
아이스펠트는 본서를 그 당시 수년 동안 다메색의 집정관으로 있었던 베쯔스타인이 기록한 것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결혼 전날 신랑은 신부의 미모를 찬양하는 노래에 맞추어 칼춤을 추고, 결혼식 후에는 한 주일 동안 왕과 왕비로서 축하받게 된다. 이 때에 많은 노래들이 불려졌는데, 그 중 젊은 한쌍에 대한 기술(Wasf)이 베쯔스타인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스펠트는 이와 같은 관습이 이스라엘에 성행했고, 아4:1-7, <아5:10-16, >아7:1-6 등을 볼 때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5) 표상적 견해
아우툰의 호노리우스와 다른 이들은 아가에 대한 문제적 해석을 주장해 왔다. 또한 그들은 여기에 자기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키는 표상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부 로마 교회 학자들도 이 견해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표상적 의미를 찾을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이 견해는 지적되고 있다.
6) 아가서에 대한 바른 해석
정경에 본 서가 수록되었음은 인간의 정신에 사랑을 부여 넣은 하나님 자신이 순결하시다는 것을 기억나게 한다. 그리고 본서의 초점은 하나님을 향한다 이것은 기독교 주석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리고 이 고귀한 인간의 사랑을 볼 때 모든 지상적, 인간적 애정보다 더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