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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자
거리에서 어린아이를 만나면 전에 없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아이 손을 잡고 가는 부모가 훌륭한 애국자로까지 보인다. 나만 그럴까.
요즘은 결혼한 부부가 겨우 아이 하나를 낳아 키우는 게 대세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부부도 물론 있다. 그 이유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내 집 마련할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아이 키워줄 사람이 없어서, 사교육비가 부담되어서 등…. 혹자는 아이가 있으면 신경이 쓰여 정작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될까 싶어서라는 이기적인 사람도 있다.
따라서 산부인과는 하나둘 문을 닫고 신생아 울음소리도 뜸해졌다. 초등학교는 통합하거나 폐교하기에 이르렀다. 그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듯 애완동물을 상대로 한 상점, 미용실, 심지어 유치원과 학교, 호텔이 곳곳에 늘어나는 추세다. 아이 유모차보다 반려견 유모차가 더 많이 팔린다는 뉴스를 들어도 전혀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동물 사랑을 탓하는 말이 아니다.
언론 매체를 통해 인구 절벽 시대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는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도 예외가 아니란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출산율은 0.7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대로 가면 얼마 후에는 인구가 반 토막 나고 생산가능인구보다 노인 숫자가 더 많아진단다. “한국은 머지않아 인구 소멸 1호 국가가 될 것이며 2750년에는 국가가 소멸할 위험이 있다”라는 저명한 외국 교수의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불과 오륙 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인구포화 상태를 걱정했다. 당시는 남아선호 시대라 딸을 낳으면 아들 낳을 때까지 줄줄이 아이를 낳았다. 한 지붕 아래 대가족이 모여 살았고, 방 하나에 부모와 다 큰아이들이 함께 잠자는 것도 예사였다. 더구나 입을 옷도 흔하지 않았고 세끼 밥 먹는 사람보다 못 먹는 사람이 더 많았다. GNP가 겨우 100불 정도였으니 교육환경인들 오죽했을까.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나라 경제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자식을 배불리 먹일 수 있고, 좋은 옷을 입히고, 공부시키고 싶으면 대학공부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아이 낳기를 꺼린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모처럼 창동에 나갔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화려하고 상점마다 캐럴이 흘러나왔다.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은 삼삼오오 손을 잡고 들뜬 기분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구세군 냄비에 성금을 넣고 막 돌아서려는데, 젊은 부부가 서너 살짜리 두 아이 손을 잡고 내 앞을 지나갔다. 아이 둘은 연년생으로 보였다.
부부는 자선냄비 앞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더니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씩을 손에 쥐여 주었다. 댕그랑댕그랑 울리는 종소리가 신기한 듯 바라보던 두 아이는 지폐를 자선냄비에 넣은 뒤 활짝 웃으며 엄마 아빠에게로 달려왔다. 부부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아이들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그 자태가 하도 감동적이라 나는 넋을 놓고 한참 바라보았다. 한데 감동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애 엄마가 셋째를 가진 만삭의 임부였다. 요새 말로 애국자(?)였다. 순간 나는 이런 부부가 있으니 아직 대한민국은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구 소멸이니, 국가 소멸이니 하는 말은 어쩌면 다른 나라 이야길 수 있겠다 싶었다.
울창한 숲도 한 그루 묘목에서부터 출발한다. 튼튼한 나무로 자랄 수 있기까지 자연과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아이들은 한 나라의 미래 아닌가. 아이를 잘 키우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은 비단 아이 부모만이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정부와 사회가 발 벗고 나서고 이웃이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모두의 관심 속에 건강하게 잘 자란 아이는 집안의 대들보가 되고 머지않아 나라의 백년대계를 보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