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무예, 고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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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고무도 수련생들이 낫, 삼지창, 장봉 수련을 하고 있다.
농기구로 수련하는 '농민무술'
위나라 침공 때 백제서 위력 떨쳐
옛날에는 농민과 군인의 구별이 없었다. 농사를 짓다가도 전쟁이 터지면 곧바로 전투에 참여했다.
그렇다고 집집마다 병기가 지급된 것도 아니었다. 낫이나 도리깨, 갈고리등 무기로 대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집어들고 백의종군했었다. 따라서 농기구와 무기의 구별이 따로 없었다.
요즘도 간간이 볼 수 있는 쟁기의 원래 이름은 '잠기'다. 잠기는 무기인 '잠개'가 바뀐 것으로 18세기에는 '장기'로 불렸다.
병장기는 이 '장기'라는 말의 잔존 형태라는 것이 국어학자들의 지적이다. 또 낟알을 떨어내는데 사용된 도리깨는
국어사전에 '옛날 병기의 한가지'라고 풀이하고 있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당파창(긴 봉 끝에 세개의 칼날이 갈라져 달린 창)의 경우
거름을 떠내는 쇠스랑이 바뀐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폭정에 항거해 일어난 동학농민전쟁때 농민군의 주 무기는 농기구였다.
<남제서>에는 '백제가 중국 산동, 절강과 왜국을 속국으로 두고 대국의 위용을 갖추었던 490년에
위나라가 두번이나 1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왔으나 징원된 농민의 위세가 이를 격파했다.'고 기술,
농사로 단련된 농민의 힘이 백제를 지탱한 전력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병기가 점차 현대, 첨단화하면서 비로소 농기구와 병기의 구별이 명확해졌고 농기구 무예는 점차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됐다.
최근들어 이같은 민중의 무예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고무도협회가 설립돼 주목받고 있다.
태권도가 단일협회로 통합되기 전까지 전국 각처에 1백여개의 도장을 거느리며 무도계를 이끌던 충무관 관장 이도윤(58)씨가
각지의 향토사학자와 중국(특히 만주등 독립운동지)을 돌며 평안도 박치기, 씨름, 유술, 장구치기, 족치기, 농기구 사용법등을
기초로 종합, 복원한 것이다. 고무도는 60년대 서울 마포에 도장이 개설됐었으나 곧 부산 범일동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 심양의 동북조선족대학 명예교수와 소림무술학교 명예교장직을 맡고 있는 이도윤씨는 태권도와 합기도,
쿵푸등 각종 무예에 정통하다. 그는 해외에도 수많은 백안의 제자를 두고 '그랜드 마스터'로 불리고 있다.
현재 고무도는 독일 알렉산더대학 체육학과 정규과목으로 채택돼 한국의 얼을 심고 있으며
동북조선족대학과 소림무술학교에서도 강의되고 있다.
고무도란...
농사가 곧 훈련... 철저한 실전형
무기술, 권법, 박치기등 6가지로 세분
고무도는 장대, 낫, 괭이, 쇠스랑, 도리깨, 노등 농기구를 사용하는 것과 맨손무예 등으로 크게 구분되지만
무기의 원래 기원이 농기구에서 비롯된 점을 감안, 활, 칼등을 이용한 무예도 넓은 의미에서 포함된다.
즉 현존하는 모든 격투기 기술이 망라돼있다.
고무도는 무기술과 유술, 권법, 장법, 박치기, 족치기로 나누어진다.
무기술은 장,중,단봉, 도리깨봉, 노봉, 죽창, 삼지창, 수리검, 낫, 철퇴, 쌍절봉등이 있고,
유술은 씨름, 굴리기, 쪼우기(조르기), 꺽기, 비틀기, 업어던지기, 메어치기. 권법은 장구치기,
주먹치기, 팔굽치기. 장법은 밀어날리기, 후려날리기, 당겨날리기. 박치기는 이마박기, 정머리박기,
뒷머리박기, 날려박기. 족치기는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후려차기, 휘어차기, 어차기, 날려차기, 활차기 등이다.
수련과정은 기본인 권법이나 발기술을 상당기간 익힌 후 운동량이 많은 장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련이 시작된다.
봉술에서는 12개의 품세에다 조봉을 곁들여 실전연습을 하는 점이 특이하다.
45cm가량 되는 도리깨봉은 외국에선 이미 경찰에 지급돼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는데 작지만
강력한 파괴력과 상황에 따른 효용성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봉술에 익숙해지면
낫, 철퇴, 쌍절봉, 철갑, 수리검(표창), 삼지창등을 배우게 된다.
현재 독일과 파라과이에 해외지부가 있고 국내에는 10개의 지회를 두고 2천여명이 수련에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