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여호와를 앙망함으로 날아라(flying up)
2022. 1. 2(주일낮예배) 이사야 40:27-31
연말에 건배사 중에 한우갈비가 있다. 혹시 한우갈비의 뜻을 아는가? 여러분들이 한글자씩 크게 운을 띄우면 제가 알려드리겠다.
한마음으로 우리는 갈 때까지 비상한다.
2022년 우리 자여교회는 성령의 바람을 타고 한마음으로 주가 인도하는 대까지 비상하여 오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갈 때까지 비상할 수 있겠는가? 이재철 목사님이 성탄절 메시지를 하면서 6살과 7살된 아들을 둔 집사님의 이야기를 하였다. 아들들은 집사님 부부에게 연말에 성탄절 선물을 사 달라고 하였다. 그 말에 집사님 부부는 아빠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원하는 선물을 사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자 6살된 아들은 그때부터 엄마 아빠 말을 잘 들었다. 그런데 7살 형님은 엄마 아빠의 말에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7살 형님이 6살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야! 벌써부터 안그래도 돼, 20일 지나서부터 말 잘들어도 돼!
일년을 더 산 형님은 지금부터 엄마 아빠말 잘 듣지 말고, 20일이 지나서 말을 잘들어도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동생에게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형님과 동생의 공통점이 있는데, 아빠와 엄마는 반드시 선물을 사 줄 것이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들들은 엄마 아빠가 선물을 사 줄 것이다고 믿었겠는가? 아들들이 성품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엄마 아빠가 아이들이 믿을 수 있도록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어기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취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메시야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였고, 2천년 전에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어 주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놀라운 약속을 믿게 하기 위하여 많은 약속과 성취를 이루어 주셨다. 그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은 약속대로 세상을 물로 심판할 때 노아는 구원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3-4대 만에 돌아오리라고 약속하였는데, 그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땅 종되었던 곳에서 출애굽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말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에 나오는 많은 왕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또 그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은 신실하여서 약속하시고, 반드시 성취하는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회복이 선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지 못하여서 낙심하고 절망의 말을 하였다. 그래서 유다백성들은 하나님은 우리의 고생을 모르시고, 또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고 불평한 것이다.
왜 유다는 신실한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겠는가? 유다백성이 신실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평하는 이유는 그들의 계획과 생각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다백성은 앗수르의 공격에서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신 것처럼 바벨론의 공격에도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을 패하였고, 비참하게 포로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계획과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유다백성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유다백성이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은 비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떠서 헤아리는 분이고, 또 뼘으로 하늘을 재는 분(12절)이시다. 그런데 유다백성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그랬던 유다백성은 크고 화려한 바벨론 신전과 그 신전 안에 마르둑(Marduk)이 우리의 신이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저렇게 크고 엄청난 신전 안에 있는 마르둑은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마저 지키기 못하여 무너져 버린 그 하나님은 너무 초라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마르둑과 하나님을 비교하면서 마르둑이 우리의 신이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부러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유다백성의 모습이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유다백성은 어리석게도 자기 계획과 생각이 이루어지면 유다는 독립하여 하늘 높이 비상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르둑과 같이 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과 원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닌가?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집에 왔다. 그리고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에게 엄마 라면하나 끓여줘 하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지금 엄마 바쁘니 라면 정도는 네가 끓여먹어 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큰 소리로 엄마 나 사춘기에 빨리 라면끓여줘 하고 말했다. 그렇게 아들이 말하자 엄마도 고함을 쳤다. 야 엄마는 갱년기야! 고집불통의 사춘기를 이기는 것이 갱년기 엄마이다.
그런데 갱년기 엄마가 이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갱년기 엄마가 이기는 이유는 사춘기 아들보다 더 막무가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이기고 하늘 높이 비상하는 방법을 막무가내로 생각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내 생각과 방법을 밀어붙이면 결국 이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힘있는 사람까지 내가 붙잡게 되면 천하무적이 되는 것이다. 세상은 이것이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높이 날아오르는 방법인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31)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여기서 앙망하다는 말은 학수고대하여 기다리는 모습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성취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앙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힘에 처참하게 무너지고, 또 바벨론의 막강한 세력앞에서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학수고대하며 기대하고 소망할 수 있는 그 사람이 새 힘을 얻어서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다는 것이다.
그러면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가는 모습은 어떤 모습이겠는가? 22년 우리교회 연간표어는 Flying up(날아오르다) 이다. 여기서 Flying up은 독수리가 아주 멋지게 비상하는 모습을 생각해도 된다. 그런데 저는 새끼 독수리가 날개짓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를 날개하기 위하여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다. 그러면 새끼독수리는 살기 위하여 버둥거리며 날개짓 한다. 그런데 아무리 날개 짓하여도 새끼 독수리는 날지 못하고 떨어지기만 한다. 그렇게 떨어지는 독수리새끼를 어머 독수리는 날아가서 날개로 받는다. 그리고 또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서 날개 짓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되면서 떨어지는 독수리 새끼는 엄마가 떨어뜨렸으니 죽어야 해! 하고 낙심하지 않는다. 아니 내가 아무리 버둥거려도 날지못해 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살기 위하여 발부둥을 치는 것이다. 그렇게 발부둥치고, 또 발부둥치다보면 새끼 독수리 날개는 근육이 발달되어서 강한 바람을 타고 높이 비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날개에 근육이 붙어서 멋있게 나는 모습도 flying up이지만, 저는 새끼 독수리가 날개를 퍼득거리는 그 모습을 flying up 으로 해석한다.
왜 제가 비상을 새끼 독수리의 퍼득거림을 Flying up으로 해석했겠는가? 새 힘을 얻으리니에서 얻으리니는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싹이 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빠른 시간의 흐름속에 싹이 트는 것처럼 내 안에 있는 그 작은 믿음의 씨가 능력이 되고 힘이 되어 새로워 지는 것이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기 위하여 퍼득거리고 또 퍼득거리면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인하여 새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걸어가다는 말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모습이다. 곤비치 않고, 피곤치 않는 이유가 새힘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와 함께 하여서 넘어지지 않도록 굳세게 붙잡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비상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비상하는 방법은 내 생각과 계획을 고집하고, 나보다 더 힘센 누군가의 도움을 얻는 것이 아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날개짓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시고, 나를 붙잡아 주심으로 높이 높이 날아오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기를 원하고 있는가? 전투기 조종사의 양성비용은 40-90억이 든다고 한다. 2003년 공군의 자료에 의하면 F-5 42억, F-4 팬텀 75억, F-16 87억, 우리나라 주력기에 KF-16 123억원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경비만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 베테랑 조종사가 되려면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0년동안 비행을 해야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많은 경비가 들어야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데, 조종사들이 비행학교를 졸업할 때 교관이 거듭해서 하는 말이 자신을 믿지 말고, 계기판을 믿으라는 것이다. 여객기가 아니라, 전투기는 곡예비행을 할 때가 있다. 그렇게 곡예비행을 하고 나면 착시현상으로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게 착시현상이 일어날 때 나의 생각이나 경험을 포기하고 계기판을 믿으라는 것이다.
공군사관학교 아무나 들어가는 것 아니고, 전투기 조종사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능력있는 사람을 선별하여 오랜기간 훈련을 시켰는데,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이 믿어야 하는 것은 자기 능력이 아니라, 계기판이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내가 많은 것을 배웠고, 경험했지만 내가 믿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시고, 또 동행하여 주시는 복을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힘을 더하여 주시고,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않는 동행의 은혜를 경험하고 사는 2022년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