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102 – 욕망의 렌즈 (사소)
나눔합니다.
유리컵 4개 미사용.
필립스 스팀다리미 몇 번 사용하였음
다리미 다림판 사용감 있음
황토전기매트 몇 번 사용했음
눈오리집게 2개 미사용
유리컵, 다리미와 눈오리 집게 등의 사진과 함께 톡이 올라 온 지,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그 아래로 주르륵 댓글이 달렸다.
젊은 날 학생 운동을 하던 친구는, 투신의 방법을 여러 날 고민했다. 지방 자치제가 시작되려는 시기였다. 나의 친구는 결국, 정치적 구호를 버렸다. 대신 우리가 사는 기반에서 마을 단위 공동체에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얘길 내게 했다. 친구는 '마을 운동'으로 방향 전환을 모색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시절 무엇을 고민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친구는 그 시절 내가 이상주의 였다고 회고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취업과 실연을 번갈아 겪으며 딱히 생각과 상관없는 어른이 되어갔다. 제각기 험준한 산과 강물을 넘으려 생계의 길을 따라 부지런히 늙어 왔던 것이다.
지제역 근처 아파트에 이사온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거의 2천여 세대가 살아가는 곳, 자가와 세입자의 비율이 50%정도 되는 곳이다. 어느날 주목할 만한 일을 발견했다. 세대원 한두 명씩이 거의 실입주자 커뮤니티와 들어와서 부지런히 공동체 정보를 공유하는 카톡방이었다. 평소에는 깨똑 깨독 시끄러워 거의 둘러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가끔씩 올라오는 사진과 톡 내용이 잠시 흥미를 끌기도 한다. 누군가는 물건을 내놓고 누군가는 물건을 가져갔다.
처음엔 아파트 당근 사이트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아들이 어느날, 왜 사람들은 물건을 나눔하면서, 굳이 가져오지 마라는 선물을 꼭 가져다 주는거며, 왜 또 " 안주셔도 되는데 이런걸 다 ~ " 하는 댓글을 다느냐며 본인에겐 미스테리 라는 것이다. 그냥 "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 하며 나는 아들이 사양지덕과 겸양지덕을 모르는 세대지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어머나! 대가성 거래가 아니었다.
물론 파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일상적이 나눔이 자주 이뤄지고 있었다. 주로 아기들 유아용품에서부터, 도서, 텃밭에서 키워낸 채소, 간혹은 집에서 담근 김치도 있었다. 유통기한이 남아있는데 본인이 소비할 가능성이 없는 음료수나 라면, 맥주 등, 나누는 종목은 다양했다. 어떨 때는 환자를 후송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급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좀처럼 낫지 않는 기왕 병에 대한 고민을 올리면, 자기가 알고 명의를 성심 성의껏 알려주기도 하고 동네 맛집이나 헌 옷 수거 점 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어느날, 오이소박이를 나눠주겠다는 톡이 올라왔다. 심심하던 나는 빛의 속도로 톡을 달았다. 한증막 같은 습기가 동네를 감싸는 오후의 여름, 나는 고마움의 표시로 씻어놓은 복숭아와 자두를 오이소박이가 있던 자리에 조신하게 두고 왔다. 그랬더니 나눠준 것보다 더 많이 가져다 놨다며 함박웃음 이모티콘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전라도 입맛을 가진 나는, 경기도 아줌마가 담근 오이소박이를 먹어보고는 멸치 액젓을 두 숟가락 더 넣는 실험을 했다. 결국은 며칠 잘 삭힌 후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 후 가랑이가 찢어진 곰돌이를 버릴 것인지 고민하는 주민에게서 곰돌이를 나는 또 입양해 왔다. 그리고는 찢어진 가랑이를 엉성하게 수술을 해준 다음에, 납작하게 무너진 배를 세우는 체조를 시켜주었다. 그리곤 학원에 가져가 복도 끝에 놓고는 업돌이를 볼 때마다 비밀스럽게 흐믓하다.
최근에는, 텃밭에서 따오셨다는 아마 나이가 좀 드신 것 같은 주민에게 또 호박이랑 가지, 고추 나눔을 받으면서, 학원 근처에서 파는 수제 식혜를 사다가 집 앞에 놓아 드렸다. 그리고는 나는 생각한다.
‘ 식혜를 살 돈으로 마트에서 채소를 사 먹으면 되는데 시간도 없다는 나는, 왜 이것을 부러 이렇게까지 즐기는 것인가? ’
어릴 때 나는 지독히도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식구 많은 집이 싫었고, 몸을 숨기지 못하는 날은 불안했다. 친척들이라도 와서 북적북적하는 날에는 책을 한 보자기 싸서 다락방에 숨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동네 사람들을 데려와 집에 장구판, 술판을 벌이는 날엔 아예 가출할 기세로 친구 집에서 가서 날을 새고 공부를 했다. 대체 초등 4학년이 무슨 고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맘속으로 할머니를 참 미워했다. 그런 나를,
친언니가 진즉에 알아봐서 그런지 최근까지도
“ 니는 참 관계 지능이 부족한 거 니는 아냐? ” 하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나는 거기에 대고 속으로
'나는 인간관계에서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참 싫어야' 하고 조용히 되뇌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새 이상하다. 내가 이제 죽을 나이가 돼가는 것인가? 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교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인가? 하지만 얼굴을 보고 사적인 거리를 좁히는 것은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다소 모순적인 나의 기묘한 취미를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그래도 아는 사람은 이 글을 읽는 사람밖에 없으니 좀 다행이긴 하다.
하루에도 몇 십개에서 백 여개 씩 글이 올라 오는 곳, 때로는 장사를 하고, 때론 매너 빵점으로 한참을 꼬투리 잡아 싸우다가는 말매를 맞고 쫒겨 나기도 한다.
“ 커뮤니티 독서실 온도가 너무 덥다, 춥다, 1도를 더 올려라, 내려라, 커뮤니티 복도 불을 켜라. 꺼라. 몇 시에 꺼라. 제습기를 넣어달라. 사우나를 평일에도 사용하게 해달라 ”
날이면 날마다 의견들이 오고 가고, 내가 옳으니 니가 틀리니 시시비비가 오고 가는 곳!
주민들이 뽑은 입주자 대표들이 회의를 하고 의결을 하고, 이런 저런 댓글이 달리면서 핀잔을 주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는 곳 !
입주 당시 아파트는 방범 CCTV가 8천 여대 설치됐는데 이후 입주자 회의를 거쳐 6천 여대를 더 달았다. 거대 파놉티콘 처럼 바로 집 밖부터 사생활이 노출되기도 하는 동네. 강아지 똥이나 오줌을 밖에다 흘리거나, 빈 그릇이나 쓰레기를 아무 장소에 버리는 사람에게는 주민들이 즉각적으로 순경 노릇을 하고 CCTV로 밝혀낸다. 작은 움직임까지 증거를 찾아 내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그래서 가끔 밤 12시나 한 시가 되어서도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다사다난 하기도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런저런 굽이굽이를 지나, 서서히 자정 작용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가야할 곳은 소농촌 공동체 사회가 이상적이라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소나무가 좋다고 오죽이 좋다고 한 시간여 떨어진 곳에서 전원 생활을 하게 될 거라 생각을 했었던 시절이 있다. 그러나 친구와 다정하게 텃밭을 가꾸며 동네 사람들과 나누며 일상을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은 잊혀졌다. 화성에 여행 가는 꿈처럼 아득해져버리것이다.
그러다 이곳에서 '가능성을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느리고 불안하지만 서로 협의하고 의논하고 소소하고 자잘한 생활이 오고 가는 세계. 나와 너 사이에 여전히 이기심의 혀가 날름거리는 것을 느낄 때도 있지만,
지금, 여기, 나의 욕망은 어딜 향하고 있는지 렌즈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다만 나의 열정이라는 엔진이 멈추질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첫댓글 답례없이 주고 받으면 더 빨리 더 오래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
요새 들어온 선물 맞 바꿔먹기 하고 있어요. 엿바꿔 먹기 처럼 재미나요. ㅎ
옛부터 우리나라 인사가 참 아이러니해요, '차린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상다리 휘어지게 진수성찬 차려놓구요)
댓글에 대한 아들의 반응이 귀엽네요. ^^ ㅎㅎ
ㅎㅎ 구러게요,
오! 이런 공동체 좋은데요? ㅎㅎ
글쵸? 통통이님이 근처 사시면 저는 맨날 접시 가지구 왔다갔다 했을 것 같아요. ㅎ
혹시 가족 구성원 중 누구 한 명을 내다 놓고 가져가란 사람은 없던가요? 차마...
ㅎㅎ 누구 내 놓으시게요.? 저두 내놓고 싶은 게 있긴 한디요. ㅎ 배상청구할까봐서리..ㅋ
순간적으로 스팀 다리미와 다리미판 욕심 났습니다, 하하.
ㅎㅎ울 동네 이사와요. 요새 더 물 올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