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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밀이 크도다!!!”
십일조 정신과 율법(제5계명)의 정신에서 드러나는 권위,
그 권위에서 배우는 목사, 장로의 권위.
위 제목으로 쓰는 다음 글들은
2011년 추석 연휴 때 {Daum} 카페 {양무리 마을}에서 있었던
{십일조 폐지 토론}과 {목사의 권위에 관한 토론} 때
제가 썼던 글들과 댓글들을 짜깁기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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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밀이 크도다!!!
다음은 ‘황영철 {이 비밀이 크도다!}’ 58쪽에서 퍼옵니다. 배경색은 강조하려고 제가 칠합니다.
사도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그려 보이는 것이다. 그때 아담의 심정은 그 여인을 위해 자신을 서슴없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육체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은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절실한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최초로 내려 주신 계시인 셈이다.
다음은 ‘황영철 {이 비밀이 크도다!}’ 59쪽에서 퍼옵니다. 배경색은 강조하려고 제가 칠합니다.
그런데 하와 창조 이야기 중간에 이 이야기를 넣음으로써 모세는 하와의 존재가 아담이 수행해 나가는 하나님의 명령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아주 웅변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하와의 역할은 20절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문맥에 비춰서 이 말을 풀어 쓰면 이렇다.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는 일을 할 때 그를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랑을 너무 낭만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랑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사명, 그 수행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까닭이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인간의 책임 완수라는 사상이 빠진 부부의 사랑은 허공에 지은 건물과 같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사명”은 이른바 “문화명령”입니다. 개혁신학은 이 문화명령을 “선교명령”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9장에 적힌 문화명령은 창세기 1장에 적힌 문화명령이 그 원형입니다. 그러면 창세기 1장에 적힌 문화명령의 원형은 무엇일까요? 물론,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보좌로 가시기 전에 신약 교회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더 길게 쓰고 싶은데, 왼쪽 팔이 문제가 있어서 그리 못합니다.
***윗글은 어제 {Naver} 카페 {SDG 개혁신앙연구회} {자유게시판}에서 ‘구사’ 님에게 쓴 글로서 윗글 제목은 ‘황영철 {이 비밀이 크도다!}’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는 권위 구조를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라는 권위 구조 역시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녀는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으로서 부모와 동등하게 창조됐기 때문입니다. “하와의 몸은 아담의 갈비뼈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하와 역시 아담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형상으로 동등하게 창조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유물론과 진화론을 받드는 세상은 대통령(왕)과 국민(백성)의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볼지라도, 그래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도 보는바 대통령(왕)이 생명의 주권자로 자처해 수많은 피를 뿌린 일들이 있을지라도, 창조 신앙을 가진 기독교는 이 관계를 “권위 구조”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대통령(왕)을 “지배자”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위의 권세를 가진 자”로서 “통치자”, “다스리는 자”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경륜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남자 - 여자라는 순서(질서)’로 창조하심으로써 가정에 권위 구조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타락 후 여자는 남자를 지배하려고 함으로써 이 권위 구조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너(아내)를 다스릴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창조 시 제정하신 권위 구조 회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인류 역사에서 형벌로 작용합니다. 타락의 영향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라는 형벌로 작용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현대철학에서 예를 들자면, ‘진화론’을 받든 니체 남성우월주의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은 남성우월주의가 타락에 따른 형벌이라고 해서 남성우월주의를 받들어야 합니까? 아니면, 권위 구조를 받들어야 합니까? 물론, 창조의 회복으로서 권위 구조를 받들어야 합니다.
남자(남편)는 여자(아내)의 지배자가 아닙니다. 세상은 부부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볼지라도, 교회는 이 관계를 권위 구조의 관계로 봐야 합니다. 남편의 몸인 아내를 머리인 남편을 돕는 배필로 봐야 합니다.
십일조 정신과 율법(제5계명)의 정신에서 드러나는 권위,
그 권위에서 배우는 목사, 장로의 권위.
만일 어떤 이가 감독의 직분을 바란다면,
그는 선한 일을 열망한다는 그 말은 참되도다.
(딤전 3:1)
(감독은) 자기 집을 잘 다스리고,
자녀들을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한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느냐?
(딤전 3:4~5)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는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이들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
(엡 4:11)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겨야 한다.
(고전 4:1 하)
내가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듯 훈계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만 명의 가정교사(몽학선생)가 있더라도
아버지는 많지 않으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들이 돼라.
이 일 때문에 내가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냈는데,
그는 주님 안에서 내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이다.
(고전 4:14~17 상)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내가 사도가 아니냐?
주님 안에서 내가 행한 일의 열매가 너희가 아니냐?
(고전 9:1)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느냐?
(고전 9:4)
누가 자신의 비용을 쓰며 군인으로 봉사하겠느냐?
누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면서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관례를 따라 말하고 있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고 있지 않느냐?
모세의 율법에 기록돼 있기를
“곡식을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라.” 했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를 염려하시는 것이냐?
아니면,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 말씀하시는 것이냐?
이것은 참으로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이니,
밭을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고,
곡식을 타작하는 자는 함께 나눠 가질 소망을 가지고 타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너희에게 영적인 것을 뿌렸다면,
우리가 너희에게 육신의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 되겠느냐?
(고전 9:7~11)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맡아 보는 자들은 제단의 제물을 나눠 가진다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복음으로 살아가라.”고 명령하셨다.
(고전 9:13~14)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두 배나 존경받아야 한다.
특히, 말씀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자들은 더욱 그렇게 돼야 한다.
성경에 말하기를 “곡식을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라.” 했고,
또 “일꾼이 자기의 품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했다.
장로에 대한 고소는 두세 사람의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마라.
(딤전 5:17~19)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말한다.
(엡 5:32)
말씀을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나눠야 한다.
(갈 6:6)
아래의 도리:
자녀들아, 주님 안에서 너희의 부모에게 순종해라. 이것이 옳은 일이다.
(엡 6:1)
위의 도리:
아비들아, 너희의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라.
(엡 6:4)
아래의 도리:
종들아, 두려움과 떨림으로 육신의 주인들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해라.
(엡 6:5)
위의 도리:
주인들아, 너희도 위협을 그만두고 그들에게 이와 같이 행해라.
(엡 6:9 상)
아래의 도리: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모든 일에 아내들도 남편들에게 복종해라.
(엡 5:24)
위의 도리: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같이 해라.
(엡 5:25)
아래의 도리: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해라.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골 3:20)
위의 도리: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화나게 하지 마라.
이는 그들이 낙심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골 3:21)
아래의 도리: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주인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해 진실한 마음으로 해라.
(골 3:22)
위의 도리:
주인들아, 의와 공평으로 종들을 대해라.
이는 너희에게도 하늘에 주인이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골 4:1)
아래의 도리:
멍에 아래 있는 종은 누구든지 자기 주인을 매우 존경받을 자로 여겨라.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믿는 주인이 있는 자들은
그 주인을 형제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더 잘 섬겨라.
(딤전 6:1,2 상)
위의 도리:
갇힌 중에서 낳은 내 아들 오네시모를 위해 너에게 간청한다.
(몬 1:10)
이제부터 그는 더 이상 종과 같지 않고
종 이상으로 사랑을 받는 형제와 같은 자이다.
내게 그러한데,
하물며 너에게는 육신으로나 주님 안에서나 더욱 그렇지 않겠느냐?
(몬 1:16)
아래의 도리: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해라.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권세가 없으니,
이미 있는 권세들도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거역하는 것이니,
거역하는 자들은 스스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롬 13:1,2)
위의 도리:
통치자들은 (아래인) 네 유익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중략)···
그가 공연히 검을 가진 것이 아니니,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 돼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자이다.
(롬 13:4)
아래의 도리:
젊은이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해라.
(벧전 5:5 상)
위의 도리:
내가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며 또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서 권한다.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감독하되: 가르치고 다스리되)
마지못해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맡겨진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돼라.
(벧전 5:1~3)
감독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로서 책망 받을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않으며,
쉽게 화내지 않고,
술을 즐기지 않으며,
구타하지 않고,
더러운 이득을 탐내지 않으며,
(딛 1:7)
가르침을 받은 신실한 말씀을 견고히 붙잡아야 할 것이니,
이는 그가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딛 1:9)
아래의 도리: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해라.
(롬 13:7)
***고장 난 팔 때문에 타이핑이 힘들어서 여기에서 줄입니다. 저는 직분 없는 성도(평신도)임으로 맨 마지막 하나님 말씀을 강조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그 원형입니다. 이 관계에 대한 책으로 제가 탁월한 해설서로 생각하는 책이 있습니다. 황영철 목사님께서 독립개신교회 성약교회 평신도 시절에 쓰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속에 숨겨진 가정의 원리: 이 비밀이 크도다!}입니다. 물론, 황영철 목사님 해설이 곧 성경은 아닙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와 ‘김세윤 {하나님이 만드신 여성}이나 {김세윤 교수 신학세계}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 과 비교해 읽으셔도 유익할 것입니다. 물론, 김세윤 교수님 해설이 곧 성경은 아닙니다.
이 비교를 하시면서 성경적 여성관에 관한 서울 삼양교회 서창원 목사님과 김세윤 교수님 논쟁을 참고하시는 것도 유익이 될 겁니다. 물론, 저는 서창원 목사님 주장을 지지합니다. 이 역시, 서창원 목사님 해설이 곧 성경은 아닙니다. ㅡ{웨스트민스터} 교리서들이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같은 개혁교회 교리서를 이야기하면 “그 교리서들이 성경이냐?”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남편의 권위는 주께서 명령하신 교회의 사명을 아내(돕는 배필)와 함께 이루는 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일꾼(종)으로서 목사(목자: 가르치며 다스리는 장로)의 권위는 양무리를 목자장님께서 계시는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데서 나옵니다. 통치자의 권위는 하나님의 사자(일꾼, 종)가 돼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데서 나옵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의 지팡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자의 지팡이는 교회의 안위安危를 지킬 뿐만 아니라 교회를 안위安慰(위로)하는 지팡이기도 합니다. 통치자의 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칼은 선을 행하는 국민에게 상을 베풀어 위로하는 칼(롬 13:3)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5월에 저는 제 마음속으로 제 신앙의 큰아버지로 모시고 있었던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 최낙재 목사님 소천ㅡ이 단어 가지고 딴지 거는 분이 계시던데, 딴지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ㅡ 소식을 듣고 아버지를 여읜 마음으로 충격을 받아, 강설 시간에 하나님의 엄위나 권면의 말씀을 하실 때는 심각한 얼굴로, 하나님의 사랑(자비)을 말씀하실 때는 자상한 얼굴로 하셨던 목사님 얼굴을 떠올리며 슬픈 마음으로 5월 내내 우울했는데, {양무리 마을} 회원님들도 이런 목사님을 한 분 정도는 모시고 있겠지요.
고린도교회를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만 명의 가정교사가 있더라도 아버지는 많지 않으니, 내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는 말씀처럼 저에게는 제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ㅡ“사도권을 주장하는 것이냐?”고 딴지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ㅡ 비록, 저는 1986년 봄부터 대략 여섯 달 동안 강변교회에서 주일마다 최낙재 목사님을 강설을 들었습니다만, 바울 사도처럼 ‘하나님의 엄위와 사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님을 섬기시며 주님의 몸 된 교회 지체들을 섬기신 목사님이셨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불후의 명작···!
“너는 내 뼈에서 뼈요, 내 살에서 살이다!”
인류 최초의 첫사랑 첫 고백으로서 아담의 사랑고백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드러내는 첫 계시이듯이, 아담과 하와의 관계, 그 원형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불후의 명작으로서 [아가서], 노래에서 노래에서 드러나는 에로틱한 부부 간 사랑은 인류 최소 첫사랑 첫 고백이 원형입니다.
그러면 모세의 율법
“곡식을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라.”는 말씀의 원형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살아가라.”!!!
게할더스 보스 목사님 명언 “종말이 구원을 앞선다.”!!!
종말이 구원을 앞서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의 원형은······?
하나님께서 어찌 육신의 부모를 염려하시는 것이냐?
아니면,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말씀하시는 것이냐?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주인에게 순종하라.”
하나님께서 어찌 육신의 주인을 염려하시는 것이냐?
아니면,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말씀하시는 것이냐?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해라.”
하나님께서 어찌 남편을 염려하시는 것이냐?
아니면,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말씀하시는 것이냐?
“젊은이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해라.”
하나님께서 어찌 교회 장로들을 염려하시는 것이냐?
아니면,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말씀하시는 것이냐?
이 비밀이 크도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해라.”
하나님께서 어찌 이 세상 통치자를 염려하시는 것이냐?
아니면,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말씀하시는 것이냐?
“그러므로 내가 무엇보다도 먼저 권하니,
모든 이를 위해 탄원과 기도와 간구와 감사를 드려라.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이를 위해서도 그렇게 해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정중함으로 조용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
(딤전 2:1~4)
이 비밀이 크도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24문>
제5계명에서 부모는 누구를 뜻합니까?
<답>
제5계명에서 부모는 단지 자신을 낳으신 부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은사에서 모든 윗사람을 뜻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서
우리보다 높은 지위에 두신 자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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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링크
https://cafe.daum.net/reformedcafe/Hx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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