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땅 이베리아 반도를 다녀오다 스페인 폴투갈 모로코 여행기 2005. 4/26~5/7
1. 폴투갈편 이번의 스페인,폴투갈,모로코 여행은 계절적으로 가장 좋은 4월말부터 5월초로 친구들 중에 가장 가까운 친구 두 부부(이충우,황정길)가 함께 동행케 되어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되리라 생각했다. 나는 사진을 책임지기로 하고 한 친구가 총무일을 맡아 공동경비를 관리하기로 하였다. 미리 소주나,안주도 준비해 가고 현지에서 맥주,와인 등 술값과 과일,물값 등에 충당하기로 하고--- 충분한 사전 지리,역사공부를 해야 하는데 며칠전에 중국 황산을 다녀와 여행기를 쓰고 가느라 공부는 커녕, 감기까지 걸려 여간 걱정스런게 아니었다. 집사람까지 같이 감기에 걸려 여행을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많지만, 그래도 여행이란 늘 생각만 해도 즐겁다.
4월 26일(화)11시에 인천공항터미널에 모였다. 모이고 보니 우리가 참가한 여행사의 일행이 39명이나 된단다. 좀 많다고 생각된다. 인원이 많으면 가이드의 설명도 자세히 듣기가 힘든다. 예정보다 50분이나 연발하여 2시50분경 독일항공사인 루프트한자(LH 713)편으로 지루하고 견디기 어려운 장거리 비행시간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비행기는 새비행기로 깨끗하고 편했다. 그리고 식사도 외국비행기인데도 한국손님이 많아서 인지 비빔밥이 나오고 간식으로 컵라면도 나왔다. 11시간40분을 날라 푸랑크풀트에 도착했다. 이곳과는 시차가 7시간이라 이제 오후 7시반. 두시간의 트랜스퍼 시간을 거친 후 이번 여행의 첫번째 목적지인 폴투갈의 리스본으로 향했다. 리스본이 가까워 온 모양이다. 하늘에는 보름이 지난지 얼마 안되는지 동그란 달이 우릴 반기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리스본의 야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마치 반짝이는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했다. 리스본에 도착하니 밤 11시50분. 또 한시간의 시차, 서울보다 8시간 늦게 가는 것이니 일단 8시간 득을 본 셈이다. 현지 가이드가 나와 있었다. 호텔까지 가면서 가이드의 폴투갈과 리스본을 소개하면서 세계 최고의 관광명소라고 자랑을 하였다. 기대에 부풀어 본다. 내일 아침 8시20분부터 스케쥴이 시작 된단다. 감기약을 먹고 빨리 건강을 회복해야 할텐데--
15세기 해양대국 폴투갈 리스보아(현지인들은 리스본을 리스보아라 한다)는 폴투갈의 수도로 인구가 250만명이다.폴투갈 전체인구가 천만이라니 리스보아의 위치를 짐작케 한다. 폴투갈은 남한크기와 비슷하다. 15세기 세계 최강의 해양대국으로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는 등 엄청난 부를 향유하면서 강대부국으로서 프라이드가 강했으나 지금은 동유럽을 제외한 EU국가중 가장 빈국에 속한다. 소득 12,000불이니 우리와 비슷하다. 카토릭의 성지로 이름난 파티마 지구 등 관광지가 많고 날씨가 좋아 유럽의 관광객이 들끓고 그래서 유럽의 휴양지라고 할 정도로 관광대국이다. 특히 대서양과 지중해 바다를 끼고 있는 폴투갈은 해양국으로서의 천혜의 조건 뿐만 아니라 습기많은 서유럽의 날씨와는 달리 기후도 너무 좋다. 과거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인지 영국인의 별장이 많고 영국인에게는 하기휴양지로서 이곳을 최고로 꼽는단다. 과연 축복받은 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리스보아를 가로지르는 떼주강은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시작되어 이곳 리스보아의 젖줄이 되고 있는데 강폭이 16km나 되어 이를 건너기 위한 2개의 명물 다리(바스코다가마 다리,4월25일 다리)가 있다. '바스코다가마 다리'는 다리폭만 16km나 되는데 상류에서 모터배가 못다닌다고 한다. 자연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다리 왕복이 32km이니 달리기코스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리스보아에는 아직 한국인이 120명 정도밖에 살지않아 한국식당도 없고 한국관광객에게는 좀 불편하다. 중국식당이 400개 정도가 산재해 있어 주로 이를 이용한다고 한다. 폴투갈에서 유래된 말들이 많이 있다. 흔히들 사용하는 빵, 카스테라, 컵 등이 모두 폴투갈어이다.임진왜란 때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던 일본의 병기 조총도 일본이 폴투갈에서 수입했던 무기이다. 폴투갈도 여늬국가와 같이 유로화를 사용하면서부터 물가가 뛰어 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특히 땅값이 뛰어 바닷가 휴양지는 뉴욕보다 비싸다고 하니- 38도선을 우리와 같이 가진 폴투갈은 해양국이라 해산물이 풍부하고 유럽의 아시아라고 할 만큼 쌀이 많이 생산된다. 레몬과 오렌지,올리브가 많이 생산되고,코르크의 세계 제1생산국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계속적으로 보이는 것은 콜크 재료인 참나무,올리브 농장, 그리고 오렌지 나무 들이다. 그리고 대구,정어리와 같은 생선이 풍부해 생선요리가 다양하다. 6월의 정어리축제는 유명하다. 또 에스프레소 커피는 이곳의 명물이다. 진한 커피향 때문에 매니아들이 많지만 설탕을 타야만 마실수 있다. 유명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본고장에서 600원으로 싫컷 마실수 있게 되었다. 폴투갈 제2의 도시인 포르트의 와인도 유명하다. 포르트지방의 포도에 브랜딩하여 19%의 진한 레드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폴투갈의 주 소득은 관광상품이지만 그외 농산물과 광물질인 돌,대리석 수출도 많다고 한다. 폴투갈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부끄럼이 많은 민족이다. 키도 작고 머리색갈도 동양인처럼 검다. 이웃인 스페인과 영국과의 지리,역사적인 분쟁으로 고통을 많이 받은 민족이다. 그래서 우리와 동질감을 많이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3F의 폴투갈 폴투갈하면 생각나는 세가지가 있다. 모두 F로 시작되는 말이다.축구인 푸트볼은 특히 폴투갈 사람들은 미친다. 우민화 하는 첫번째 정책의 하나다. 그리고 애환의 한이 서린 국민노래 '파드'가 있다.지난 1999년79세로 작고한 폴투갈의 국민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3일간이나 국장을 치룬 파드의 대부이자 국민영웅이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이후 최고의 '파두' 가수로 평가받는 여가수는 '미샤'인데 재작년 가을 서울에서 공연을 가진바 있다. 오랜 세월 포르투갈인들의 한과 삶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파두'는 이제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소네'와 더불어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음악으로 자리잡았다. 카토릭 성지로 꼽히는 '파티마'는 워낙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성모마리아가 발현한 곳으로 '루시아' 등 세소녀가 목격한 곳이기 때문이다. 파티마지역은 이번 여행지의 첫번째 관광코스로 잡혀있었다.
파티마 성지순례 첫날 관광 목적지는 리스보아에서 200km 떨어진 파티마 지역이었다. 천주교 신자이면 평생소원인 제1의 성지순례지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가이드가 폴투갈 인사말을 가르켰다. '본디아'(안녕하세요 아침인사),'보따르드'(저녁인사) '브리가도(다)'(감사합니다,남,여,구분) 한국이 재미있는 지옥이라면 폴투갈은 지루한 천국이라는 가이드의 비유표현이 재미 있었다. 2시간을 가는 동안 바깥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파란 목장의 양과 소떼들, 참나무와 유클립스 나무들이 한없이 이어지고,올리브나무의 농장,동그란 모양의 우산소나무,빨간 양귀비 아마폴라,노란 금작화,벽돌색지붕의 주택들이 우리를 반긴다. 피로하지만 졸수가 없다. 하나라도 더 보려고 창밖으로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고 간다. 가이드의 익숙한 안내멘트는 계속되고 있었다. 천주교를 모르는 나로서는 이곳이 그렇게 유명한 성지인줄 몰랐다. 같이온 mr.Lee는 경북고 동기회 천주교 신자 동문모임인 성목회 회장이니 부부 모두 정말 성지순례가 된 셈이다. 파티마에 도착하여 대성당과 성모마리아가 발현했다는 우물가, '루시아'와 '히야신타'의 집을 차례로 관광하였다. 파티마는 포루투갈 중서부, 레이리아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로, 수도 리스본의 북동쪽 약200㎞에 있다. 이 작은 도시가 유명해 지고 성지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이곳을 찾게되는 것은, 1917년 5월 13일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기적 때문이다.
이곳 파티마 지역에 1917년 5월13일부터 10월 13일 까지 어린양을 돌보던 세 어린이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셨다. 후일 가르멜회 수녀가 되어 이 발현에 대해 저술하고 가르멜회에 입회한 루시아(Lucia dos Santos) 수녀와 그 사촌남매 히야친타(Jacinta Marto, 1910~1920), 프란치스코(Francisco Marto, 1908~1919) 등 세 목동들이 성모를 직접 보고 그 말씀을 받았다. 보통 때처럼 묵주의 기도를 바친 후 돌을 모아 집짓기 놀이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밝은 빛이 번쩍이더니 눈부신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부인이 나타났다. 그 부인(성모 마리아)은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면서 앞으로 5개월 동안 매월 13일 이 곳에 나타나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성모 마리아는 매월 13일 발현장소에 오면 10월에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할 지 가르쳐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성모마리아의 발현은 1946년 교황이 인증함으로써 진정한 성지가 되었다. 성모마리아가 세소녀에게 말한 세가지 비밀이 유명한 이야기인데 '세계대전의 종말, 공산당의 멸망,은 이미 실현되었고, 마지막은 확실히 교황청에서 밝히진 않았지만 '하얀 사제복을 입은 신부가 고통을 받는다'는 것인데 1982년 5월13일 교황의 저격사건이 있었다. 이를 두고 하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 로마 교황이 확인하여, 1953년 이곳에 대성당이 건립되었다. 이 후 파티마는 프랑스의 루르드와 함께 성모 발현 2대 성지로 꼽히며, 해마다 수십만 명의 순례객이 모여들고 있다.
히야신타의 집과 루시아가 살던 집의 침실을 구경하고 천사의 우물을 관광한 후 파티마 대성당으로 갔다. 30만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규모의 성당이었으나 다시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우물가 참나무
리스본 관광 파티마에서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동안 폴투갈 국민가요 '파드'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한다. 리스본은 고지대인 알토지구와 중심부의 저지인 바이샤지구로 나누어진다. 두 지구는 공공 엘리베이터와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으며, 북서로 뻗어 있는 시가지에는 12개 이상의 언덕이 있다. 테조강 건너 연안에는 높이 109m인 그리스도상(1959)이 바라다보인다. 1966년에 완성된 서유럽 최장의 조교(弔橋)인 <4월 25일 교(橋)>는 처음으로 건너편 연안과의 사이를 연결하여 지역개발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현재 중심가도의 대부분은 1755년의 대지진 후 재상 S.J.C.M. 폼발후작의 지휘로 부흥과 재개발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정비된 것이다. 레스타우라도레스광장에서 북서로 향해 폼발후작 광장까지 뻗은 나비 90m, 길이 1.5㎞의 리베르다데가(街)는 리스본의 중심가이며 1880년 개통한 것이다. 바이샤지구는 문화·상업·행정·교통의 각 시설이 집중해 있는 곳으로 로시오광장과 코메르시오광장이 있다. 로시오광장 동쪽의 구릉 위에 사웅조르제성이 솟아 있다. 영국과 역사적 관련이 많으며 리베르다데가 북서의 에드워드 7세공원은 영국왕의 포르투갈방문을 기념한 것이다. 서쪽 끝의 벨렘지구에는 마누엘양식의 벨렘탑(1515)이 서 있고, 그 북동에는 16세기 마누엘 양식의 제로니모스 수도원이 있다. 국립고미술관, 굴벤키안미술관, 해양박물관, 고고학·인류학박물관 등 문화시설도 많다. 리스본대학·공과대학·가톨릭대학 등 5개의 종합대학이 있다.
로시오 광장
폴투갈 재독립 기념첨탑 제르니모스 수도원
상조르제성
코메르시우스광장 대리석으로 조각한 마뉴엘 양식의 발견기념비
땅끝마을 까보다로까 발견기념비를 구경하고 약 한시간 거리에 있는 폴투갈의 가장 서쪽 끝인 아니 전 유럽에서 가장 왼쪽 땅끝마을인 '까보다로까'에도착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 겉옷이 없이는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선인장 종류의 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땅끝마을을 방문했다는 기념 증명서도 만들어준다.가파른 절벽 아래엔 시퍼런 대서양 바닷물이 흐르고 갈매기들이 유희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한반도의 남쪽 '토말'(땅끝마을)을 몇년전 가본 일이 있는데 그 때의 감회가 떠 올랐다. 대서양의 시퍼런 바닷물을 굽어보며 유럽의 땅끝마을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니 이것도 역사적인 순간이구나 싶었다. 열대 바닷가에 피는 선인장 밭을 걸으며 야생화천국에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 카메라에 야생화들을 퍼 담았다.
땅끝마을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본 '카시카시' 마을은 바다를 끼고 아파트,콘도,호텔이 늘어서 있는데 장관을 이룬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왼쪽은 울창한 숲과 만발한 형형색색의 야생화, 오른쪽은 시원한 바다풍경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6시가 넘자 러시아워인지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묵는 호텔은 리스본의 외각 고급 주택가였다. 멀지않은 곳에 세계에서 가장큰 카지노 'CASINO ESTORIL'의 모습이 보였다.저녁식사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포도주를 시켰다. 식사후 우리 일행은 마을앞에 있는 바닷가 쪽으로 산보를 하였다. 이제 폴투갈의 이틀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긴채 내일은 스페인의 땅 세비아로 간다
포루투갈의 땅끝 로까곶
2.스페인 (1)세비아,말라가편 오늘은 장시간 버스를 타야한다고 6시에 모닝콜을 했다. 7시에 출발한단다. 그래서 아침식사도 샌드위치와 쥬스,오랜지로 떼우고-- 폴투갈의 리스본에서 세비아까지 버스로 가려면 쉬는 시간 포함해서 6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폴투갈과 스페인은 바로 인접된 국가이지만 워낙 큰 땅이라 도시와 도시간에도 몇시간씩 달려야 된다. 날씨는 너무나 화창했다. 가이드가 바뀌었다. 폴투갈 가이드는 아주 똑똑해 보이는 여자였는데, 스페인 가이드는 남자로 말은 느리나, 아는게 많았다. 특히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3시간 반이나 가야 국경이 나온다니 지루한 버스여행이다.
스페인 ! 정열과 태양의 나라,돈키호테와 카르멘의 나라 피레네산맥을 넘으면 우리가 아는 유럽과는 또 다른 유럽, 스페인을 만나게 된다. 길거리에 늘어선 바(BAR)나 카페테리아에 들어서면 자욱한 담배연기와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에서 더 이상 서구의 격식과 이성을 벗어나게 된다. 돼지 뒷다리(하몬)를 주렁주렁 매단 바 구석에서 목청껏 떠들고 먹고 마시고, 축구라면 사족을 못쓰고, 지역감정이 우리보다 훨씬 더한 나라가 스페인이다. 황량한 벌판 위에 심어진 올리브나무는 돈덩어리로 보이고 오렌지와 와인,맥주를 무제한으로 먹고 마시며 즐길수 있는 나라! 말이라면 어느민족 보다도 많고, 시끄러운 민족이지만, 오후만 되면 시애스타(낮잠)로 조용해지는 민족. 그러면서도 소득 2만불이 넘는 잘 사는 나라가 스페인이다. 투우와 플라밍고로 대표되는 정열의 나라를 앞으로 돌아보게 된다. 떼주강을 건너며 스페인 세비아 방향을 향해 달린다. 달리는 버스길 양옆으로 엄청난 목장이 전개되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양들의 모습이 이국적으로 다가선다. 유클립스 나무가 많고 위가 우산처럼 동그란 소나무가 특이하게 눈에 들어온다.
콜크 참나무가 계속 이어진다. 폴투갈은 전세계 콜크의 75%를 공급한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가이드가 스페인에 대해 정보를 주려고 애를 쓴다. 인사말부터, 올라(안녕하세요),아디오스(안녕히 가세요),그라시아(감사합니다)---스페인은 52개의 세계문화유산을 갖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이베리아반도는 축복받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로마,아랍,기독교문화가 어우려져 있고 이것이 오늘날 관광대국으로 발돋움할수 있는 선조들의 유산으로 남겨졌으니--거기다 지중해를 끼고 좋은 기후조건으로 유럽인의 최고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국경지대의 강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도 많던 콜크나무는 도토리나무로 변하였다. 그리고 올리브와 오렌지농장이 등장하고 있다.스페인의 남부 안다루시아 지역은 올리브기름과 오렌지가 많은 지역이다.그리고 밀농사가 많다. 특히 발렌시아는 오렌지도시라고 할 정도이다. 스페인과 폴투갈의 원주민은 이베르족이다. 북부의 에베르강,이베르족,이베리아반도 등 모두 같은 어원이다. 그리고 스페인은 에스파니아라고 부르는게 보통이다. 히스파니아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스페인은 스판(span:뺨)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이베리아 반도에는 5개의 공식 언어가 사용된다고 한다. 이해가 금방 안가는 복잡한 민족이다.
스페인에서는 3가지 빠른 것이 있다고 한다. 뭔가 궁금했다. 첫째는 말이 빠르단다. 스페인사람들의 수다는 알아줘야 한다. 꼭 싸우는 사람들 같다. 그리고 두번째는 장례식이 빠르다. 오늘 세상을 떠나고 내일 오전에 장례를 마친다. 과연 옳은 곳인지,판단이 어렵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랑이 빠르단다.사랑이 빨리 익으면 대신 사랑이 지는 것도 빠를까? 11시40분경 과디아나강을 지나면서 국경의 안내표시가 보였다.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4시간 40분만에 스페인에 입국을 한 것이다. 폴투갈보다는 한시간의 시차를 두고 시계바늘을 늦춰야 한다. 한국과는 7시간차. 안다루시아지방은 스페인 17개의 주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2개의 자치도시를 갖고 있다. 중앙분리대에는 어디를 가나 같은 색갈의 꽃나무가 심어져 있다.
노오란 금작화, 그리고 붉은 색의 유도화가 시선을 끈다. 유도화는 아직 이른 시기인지 꽃몽우리를 감춘채 금방 터뜨릴 것 같은 모습이다. 들판에는 빨강색의 아마폴라가 너무 아름답다. 아마폴라는 야생 양귀비라는데 양귀비과는 언제 보아도 화려하고 요염하다.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다. 버스의속도제한은 100km라고 한다. 길도 좋고 버스도 좋아 비록 장거리라도 편하다. 과다끼비르강을 건너면서 세비아가 시작되었다. 세비아는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세빌리아이다. 세비아는 음악의 도시로 세비아 악기가 유명하다. '세비아의 이발사'라는 음악은 유명하다.
낭만과 사랑이 넘치는 세비아 세비아는 인구 180만의 오렌지색의 도시이다. 황금의 도시인 것이다. 가로수는 전부 오렌지나무이다. 노란 오렌지가 달린 나무가 지천이다. 세비아는 낭만과 사랑의 도시이다. '세비아 남자의 절개를 믿지말고 세비아 여자의 사랑고백을 믿지말라' '세비아 여인의 뜨거운 피를 조심하라'는 등 사랑에 관한 속언이 많다. 세비아인의 특이한 사랑문화를 들으며 한편 '기다리다 보면 참게되고 참다보면 잊혀진다'라는 기다림문화도 이해해야 한다니--어쨋든 역시 세비아는 낭만과 사랑의 도시랄까 그런걸 느끼게 한다. 또 세비아는 유명한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였던 예술의 도시이다. 그 옛날 카르멘이 다녔던 담배공장은 세비아 대학으로 변해 있었다. 고풍스러운 세비아의 골목에서는 마치 카르멘과 돈호세의 사랑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세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세비아 성당을 먼저 찾았다. 고딕양식의 대사원으로 세비아의 심벌인 히랄다(Giralda)탑이 우뚝 솟아 서 있는데 높이가 무려 97m,40층으로,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한다. 크기를 말할때 성당의 중앙회로의 길이를 두고 순서를 정하는데 세비아 성당의 경우 147m라 한다. (바티카의 산피에트로 성당,영국의 세인트 폴 성당 다음) 밖에서 보는 세비아 성당은 가히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다.성당의 벽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현란한 무늬로 조각되어 있다. 성당안에서 하늘 높이 솟은 천정은 쳐다보기가 힘들 정도로 높은데, 타원형으로 대칭되게 조각된 문양은 정말 감탄의 연발이었다. 성당안에서 화가 무리오의 작품 '산 안토니오의 환상' 등을 감상할 수 있었다. '오늘도 무사히'라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의 그림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본다. 그 그림이 바로 무리오의 그림이다. 또 네명의 기사가 관을 지고 있는 '컬럼버스의 묘'도 대단한 걸작으로 보였다.
세비아 대성당 관람을 마치고 부근에 있는 유태인 거리를 거닐었다. 키스의 거리라고도 하는데 건물과 건물이 붙어있어 골목이 아주 좁은 것이 특징이다.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 유명한 '돈 푸안'이 묵었던 호텔도 보였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과 쥬스를 사먹었다. 아이스크림은 역시 우리 입맛에 맞는 한국제가 제일인 것 같다. 이날은 아직 4월인데도 날씨가 여름날씨다. 낮 온도가 무려 섭씨 34도라고 했다. 그러나 습도가 많은 후덥지근한 날씨가 아니라 뜨겁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쉬원했다. 컬럼버스가 타고 간 산타마리아호의 기념 동상 앞에서 모두들 기념촬영을 했다. 엄청나게 큰 나무 숲으로 우거진 공원이 무리오의 정원이라고 한다. 스페인 광장은 중앙에 분수가 있고 4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이 다리는 4개의 기독교 왕국을 의미한다고 한다. 건물은 현재 주 청사로 사용하고 있는데 벽돌 아치는 이슬람, 하얀 기둥은 그리스의 기둥, 그리고 꼭대기 돔은 비잔틴 양식이라 한다.
16세기 유럽의 3대 항구도시의 하나로 날리던 세비아 ! 그 찬란했던 문화의 유산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든다. 황금의 탑은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15,000명을 수용한다는 세비아 원형 투우경기장도 유명한데 투우경기를 보지 못하는 것이 좀 아쉬웠다. 숙소인 말라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끝없는 대 평원이 전개되었다. 고속도로변의 누런 밀밭의 연속이었다. 달리는 버스 속에서 오페라 '카르멘'의 카셋 음악을 듣는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면서-- 높은 바위산이 연결된 듯한 산맥이 이어졌다. 이 산맥을 넘으면 론다지역이 된다고 한다. 론다지역은 투우로 유명한 지역이란다. 산맥을 통과하는데는 긴시간이 소요된다. 키타음악이 감미롭게 흐르고 있다.
세비아 시가지
세비아 성당 성당 내부 콜럼버스의 무덤
90m의 히랄다 탑
유태인 거리(키쓰거리라고도 함)
산타마리아호 기념동상 세비아 스페인 광장/주청사로 사용
스페인의 전통음식 하몽 우리가 궁금하게 생각했던 '하몽'에 대해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냉장이 어려웠던 시절은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여 숙성해 먹었다. 오늘날까지 스페인의 최고의 전통음식이다. 토종의 검은 돼지를 도토리 나무 밑에서 키우는데 도토리 열매를 주식(60%)으로 100m이상의 거리에 우물을 파서 돼지가 운동을 하게 하면서 키운다. 방목돼지가 1년이상 되면 잡아서 소금에 절이고 하루동안 절인 뒤 물로 씻어낸다. 그리고는 실내에서 온도 25도c~30도c,습도 80~90%의 지하창고에서 말리면서 1년간 숙성시킨다. 바람이 있고 온도가 낮은 곳에서 2년이상 2차 숙성을 한다. 최소한 3년이 지나야 하몽이 완성된다고 한다. 하몽은 짠 돼지고기로 술안주로 적격이다. 멜롱과 같이 먹는 것이 상례라 한다. 비싼 것은 한짝에 백만원이 넘는데 '이베리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영화 '하몽하몽'에서 이미 본 장면들이지만 역시 스페인의 모든 가게나 레스토랑에는 하몽이라는 돼지 뒷다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모습이 특이한 문화로 비춰졌다.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 드디어 '말라가'시가지가 나타났다. 아름다운 도시라는 뜻을 가진 말라가는 피카소의 고향이라고 하는데 '태양의 해변'이라고 불린단다. 남부 안달루시아지방의 항만도시로 말라가주(州)의 주도(州都)이며 인구는 55만명. 지중해에 접한 말라가만(灣)에 면하며 과달메디나강(江) 하구의 동쪽에 중심시가가 있다. 지중해 바다의 아름다운 물, 그리고 바다모래- 유럽 최상의 휴양지인 말라가에서 하룻밤을 잔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라틴아메리카음악인 '말라게냐'는 말라가 일대에 전해내려오는 판당고 음악형식의 한 종류로, 신대륙에도 전해졌다.말라가 시내를 관광하지 못하고 그냥 1박만 한 채 아침에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도리가 없다. 밤 9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첵크인 했지만 저녁을 먹고 말라가 야경을 보기 위해 남자들만 셋이서 거리 산책을 나갔다. 스페인에서는 보통 밤 9시경에야 저녁식사를 하고 12시까지 술을 마시며 즐기는 나라이다. 호텔주변도 관광객들로 제법 흥청거리는 모습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근 12시경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호텔은 수위트 룸으로 여태까지 중에서는 가장 고급스런 방이었다. 내일은 대망의, 생애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을 밟는 날이다. 영화 '카사브랑카'의 무대 카사브랑카는 물론 모로코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하는 '페스'도 일정에 끼어 있다. 배를 타야 하니 배 시간에 맞춰 일찍 기상해야 한단다. 흥분을 누르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말라가 시
3.모로코편 어제밤 늦게 잤지만 오늘 부지런히 서둘러야 했다.아침 8시가 조금 넘자 모두 버스에 올랐다. 11시 반 배를 타기 위해 타리파까지는 두시간이상 가야 한다. 낮에 보는 '말라가'시는 정말 휴양지답게 아름답다. 지브랄타 해협을 끼고 휴양지의 60%가 외국인 소유로 특히 영국,독일,프랑스인의 소유가 많다고 한다. 우측 산 중턱에 하얀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바다를 바라다 보며 별장도시가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 집들 외의 온산은 노란 꽃으로 물들어 있다. 참으로 아름답다. 타리파에서 배를 타게 되는데 가는 도중 바람이 센 산 등성이에는 풍력발전기가 일렬로 늘어서 있어 과연 장관을 이룬다.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면 바로 아프리카 대륙이다. 해협의 거리는 가장 짧은 단코스가 13km, 먼 거리가 43km라 한다. 11시 40분 배가 출발했다. 1시간가량 걸린다고 한다. 차멀미가 걱정이 되어 멀미약을 얻어 먹었다. 처음엔 배멀미 때문에 걱정이 되어 배안에 있다가 답답해서 배 난간으로 나왔다. 그런데 사실은 멀미약 때문에 잠이 와서 관광하는데 지장이 많았다.몇명이 이미 밖으로 나와 있었다. 엄청나게 달리는 쾌속정이 시퍼런 바다 물살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하얀 거품을 내면서-- 기분이 너무나 상쾌했다. 바람이 세어 모자의 끈을 묶어야 했다.한참을 가다 보니 바다 돌고래가 따라 오고 있었다. 누군가 먼저 본 사람이 함성을 질렀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돌고래를 포착하고 확대하여 찍으려고 몇번이나 시도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몇 사람만이 보았지만 너무가 신기하였다. 모로코에 닿는 항구는 '탕헤르'항이다. 모로코는 또 시차가 있다. 스페인보다 2시간이 늦다. 한국과의 시차는 9시간인 셈이다.
모로코 위치와 국기 탈리파에서 탕헤르까지 1시간 걸린다.
생애 최초로 아프리카 땅을 밟다 드디어 모로코의 탕헤르 항에 도착하였다. 아프리카 ! 내 생애 최초로 아프리카의 땅을 밟는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동을 받는다. 좋은 인상의 여행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모로코는 이슬람 국가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면적이 70제곱km로 토마토,딸기 등을 생산하는 농업 위주의 국가이다. 소득이 낮아 인당 국민소득이 1,400불밖에 안되는 저소득 국가이다. 그러나 카사브랑카 등 태양과 바다가 좋은 해양관광도시로 유럽인의 휴양지로 사랑을 받고 있다. 1951년 프랑스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하였고 인구는 3천만명이다. 그중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이 25%를 차지한다. 국민의 76%가 문맹이라니 역시 미개국이라는 실감이 난다. 이곳의 화폐단위는 '디란'으로 1유로가 10디란으로 계산하면 된다.
유로가 통용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아랍어는 공용이고 불어 스페인어도 통용된다. 지역 원주민의 언어인 베르베르어도 사용된다. 못사는 국민이다 보니 스페인으로 밀항자가 많아 골치라고 한다. 관광버스 짐칸에 숨었다가 페리호 배로 건너서 스페인으로 밀항하는 자가 많단다. 그래서 스페인으로 떠나는 버스는 짐칸을 두드리며 후래시를 비추고 야단들이다. 우리 버스에도 한사람이 숨었다가 쫓았다 한다. 정말 웃지못할 일이었다. 아프리카 모로코는 비록 못사는 나라지만 열대 야자수가 늘어선 가로수를 보면서 스페인과 풍물면에서는 크게 다른 점이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양고기 구운 미트를 메뉴로 점심을 먹고 카사브랑카로 달리는 도중 수도인 라밧트(Rabat)를 거쳐 가기로 스케쥴을 조정했단다. 모두들 좋아했다. 한곳이라도 더 볼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모로코는 해가 지는 서쪽이라는 뜻으로 마그리브(Al Magliv)에서 어원을 찾는다고 한다. 이슬람 국가이므로 여인들은 베일을 쓰고 다닌다. 라바트까지는 3시간 반이나 걸린다 한다. 달리는 버스 우측으로 대서양의 파란 바닷물이 보이고 모래사장이 유혹을 한다. 좌측 들판에는 형형색색의 들꽃들이 아름다움의 경연장인듯- 무한히 넓은 대륙임을 실감케 한다. 간혹 동네가 나오면 어링애들이 연 날리는 모습도 보기가 좋았다. 이곳도 축구를 좋아하는지 운동장만 보이면 축구를 하는 모습들이다.
모로코 수도 '라바트' 라바트는 인구가 150만이나 되는 도시로 이 나라의 수도이다. 첫 관광 목표지점은 무하마드 6세 왕의 아버지 무하마드 5세의 무덤과 할아버지 핫센2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시 왕이란 존재는 대단하구나 싶었다. 모로코의 날씨는 너무나 이상적이다. 가장 추운 1월의 경우 제일 낮은 온도가 섭씨 8도이고 여름철 8월이 가장 더운데 18도에서 28도라 하니 환상적인 기온이 아닌가-라바트를 떠나 카사브랑카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버스내에서 카사브랑카 영화를 상영하였다. 곧 도착할 카사브랑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서 옛날 영화관에서 보던 기억이 새롭다.
꿈의 도시 카사브랑카 드디어 카사브랑카 시내가 나타났다. 인구 400만의 모로코 최대의 도시다. 말로만 듣던 카사브랑카 ! 하얀 집이라는 뜻이란다. 그래서인지 카사브랑카에는 하얀잡 일색이다. 해가 서쪽으로 뚝 떨어진다는 카사브랑카는 거리가 온통 야자수 투성이다. 그래서 카사브랑카하면 온통 하얀집과 큰 야자수의 풍광이 먼저 떠오른다. 카사브랑카에는 서구풍의 건물이 늘어서 있으나 오래되어 어둠침침한 인상이다. 버스가 선 곳은 이슬람사원 앞이었다.카사브랑카는 누구나 한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꿈의 도시로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아랍민족은 아니지만 이슬람국가이므로 대단한 규모의 사원이었다. 현재 좌측 건물은 도서관으로 우측 건물은 박물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95%가 이슬람교를 믿고 나머지 5%가 유대교,천주교,기독교라 한다. 큰 야자수 가로수가 늘어선 거리에 왔다. 유태인 거리라고 한다.
카사브랑카 하산2세 사원
문양이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답다.
버스안에서 유태인 거리를 사진으로 남겼다.분수있는 광장 앞에 버스가 섰다. 유엔광장이라고 했다. 법원이 있고 앞에는 무하마드 5세광장이 있었다. 우체국,시청 등 주요기관이 로타리에 운집해 있었다. 이 광장에서 사진찍는 시간과 휴식시간을 가졌다.관광을 마친후 호텔 La Corniche에 입숙하였다.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생선류가 주 메뉴였다. 매일 저녁 우리는 red wine을 마셨지만 오늘은 생선이니 white wine을 시켰다. 스페인보다 약간 비싼 편이었다. 내일은 메디나로 유명한 페스를 관광하는 날이다. 페스는 모로코의 북쪽 내륙에 위치한다. 모로코에서 가장 오래된 고도(古都)로 특별한 주거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메디나'라고 하는 옛모습의 도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고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페스까지 가는 길은 황금물결로 펄럭이는 것 같은 밀밭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목축장에는 산양과 얼룩소가 무리지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한폭의 그림이다. 목장 울타리는 일률적으로 손바닥선인장으로 둘러쳐저 있다. 가끔 녹색의 포도밭이 있어 밀밭색과 조화를 이룬다. 야생 양귀비인 아마폴라는 이곳 아프리카에도 빨강색의 정열적이고 요염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페스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중식시간을 가졌다. 이날의 중식은 야외 도시락으로 휴게소 야외 의자에서 가졌다. 그런데 도시락이라 하여 샌드위치 정도가 아니겠는가 했더니 기가 막힌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었다. 흰쌀밥에 두부조림 김치 깍두기 오이쏘배기 깻닢 생선 등 한국에서도 이만큼 맛있는 도시락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도대채 어떻게 이처럼 훌륭한 도시락을 준비했을까 싶어 물어 보았다. 모로코의 여행사 사장 모친이 직접 40여개의 도시락을 준비했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야외에 소풍나온 기분으로 먹는 도시락- 정말 맛있고 기분좋은 점심시간이었다.
모로코의 경주(慶州) 페스 페스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메디나를 우선적으로 관광하게 된다. 메디나는 페스의 구 시가지로 미로의 도시로 유명하다. 낯선 사람이 일단 시가지에 발을 들여놓으면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얽히고 설킨 미로에 정신을 잃고 만다. 좁은 길은 노새 2마리가 겨우 스쳐지나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미로를 중심으로 발달한 것은 성채가 함락되더라도 적군이 대거에 밀고들어올 수 없게 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전술이다. 침입한 적군을 좁은 골목길을 이용해 ‘도시 게릴라’ 전법으로 맞아 싸우겠다는 것. 그중에서도 페스의 메디나는 중세 모습을 거의 완전히 보존한 곳으로 유명하다. 8세기에 만들어진 도시로 1200백년~1300년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이곳의 유일한 운송수단은 당나귀이다.택시 하고 외치면 좌로 밀착해야 한다. 잘못하다간 당나귀에 교통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페스는 상주인구가 77만명이나 되는 제법 큰 도시로 관광객들도 많다. 페스시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구분되는데 구시가지가 메디나이다.가로수는 큰 프라타나스로 이루어져 있다. 14세기에 지었고 19세기에 복원한 왕궁을 관람 후 옛 시장터를 걸어다니면서 구경을 하였다. 주로 금은 시계골목과 유대인 거리를 1시간 가량 구경하고 가죽염색공장으로 갔다. 가죽공장까지 가는 가죽제품시장골목은 마치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처럼 북적댔다. 미로골목이라 절대로 혼자사 다니다간 길 잃기 십상이다.
사원을 지났는데 신도들이 발을 씻고 있었다. 성서러운 물이라 귀히 여기는 모습이다. 가죽염색공장을 내려다 볼수 있는 가게터에서 울긋불긋한 염색원료통을 보면서 원시적인 느낌을 받았지만 천연염료라는 좋은 의미도 있었다. 가죽의 염색시 천연염색원료에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비둘기 똥을 섞는다는데 그래서인지 냄새가 지독하다. 냄새가 하도 지독해서 박하 허브 잎을 나누어 주면서 냄새 중화작용을 하도록 했다. 가죽제품의 쇼핑시간도 가졌다. 모로코는 20% 가까이는 농업이지만, 양고기나 가죽제품의 의류,가방,신발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구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대가 높은 전망대로 안내되었다. 눈아래 전 시가지가 보인다. 왕궁과 사원이 보이고 복잡한 미로의 메디나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페스의 구 시가지 메디나에 있는 블루게이트
페스 / 가죽을 염색하는 연료
가이드인 무하마드씨가 자기의 고향동네를 지나면서 버스를 잠시 세우더니 물통에 약수?를 많이 담아 왔다. 자기말로 알라신의 물이라고 소개를 했는데 일행중에 배탈이 난 친구가 있었든지 이 물을 먹으면 금방 낫는다고 주장한다. 신기해서 모두들 한모금씩 나누어 마셨다. 다시 탕헤르쪽으로 가서 거기서 저녁을 보내고, 내일 아침 해협을 건너 다시 스페인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또다시 황금색 물결의 밀밭과 무슨 꽃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노란 꽃밭이 한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가끔은 진초록 색갈의 밭이 섞여 색상의 조화를 이룬다. 당근인지 자운영인지 잘 모르겠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으며 열심히 버스는 달렸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야 서울 가서 싫컷 자면 된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어찌 놓칠수가 있는가 !
휴게소는 거의 두시간마다 들렀다. 휴게소에서 이곳 어린이 생일잔치로 카셑을 틀어놓고 신나게 춤을 추면서 노는 귀여운 모습에 넋을 잃고 구경을 했다. 휴게소마다 정원엔 아름다운 정원화와 들꽃들이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다. 나는 이 아름다운 꽃들도 가져갈 욕심으로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휴게소를 들릴 때 마다 오렌지를 직접 갈아 만든 오렌지쥬스는 너무나 맛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와인과 오렌지는 한없이 마시고 먹었다. 차창 밖을 보니 황새무리들이 무리지어 놀고 있었다. 이런 풍경도 아름답기만 하다. 저녁식사는 소고기찜인 '따젠'과 밀과 수수가루를 반죽하고 쪄서 말린 '꾸스꾸스'라는 전통음식을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포도주를 곁들려 먹으니 더욱 운치가 있다. 호텔 AHLEN은 마치 숲속에 있는 것 같았다. 아침엔 새소리에 잠을 깰 정도다. 내일은 다시 바다를 건너 스페인 그라나다로 간다. 이로써 아프리카 여행은 끝나는가 보다.
4. 스페인 (2)그라나다,꼬르도바 이른 아침 호텔을 출발하여 모로코 탕헤르의 8시 배를 탔다.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 스페인 그라나다로 가야하는 길이 너무나 바쁜 일정이다. 들어갈 때와는 달리 돌아오는 배는 속도가 빠른지 바람영향인지 20분이나 빠른 40분만에 해협을 건넜다. 모로코와 스페인은 2시간 시차로 금방 점심시간이 되었다. 알제시라스(알헤시라스)에서 중식시간을 가졌다. 이 도시도 지중해의 큰 항구 중의 하나이다. 그라나다까지 4시간30분의 대 장정이 시작되었다.
그라나다는 스페인의 꽃 과연 그라나다는 스페인의 꽃이라고 할 정도로 이슬람문화가 살아있고, 집시의 춤 플라밍고의 본 고장이기도 하다. 그라나다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알함브라 궁은 그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붉은 성벽'이라는 의미의 알함브라는 14세기 이슬람 왕조 말기에 건축된 이슬람 양식의 건축기술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최고의 궁전이다. 건물 벽과 기둥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석고와 대리석 가루를 틀에서 찍어낸 문양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이 아름다운 문양에서 진정한 장인 정신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과 이슬람의 건축물의 차이를 분명히 느낄수 있었다. 골목은 좁지만 앞마당이 있고 ㅁ자 건축이 특징이다. 그라나다로 가는 길은 과연 멀었다. 씨에라데케라 산맥을 넘어야 했다.
이곳에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30분내로 산이 있고 또 바다로도 갈 수 있단다. 네바다산맥이 멀리 보였다. 최고봉은 4398m로 3000m가 넘는 봉우리만도 11개나 된다고 한다. 험준한 산맥이 계속 보이면서 하얀 지붕을 한 만년설산이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그라나다는 석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라나다에는 석류가 많다. 8세기 바그다드에서 처음으로 들어온 석류가 그라나다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여 지금 계절에 온통 그라나다는 석류의 축제를 맞은 듯 하다. 석류는 생명의 상징으로 그리고 노아의 방주를 의미하는 의미있는 과일이기도 하다.
붉은 성벽 알함브라 알함브라 궁전은 중세 이슬람건축의 유구(遺構)로 세련되고 화려한 아름다움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원래는 성채·왕궁·욕장·모스크 등을 성벽으로 둘러싼 성채도시였다. 이슬람의 마지막 왕조인 나스르왕조 모하메드 1세(재위 1230∼72) 때 조영이 시작되었으나, 오늘날 유구의 대부분은 14세기 유수프 1세와 모하메드 5세 치하에서 건설된 것이다. 궁전 전체 대지는 부정형으로 되어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중정(中庭) 3곳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붉은 성"이라는 뜻의 알함브라 궁전의 성벽은 2km이고, 길이가 740m에 달한다. 알함브라 궁전은 하나의 단독 건물이 아니라 메수알(Mexuar)궁전, 코마레스(Comares)궁전, 사자(Leones)궁전 등이 합쳐진 궁전의 복합체다.
매표소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미 오늘의 입장권은 매진 상태란다. 물론 예매를 해 두었기에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매표소를 지나 나무숲 사이로 난 인도를 따라 5분쯤 걷다보면 알함브라의 정문격인 方形의 탑문인 정의의 문(Puerta de la Justicia)이 나오고, 다시 약간 비탈진 정원을 지나면 거대한 사각 건물인 카를로스 5세 궁전과 만나게 된다. 국토 회복운동이 마무리 된 16세기,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연 카를로스 5세가 르네상스 건축양식으로 지은 이 궁전은 회랑이 중심이 되는 독특한 구조로 내부에는 원형의 빈 공간을 두었는데 필요시에는 가설무대가 설치된다고 한다. 대사의 방 입구 쪽에는 풀장을 연상시키는 장방형의 연못이 있는데, 그곳 전체를 아라야네스 정원(Patio de los Arrayanes)이라 했다. 파티오(Patio)란 사방이 모두 건물로 에워싸여 있는 정원을 의미한다. 이 방의 압권은 천장 장식으로 8천17개의 세다 나무 조각으로 짜여진 돔형 천장에 펼쳐진 여러 가지 기하학적 문양이다.
궁전의 수많은 기둥과 벽, 천장은 아라베스크 문양과 아라비아 서체의「코란」글귀들로 빈틈없이 장식되어 있었고, 각 부분에 알맞은 색채까지 곁들여 황홀한 경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인물이나 동물 문양은 장식으로 사용하지 않고 대신 식물과 별, 기하학적 문양 그리고 문자만을 이용하는 이슬람 건축의 특징을 담은 각종 문양 등 화려함의 극치를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작은 통로를 통과하자 라이온 궁전이 나온다. 이 곳은 무하마드 5세 시대의 걸작으로 최고의 신기가 펼쳐진 공간이다. 사방으로 높이 6m의 회랑이 감싸고 있는 궁전 뜰 중앙에 약 5m의 분수반을 12마리의 사자가 지탱하고 있어 라이온(Leones)의 궁전, 혹은 사자의 정원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다. 이곳의 2층은 內殿 여인들의 처소로 이슬람 세계에선 하렘(Harem)이라 불렀던 곳으로, 남자라곤 오직 술탄만이 출입이 가능했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섰다가는 목이 달아나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한다. 124개의 대리석 기둥이 아름다운 이 곳에서는 이슬람 특유의 섬세한 아라베스크 무늬 장식을 한 가장 화려한 조각예술을 감상할 수가 있었는데, 기둥 윗부분의 원형 아치와 돌출 조각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아랍지역의 길게 잎을 늘어뜨린 야자수를 연상토록 만든 것이라 한다.
알함브라 궁전 건축의 특징은 밝은 곳은 더욱 밝게 하고 어두운 곳은 더욱 어둡게 하는 빛과 어둠의 적절한 대비였다. 이를 위해 외부의 빛을 매우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었는데, 라이온의 정원 옆에 위치한 ‘왕의 방’과 ‘두 자매의 방’이 그 대표작이다.연이어 약 5평 크기의 “비밀의 방”은 대각선 코너에서 속삭이듯 얘기해도 반대편 기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뚜렷이 들리는 신비함을 간직한 곳이었다. 궁내부에는 향료나 약제로 사용한 허브식물 코마레스가 심어져 있고, 곳곳에 산재한 분수대는 재판이나 기도 전에 손을 씻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물을 신이 주는 사랑이자 선물로 귀히 여겼다고 한다.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알함브라궁을 관람하는데는 근 두시간이 걸렸다. 수박 겉핧기 식이지만 느낀 점이 너무나 많았다.
알람브라 궁전 정원
알람브라 궁
알람브라 궁 헤네랄리페 정원
집시의 춤 프라밍고 관광을 마치니 근 7시가 되고 있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식당에서 현지식 식사를 한후 9시10분에 프론트로 모이라 했다. 프라밍고 공연을 보기 위함이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상징 중의 하나인 프라밍고를 직접 현지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프라밍고는 스페인의 각 도시마다 특색있는 프라밍고가 있다는데 이곳 그라나다의 프라밍고는 집시족의 공연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 일행 39명 중 30명이 참석하였으니 그 관심은 대단하였다. 공연시간은 두시간으로 남녀 5명의 춤꾼과 남자 가수 그리고 키타가 필수인 5명의 밴드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열적인 춤, 신들린 듯한 몸동작,온몸의 떨림,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른 리듬의 발 움직임, 손벽 장단의 기교, 정신을 쏙 빼게 만들었다. 과연 프라밍고는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집시족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배운다고 한다. 그라나다에도 공연장이 여러개가 있다. 마드리드나 발로셀로나 등 대도시에는 프라밍고를 배우는 학원도 있다고 한다. TABLAO FLAMENCO공연장에서 2시간의 공연감상을 마치고 나서 높은 전망대로 가서 그라나다 야경을 감상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멀리 알함브라 궁전도 보였다. 저녁식사시 마신 포도주 그리고 프라밍고 공연시 마신 포도주로 은근히 술이 올랐다. 오늘은 많이 걷고 밤 늦게 까지 공연을 보느라 피곤함의 극치를 이루었다. 호텔에 들자마자 숙면을 취했다.
아랍과 기독교 문화가 혼재한 꼬르도바 그라나다에서 꼬르도바까지는 180km로 3시간이 걸린다.안다루시아 지방을 대표하는 세가지라면 세고비아 키타,그라나다의 풀라밍고 그리고 그라나다가 낳은 예술인 '빠고데루시아'를 들수 있다. 이 '빠고데루시아'의 키타 연주 '플라밍고'를 들으며 즐거운 꼬르도바로 가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달리는 차창너머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올리브나무였다. 올리브기름은 날것으로 먹는데 섭씨 200도까지 끓여도 맛,향과 성분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11월부터 3월까지 수확을 하며 올리브 열매는 진한 녹색에서 자주색, 검은색으로 바뀐다. 올리브 묘목은 한그루에 우리 돈으로 25만원이라 하니 수없이 펼쳐진 올리브를 보면서 대단한 재산이구나 싶었다. 올리브는 생명의 나무라 하고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란다. 물을 싫어해서 비가 적은 이 지역에는 꼭 맞는 나무이다. 휴게소에서 쉬면서 올리브 기름을 사느라 야단들이다. 우리도 캔 18개들이 1박스를 샀다. 선물로 적당할 것 같다. 요즘은 한국에도 콩기름이나 들기름 대신 올리브기름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라나다에서 꼬르도바까지 연결된 국도는 '칼리프의 길'이라고 한다. 올리브 밭은 끝나고 밀밭이 펼쳐지는데 과달끼비르강 상류의 이 한적한 길은 드라이브길로는 최상으로 생각되었다.
꼬르도바는 9c에서 10c 경에는 인구가 100만이 넘는 왕조의 수도로 학문,예술,문화가 크게 발전하여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현재는 70만의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관광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다. 꼬르도바(CORDOBA)는 말 엉덩이 가죽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꼬르도방, 코도방, 고도방, 그리고는 구두방으로 변했다는 가이드의 '믿거나 말거나' 설명이 재미 있었다.
삼겹살 터널의 꼬르도바 성당 메스키타(Mezquita) 이슬람교 사원으로 기독교 교회가 내부에 같이 있다. 비잔틴양식의 서고트 교회를 매입,이슬람교 압둘라만 1세가 788년 최초의 이슬람 사원을 세웠다. 그 후 역대 왕들이 계속 증·개축을 하여 마침내 987년 현재와 같은 이슬람교 사원이 완성되었다 한다. 길이 180m, 폭 130m로 2만5000명이 예배드릴 수 있다. 하지만 1236년 카톨릭 교도가 권력을 잡으면서 사원 내부에 카톨릭 예배당이 생기는 등 본래의 이슬람 양식이 변형되기도 했으나 면죄의 문 Puerta del Perdon이나 오렌지 정원 Patio de los Naranjos. 종려의 입구 Puerta de las Palmas 등 무데하르 양식으로 된 이슬람의 멋진 건물과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인상이 남는 삼겹살 터널(한국사람들이 지어낸 별칭)은 화려한 이슬람 사원의 내부를 잘 나타낸다.
꼬르도바의 명소 작은꽃길
유대인 거리와 작은 꽃길 La Juderia-Calleja de las Flores 메스키타 주변으로 눈부실 정도로 하얀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 옛날 유대인들이 살던 유대인 거리다. 집들의 흰 벽에 내걸린 화분에는 각종 꽃들이 만발하고 저 멀리 메스키타의 탑이 보인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셔터를 누르기에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유대인 거리를 나와 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치 파리나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거리를 보는 듯 아름다운 모습에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잠시 쉬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카페거리를 벗어나 로타리로 나오니 로마시대의 옛 성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중식을 중국식으로 마치고 앞으로의 관광지인 마드리드와 인근에 있는 똘레도 관광을 위해 장장 395km의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두번의 휴게시간을 포함해서 적어도 6시간은 걸릴 것이다. 다행히 계절이 좋아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꽃들과 자연경관이 지루함을 잊게 해 주었다.
고속도로 변에는 지루함을 달래주는 특이한 야립간판이 궁금증을 더해준다. 검은 황소와 키타를 치는 스페인 농부의 간판이다. 과당경쟁의 술과 악기광고를 제한시켜 만든 광고라는데 레스토랑과 주유소 광고판 이외에는 유일한 간판이었다. 스페인에는 오렌지 외에도 좋은 포도가 많이 생산된다. 포도주를 스페인 사람들은 '비노'라 부르는데 프랑스의 와인보다 훨씬 맛이 좋다고 자찬을 하고 있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 포도주는 북부의 '리오아(RIOJA)'라고. 이 후로 우리는 항상 이 '리오아'를 찾았다. 값이 들쭉날쭉이었다. 값의 차이는 포도가 생산된 년도와 그해의 기후와 일조량 등 복잡하다. 가게에서는 5유로부터 30유로까지가 많고, 호텔에서 사 먹는 '리오아'는 대부분 10유로를 받았다. 개마고원 처럼 넓은 평지가 계속 이어진다. 산이라곤 볼 수가 없다. 딸기 생산지로 유명한 아랑후에즈를 지나서 마드리드가 가까워 오고 있다. 마드리드에 들어오자 붉은 벽돌색 일색의 신흥아파트들이 나타났다. 8시경에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오늘 저녁은 한식이란다. 대도시가 아니면 한식당이 없다. '고려정'이라는 한식당은 꽤 규모가 크고 손님들이 많았다. 모처럼 상추와 불고기를 먹게 되었다. 매일 와인으로 입을 고급화 시켰지만 역시 한식에는 소주가 최고였다. 갖고간 소주를 꺼내 한식 안주와 함께 마시니 그 맛이란 이루 표현키 어렵다. 술이 모자라 참이슬 한병을 현지식당에서 사 먹었다. 한병에 12,000원- 한국식당의 4배라 많이 마시기는 좀--. 숙소는 마드리드 시내에서도 근 40분이나 떨어져 있었다. 밤 9시인데도 훤했다. 해가 지는 일몰의 모습은 마치 그린 것 같은 아름다운 색상을 보여주었다. 도저히 그냥 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우리 셋은 이심전심으로 바로 로비로 모여 바깥 산책을 하였다. 주택가와는 좀 떨어져 있었지만 조금 걸어 나가니 자동차 전시장거리가 나오고 레스토랑이 있었다. 레스토랑에는 식당안과 야외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어쩌다 콜롬비아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는 아기와 에스파니아 출신의 아내와 이곳에서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가 손님이라며 극구 사양을 하는데도 드랲트 맥주를 두잔씩이나 사 주어 공짜술을 얻어 마셨다. 내일 아침부터는 마드리드의 인근에 있는 똘레도를 관광하고 오후에 마드리드 시내관광을 한다고 한다. 기대가 크다.
5.스페인 (3)톨레도,마드리드 마드리드 시내관광은 오후로 미루고 먼저 톨레도로 향했다.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70km의 거리로 차로 한시간 가량 가야 한다. 가는 도중에 마드리드의 일부 풍경을 차창으로 볼수 있었다. 국영방송 송신탑이 보이고 곧 원형 축구경기장이 나타났다. 마드리드에는 유명한 레알마드리드 등 2개의 축구팀이 있다. 시내를 벗어나니 드문드문 양떼들이 있는 목장들과 '샤렛아레사도'라고 하는 우리의 연립주택 같은 붙어있는 독립집들이 시선을 끌었다. 이들 집은 뒷마당이 크다고 한다. 집값도 대단하다. 3~5억씩 한다니- 신문기사에 난 스페인 국민의 매일 먹는 식품에 관해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참고가 되었다. 유제품이 88%,포도주가 83%,육류는 30%,생선은 17%에 지나지 않는다. 우유와 요구르트를 특히 많이 마시는데 이곳의 요구르트는 종류도 많고 '자몽'이라고 하며 꿀을 타서 먹는다.포도주를 매일 마시는 사람이 83%라니 정말 포도주 천국이고, 과연 포도주는 전 국민이 애용하는 음료임에 틀림없다. '까띠아라만차'지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드디어 스페인 천년의 수도 톨레도에 도착하였다.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70km 남쪽으로 떨어진 '까띠아라만차'지역의 주도이다. 1561년 펠리페2세가 마드리드로 수도를 이전할 때까지의 수도로,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세계문화유산 지역이다. 톨레도 구 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톨레도(TOLEDO) 톨레도는 중세시대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은 작은 도시다. 화려하고 거대한 톨레도 대성당과 도시 전반에 흐르는 옛 분위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당일 여행으로 톨레도를 다녀간다. 가운데가 언덕처럼 솟았고, 타호강이 반원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어 마치 섬이 떠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톨레도는 말발굽 모양의 타호강에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다. 현재도 14C 당시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록되어 있는 도시이다. 톨레도의 역사는 기원전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로마의 식민지로 시작해서 8~11세기에는 서고트족의 본거지였다가 이슬람권에 편입되었다 한다. 15세기말 카톨릭세력이 진입할때 까지는 상당수의 이슬람교도가 거주했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으며 옛부터 상공업이 크게 발달하여 무기 산지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이슬람에게서 회복 후 초대 성주는 찰튼 헤스턴,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로 유명한 ‘엘시드(EL CID)’장군이었으며, 곳곳에서 이 도시에 반해 살았던 천재화가 '엘 그레코'의 숨결도 느껴 볼 수 있다.
버스에 내려 성채로 들어가려면 먼저 정상부분에 있는 '비사그라의 문'을 거쳐야 한다. '성스러운 문'이라는 뜻으로 '알퐁스 6세의 문'으로도 불린다. 정면에 두 마리의 독수리 문장이 새겨져 있다. 1550년 카를로스 5세가 톨레도에 입성하는 것을 기념해 세웠다. 미로로 된 골목길에는 좁은 골목위로 텐트같은 그늘막이 쳐저 있어서 햇볕을 가리는 역할을 해주었다. 건축공사를 하는가 했는데 관광객을 위한 서비스란다. 관광객이 모일 수 있는 광장으로 '소꼬도베르광장'도 유명하다. 가축시장이라는 아랍어라고 한다.
톨레도 시가 전경과 대성당
톨레도 대성당
톨레도 대성당 톨레도의 높은 고원지대에 우뚝 솟아있는 톨레도 대성당은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이다. 도시 크기에 비해 엄청나게 큰 성당인데 안팎을 꾸민 장식 또한 여간 화려한 게 아니다. 정교한 조각과 찬란한 빛을 발하는 스테인드 글라스, 프레스코 벽화, 성화, 파이프오르간 등 실내는 장엄하면서도 경건한 느낌으로 충만하다. 성당의 종루는 자그마치 90m로 톨레도에서 가장 높다.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는 이 건물은 프랑스의 고딕 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266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493년에 완공되었으며, 길이 113m 폭 57m 중앙의 높이가 45m로,완공된 후에도 수차례 증개축을 했지만 지금도 기본 골격은 변함이 없다. 중앙에 있는 면죄의 문, 왼쪽에 있는 시계의 문, 오른쪽에 있는 사자의 문으로 3곳의 입구가 이색적이다. 성당 내부는 22곳에 달하는 예배당과 신약 성경과 성도를 주제로한 스테인드글라스, 보물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당 우측의 보물실에 들어서면 누구나 성체현시대(聖體顯示臺 Custodia)에 압도당한다. 전체가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고 5,000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무게는 180kg이다. 이 밖에 프랑스 왕 생 루이가 기증한 '황금의 성서'도 볼 수 있다.
본당 중앙에 있는 성가대실의 의자 하나하나에 새겨진 정교한 목각 역시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대사원의 성기실은 미술관으로 되어 있어 엘 그레코와 고야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엘그레꼬의 '엘 엑스폴리오(강탈된예수의 옷)''베드로의 회개의 눈물'은 대작으로 꼽힌다. 가장 시선을 끈 것은 대제단(大祭壇)의 제단병풍으로 화려하고 섬세한, 낙엽송을 사용한 조각물이었다. 7열의 조각물이 세로로 나열되어 있는데 정 중앙열의 조각이 가장 크게 조각되어 있다. 맨 위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 아래는 성모마리아의 승천이, 좌측에는 예수의 고통과 수난을, 오른쪽은 부활과 영광을 조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성직자 회의실에는 역대 주교님들의 인물화가 차례대로 진열되어 있었다. 앞으로 임명될 교황의 새자리도 비어 있었다.
알카자르 성채 대성당에 비견할 만큼 규모가 큰 건물은 알카사르(Alcazar)다. 3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로 로마 집정관의 궁전이 있던 자리에 요새가 세워졌으며 이슬람 지배를 거쳐 스페인 내란 당시에는 인민전선과 국민전선의 싸움터가 되기도 하는 등 역사의 무대가 된 곳이다. 지금은 건물의 일부를 군사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다. 성채(Alcazar)는 처음 14세기에 지어졌으며 톨레도의 가장 아름다운 유적으로 서고트인, 무슬람,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수차례 재건설이 되었던 곳이다. 또한 스페인 내란동안 이곳은 파시스트들에 의해 작전 베이스로 사용되어 많이 파괴되었다. 성채는 해발 550m에 위치하여 멀리서도 네모진 꼭지점이 보이는데 네개의 탑으로 되어 있어 더욱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 스페인 최고의 중세화가 '엘 그레코'의 작품과 유품이 전시된 '엘 그레코의 집', 여행자들이 많은 '쏘코도베르 광장', 오르가스(Orgaz)백작의 예배실이 있는 '산또 또메 성당' 등 볼거리가 많다. 엘 그레꼬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그림은 이 그림을 둘러싼 뒷 이야기가 유명하다.
토레도의 관문 알칸따라 다리와 산마르틴 다리 토레도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걸어서 '알칸따라 다리'를 건넜다. 타호강을 건너 톨레도로 들어 가는 다리는 알칸타라 다리와 산마르틴 다리가 있다. 산마르틴 다리의 이름은 산마르틴의 교구와 가깝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알칸타라는 아랍어로 '다리'라는 뜻으로 톨레도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알칸타라 다리는 로마시대에 처음으로 지어졌으나 파괴되어 이슬람교도들이 지배할 당시 다시 세워졌다. 1257년 홍수로 파괴된 것을 다음 해에 복구하였다 아랍제국 시대에도 부서지지 않고 보존된 '알칸타라 다리'/자주색으로 도색하여 미적 감각을 살린 '산마르틴 다리' 관광을 마치고 중식을 위해 '알칸따라 다리' 바로 앞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쿠바나식당'이라는 이 식당은 동굴은 파서 만든 식당으로 유명하였다. 송아지 비프가스와 스페인의 전통음식인 '빠이야'가 나왔다. 쌀밥과 함께 해물을 올리브 기름으로 덖은 볶은밥 같은 것인데 나의 식성에는 잘 맞았다. 점심을 마치고 금은세공 공장으로 안내 되었다. 토레도의 유명한 전통 제품들로는 금은세공 제품, 칼,진주, 도자기 인형이 있다. 금은세공(金銀細工)품과 도자기 인형은 전부 직접 손으로 빚는 수공예 제품으로 장인정신이 깃든 예술품이었다. 수공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가치가 훨씬 높아 보였다. 가격도 상당했다.도자기 인형은 '야도르'라고 하는데 너무나 예쁘고 정교하여 모두들 탐을 냈다. 작아도 200~300유로 정도로 고가였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톨레도 관광을 오전에 마치고 오후에는 마드리드 시내관광을 나섰다. 먼저 프라도 미술관을 찾았다. 정식 이름은 프라도 박물관(MUSEO DEL PRADO)이나 사실상 미술박물관이다. 프라도 박물관은 까를로스3세 시대인 1785년 '후안 데 비야누에바'라는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당시 유행했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프라도 박물관은 회화,삽화,조각 등 5,000 여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 미술박물관으로서, 12세기 중세부터 18세기 말까지 거의 모든 미술학파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 장소가 부족해 현재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명작들이 많지만 특히 스페인의 대표화가 엘 그레꼬(El Greco), 디에고 데 벨라스께스(Diego De Velazquez),그리고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의 대표작품을 아래에 게재한다.
마드리드 마드리드는 400여년간 스페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유럽의 타국가의 수도중 가장 높은 고지대인 해발 646m에 자리하고 있는 고원도시로 인구 600만의 유럽 제4의 대도시이다. 1561년 FelipⅡ가 수도를 Toledo에서 마드리드로 천도한 이래 급속한 발전 이룩하였으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구시가는 주로 17-18세기에 건설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18세기후반 CarlosⅢ때 많은 건물 및 도로(Paseo del Prado) 등을 건설하게(프라도 박물관, 왕궁 등)되어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드리드는 유럽 문명과 오리엔트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어 그 매력을 더하고 있으며,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미술관, 박물관,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고, 거리에는 옛날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현대적인 빌딩거리가 펼쳐지며 교외에는 공장과 고층건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주변으로 팽창해 나가는 대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마드리드의 기후는 맑은 날이 많으며, 고원도시인 까닭으로 한서의 차가 극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에는 무척 더우나 공기가 건조하여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겨울에도 바람이 없는 날이면 큰 추위는 느끼지 않는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초여름이나 초가을이 가장 적합하다. 스페인에 상주하는 한국인은 모두 3,500명(대사관 추계,스페인 정부는 2,000명으로 발표)으로 그중 마드리드에 700명,발로세로나에 4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나라로 손꼽히는 스페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걸쭉한 예술인을 많이 배출시켰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로 부터 현대의 피카소까지 모두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예술인이었고 이들은 스페인의 독특한 예술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 예술이 집약된 곳이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이다. 시내관광은 스페인광장 등 몇군데에서 사진촬영 겸 휴식시간을 가지고 나머지는 버스로 시내투어를 하면서 버스속에서 설명을 들었다. 대표적인 관광코스를 소개하면 '시벨레스광장''스페인광장''왕궁''페레페4세동상''마요르광장''태양의 문' '컬럼브스광장''피카소빌딩''유로빌딩''레알마드리드경기장' 등이다.
시벨레스광장 하늘과 땅의 여신 시벨레스의 이름을 따 온 '시벨레스분수'는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이다. 분수대는 대리석으로 만든 사자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있는 시벨레스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낮에는 그 웅장함이 볼 만하고, 밤에는 아름다운 조명 속의 분수가 볼 만하다. 시벨레스광장 주변에는 멋있는 건물들이 늘어 서 있어 더 유명하다.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은 높은 첨탑이 있는 중앙우체국이다. 육군본부 건물과 아메리카 박물관이 가까이 있다.마드리드의 최고 번화가인 그란비아가 시작하는 곳에 있다. 풀밭에 누워 있는 사람,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 등을 통해 여유로운 마드리드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광장 중앙에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가 세르반테스 서거 3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탑이 있다. 탑 앞에는 스페인의 유명한 작가 세르반테스 동상 있다. 세르반테스 앞에는 그의 소설 속 두 주인공이 있다. 로시난테를 타고 있는 날씬한 돈키호테와 당나귀를 탄 뚱뚱한 산초판자 동상이 그것이다.
왕궁과 오리엔테 광장 스페인 왕의 공식 거처로 되어 있으나, 공식 행사에만 사용되고 실제로 왕가가 거주하지는 않는다. 평소에는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는데, 총 2,800여 개의 방 중 50개 정도의 방을 개방하고 있다.벨라스케스, 고야 등 스페인의 대표적 화가들의 회화와 화려한 태피스트리도 왕궁의 자랑이다. 왕궁 앞의 '오리엔테 광장'에는 생동감 넘치는 '펠리페 4세의 기마상'과 스페인의 왕, 스페인 출신의 로마 황제 동상이 있다.
마요르광장 이곳은 사각형으로 줄지어 지어진 4층짜리 건물이 스스로 가운데 공간을 광장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중세 시대에 이곳은 상인들이 모여 살며 물건을 팔던 곳이었다. 펠리페 3세가 이곳을 주요 행사가 열리는 광장으로 건축하도록 했다. 마요르(mayor)란 영어로 ‘major’라는 뜻으로 이름에 걸맞게 마드리드의 주요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다.국왕의 취임식, 종교의식, 투우를 비롯하여 교수형까지 집행되었다. 현재는 마드리드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드리드의 그랑비아는 동서로 가르는 가장 큰 거리이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상점들이 즐비하고 뮤지칼과 극장이 밀집되어 있다. 쇼핑가 그랑비아 거리를 걸으면서 간 곳은 가죽제품을 많이 판다는 일본계 미시꼬시 백화점에 안내되었다. 제품이 고급이나 너무 비싼 것 같았다. 숙소로 가면서 도로 변에 있는 유로빌딩,피카소빌딩,레얄 마드리드 경기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유로빌딩은 헬기장까지 갖춘 둥근 원통형 빌딩으로 겉으로 봐도 아름다운 빌딩이었다. 또 47층의 피카소 빌딩은 가장 높은 빌딩이란다. 그리고 75,000명을 수용하는 레얄마드리드 경기장도 사진에 담았다.
스페인은 투우도 유명하지만 축구도 가히 광적이라 할 정도로 열광적이다. 특히 지방색이 강해서 마드리드의 레얄마드리드 팀과 바로셀로나의 FC발로셀로나 팀이 경기하는 날에는 두도시가 완전 마비된다고 한다. 마드리드에는 1.2부 합계 6개의 축구 프로팀이 있다. 오늘의 톨레도와 마드리드 관광일정은 모두 끝났다. 내일은 스페인의 동부 발렌시아와 바르셀로나로 간다. 두 도시 사이에 있는 영화 '엘시드'의 촬영장소로 이름난 '페니스꼴라'에서 자게 된다고 한다. 얼마나 멋진 곳일까 벌써 가슴이 설렌다.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
마드리드 왕궁
왕궁앞 오리엔트광장에 서 있는 펠리페4세 기마상
6.스페인 (4)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시내로 들어왔다. 지금껏 가이드를 맡았던 '리오박'이 바르셀로나 전문 가이드에게 바톤을 넘겼다. 이정희라는 아줌마다. 점심시간까지 '몬주익언덕'으로 올라 올림픽 경기장을 관광하기로 하였다. 몬주익언덕으로 오르면서 보이는 커다란 광장이 있었다. 스페인 광장이다. 스페인광장은 도시마다 있어서 헷갈리기 쉽다. 이곳 바르셀로나를 비롯하여,마드리드,세비아에도 스페인 광장이 있고 ,로마의 스페인광장 트레비 분수는 유명하다. 스페인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음악에 맞추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분수쇼를 하는 분수가 있다. 여름철이면 야간 조명과 함께 즐거운 밤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몬주익 언덕 몬주익 언덕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영웅 황영조 선수가 일본 선수를 제치고 1등으로 질주하던 가파른 언덕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몬주익은 '유대인의 산'이라는 이름이다. 몬주익이라는 말은 까따르 말로 성스러운 산이라는 뜻이란다. 까따루니아 말을 사용하는 지역민이 무려 60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 180만명의 까따르인이 살고 있다니 대단한 숫자이다. 이곳 몬주익 언덕은 한때 유대인의 지역사회가 있었으나 지금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 중 한 곳이 되었다. 이 언덕 위에는 스페인 민속촌을 비롯하여 몬주익 성, 미로 미술관,까딸루니아 미술관 등 여행자들이 들러볼 곳이 많다. 물론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사용했던 주 경기장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몬주익산은 214M로 한국의 남산과 비슷하다.
마라톤 최종구간인 이 언덕을 마라톤 선수 복장으로 뛰어가는 여행코스도 있다고 한다. 특히 황영조의 감격 때문인지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들었던지 일행 중에 반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마라톤 복장으로 준비한 사람이 있었다. 성급한 준비를 했지만,우리는 반대쪽으로 버스를 타고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먼저 안내된 곳은 황영조 우승 기념비가 있는 공원이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황영조 선수가 우승하는 감격이 되살아나는 흥분된 기분으로 기념 조각을 감상하였다.바르셀로나 시와 경기도가 우정의 결연을 맺고 올림픽 후 경기도 임창렬지사가 이곳에 와서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한다.
황영조 조각상
몬주익 올림픽 경기장 1929년 박람회장으로 건축되었으나 1992년 올림픽 경기장으로 새단장하고 본 경기장 크기를 확대하여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되었다. 올림픽 주 경기장의 모형물들은 특색이 있고 기념사진의 좋은 배경장소가 되었다. 올림픽 주 경기장을 구경한후 언덕 전망대로 올라 바르셀로나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스페인 제2의 도시이지만 상업과 무역,관광의 도시로 가장 활기차고 풍요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내 건물 중에서 특히 시선을 끄는 건축물이 둘 있었다. 검은색의 둥근 원통형 건물은 수도국이라는데 모두 4,400개의 유리로 된 유명한 프랑스 건축가 '잔노르가'작품이라고. 그리고 현재까지도 건축중인 '가우디 성당'이 뾰쭉탑의 형태로 단연 돋보이는 건축물이었다.
지중해 바다를 끼고 있는 바르셀로나 시내 풍경은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가우디와 햇빛이 바르셀로나를 먹여살린다는 말이 있다. 관광수입이 바르셀로나 전 수입의 67%를 차지한다고 한다. 몬주익 언덕 정상에는 몬주익성이 있고 지금은 군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과거에는 형무소로도 사용되었다 한다. 내려오는 길에 미로(MIRO)미술관이 있었다. 바르셀로나 태생의 '환 미로'의 그림 3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몬주익언덕은 광장과 분수 그리고 공원이 있어 시민의 휴식처로도 훌륭한 장소였다. 멀리 지중해 바다로 이어지는 케이블카도 보였다. 케이블카를 타고서 몬주익산 정상까지 오르내리면서 시내와 바다의 아름다움을 구경할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바르셀로나는 바둑판 처럼 도시계획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구 시가지는 1800년대 까지 형성된 것인데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아름다운 건물이 많았다. 람브라스 거리는 스페인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이름난 아름다운 거리이다. 또 해양도시답게 유럽에서 제일 큰 수족관이 있고 해양요트가 바닷가에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좌측으로 울창한 열대림이 계속되었다.선인장공원이라고 하는데 100여종의 선인장이 자라고 있었다. 식당으로 가면서 가이드의 설명이 계속된다.
스페인 관광은 한번으로 끝날 수가 없단다. 시간을 가지면서 꼭 보아야 할 5가지를 소개했다. 첫째는 투우장의 투우경기, 두번째는 집시의 후라밍고 춤과 노래. 셋째는 피카소,미로,달리의 미술품이 전시된 '피카소 미술관' 관람,그리고 네번째는 바르셀로나 시내에 있는 '분수쑈'. 다섯번째는 '나체쇼'란다. 길거리에는 모두 썬그라스를 끼고 걸어가는 젊은 미인들이 많았다. 유럽에서 최고의 미남은 이태리 사람이라지만 최고의 미인은 역시 스페인여자란다.스페인 사람은 키가 작고 갈색이나 검은 머리색을 갖고 있어 동양인과 닮은 점이 많다. 시내버스나 택시의 컬러나 디자인도 멋이 있어 보였다. 관광객들을 염두에 둔듯 한결같이 곱고 화려해 보였다. 우리의 서울도 이처럼 컬러풀하게 디자인하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승용차의 주종을 이루는 것은 소형차였다.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중식후에는 바르셀로나 시내관광을 하게 된다. 식당은 한국요리를 하는 '산길식당'이라는 곳이다. 음식맛이 좋기로 이름난 곳이라는데,주인 아줌마가 기분파라서 칭찬을 많이 하면 비장의 반찬도 나온다고 한다. 과연 이름값을 하는 것 같다. 실제로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이 좋았다. 오랜만에 얼큰한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고나니 속이 개운했다. 바르셀로나에는 한국식당이 5개가 있다고 한다. 중국식당은 무려 500개나 된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에는 가우디의 '구엘 공원'과 '성가족 성당'을 관광할 예정이다.
구엘공원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 할 정도로 그의 작품으로 점철되어 있다. 구엘공원은 대표적인 그의 작품이다. 가우디는 작품의뢰를 받으면 의뢰자의 이름을 사용하여 작품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과 함께 계획한 도시 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엔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60채의 주택을 지으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가우디가 설계한 두채만 지어졌다.공원 정면의 도마뱀 모양의 분수,광장의 천정과 벤치까지 직접 색갈과 디자인을 염두에 두고 깨진유리,도자기 등 폐품을 이용하여 만든 작품들이다.
5만평이나 되는 이 구엘공원은 1900년부터 14년간 작업을 하다 일시 중단되었고 22년에 완공, 시 공원이 되었다. 구엘의 저택은 지금은 초등학교로 사용중이고,공원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의자도 유명한 작품이었다. 이 의자에 앉아보니 많이 걸었던 탓이지 무척 편안했다. 천정은 봄,여름,가을,겨울을 나타내는 86개의 물기둥이 시선을 끌었다. 가우디가 1906년부터 26년까지 살았던 '로사의 집'은 그의 누나 이름인 장미(rose)를 인용하여 작명된 집인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05년전 가우디가 심었다는 전나무가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파두'라는 작품은 음악 '파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란다. '코끼리 다리'라는 작품은 마치 코끼리의 다리 형상인데 마뭇간이었다고 한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집모양을 한 신기한 건축물도 있었다.
가우디의 작품으로는 36개의 건축물이 있는데 그 중 17개의 작품은 스페인 정부가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고, 구엘궁전, 구엘공원, 까사밀라 저택은 198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가우디는 '가우디 성당'이라고 불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에(Sagrada Familia)' '성가족 성당' 건축에 일생을 보냈다. 미완성의 이 성당을 남긴채 가우디는 1926년 너무나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구엘공원 타일벤치
구엘공원
성 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에)/가우디성당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특이한 양식의 이 성당은 1882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공사가 끊나지 않아 언제 완성될지는 알 수가 없다.예수의 탄생,수난,영광을 상징하는 상징물과 예수의 12사도 그리고 복음서를 쓴 성인들을 상징하는 기념탑 등이 이 성당의 전체적인 구상이라고 한다.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지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가 계속 중이지만 이 성당에는 가우디의 건축철학이 담겨 있으며 그의 천재적인 예술혼이 느껴진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란 요셉, 마리아, 예수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가족’을 뜻하며 그래서 '성 가족성당'이라고 한다.
가우디는 31세에 초대 건축가 비야르의 후임으로 건축에 참여해서 죽기 직전까지 성당 건축에 매달렸으며 지금은 성당 지하 예배당에 잠들어 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 한, 하늘을 향해 찌를 듯 서있는 네 개의 탑이 유명하며 현재 완성된 부분은 이 네 개의 탑과 지하 예배당이다. 175m의 높이에 최정상에는 유리 십자상이 자리하고 있다. 가우디의 계획에 따르면 성당은 ‘탄생의 문’, ‘수난의 문’, ‘영광의 문’ 등 3개의 파사드(정면)을 가지게 되는데 각 파사드에는 성서의 장면을 묘사한 조각이 장식된다. 수난의 문 파사드에는 성서의 한 장면인 ‘최후의 만찬’이 조각되어 있다. 네 개의 탑은 그 모양이 특이하고 아름다워 인상적이며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 같은 조각품들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우디가 일생을 두고 작품화한 성당이기 때문에 '가우디 성당'이라고도 한다. 2002년 가우디 100주년 때는 60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헌금과 관광객이 남기고 가는 수입금으로 지어지기 때문에 완성일자를 미리 알수가 없다. 가우디는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작품도 자연친화적이고, 자연을 테마로 하는 것이 많았다. 성당 내를 관광하는 중에 '자연의 방'이라는 별도의 관람장이 있었는데 꽃,거북,나무,뱀,용,벌집,달팽이,독버섯 등을 테마로 한 조각품들이 특색이 있었다. 아직도 계속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인데도 관광객들이 안전하게 관광을 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 놓고 있어 역시 관광도시다운 모습이었다.
가우디 성당
성가족 성당의 관광을 마치고 구시가지 관광을 하러 나섰다.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가우디의 작품 '까사밀라(Casa Mila)''까사바트요'를 볼수 있었다.까사밀라를 보기 위해서는 50일전에 예약을 해야 한단다.
까사밀러 일종의 아파트로 1910년에 완성한 까사밀라는 198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연한 곡선,기능적인 측면과 자연적인 형태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베란다의 철제 장식이 특히 아름답다. 그외 1905~1907년에 가우디가 개축한 건물로 마치 동화속의 요술의 집 모양을 하고 있는 까사바트요(Casa Batllo)도 유명하다. 지붕은 용의 이미지를 하고 건물 전체는 바다를 테마로 하고 있다. 테라스 모양이 특이하고 건물의 녹 색,청색 타일이 아름답다.
까 사밀러
람브라스 거리 '까따루니아 광장'에서 '콜럼버스 기념탑'까지 이르는 바르셀로나의 중심거리로 보행자 전용도로이다. 가장 크다고 하는 백화점(El Corte Ingles)이 까따루니아 광장 건너편에 있었다.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춘 대형 백화점이라 구경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포기하였다. 한시간 반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람브라스 거리를 구경하고 시간이 되면 유람선을 타려고 했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컬럼버스 기념탑의 리프트(엘리베이터)를 타기로 했다. 람브라스 거리에는 다양한 거리공연과 꽃가게, 레스토랑,선물가게와 뿌띠크,극장들이 즐비하였다. 람브라스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행위예술가를 흉내내며 마네킹처럼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 인간동상들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을 때는 모델료를 준비해야 한다. 생계를 위한 것인지 예술을 위한 것이지 뜨거운 햇살아래 정지된 모습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그들의 열정이 놀라울 뿐이다. 특이한 모양의 모델들이 하도 많고 신기하여 모두 사진에 담고 싶었다.
람브라스 거리
콜럼버스 기념탑 람브라스 거리의 맨 끝에 위치한 콜럼버스 기념탑은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들 중 여자들은 쇼핑을 하고 남자들 셋이서 유람선 대신 컬럼버스 기념탑 리프트를 타기로 했다. 표를 사서 차례대로 3~4명씩 탑승을 하였다. 꼭대기에 올라서 전망대로 나가서 360도 둘러보며 지중해 바다와 시내 구경을 하였다. 1888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이 콜럼버스 기념탑은 높이가 60m로 아래층에는 간단한 매점과 리프트 관광을 위한 매표소가 있다. 저속으로 된 오래된 엘리베이터로 내부가 좁아 많은 인원이 탈 수가 없다. 관광이 끝나고 내려오는 리프트에 또 승객을 태워 올려보낸다. 밑으로 내려다 본 지중해 바다는 아름다웠다. 요트가 빽빽히 늘어선 모습이 서구의 부유층을 보는듯 부러웠다. 콜럼버스 기념탑에서 나와 다시 람브라스 거리를 배회했다. 스와롭스키 가게가 보여 들어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집사람을 비롯한 여자 셋이서 그 가게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다. 스와롭스키와 야도르 인형이 탐이 난다고 카드결재를 하란다. 아마도 여자들은 쇼핑도 관광의 중요하고도 큰 항목일 것이다. 자유시간이 끝나고 오후 6시반에 모두 모였다.숙소까지는 한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마지막 밤을 자기 위해 지중해 해변에 있는 AQUA 호텔을 향해 달렸다. 가는 도중 약간의 비가 뿌리더니 곧 하늘에 무지개를 그렸다. 그만큼 공기가 맑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밤 숙소였던 바렌시아 '페니스꼴라'의 잊을 수 없는 추억 때문인지,혹시 오늘 밤 숙소에 실망할까봐 가이드가 걱정을 하는 눈치다. 그러나 정작 도착한 호텔은 아주 마음에 드는 고급 호텔이었다. 단지 바다까지는 몇분 걸어가야 했다. 이곳은 유럽의 최고의 별장지인듯 조금 떨어진 구릉에는 고급 별장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고 해변가에는 호텔과 콘도 같은 건물들이 여름철 관광시즌을 대비하고 있었다. 아직은 관광객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대형 버스로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휴가 인파들은 주로 프랑스와 독일인이라고 한다.
컬럼버스 기념탑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저녁 식사를 마치자 우리들은 다시 바닷가로 나가 산책로를 걸었다. 산책로는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의자도 독특한 디자인으로 된 돌의자이고, 주변 화단에는 꽃과 잔디들이 산책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래게 해준다.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나갔다. 파도소리가 무섭게 들렸다. 아직 비수기라서 그런지 해변가에는 인적이 없다. 내일은 귀국하는 날이다. 그래서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에 눈을 뜨니 5시30분이었다. 모닝콜 시간은 6시30분. 나는 미리 용무를 끝내고 바닷가로 일출을 보기 위해 나갔다. 시간이 일러 산책로를 조금 걷다 보니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곳 지중해 바다는 기후가 좋아서인지 늘 깨끗한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야자수 나무를 배경으로 한 일출광경은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다. 이 아름다운 일출광경을 나 혼자 본다는 게 아까웠다.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 여러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일찍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가서 12시 50분발 프랑크풀트행 비행기를 탔다. 2시간 20분의 비행후 프랑크풀트에서 인천행으로 바꿔 탔다. 하늘을 나르면서 내려다 본 지구는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않는 곳이 없다.지중해의 푸른 바닷물을 지나니 눈 덮인 만년설산이 계속되었다. 가끔 나타나는 녹색 호수와 솜이불 같은 구름들-하나같이 아름다운 풍경이다.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고비사막이 나타났다.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더미- 이 사막이 지나면 중국 북경이 나오고 곧 한반도가 나타나겠지-- 12일간의 스페인 폴투갈 모로코 여행이 장을 내리는 순간이다.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 그리고 아랍문화와 카토릭이 같이 숨쉬는 역사의 현장을 보면서 많은 느낌과 감동을 받았다. 더구나 가까운 친구들과의 여행은 훨씬 추억을 남기고 즐거움이 더했다.폴투갈 파티마의 성지를 비롯해 땅끝마을에서의 감동, 모로코의 카사브랑카,페스메디나,스페인의 세비아성당,그라나다,꼴도바 그리고 톨레도와 마드리드, 그리고 '엘시드'로 유명한 '페니스꼴라'의 추억의 밤과 마지막 날 아름다운 도시 바르셀로나의 관광 등 어느 하나 잊을 수 없는 여행의 진수 들이다. 짧은 문장력으로 다 표현치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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