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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이 시리즈는 반남박씨 족보(세보)와 씨족사(氏族史)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반남박씨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글의 내용과 관련하여 의문이 있으면 언제라도 아래 댓글을 이용하시기 바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성심을 다해 답변할 것을 약속합니다.
반남박씨 씨족 이야기 1
반남박씨의 기원
반남박씨(潘南朴氏)가 박씨(朴氏)로서 '반남(潘南)'이라는 본관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먼저 답부터 말하면, '모른다'는 것이다. 현전(現傳)하는 가장 오래된 반남박씨 관련 문헌은 흔히 '밀직공(密直公) 계축호적(癸丑戶籍)'이라 불리는 준호구(準戶口)이다. 준호구란 옛날 관청에 보관되어 있는 호구장적(戶口帳籍: 호적 원본)의 내용을 개인의 요구에 따라 발급한 사본(寫本)으로 오늘날의 호적등본(또는 주민등록등본/가족관계증명서) 같은 성격을 띤 문서이다. 밀직공 계축호적은 고려 공민왕 22년(계축년)(1373년) 호주(戶主) 박수(朴秀: 1296~ ?)에게 발급된 준호구이다. 당시 준호구에는 호주의 나이, 본관, 거주지, 관직, 가족 등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박수(朴秀)는 78세로 본관이 반남(潘南)이며 봉익대부(奉翊大夫) 밀직부사(密直副使) 상호군(上護軍)으로 관직에서 퇴임하였다. 가족으로는 본인의 4조(즉 부ㆍ조ㆍ증조ㆍ외조), 부인의 출신 가문과 4조, 그리고 자녀들과 그 배우자들이 호구에 등장한다. 여기에 바로 박수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까지 이름과 관직이 나온다. 즉 박수에서부터 위로 아버지 박윤무(朴允茂), 할아버지 박의(朴宜), 증조 할아버지 박응주(朴應珠)가 확인된다. 일반적으로 호구에는 위로 증조까지만 기록되기 때문에 고조(高祖) 이상의 선계(先系)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반남박씨가 박응주(朴應珠)를 시조(始祖)로 삼는 근거가 바로 이 계축호구에 있는 것이다. 호구의 기록에 의하면, 박응주는 호장(戶長)을 지낸 것으로 되어 있어 후손들은 그를 호장공(戶長公)이라 부르고 있다. 호장공 박응주에 대해서는 '호장(戶長)'이라는 기록 외에는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어 그가 정확히 언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대략 고려 고종(高宗)~원종(元宗) 연간에 활동했던 인물로 추측되지만 이 역시 추측에 불과하다. 물론 호장공이 박씨(朴氏) 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 땅의 모든 박씨의 비조(鼻祖)로 알려진 신라 박혁거세(朴赫居世) 시조왕의 먼 후예(後裔)로 판단된다.
일각에서는 밀직공의 계축호구를 '득관(得貫: 본관을 처음으로 얻음)' 문서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오해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준호구는 관청에 비치된 호구장적의 등사본일 뿐 득관 문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호장공(박응주) 이전에 이미 '반남(潘南)'이라는 본관은 정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국의 성씨와 족보를 오랫 동안 연구한 역사학자 이수근 교수에 의하면 고려 태조 23년(940년) 경에 토성(土姓) 분정(分定: 나누어 정함)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반남박씨도 이 즈음에 반남(潘南)이라는 본관이 정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호장공의 형제와 아버지를 비롯한 그 선대(先代)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경우도 그저 추측일 뿐이다.
반남박씨의 관향(貫鄕: 본관)인 반남(潘南)은 오늘날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일원으로 본래는 백제 때 반내부리현(半奈夫里縣) 또는 반나부리현( 半那夫里縣)이라 하였는데,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 때 반남군(潘南郡)이 되었다가 고려시대에 와서 반남현(潘南縣)으로 강등(降等)되어 나주목(羅州牧)의 임내현(任內縣)이 되었다. 임내현은 속현(屬縣)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때 일종의 특수 행정 구역으로 일체의 부역(負役)ㆍ과세(課稅)ㆍ공납(貢納) 등을 위임 집행하던 곳으로 이 구역은 호장(戶長)이 다스리고 중앙의 행정관이 파견되지 않았다. 조선 초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군현에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하면서 속현(임내)을 혁파(폐지)하였다. 현재 반남에는 호장공(박응주)과 손자 진사공(박윤무)의 묘소가 보존되어 있다. 호장공의 아들 급제공(박의)과 계축호구의 호주인 4세 밀직공(박수)의 묘소는 실전되어 그 소재를 확인할 수 없다. 반남의 호장공 묘소를 수호하는 재사(齋舍)인 상로재(霜露齋) 옆에 급제공과 밀직공의 단(壇)이 조성되어 있다.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에 후손들이 모여 제(祭)를 올린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반남박씨가 언제부터 '반남(潘南)'이라는 본관을 갖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반남박씨 관련 문헌인 밀직공 박수(朴秀)의 계축년(1373년) 준호구에 박수의 본관이 '潘南'이라 적혀 있고, 박수의 증조부가 호장을 지낸 박응주(朴應珠)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따라서 박수의 후손들은 본관을 반남으로 하고 시조를 호장공 박응주로 삼았다. 호장공 박응주 이전의 선계(先系)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참고: 일부 위서(僞書: 위조한 책)에서 호장공을 밀양박씨의 후손이라 하면서 그 선계를 조작하여 만든 계보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므로 반남박씨 후손들은 현혹되지 않기 바람.)
다음은 계축호구(1373년)에 등장하는 밀직공의 가족을 보여 주는 도표이다.
증조(반남박씨 1세) | 할아버지(2세) | 아버지(3세) | 호주(4세) | 자녀(5세) |
應珠(응주) 戶長(호장) | 宜(의) 及第(급제) | 允茂(윤무) 進士 良醞令同正 (진사 양온령동정) 妻 和順吳氏 (처 화순오씨) | 朴秀(박수) 봉익대부 밀직부사 상호군 퇴임. 78세. 본관 반남. 外祖 和順吳氏 順公 妻 化平郡夫人光州金氏 父金晶 祖金宗 曾祖金立 外祖南陽洪氏 錫九 | 尙衷(상충) |
(사위)安吉常안길상 |
尙眞(상진) |
尙褧(상경) |
(사위)柳伯濡류백유 |
鶴山
첨부자료: 밀직공 계축(1373) 호구(준)
--자료출처: 『반남박씨세보』 (게시의 편의를 위해 호구 부분만 잘라 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