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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 1947.07.13 육군 12146629 기타작전 병장(이등중사.삼조) 1972.05~1973.03 서울
1971년 1월 17일. 논산 훈련소 입소. 29연대 8중대 1소대에서 훈련. 당시 논산훈련소장은 625때 인민군 1개 사단을 끌고 남한으로 넘어온 정봉욱 소장. 1971년 3월 6일. 박통의 긴급호출로 논산에서 서울로 상경. 1971년 3월 7일 저녁.이후 방첩대 근무. 1971년 11월 20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방송통신대학 건립 정책 건의. 이후락 정보부장을 북한에 보내도록 건의. (허경영은 박통의 정책보좌역으로 있으면서 이런 종류의 건의를 수천건 하였고, 그중에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100 여 건 정도 되었다. 가령 새마을운동 창시, 방통대설립, 청평양수발전소 건립 등이 대표적인 성과였다.)
1972년초 월남 파병 자원 1972년 5월 20일. 허경영이 월남에서 전투병으로 싸우는 동안, 이후락 정보부장이 청산가리를 소지하고 북한 방문. 남북이 함께 뭐 좀 해보자고 제안하여 성사됨.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 74남북공동성명 발표. 1972년 11월 서울대학교 부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개교. 당시 서울대는 대학로에 있다가 의대만 남기고 신림동으로 이사갔고, 현재 서울대 의대와 부설학교였던 방통대는 아직도 계속 대학로에 남아 있다.
1972년 5월 자원해서 월남 파병.
부산에서 배타고 15일간 항해하여 월남 킨혼 찍고, 나트랑 도착 나트랑에 있던 백마사령부 보충대 입소 전장 투입 8번의 죽을 고비를 넘김. 그중 마지막 죽을 고비였던 일이 바로 포복 중 왼쪽 가슴에 달았던 수류탄과 안전핀이 모두 빠지면서 왼쪽으로 굴러가서 폭발. 부상을 입고 후송됨. 이후 사단사령부 경비부대에서 근무. 키신저가 휴전협정 성사시킴.
파리휴전협정으로 백마사단사령부에 휴전 감시 사령부가 설치됨. 바로 며칠 전까지 서로 쏴죽이던 한국군, 베트콩, 월남군이 모두 함께 휴전감시사령부 안에서 생활하게 됨. 휴전협정에 따라 한국군 월남에서 철수 시작 월남파병군 마지막 부대인 사단사령부 경비부대원으로 한국군으로서는 가장 늦게 월남에서 철수. 백마사령부를 나와서 나트랑 비행장까지 차량이동. 주변의 월남 마을은 모두 베트콩 깃발로 도배. 공항에서 이틀간 기다린 후 보잉747 New World 대형여객기를 타고 월맹과의 국경지대인 다낭시 미군 전투비행장을 거쳐 급유 후 귀국
즉, 갈 때는 배타고, 올 때는 뱅기로 귀국. 1년간의 월남 파병생할을 마치고, 1973년 3월 경기도 모 공군비행장 도착.
휴가. 복귀. 1년간 한국에서 근무. 1년은 월남에서 마지막 1년은 다시한국에서 도합 3년 근무하고, 병장 만기 제대.
6개월간 입대 전에 만들어놓았던 불우자 보호 봉사단을 다시 재정비함.
청와대 정책보좌역으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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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간이 허경영 후보에 대해 군대는 갔다왔냐며 유언비어
대부분 월남전 생존자들은 배타고 부산항으로 귀환한 걸로 알고 있는데. 허경영은 마지막까지 월남에 있다가 여객기 타고 귀국 그때부터 뭔가 남과 다른 간지~~
다른 얼간이 후보들 같았으면 내가 왕년에 군대복무했다고
방송에 나와 게거품을 물었겠지,
우리나라 기득권자녀들은 군대빠지고 자기처럼 서민의 자식들만 전쟁터에 가는 일은 다신 없어야 한다는 식으로 게거품 물었을거야,,,
허경영 후보는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월남전 참전용사들에게 실질절 경제적 혜택을 주려고 여지껏 고민하셨더라고...
6.25 와 월남전 참전용사 3억을 준다지만,
그 돈을 꼭 받아서가 아니라..
나대면서 꼴값떠는 조빱후보 보다는
이런걸 다 공약으로 만들려고 한다는게 대단
후보등록할 때도 아들 2명 병역신고를 안해서 등록이 하루 연기됐잖아.
그걸 가지고 그 하루사이에 허경영이 숨겨둔 자식이 있다 어쨌다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드러난 사실은 예전에 고아원 운영할 때,
입양시켰던 호적상의 자식이였음이 드러났지.
이런 것도 물론 다른 후보들 같았으면.
언론에 공개하기 바빴겠지만,
허후보는 이 모든 일들을 드러내지 않고 행했다는 점에서 감명.
문씨는 ROTC 훈련할때 국방부 상 받았다고
거들먹거리는데, 참전용사 허경영의 자세를 보고 깨닫는게 있으면 좋겠다.
월남착출이란 소리만 들었어도 바지에 오줌쌌겠지.
허경영은 마지막까지 월남에 있다가 여객기 타고 귀국
허경영은 대인배 중에 대인배.
아이큐 430이 대단한 게 아니다.
그 분의 삶자체가 인간극장이다.
다른 설명 필요없음.
존경심이 든다.
머리나쁜 중생들이
아무리 그를 비웃어도 그 분은 한번도 노여워하신 적이없다
논어에 이런말이 있다.
人不知不溫 不如 君子呼我 (인부지불온 군자호아)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아니하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그분에 대해 비웃는 것은 자유다.
비웃는 중생들에게 화를 낸다면
아마 그분은 화내는 사람을 말리실 것이다.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중생들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볼 뿐.
그러니 역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이다.

20세부터 시작. 40년간 계속 빈민봉사가로 활동 중
허경영 - 지난 30년동안 전재산 1천억원을 들여서 고아원 다섯 개 운영. 3만5천명 배출.
현재 재산 6억 그것도 박정희가 선물로 준 도자기가 싯가 3억
허경영은 전쟁고아이며, 현재 고아 4명을 입양하여 호적에 올리고 키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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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화당 직원들은 100% 자원봉사자들이다.
물로 나도 그렇고....
요즘은 알게 모르게 온라인에서 많이 해주는 분들이 늘어가는것 같다
내가 이글을 쓰게 된 계기는,
일부(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당은 돈도 많고,
알바도 고용하고;; 그런말을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 미숙한 사진솜씨로는 이분들의 진심어린 마음까지
담을 수 없었지만... 소수의 인원이라도 그 마음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이들은 오직 살기좋은 나라에서 깨끗한 정치, 살기좋은 나라에서 살고싶은 마음하나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티고 있는 것이다.
허경영 후보님을 지지하는 이들은,
옳은것과 옳지 못한것을 구분할지도 모르는
생각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길에 대한 판단과 신념도 뚜렷하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생계와 중요한 것들을 제쳐두고 이곳에 있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다. 이제는 더 나은, 더 살기 좋은 나라에서
살고 싶어하는 마음.
그들은 무엇보다 허경영 후보님의 나라와 국민을 위한
마음과 사랑을 느꼈기 때문에 댓가없이 자원봉사를 하고있다.
어느 산골마을은 모자른 선전벽보를 보내지 못해서
직접 할아버지.할머니가 진짜 황소에다 기호8을 달고 지금도 마을을 다닌다 --------------------------------------------------------------------------------
회사돈 털어가며 돈 없다고 엄살떠는 당과 국민들이 십시일반 자비털어가며 선거를 하는 무보수 정당의
자원봉사와 같습니까.
저는 경제공화당 총무국에서 봉사하고있는 백중기라고 합니다.. 이번 대선 후보자의 책자형 선거공보에 대해서 글을 올려주셨는데. 우선 각 가정까지 들어가는 중요한 자료임에도 발송이 안된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그래도 우리 후보님을 지지 하는 분들이 잘못 오해를 하실까 걱정되어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후보자등록일(25~26) 일후 가장 시급하게 제출해야 하는 내용이 3가지 입니다. 첫째 선전벽보(14만부 29일까지 제출) 둘째 책자형 선거공보 (약 2000만부 12/2일까지 제출) 셋째 전단형 선거공보(약 2000만부 12/8일까지 제출) 이렇습니다. 우리 경제공화당은 후보님을 중심으로 모든 각계 각층의 지지자들이 모여 이뤄낸 정당이며 전액 당원들의 당비로 운영되어오고 있습니다. 이런상황에서 후보자 기탁금 5억원 선전벽보 제작,운송비(약1억원) 책자형선거공보 제작,운송비(약 8억원) , 전단형 선거공보 제작,운송비(약 5억원) 에 상당하는 엄청난 금액이 필요 하기때문에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선전벽보와 전단형 선거공보만 제작 제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제작단가와 발송료가 너무나도 큰 일이기 때문에 우리 캠프에서는 지지자와 봉사자가 몇일밤을 새면서 10만장 1000만장 제출 공보물을 일일히 세아리고 직접 들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일터도 안나가고 본인이 운영하는 트럭을 몰고 오셔서 운반해주신 많은 봉사자 지지자 여러분들이 있기에 이렇게 두가지 제출자료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뒤에서 묵묵히 눈물과 땀을 흘리며 일하는 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승리할 것입니다. 나중에 선거가 끝나고 밝혀질 것이지만 정말 매일매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심정으로 열씸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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