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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6월에 독일 함브르그 병원에서 귀국. 한동안 병원을 들락거렸다. 승선해도 좋을 만큼 괜찮았기에 다시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역시 최신 냉동운반선으로 新造船이다. 이제는 냉동선의 베테랑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에 나는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에서 막 건조하기 시작한 최신 냉동운반선에 대한 선구적인 입장이 된 것이다. 역시 Anglo Marine(주) 徐 사장님이 Manning한 일본(大日: 다이니찌)社의 선박이다. 사장은 小池(고이케) 씨였다. 下關(시모노세키)의 三陵(미쓰비시)造船所에서 처음으로 만든 선박이다. 여기서도 FAO 후배였던 李正重 기관장이었다. 일기의 내용은 가급적 짧게하고 개인적인 느낌이나 일상은 줄였기에 전체 분량이 많지 않다.)
이 역시 졸저 『항해일지』에 나온 부분은 파란 글씨로, 그렇지 않은 부분은 검은 글씨로 표시하였다.
82. Nov. 15(월) :
김해 공항에 집결. 13:20 출발 대한항공으로 福岡향발. 오늘따라 겨울비답지 않게 주룩주룩 내린다. 福岡공항에서 Anglo(株)의 齋藤(사이토)씨가 마중을 해준다. 바로 버스로 시모노세키 미쯔비시(三菱)조선소 전용의 大鯨寮(오오오비료: 조선조내의 숙소)에 17:30시 도착. 짐을 놓자마자 바로 阿部(아베) 감독. 坂田(사카다) 과장과 회합, 내일의 일정을 협의하다.
Nov. 16(화) :
07:30 미쯔비시조선소 작업현장에 도착. 내 입회하에 Draft(흘수)와 경사 Test를 실시하다. 사이토씨 오늘 고베로 돌아가다. 13:00 出渠하여 六連(무쯔레) 외항에 묘박하다.
Nov. 17(수) :
07:00 S/B 내일 실시키로 한 공식 시운전에 대비하여 예비 Test를 실시하다. 새로운 장식으로 인한 Paints 냄새가 역하다.
Nov. 18(목) :
공식 해상시운전 실시. 大日(다이니찌) 本社 小林(고바야시) 상무 동승하여 입회하다.
Nov. 19(금) :
08:40 林兼(하야시가네) 조선소에 접안. 남은 공사의 처리에 대한 협의를 하다.
Nov. 20(토) :
Dock(조선소)측에서는 거의 휴무하고 극히 일부만 시공을 한다. 냉동관계 회사인 前川(마에가와)측은 전 냉동 System를 Test한다. 내일을 우리도 휴무키로 하다. 오늘이 음력으로 내 43살의 생일이다. 어느 듯 마흔을 넘었군.
Nov. 21(일) :
기관장 이정중, 2등 기관사와 함께 출근. 마에카와의 냉동시스템 Test를 보다. 결과가 시원찮은 모양이다. 승선일자에 대해 坂田(사카다), 小林씨와 의논. 12월 1일이 돼야겠다고 한다. 바쁘겠군. 오후 집에 전화했으나 계속 통화 중이 걸린다. 시내에서 나가서 일용품 몇 가지를 사다.
Nov. 22(월) :
냉동시스템 계속 시운전 중. 고베 사이토씨에게 전화, 29일 徐 社長이 본선 방문예정이란다. 선용금 $20,000을 청구하다. 대아에도 전화하다.
법정 비품 인수 시작하면서 추가로 선용품을 청구하다. 집에 다시 전화하다. 항상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阿部(아베) 감독에게 인삼주 한 병을 선사. 역시 ‘貧者小人’의 넉 자. 건강이 최대의 관심사다. 오직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이다. 아직 눈에 보이는 것이 전만 같지 않고 다소 이상이 있는 듯 해서 세심한 관심을 갖는다.
Nov. 23(화) :
일본에서는 휴일이다. 각 Hold를 개방하여 점검 실시하다. 몇 가지의 결함을 발견하기도 했다. 선용 소모품 사정을 마치다. 겨울인데도 아랫도리를 훤히 내놓고 등하교를 하는 국민학교 어린이들과 유치원생 얘들이 탐스럽고, 긴치마 차림의 여중생들이 자전거 통학의 모습들에서 내 딸들의 얼굴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Nov. 24(수) :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 복잡한 심정. 통신장이 편도선염으로 쉰다. 대리점인 Green Shipping에 병원을 수배하다. 일본 首相 예비선거 개표일이다. 고베에 3번 전화. 徐 사장님과 통화하다.
Nov. 25(목) :
Second Group(선원 제2진) 13명이 도착. 책과 약, 사진, 편지들을 보내왔다.
Nov. 26(금) :
추가 선용품 인수. 본격적으로 바쁘기 시작한다. 東京은행에서 $1,500를 엥화로 바꾸어 11월분 POB를 지급하다.
Nov. 28(일) :
일요일이지만 오전에 출근하기로 하다.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들의 살림살이고 집이다. 오후에 C/E 이정중과 함께 Sea Mall을 구경하다. 일본 책 두어권을 쌌으나 ‘혈핵건강’은 구하지 못했다.
Nov. 29(월) :
승선 전에 집에 전화. 방학 중 해외여행 관계를 듣다. 될 수만 있다면 함께 얼마라도 있다가 보내고 싶다.
Nov. 30(화) :
Anglo 徐 사장님 방선했고, 전 선원이 료(療)에서 나와 승선. 본격적인 선내 생활이 시작되다. 그러나 아직 인수전이라 火氣 등에 꽤나 신경이 쓰인다. 아직도 Paint며 화학성분의 각가지 냄새가 진하게 묻어난다. 바람도 거세다 조선소 내의 전 Crane이 All Stop한다. 大日(다이니찌)의 西村(니시무라) 감독 고베에서 오다.
Dec. 1(수) 1982 :
다이니찌의 小池(고이케) 사장님 오다. 저녁에 전 사관(士官)을 초대 저녁을 대접한다. 일본회사들의 풍토를 몸소 배우고 느낀다. 그의 깊은 절 속에는 우선 진심으로 성실한 운항을 바라는 마음이 짙게 깔려있다. 여러 번 반복된 절 때문에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으나 그것이 기업의 대표자로서 근로자들에게 하는 꾸밈없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옆 방에서도 새해를 맞아 어떤 일본 회사의 망년회가 있다. 처음에는 시끌벅쩍하며 큰소리도 불만도 토로했지만 마지막 부분에 가서 삼박자 박수로서 끝맺음을 하는 모양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깨끗하다. 저렇게 하는 속에서 근로자들의 단합과 자기가 몸 담고 있는 회사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저버리지 못할 것이다.
Dec. 2(목) :
08:30 Japan Reefer*의 小池 사장과 藤井 과장이 방선, 신조선 인수 인계식 때문이다. 오늘의 Guest 중에는 가장 끗발이 센 사람들이다. 고이케 사장도 많이 늙었으나 한결 으젓해 졌다. 09:00 인수식 거행.
* Japan Reefer : (株)大日가 외국 국적선사로 만든 이름)
13:40시 출항. 강풍과 짖눈께비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출항을 위해 참석하고 손을 흔들어 준다. 마치 자기의 아들을 내 보내는 심정이리라. 마이크를 잡고 일본어로 그간 본선의 건조를 위해 수고했다는 말과 이제 처녀 출항에 임한다고 했더니 많은 박수를 보내준다.
14:20 田の浦(다노우라)에 묘박하여 급유를 실시하다. 급유중 FO를 Over Flow시켜 앗찔 했으나 다행히 바다에 누출되지는 않았다. 아베 감독이 끝까지 남아서 챙겨주고 갔다. 고맙고 미안하다. 19:00 강풍 속에 출항의 깃발을 올리다. 첫 기항지는 Australia이다.
Dec. 3(금) :
오전 9시부터 4시간 가량 Main Eng.을 정지하다. Valve가 고착되었단다. 밤에 또 한차례 같은 사고를 겪다. 신조선인데 처음부터 경을 치는군. 윤활유의 공급이 시원찮다는 소린가? 前線 때문에 옆바람, 그리고 20도 정도의 Rolling에 넘어지고 깨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작열한다. 아직도 선내의 정리가 덜 됐다는 소리다. 덕분에 Securing(고박)은 완전히 했다.
Dec. 4(토) :
순항을 시작한다. 차츰 안정을 찾고 차근히 하나씩 정리를 마무리해 가자.
Dec. 5(일) :
오후 2시에 선내 위원회 소집. 수당관계. 생활관계 등 2시간 가량 얘길 하다. 1년간을 위해서 몇 시간쯤 잔소리 가 필요하다. 저녁에 Part 별로 그간이 노고를 위로하는 뜻의 회식을 시키다.
Dec. 6(월) :
16:00 괌도를 순항하다. 입항예정일이 맞을라나? 새로운 항법기기인 위성항법장치(Satellite)가 비교적 정확한 위치를 알려 준다. 정말 좋은 시절이 온 느낌이다. 그러나 Set 되는 간격이 일정치 못하고 어떤 때는 5-6시간이 걸린다. 2/O와 3/O가 사용이 다소 서툴음이 신경 쓰인다. 차츰 익숙해 지겠지.
Dec. 8(수) :
적도를 북에서 남으로 통과하다. 처녀출항를 위한 적도제를 올리다.
Dec. 9(목):
전형적인 열대지방의 날씨. 그리고 잔잔한 해면이다. 오전에 Papua New Guinia 제도의 New Ireland섬을 항과하여 남항하다. 수많은 산호섬들의 거의 수면에 닿은 듯 떠 있다. 오후부터 한약을 달이기 시작하다. 선체의 움직임에 대한 완벽한 대비를 했다. 전기를 잇는 부분에는 Timer를 달아 2시간을 절대 넘지 않도록 하기도 했다. 대신 일본에서 구입한 위염치료약은 복용을 중지하다.
Dec. 11(토) :
공연한 잡념이 생긴다. 체중 63.5kg를 유지. 출국 후 줄었거나 늘어난 기분은 없다. 헌데 아직도 약간씩 식후의 답답한 기분 그리고 목에 뭣이 걸린 듯한 증세는 남아있다. 언젠가 10여 년 전에 경험한 신경성인지도 모르겠다. 한 겨울인데도 적도를 지나 남반구로 접어들면서 여름으로 향한다. 기후, 특히 기온의 변화에 신체의 리듬이 따라 주어야 할텐데-.
Dec. 12(일) :
오전 10시부터 豫備冷却을 시작하다. 오후 1시에는 비상보트와 소화훈련을 실시하다. 신조선에 좀 더 빨리 익숙해지려면 이러한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스트랄리아의 東岸을 흐르는 해류를 타고 19k't 이상의 선속이 나온다. 실로 오랜만에 방귀가 나오기 시작한다.
Dec. 13(월) :
No.1 Hold B. C deck의 왼쪽 팽창벨브가 자동으로 안 된다고 한다. Owner에게 Cable하다. 첫 기항지인 Aus.의 남쪽 Portland항의 Agent로부터 첫 기항지가 바뀔 수 있다는 냄새를 풍기는 전보가 오다. 아무렴 어떤가. 流浪도 맛을 붙이면 병이 되고 병이 된다던가? 첫 기항지에서는 Maiden Voyage(처녀출항)를 위한 선상 Party가 있을 거라고 해서 준비를 했다. 전상규 C/S(조리장)의 솜씨가 기대된다. 오늘부터 속이 참 편한 함을 느낀다. 갑자기 그놈이 불끈하고 고갤 쳐들었다.
Dec. 14(화) :
21:30시 Portland Road에 도착. 그러나 투묘 전 다시 Main Eng.의 고장. 시동이 안 된단다. 밤새워 원인을 찾고 수리를 하다. C/E 이정중. 노고가 많다. 그는 FAO의 후배이기에 서로 편한 점이 많다.
Dec. 15(수) :
05:30시 S/B. Pilot가 승선했으나 다시 주기가 고장. 빌어먹을-. Pilot와 상의하여 응급조치로 No.6에 접안하다. 처녀출항인 신조선임이 부끄럽다. 그러나 신조선이기 때문에 더욱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많다고 도선사가 일러준다. 밤새 한잠을 못자다. 눈이 저절로 감긴다. 신경을 안 쓸 수도 없다. 오후 3시 다시 N0.5 부두로 Shifting. 일 한다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다. 생각보다 Cargo의 상태가 양호하다. Iran 대사관 직원이라며 방선한 3명이 화물과 선박을 둘러본다. 아마도 自國行 Cargo에 대한 사전 점검인 모양. 모든 것이 좋으나 이곳을 떠나 Melborune을 거쳐 가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다. Owner에게 Cable. 늦게 답신을 받다. 오후 4시경에 맞은 코레라 주사가 온 전신을 쑤신다. 죽을 쑤는 느낌이다.
Dec. 16(목) :
오후 3시 주기의 고장 원인을 찾고 근본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보고를 받다. 한결 마음이 놓인다. 내일은 선상 파티가 있다고 했는데-. 잘 된 기분이다. 차츰 안정을 찾는다. 갑판부도 열심히들 움직이는 흔적이 보인다.
Dec, 17(금) :
船上에서 처녀출항을 기념하는 파티가 있었다. 말이 기념 파티이지 모든 준비와 책임은 내게 맡겨진 것이다. Habour Master의 Commissioner Mr. J. Clyton이 기념패를 준다. 처녀출항으로 첫 기항지에 온 표시다. 성공적이었다. 솜씨를 부려준 전 C/S(조리장)의 덕택이다.
불고기, 가마보꾸 요리, 김치 등이 제구실을 톡톡히 한 셈이다. Mr. 杉浦(스기우라)와 森(모리)는 일본 주재원들인데 속이 깊은 놈들이다. ‘Beautiful’과 ‘うまい(맛있다)’ 그리고 ‘Very Good’을 연발하며 양 끝 먹고 갔다. 모처럼 나도 얼큰하도록 마셨다. 무엇보다 고민 중이던 主器를 깨끗이 수리, 마무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한 이정중 기관장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1등항해사 하명진의 치과병원을 수배하다.
Dec. 18(토) :
아침 일찍 조깅을 시작하다. 오전 작업으로 끝내다. 각종 보고서 작성 저녁에 집에 전화. 강도가 들었단 소식이 충격적이다. 얼마나 놀랐을까? 가뜩이나 충격에 약한데-. 몸 다치지 않았다니 천만다행이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이다. 체중 64.8kg.
Dec. 19(일) :
종일 우울한 하루. 낮에 축구시합하다. Mission's Seaman’s Club의 협조를 받았다. 저녁에 다시 전화. 그러나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는다. 더욱 신경이 곤두선다. 자중과 자제가 필요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 처음으로 붓을 잡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본다.
Dec. 20(월) :
하루 종일이 더디다. 저녁에 다시 전화. 두 번만에 연결이 된다. 以心傳心이랄까. 한 마음으로 통한다.
Dec. 21(화) :
일본의 Ocean Ca. Anglo 등에 보낼 Documents를 정리하다. 그리고 그간 미뤄오던 Calender를 보낼 준비 마치다. Mr. Hagen에게는 편지도 썼다. 작년에 독일에서 입원 중 신세진 사람들에게 하나씩 보내기로 한 것이다. Hamburg의 대리점 영감님. Mr. Bolohaulbek에 보내는 것이 빠졌다. 실수다. 저녁에는 Seaman‘s Club에서 탁구로 시름을 달랬다.
Dec. 22(수) :
POB 및 수당을 지급하다. 우체국에 가서 달력과 편지 등을 보냈다. $25나 들었다. 주부식을 다시 2개월분 사입. 이제 6개월은 견딜 것이다. 선주에서 소포 2개가 오다. 그러나 개인 우편물은 하나도 없다. 함브르그 영감님께 보내는 달력은 억지로 만들다. 전날 Party 사진이 Portland Observer紙에 게재된 것을 Agent가 갖다 준다.
Dec. 23(목) :
‘시사영어연구’를 보기 시작하다.
Dec. 24(금) :
오전 10시경 작업 완료. 갑판부의 Dairy Work에 요령이 부족한 듯하다. 저녁에 Seaman‘s Club에서 간단한 Party를 베풀어 준다. 고맙다. 비록 과자 한 가지에 음료수뿐이었어도 -. Agent가 Melbourne으로 간다고 했다. $2,000를 바꾸어 달라고 부탁하다. X-mas Eve. 아무런 느낌도 흔적도 없다.
Dec. 25(토) :
휴일. 오후 다시 축구시합. 몇몇은 지난번의 축구로 인하여 아직도 맥을 못춘다. 대부분 다리가 그만큼 약하단 뜻이다. 고르지 못한 날씨다. 兼松江商의 Mr. Takayanaki(高柳)가 방선하다. 고맙다. 체중 64Kg.
Dec. 26(일) :
‘ユダヤ(유태)人의 處世術’이란 책을 읽다. 종일 꼼짝을 않았다.
Dec. 27(월) :
계속된 휴무. 아침부터 느닷없이 비가 온다. 여기선 금싸라기 같은 비란다. 자꾸만 끌려가는 마음을 잡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기력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현지의 카드를 12장 사서 뿌려보려고 하다. 식전과 오후의 체중이 1.2kg정도 차이가 난다. 더 이상 줄어드는 느낌은 없으나 신경이 몹시도 쓰인다. 64.3~65.2kg.
Dec. 28(화) :
새벽의 꿈이 마음에 거슬린다. 희고 매끄럽게 보이는 등을 돌려 보였다. 내일쯤 다시 한번 전화를 해야지. 오후에 갑자기 전화. 목소리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카드 띄웠고, 아내의 訪船에 대하여 회사(대아)에서 반응이 시원찮은 모양이다. 회사를 거치지 않고 다녀가면 될 법도 한데-. 개새기들!
Dec. 29(수) :
자성대 한약방의 약을 끝냈다.
Dec. 30(목) :
작업을 끝내고 Cover를 닫은 No.4 Hold B-deck에서 10:20시 화재가 발생. 또 한번 십년 감수하는 Shock를 받았다. 분명히 인부들이 피우고 버린 Cigarette Butt(담배꽁초)가 원인인데 그 꽁초를 찾지 못했다. 다행히 양고기는 한 개만 탔다. P & I Surveyor를 불렀다. 그도 인정을 하면서도 역시 증거가 문제다.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에 가슴이 내려간다. 저녁에 Supervisor의 초대로 Carton Hotel의 Restaurant에서 식사. 다시 선내위원회를 소집, 계속 긴장을 풀지 말 것과 양력설의 구상을 얘기하다.
Dec. 31(금) :
어제의 Fire Accident가 결국 1시간 45분의 Time Delay로 나왔다. 부득이 Owner, NYK, UNIEEFRR에 타전하고 별도로 Report를 만들어 출항 전에 겨우 Airmail하다.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다. 일단 P&I Club에 넘겼으니까 처리야 되겠지만. Melbourne의 Representative(대리인)에게도 Report 해야겠다. 15:10시 출항. 전에 없던 씁쓸함과 고독을 씹으며 항내를 벗어났다. 82년 이 한해가 내게는 고비가 아닐는지. 액년이여 가거라. There is always silver lining!(언제나 희망은 있다)
1983년 Jan. 1(토) :
새해다. 또 한해가 시작된다. 그리고 또 한 살이 더 보태진다. 오직 건강과 불운이 끝나는 해가 되어주기를 기원한다. 선원들의 하례를 받다. 낮의 윷놀이, 저녁의 Get-Together(회식)을 허락 하다.
Jan. 2(일) :
남일당에 지은 약을 달리기 시작하다.
Jan. 3(월) :
07:30시 WR-1 김상열군의 발병보고 있었다. 거의 맹장염 증세다. 새해부터 왜 이런다? Agent에 병원 수배를 Cable로 의뢰하다. 내일 새벽까지 무사하길 빌면서 First Aid(응급처치)를 하다. 始務式.
Jan. 4(화) :
04:40시 외항 도착. 투묘. 06:50 Doctor가 방선. WR-1 김 군을 데려가다. 09:15시 Shifting. 10시반경 입원한 Kaleega Hospital에 가보다. 지난 봄 내가 입원했던 Hamburg의 병원이 생각난다. 비교적 좋은 병원이다. TV도 있고-. 역시 맹장염이다. 수술을 하기로 했다. 눈물짓는 그를 두고 나오기가 무척이나 마음이 무겁다. 오후 2시 그의 짐을 챙겨 $80과 함께 보냈다. 알아주려는지 이 심정을! 집에도 급히 인편이 있음을 알리다. 17:20시 출항.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빈다. 퇴원 후 귀국하지 않고 바로 배로 오겠다는 WR-1 김군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만 어렵다.
Jan. 5(수) :
점심부터 속이 약간 거북한 느낌이다. 방귀는 훨씬 적어졌다. 계속 날씨가 좋을 것만 같다만 바랄 것은 그것 뿐이다.
Jan. 7(목) :
아침 기상시에 얼굴이 약간 부은 듯 하다.
Jan. 10(월) :
두 번째로 적도제를 올리다. Unireefer로부터 아직 Agent의 Appoint가 없다. WR-1의 Replace 관계를 연락을 해야 하는데-. 얼굴이 한결 좋아진 느낌이다. 가급적이면 생활의 Pattern을 지키려고 애를 쓴다. 좀 더 느긋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
Jan. 14(금) :
연일 순항. 그러나 연일 꿈이 많고 지루함을 느끼는 날들의 계속이다. 자극이 없어서 인가 아니면 긴장이 풀려 해이해졌다는 건가? 이제 겨우 2개월째인데. 아직도 까마득한 시간이 남았다. 1년이란 시간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시간들임은 분명하다. 얼굴이 많이 좋아졌고 아무런 불편함이나 이상을 느끼지 못하고 체중도 늘어간다. 더 이상 또 무얼 바랄 것인가?
Jan. 15(토) :
계속 Slump에 빠진 느낌. 밤 10시 이란의 정박지에 도착. 약 80여척의 선박들이 대기중이다. 모두가 Deck Light를 켜지 않는 것이 교전국을 의미하는 것인가? Shipping Co.의 Mansoorian과 교신, 위치를 좀 더 가까이 해달라고 했다.
Jan. 16(일) :
06:00 S/B. 방파제로부터 약 2.6마일 지점에 다시 투묘하다. 2-3일 기다리면 되겠다는 고무적인 얘기. 부연 흙먼지가 가득한 탁한 공기. 일교차가 심한 기후다. 어서 마치고 벗어나야 할텐데. 중동, Arab에 대한 노이로제 증상이 항시 가슴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다. 근간 2-3일 연일 꿈자리가 시원치 않았다. 무슨 일은 없는지? (어제가 엄마의 제삿날임을 잊었다.)
Jan. 17(월) :
체중이 65,5Kg. 많이 늘었다. 내 스스로 봐도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 Wife의 얼굴이 떠오른다. 얼마나 염려를 해 주었는데 -. 오전 중 No.1 Life Boat를 내리는 훈련을 실시하다. 도착한지 2개월이나 되는 한국배도 있다고 했다. 옛날 Lagos의 일이 어제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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