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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시·군·구청에 '부동산등기용 등록번호' 신청
문중 명의로 부동산을 등기할 목적이 있다면 문중 사무소가 소재한 시청, 구청, 군청의 지적과를 방문하여 등기용 등록번호를 먼저 부여받아야 합니다. [1, 2]
3단계: 세무서에 '고유번호증' 신청 (가장 중요)
문중 명의의 통장을 개설하고 투명한 회계 관리를 하기 위해 세무서에 등록하는 단계입니다. 세무서 신청 시에는 향후 대표자가 바뀌어도 단체의 연속성이 유지되는 '법인으로 보는 단체'로 신청하시는 것이 유리합니다.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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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山淸郡)의 역사는 삼국시대의 지품천현(知品川縣)에서 시작되어 조선시대 산음현(山陰縣)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질문하신 '지며, 지품'은 산청군의 고대 지명인 '지품천(知品川)'과 이를 우리말로 풀었던 '지픈골(깊은 골짜기)'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 2, 3]
산청군 지명의 유래와 역사적 변천 과정을 정리해 드립니다.
1. 고대 지명의 시작: 지품천현(知品川縣)과 '지픈골'
2. '산음현(山陰縣)'으로의 개칭 (통일신라~조선 중기)
3. '산청현(山淸縣)'으로의 탄생과 유래 (조선 후기)
4. 근현대의 통합: 산청군(山淸郡)의 완성
역사닫기
단성면 강루리를 비롯한 군내 각지에서 선돌과 고인돌 등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에는 이 지역 전역에 사람들이 널리 퍼져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 강루리에서 빗살무늬토기의 포함층이 확인된 사실로 비추어 볼 때, 일찍이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사람들이 남강을 따라 이곳으로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생초면 어서리와 신안면 중촌리 고분군의 규모와 부장품의 내용으로 보아 삼국시대인 5~6세기경 가야 계열의 국가가 이 지방에 분립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 초기에는 궐지군(闕支郡)이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궐성군(闕城郡)이 되었는데, 이때 궐성군 소속의 지품천현과 적촌현이 각각 산음현, 단읍현(丹邑縣)으로 개칭되었다. 산음현과 단읍현은 현재의 산청읍과 신등면 지역이다.
고려 전기 궐성군은 한때 강성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뒤에 강성군이 되었으며, 단읍현은 단계현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산음현과 단계현은 합주에, 강성군은 진주목에 소속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단계현은 강성군의 영현으로 복귀하고 산음현과 강성현에는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 전기인 1399년(정종 1) 거제도의 명진현이 왜구를 피해 강성현으로 옮겨 오면서 두 현이 합쳐져 진성현이 되었다. 1413년(태종 13) 산음현의 합주 소속이 해제되면서 현을 지금의 산청읍으로 옮기고 현감을 두었다. 1432년(세종 14) 명진현이 거제도로 수복되면서 강성현과 단계현이 합쳐져 단성현으로 개칭되고 현감을 두었다. 1599년(선조 32) 단성현의 일부가 왜구의 침입으로 산음에 편입되었다가 이후 다시 단성이 분리되었다. 1767년(영조 43) 산음현을 산청현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의 개정으로 산청현과 단성현이 각각 군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광무 10) 행정구역 정비에 따라 진주군의 삼장(三壯) · 시천(矢川) 등 6개 면이 산청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단성군이 산청군에 통합되었다.
1979년 5월 1일 산청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하동군 옥종면 중대리가 시천면에 편입되었고, 1988년 산청읍 옥동과 한동이 옥산리와 산청리로 각각 개칭되었으며, 1994년 단성면 서부출장소 관할의 길리가 단성면 관할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