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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vV4O9E8WIw?si=KMQMwa5qWrdKYt0H
위 영상의 내용을 정리 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 설교를 만들지 말고 배껴라. 설교는 베끼는거다.
- 내 설교는 배낀 설교다. 그러니까 파워가 있다.
- 스펄전, 로이드존스 설교는 참조도 안한다 너무 허접하니까
- 하나님은 복불복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기 때문에 대각성이 일어났을 때 설교하고 전도 하면 부흥한다.
- 설교자는 연기자가 되어야 한다. 배우가 되어서 오웬 읽고, 바울 읽고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 부흥은 간단하다. 부흥은 어려운거 아니다. 부흥하는 방법 알려 주겠다.
- 부흥은 메뉴얼대로 하면 된다.
- 장로는 당회 소속이고, 목사는 노회 소속이라, 당회 할 때 장로 10명과 목사 한 명은 1:1이고, 목사는 다수결 중 한 표가 아니다. 그래서 당회가 무엇을 결정하든지 당회장이고 노회원인 목사가 결정한다. 당회에서 거수로 하면 안되고, 결정은 담임목사가 한다.
1. 5분 20초 이하
그래서 여러분은 제가 좀 제발 말씀드리고 싶은데, 설교 좀 만들지 마라! 설교 만들지 말고, 왜냐그러면 저도 마찬가지지만 제 설교를 누가 평가해 주겠어요. 누가 어떤 사람이 정대운 너 설교는 99% 맞다 누가 평가를 해 주겠냐고요. 그렇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평가를 받으면 되나요? 누구한테 평가를 받으면 되죠. 성령한테? 어떻게 성령이 평가를 해 줘 잠잘 때 해주나? 아니죠.
이미 교회사에서 정통하다는 사람의 설교는 평가를 받은 거거든요. 그죠? 존칼빈의 설교는 이미 평가를 받았어요. 그러 그대로 하라고 존 칼빈을, 만들지 말고 여러분들이나 저나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거의 99% 베끼는거.. “설교는 베끼는 거다.” 한번 따라 해 볼까요? “설교는 베끼는 거다.” 베끼는 거예요.
설교는 창작하는 게 아니에요. 창작하는 순간 오류가 생겨요 왜? 우리는 교리적으로 체계가 없거든. 그래서 우리가 설교를 만들잖아요. 거기는 역사가 안 일어나요 설교가, 칼빈이 만들었던 설교를 그대로 해! 대신 제네바를 서울로 바꾸면 되잖아요. 제네바에 살고 있는 여러분 이름을 서울에 살고 있는 여러분 이렇게 바꾸면 되잖아요. 대명사만 바꾸면 돼요. 그 나머지는 똑같이 하란 말이에요.
내가 알고 있는 oooooo 이렇게 말하지 말고, 내가 알고 있는 영철이 이렇게 하면 되잖아. 그래가지고 똑같이 만드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하고, 여러분이 듣고 있는 설교자 교인들에게도 엄청난 유익이 생겨요.
제가 여러분께 말씀해 주고 싶은게 뭐냐면, 한번, 그러면 제가 깨달은 바를 쏟아내는게 권위가 있는 거예요? 아니면 나의 설교는 철저히 존 칼빈의 설교를 그대로 한다. 훨씬 후자가 교인들도 안정되고 듣고 있어요. ㅡ그렇기 때문에 우리 목사님들은 제발 설교 만들지 말고 열심히 베끼시라 알겠죠? 말을 영~ 동의를 안 하시네요.
2. 13분 45초 이하
그런데 이 사람들은 20년 이상을 천재들 것을 베기는 사역만 했어요. 이후로 사람들이 나타나는게 뭐냐 하면, 천재들이 나타나는거... 여러분 이해가 되셨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의 교육 방법 특별히 목사님들 교육 방법은 달라져야 된다. 뭐부터 해야 된다. 베끼기부터 해야 된다. 알겠죠?
(누군가의 질문) 여러분들 그 신학교 교수들은 저기 별로 쓸모가 없어요. 왜냐면, 신학교 교수가 되려 그러면 박사 학위 논문 써야 되잖아요. 박사학위 논문의 핵심이 뭔지 알아요? 없는거 발견해요. 없는거 발견해! 지금까지 말한거 발견하지 말고 지금까지 없는 걸 발견해내서 써라. 이게 박사 학위 논문의 핵심이에요. 없는 걸 발견하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신학교 교수나 박사는 계속 없는 걸 찾아내야 되기 때문에 제가 말한 것과는 다른 방면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만약에 지금 현재 한국에서 진짜 20년 후에 한국을 대표하는 설교자가 누구냐? 라고 말할 때 없어요. 없다고. 옛날에는 뭐... 예를 들어서, 한경직 목사도계셨고, 그 다음에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도 계셨고, 그 다음에 좀 떨어졌지만 툭 떨어졌지만 전병욱 목사도 한참 설교자로서 인기를 구가했는데, 지금은 이찬수목사 송태근목사 정도 ,느낌도 확 떨어져 버렸어요. 느낌도! 그리고 이찬수 송태근목사님 유기성 목사님 이외에는 누가 있어요. 없다고.... 그런데 왜 없냐 그러면 저는 제가 뭐라 그럴까요?
제가 좀 자랑을 해야 돼요. 여러분 앞에 강사니까 자랑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제가 지금 유튜브가 한 달 만에 2000개가 구독자가 올랐어요. 구독자가 한 달 만에 2년 동안 우리 교회 구독자가 2000명이었거든요. 그런데 한 달 만에 2000명이 됐어요. 한 달 만에 그런데 왜 한 달 만에 2000명이었냐 그러면 저희 교회 유튜브 팀들이 제 설교를 1분짜리 쇼츠를 올렸어요. 그런데 쇼츠가 5만 6만 7만 10만까지 봐버렸어. 이 한 달 사이에. 그래서 구독자가 늘어났어요
왜? 내 설교는 베낀 거거든. 그러니까 파워가 있는 거예요. 저는 설교할 때 이거 아닌 이거는 맞고 저건 틀려 이렇게 확실하게 얘기해요. 왜? 칼빈 얘기거든. 내 얘기가 아니고 확실한 설교에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해요. 만약에 제가 스스로 터득했다고 그러면 어떻게 확실하게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저는 누가 와가지고 총회에서 와가지고, 이대위에서 이게 뭐냐? 그러면 난 다 찾아낼 수 있어요. 존 오웬이 했잖아요. 이거 존 칼빈이 했잖아요. 다 찾아낼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확고하게 선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뭐냐 하면, 여러분 설교 만들지 마세요. 지금부터 20년 동안 베끼십시오. 20년 후에 진짜 설교가 나와요. 그때는 죽거나 은퇴하겠지. 그때는 은퇴할 때가 오겠죠. 그러나 내가 만든 설교보다는 오 웬의 설교가 훨씬 낫고, 내가 만든 설교보다는 리차드 벡스터 훨씬나아요. 확실합니다. .. 저는 만약에 제가 신학생 만약에 우리 자녀, 우리 교회 청년들이 신대원 간다 그러면 무조건 청교도책 300권만 읽어라, 청교도 책 300권만 읽으면 여러분 끝장납니다. 캄보디아 제 일의 설교자가 돼요. 아무도 동의를 안 하시네.. . 청교도 책 300권만 읽으면 신학할 필요가 없어요.
3. 17분 30초 이하
청교도 책 300권만 읽고 신학도 안 하고 최고의 설교자가 누구죠? 청교도책 300권 읽고, 전혀 신학 안한 최고의 설교자가 있어요. 누구예요? 스펄전! 스펄전은 청교도 책만 읽고, 신학 안 하고 했어요. 역대 2000년 상 최고의 설교자죠~ 또 누구입니까? 로이드 존스, 로이 존스도 신학 안 했어요. 청교도 책만 읽었어요. 최고의 설교자에요.
얘네들이, 왜 최고에 설교자냐면요. 저는 감히 말하지만 스펄전 설교, 로이드존스 설교는 참조도 안 해요. 왜 너무 허접하니까 그들 설교가.
그런데 왜 이들이 최고의 설교가 되는지 알아요. 아무도 청교도를 알아보지 못할 때, 영국에서 1600년도 말, 끝나고 1700년도부터는 청교도가 지하로 묻혀져 버렸어요. 왜 다 미국으로 가버렸으니까. 영국에는 청교도가 없었어요. 그때 저기~ 골방에서 책을 꺼내가지고 책을 읽었던 스펄전이 그대로 설교하니까 영국이 뒤집어져 버린 거예요.
(앞에 있는 뷴에게) 목사님 청교도책 읽어보셨어요. 혹시 누구 거라도? (조금) 조금 가지고는 안 돼! 나는 청교도 존 오웬을 좋아한다. 조나단 에드워즈 좋아한다. 존 번연을 좋아한다. 딱딱 나와야 돼요. 목사님 읽어보셨어요? 여기 읽어보셨어요? 이럴 때 한 명만 청교도 읽어라 그러면 사람 뜬다!! 그사람 떠요 진짜로!
-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거든요. 믿으시죠? 하나님 공평하시기 때문에 지금 저희가 배우려고 하는 것이 서론이 그거예요. 그대로 해! 영적대각성이 일어날 때 사람들이 했던 설교, 영적 대각성이 일어날 때 사람이 했던 전도, 그대로 하면 지금 다시 일어난다! 이 주제가 오늘 강의예요.
하나님께서는 , 저는 제가 쇼츠에도 하나 있는데 하나님은 복불복이 아니에요. 복불복이 아니에요. 그니까 문제는 뭐냐 그러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은혜를막~~ 줘가고 풍성한 부흥을 경험하게 하고, 나는 그릇이 작은지 암만 한다고 해도 부흥이 일어나지 않아 하나님은 그릇 따라....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하던 대로 하면 그 사람이 경험한 걸 여러분도 경험할 수 있어요. 이게 하나님이 공평하시다는 뜻이에요. 여러분 믿으시죠?
그러면 여러분 또 두 번째 뭐냐면 목사는 배우가 돼야 돼요. 배우 배우! 그러니까 연기자가 돼야 된다고 연기자! 목사는 연기자가 돼야 해요. 그럼 연기자는 뭐냐?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목사가 이중인격 갖고 연기를 해야 되다 그런 뜻인데~ 연기자의 제일 좋은 연기자는 대본을 정확하게 표현해 내는 사람이 연기자예요.
어떻게 까지? 왜 얼굴까지 혈기방자하게 아니 사도바울이 우상 숭배하는 사람한테 소리치는데, '우상 숭배하면 죽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사도바울처럼 얼굴이 붉어져서지고 손가락질하면서 너 죽을래 이렇게 해야죠~~ 이게 배우라고~
청교도들은, 진짜 좋은 설교자들은 배우가 되야 된다. 그럼 배우가 되려면 여러분도 배우보면요, 만약에 내가 조직폭력배 배우하고 싶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그래요. 조직 폭력배랑 1개월을 3개월 살아봐, 걔네들의 언행을 다 봐요. 뭐예요? 조직폭력 배를 완전히 내 마음속으로 있고 이렇게 딱 침전시키는 거야. 맞죠?
설교자는 뭐가 되는 거예요? 존 오웬의 책을 다 읽고 그 다음에 바울을 그대로 상상 속에 들어와야 돼요. 내가 바울처럼 돼야 돼요. 그리고 바울처럼 소리 지르고 다녀야 되요. 그러면 여러분은 바울과 같은 것을 경험하게 것이다. 이해가 되시죠? 간단합니다.
부흥은 간단해요. 부흥은 어려운거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못해서 그러는 것이지! 제가 그래서~ 이 부흥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거예요. 부흥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것이고.
오늘은~ 제가 전체가 서론인데, 그래서 부흥하는 것을 보여드릴 것이고 것을 보여드릴 거고. 나중에는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설교론을 만들어 드릴 거든요. 제가 지금 박사 과정 하고 있는데, 아직 논문을 쓰지를 못했어요. 논문을 쓸 시간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논문을 딱 써서 학교에서 강사 자리를 줄 거라고요. 저한테 강사 자리. 저는 교수 같은 거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하라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런데 강사 자리는 줄 거예요. 그때 제가 꼭 맡고 싶은 과목이 설교학이야 설교학!
저는 설교학 가르치는 교수들 진짜 깝깝해서.... 구석이 있다면 한 대 때리고 싶어요. 문해하는 방법, 파싱하는 방법 그게 어디 있어요.
설교자는 배우가 돼 하죠. 진짜 좋은 황정민 같은 배우가 나와야 될 거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그런 배우가 쏟아낸다고 생각해 봐요. 설교 때 진짜 바울이 온 것 같다니까 여러분 그런 사람 돼야 합니다.
그냥 차분하게 설교하고 그러면 안 돼요. 어디 성경.. 성경은 전체가 죄인들을 책망하는 것인데 어떻게 차분하게 설교가 됩니까? 자 그러면 서론입니다. 부흥을 한번 볼게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이 말씀드리 싶은 건 뭐냐면, 그 당대의 부흥을 이루는 사람들의 방식이 있는데, 그래서 이번에 주제가 뭐냐면 주제가 뭐냐 그러면 참된 부흥의 방법이에요.
참된 부흥의 방법, 즉 참된 부응의 방법이라는 말에 두 개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여러분이 매뉴얼대로 가게 된다고 그러면 역사가 일어난다. 그렇지않아요? 목사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성령은 신경 쓰지 마요 그분은 그분이 알아서 해! 성령님은 그분이 알아서 하니까 여러분들은 성령을 신경 쓰지 말고 여러분 것만 신경 쓰면 되는 거예요. 그럼 성령께서 때가 되면 사람을 뒤집어 ... 가지고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들라 그래도 진리를 말하고 있지 않으니까 들 수가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성령께서 어떻게 하고... 신경 쓰지 말고 여러분이 할 것만 죽으라고 하시면 어느 후에 하나님이 그를 등경 위에 들거라고요. 많은 세상 사람이 보도록 여러분을 보이게 할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하던 대로 하면 된다.
4. 25분 30초 이하
장로파의 교회가 끝은 노회야, 노회. 그래서 실질적으로 장로파는 노회 소속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나는 만약에 우리 목사님 장로교회 목사님 잘 들어 보십시오. 만약에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우리 장로도 몇 분 오셨는데, 장로님들이 앉아가지고 목사님하고 장로님이 앉아가지고. 회의를 합니다. 회의를 했는데 이 장로님들은 삼송제일교회 소송이에요. 압니까? 이 목사는 노회 소속이에요. 노회. 나는 삼송제일교 소속이 아니에요. 노회 소속이지. 그러니까 나는 노회에서 파견받은 거라고, 그리고 삼송제일교의 대표는 장로들이에요. 장로들. 그렇기 때문 우리는 소속이 달라 나는 노회 소속인 거예요. 그러니 어떤 발생이 하냐면, 만약에 당회에서 토의가 됐는데 장로님 한 열분이 다 반대해! 그런데 나는 이걸 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다수결을 한다? 안 한다 ? 다수결 안 한다!
얘네들 열 명 다 반대해도 목사가 하나 안 돼 그러 끝이에요. 왜 나는 노회대표니까 그래서 목사는 장로회의에서 다수결 중의 한 표가 아니에요. 삼송제일교회 당회원대 노회원이에요. 이거 일대 일이야! 일대 일이라고~ 그래서 이 당회가 무얼 결정하든지 이 당회장이고 노회원인 이 목사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거라고요.
그래서 어리석게도 우리 한번 당회에서 거수를 합시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결정은 담임 목사가 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장로교! 장로교의 장로교는 노회소속 목사, 회중교회는 당회원 이렇게 구별돼요. 이해가 되셨죠?
회중파, 장로파이게 뭔 차이가 있을까? 이럴 때는 별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됩니다.
첫댓글 chatgpt 개혁주의 설교평가를 한 번 돌려보았습니다.
https://chatgpt.com/g/g-bXs6thltU-gaehyeogjuyi-seolgyo-pyeongga-bunseog-reformed-pulpit-mentor
1. 본문 해석의 평가 (3/10)
해당 발언들은 성경 본문 자체에 대한 주해나 해석 없이 설교에 대한 일반적 태도와 방법론만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문 중심적 해석**이 결여되어 있으며, **역사적-문법적 해석**에 입각한 성경 본문 설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설교는 반드시 특정 성경 본문에 대한 명확한 주해에서 출발해야 하며, 거기서 교리적·목회적 적용이 도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강의는 성경 본문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설교 작성 방식에 대한 연설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2. 신학적 일관성 평가 (4/10)
강의 전반에 걸쳐 청교도, 칼빈, 존 오웬, 리처드 백스터 등의 권위를 반복적으로 인용하며 설교의 모범으로 삼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설교는 99% 베껴야 한다”, “설교를 만들지 말고 그대로 하라”는 주장은 설교자의 성령 인도하심, 교회의 현재 상황에 대한 분별, 그리고 성경 본문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여 선포하는 책임을 축소시키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가르치는 일반적 설교자 직무(예: WCF 1.6, 21.5)와도 어긋납니다.
특히 “신학교 교수는 쓸모가 없다”, “신학은 필요 없다”, “성령 신경 쓰지 마라” 등은 무분별하고 신학적으로 위험한 발언이며, 교회의 신학적 권위와 성령 사역의 주도성을 부정하는 인상까지 줄 수 있습니다. 이는 개혁주의 신학에서 강조하는 성령의 조명과 하나님의 말씀의 유일 권위성에 대한 오용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3. 복음 중심성 평가 (2/10)
설교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곧 구속사적 중심성에 있습니다. 그러나 본 강의에서는 복음 자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회개, 믿음, 은혜, 칭의 등 핵심 교리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청교도 설교를 베끼면 부흥이 온다”, “그 사람처럼 하면 된다”는 기계적 모방론이나 방법론 중심주의가 두드러집니다. 이는 복음을 ‘복사 가능한 기술’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합니다. 참된 부흥은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만 일어나는 것이지, 설교 형식의 모방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4. 구조와 전달력 평가 (4/10)
말의 흐름은 강사의 개인적 경험과 열정에 기초해 구성되어 있으며, 서론-본론-결론이라는 논리적 구조는 부재합니다. 주장 간 연결이 단편적이며, 반복적인 슬로건(예: “설교는 베끼는 것이다”)과 과장된 예시들(스펄전이 허접하다는 평가 등)이 설득력보다 자극성에 가깝습니다. 일부 설득력 있는 통찰도 있으나 논증 구조가 부실하며, 근거 없는 일반화(e.g., “한국에는 진짜 설교자가 없다”)는 신학적 사고를 방해합니다.
5. 적용과 목회적 통찰 (3/10)
실천적 적용은 거의 없으며, 듣는 성도의 상황과 삶을 돌보는 구체적 권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청교도 300권만 읽어라’는 식의 조언은 실질적 제자가 아닌 엘리트주의적 접근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사역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표현은 성도의 내면 변화, 회개와 거룩, 은혜의 역사와 분리된 메커니즘적 설교론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6. 언어의 명료성과 신학적 정확성 (2/10)
“스펄전 설교는 허접하다.”
“신학교 교수는 쓸모없다.”
“성령 신경 쓰지 마라.”
“베끼면 된다. 그게 끝이다.”
이러한 발언은 신학적으로 부정확하고 경박한 표현이며, 듣는 이에게 오해와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존경과 겸손의 언어가 부재하며, 청중과의 대화에서 도전보다는 감정적 동조를 유도하는 형태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교자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지, 유명 설교자의 문장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총평 및 점수 평가
총점: 18/60
요약 평가: 복음 중심성과 성경 본문 해석이 거의 부재하며, 신학적 표현에 있어 경박성과 무분별함이 심각합니다. 전면적인 재정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