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노제訂老題
訂者, 正也. 老者, 老氏書五千言也. 正也者, 盖正其不正也.
정訂은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노老는 노자老子가 쓴 5,000 자字(의 『도덕경道德經』)이다. 바로잡는다는 말은 그 (『도덕경』 주석註釋의) 바르지 못한 바를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世, 以老氏書爲異端, 固也. 然世之言老氏者, 未嘗有知老氏者也.
(노자 이후의) 세상은 노자가 쓴 책(인 『도덕경道德經』)을 이단으로 여기는 바가 굳세었다. 따라서 (노자 이후의) 세상에서 노자에 대해 주석한 사람 중 노자에 대해 알아차린 사람은 일찍이 한 명도 없었다.
老氏書率, 皆言寡慾以養神, 不爭以應世, 省爭去殺以治民, 其大要, 如是而已.
(이른바) 노자가 쓴 책(인 『도덕경道德經』)이 이끄는 바는 모두 이러하다. “(임금은 자신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를 줄임으로써,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한 백성의) 신령스러운 바(神; 性·命·心·德·自然·道)를 기르고, (자신의 유위有爲를) 다투지 않음으로써, (무위無爲가 신령스러운) 세상과 (더불어) 어우러지며, (자신의 일부러 일삼아) 싸우는 바를 살피고, (일부러 일삼아) 죽이는 바를 떠나보냄으로써, (무위無爲가 신령스러운)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그 큰 요지는 이것과 (더불어) 같이 할 따름이다.
凡後世之所謂老子, 皆非老也. 老氏, 以慈爲寶. 且言法令滋, 章盜賊多有. 而世或, 以老爲刑名. 老子, 言佳兵者, 不詳. 而世或, 以黃石陰符, 合諸老. 老氏, 言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而言修煉服食以求長者, 托於老. 老氏, 言治, 以民復孝慈爲上, 其書, 言治國愛民者, 居半. 而違親遺君絶俗以爲高者, 歸於老. 老氏, 言致虛守靜. 自勝者, 强. 是, 克己也. 言圖難, 於其易. 爲大, 於其細, 愼終, 如是, 是, 小心也. 其, 言謙退卑弱者, 又不一. 而猖狂倨傲恣恣而無憚者, 藉口於老. 老子, 言以道治天下者, 其神, 不神. 而修齋醮飾符籙以語怪神者, 亦自號爲老.
그런데 후세의 주석가들이 노자에 대해 일컬은 바는 모두 노자가 일컬은 바가 아니다. (예를 들어, 첫째) 노자는 (무위無爲를) 아낌을 (일삼음의) 보배로 삼았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법률과 명령이 (일부러 일삼아) 더해지면, 도적이 (일부러 일삼아) 많아지게 되는 바가 있게 된다.” 그러나 후세의 어떤 주석가는 일컬었다. “노자는 형벌이 (일부러 일삼아) 이름 지어 불려지게 되는 바를 일삼았다.” (둘째) 노자는 일컬었다. “군대를 (일부러 일삼아) 아름답게 하는 사람은 상스럽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후세의 어떤 주석가는 일컬었다. “(장량張良에게 『태공병법太公兵法』을 전한) 황석공黃石公이나 (도교道敎의 경전인) 『음부경陰符經』은 노자(나 노자가 쓴 책인 『도덕경』)와 (더불어) 어우러진다.” (셋째) 노자는 일컬었다. “(일부러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음(無; 無爲)으로써 살아가고 일삼는 사람은 (일부러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음有爲으로써 일삼고) 살아가는 사람보다 (본래 저절로 그러한 자신의 명命대로 오래 삶이) 뛰어나게 된다.” 그러나 (후세의 어떤 주석가는) 일컬었다. “단약(丹藥; 煉)을 (일부러 일삼아) 만들고, 음식을 (일부러 일삼아) 마시고 먹음으로써, (본래 저절로 그러한 자신의 명命대로) 오래 삶을 구하는 사람은 노자를 기댄다.” (넷째) 노자는 일컬었다. “(임금의) 다스림은 백성이 (본래 저절로 그러한 자신의 성性인) 효성스러움과 자애로움을 되돌이키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또한) 그 (노자가 쓴) 책(인 『도덕경』)은 일컬었다. “(따라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아끼는 사람은 (무위無爲의) 한 가운데에 자리해야 한다.” 그러나 (후세의 어떤 주석가는 일컬었다) “부모를 (일부러 일삼아) 거스르고, 임금을 내버리며, 풍속을 끊어냄을 (받들어) 높이는 사람은 노자에게 되돌아간다.” (다섯째) 노자는 일컬었다. “(유위有爲가) 텅 빈 바(虛; 性)에 이르고, (유위有爲가) 조용한 바(靜; 命)를 지켜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유위有爲를) 이기는 사람은 (무위無爲가) 굳센 사람이다.” 이것은 (유위有爲한) 자신을 이겨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노자는) 일컬었다. “어려운 일을 꾀하라. 그 (꾀함이) 쉬울 때. 큰 일을 일삼아라. 그 (일이) 작을 때. (유위有爲에 대한) 삼감이 마쳐지게 하라. (그 무위無爲와 더불어) 같이할 때.” 이것은 (유위有爲한) 마음을 작아지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노자가 지은 책인 『도덕경』) 그것은 일컬었다. “(무위無爲를 자신의 위로 높인 채, 자신을 무위無爲의) 아래가 되게 하고, (자신을 무위無爲의 뒤로) 물러나게 하며, (무위無爲의 아래로 자신을) 낮추고, (무위無爲에 대해 자신을) 연해지게 하는 사람은 (유위有爲와 더불어) 하나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세의 어떤 주석가는 일컬었다) “미쳐 날뛰고 사리 분별을 못하며, 잘난 체하고 업신여기며,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꺼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사람은 노자를 기대고, (노자를) 입에 담는다.” (여섯째) 노자는 일컬었다. “도(道; 自然)로써 세상을 다스리게 되면, 그 (하늘과 땅의 무위無爲가) 신령스러운 바(神; 魂·魄)가 (일부러 일삼아) 신령스럽지 않게 된다.” 그러나 (후세의 어떤 주석가는 일컬었다) “(도교道敎의 제사인) 재초齋醮를 지내고, 부적簿籍을 불사르고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시며, 괴이한 바와 신령스러운 바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노자라 부르고, (자신을 노자로) 일삼는다.”
彼, 固皆不足道也. 爲吾儒者, 又或執彼以攻老, 其, 不爲. 老氏, 所笑也. 幾希矣.
(이른바, 위에서 예로 든 후세의 어떤 주석가들) 그들은 모두 (노자의) 도(道; 自然·性·德·無爲·命)에 충족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유학儒學을 일삼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도 (위에서 예로 든 주석가들) 그들을 붙잡음으로써 노자를 공격했다. (우리 유학儒學을 일삼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 그들도 (노자의 도道에 충족되는 바를) 일삼지 못했던 것이다. (이른바, 이것은) 노자가 웃을 일이다. (이른바, 이렇듯 노자의 도道에 충족되는 주석이) 드문 것이다.
余, 謂老氏之本旨, 明於世. 而後, 其合於聖人者, 可師. 而其不合者, 亦可辨. 於是, 手, 爲是書, 而正之. 盖正老氏者, 什一, 正世之不知老氏者, 什九云.
나는 일컫는다. “노자의 근본 취지는 (무위無爲한 다스림으로써 유위有爲한) 세상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후세는 그가 성인과 (더불어) 어우러지는 바, (그것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후세는 그가) 성인과 (더불어) 어우러지지 못하는 바, (그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나의) 손은 이 책을 넘기면서, (노자의 도道에 충족되지 못한 후세의 어떤 사람들의 주석들) 그것들을 바로잡는다. 노자(가 쓴 바)를 바로잡은 것이 열에 하나이고, 노자(의 도道)를 알아차리지 못한 후세(의 주석)를 바로잡은 것이 열에 아홉이라 하겠다.”
嗚呼. 余, 出遊于世. 二十有三年. 困. 而歸. 始杜門謝交. 而爲此. 不知者, 將以爲托以逃也夫.
오호! 나는 세상에 나아가 떠돌았다. 23년. 지쳤다. 따라서 돌아왔다. 처음으로 대문을 잠그고, 출입을 끊었다. 그리고 이 책을 썼다. (따라서 이전의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컬을 것이다. “(평생 노자를) 기댄 채, (세상을) 피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첫댓글 홍석주洪奭周 : 1795년(정조 19) 전강에서 수석을 하여 직부전시의 특전을 받았다. 그해 문과에 급제하여 직장·검열 등을 역임하고 1802년(순조 2) 정언이 되었다. 이듬해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이후 성천부사·이조참의·병조참판·충청도관찰사·전라도관찰사·양관대제학·이조판서를 역임했다. 1836년(헌종 2) 남응중의 모반에 연루되어 김로의 탄핵을 받고 삭직되었다가 1839년 복직하여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학통상으로 노론인 김창협·김원행을 이었으며,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고염무의 학문에 영향을 받았다. 실학·무실을 주안으로 하는 박학을 강조했으나, 고증학에서 의리를 뒤로 미루는 것은 폐단이라고 비판하면서 주자학의 원칙을 지켜야 함을 주장했다. (출처 : 다음)
홍석주 정노 우리말 풀이를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