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음향 애호가 (Audiophile) - 오디오 환자
원래 오디오파일 (audiophile)이란 오디오광이나 오디오 애호가를 뜻한다. 하지만, 자칫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music lovers)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음향 애호가'로 편의상 쓰고자 한다. 음향 애호가에게는 단지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 이상으로 복잡한 면이 있다. 음악이라는 소리(음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시각적인 면도 무시하지 못하며, 공학도에 버금 갈 정도로 최신 기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므로 순수하게 음악에만 비중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침실에서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십여년 전에 구매하고 현재는 단종이 된 JBL On Stage ll를 사용한다. 침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큰 볼륨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재즈를 들으면서 잠들기에는 아주 만족스럽다. 물론 더 좋은 스피커는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이 앙증맞고 소중한 스피커가 고장이 나지 않길 바라며 애지중지하게 사용하고 있다. 스피커에게 10년이란~
그래서 볼륨 터치할 때는 우측 검지의 연조직으로만 구성된 가장 얇은 최상단부위만을 허락하여, 지문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스치듯이, 말 그대로의 터치만을 구현한다. 구매 당시에 리모컨도 있었는데 현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쯤되면 눈치를 챘을지 모르겠다. 음향 애호가에게 본래 있어야 할 리모컨이 없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렇다! 원래 이 스피커는 내 소유가 아니었다. 내가 당시 거액으로 구매를 했지만 말이다. 이래저래 해서 온갖 모진 세상의 풍파를 헤치고 리모컨까지 잃어버리고 이산가족이 되었다가 다시 내 품에 들어온 것이다. 종횡무진 무자비하게 새겨진 생채기를 볼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질 정도다. 그럴때면 초극세사천으로 세세하게 어루만져 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본능을 최대한 억제하여 입김은 불지 않는다.
침실이라는 아늑한 공간에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있을 것도 아니고, 일단 누우면 다시 일어서는데 온갖 저주의 말을 내뱉어야 기립이 가능한 중년의 남성에게 리모컨을 대체할 장치가 절실해진다. 그래서 온갖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서 'Wi-Fi 스마트 플러그'를 구매하게 된다. 이로써 와이파이를 통해서 전원을 키고 끌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십여년 전에 나온 이 스피커에 무선전송 기능이 있을리 만무하므로, 다시 쇼핑몰을 미친듯이 뒤져서 애플유저로서 더 없이 완벽한 '벨킨 사운드폼 커넥트 Airplay 2'를 구매한다. (무선전송임에도 CD의 해상도에 근접한 16bit/44.1kHz를 지원한다)
Wi-Fi 스마트 플러그 → 벨킨 사운드폼 커넥트 → 3.5mm Aux 케이블 → JBL On Stage ll의 순서로 연결하고 패드에서 무선전송 (AirPlay2)를 하면 YouTube Music이나 Tidal을 연동하여 무선전송을 통해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또한 Wi-Fi 스마트 플러그의 어플을 이용해서 1시간 정도 후에 자동으로 꺼지도록 설정해두면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가 있다.
JBL 스피커는 재즈를 잘 표현한다고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재즈를 좋아하는 나도 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차에 있는 스피커도 JBL이다. 차는 마음에 드는데 음악 소리에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의 애마가 JBL 스피커를 달고 있다. 물론 JBL에서 생산하는 스피커가 모두 같은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닐테니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차 튜닝을 일절 허락하지 않으므로, 튜닝이 아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오디오병이 다시 시발(始發)을 하려고 한다. 이렇게 시름시름 병들어 가는 것이다.
이쯤에서 고백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왜 사망 직전의 스피커를 꺼내서 침실에 둘 수 밖에 없을까? 오디오 환자에게는 최대의 적이 있으니 바로 파트너다. 우리는 서로간에 공통된 파트터십 (Partenrship)을 두지 못한다. 내가 루이비통과 버버리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그러므로 눈속임이 필요하다. 익숙하고 낡은 것을 소생시켜 눈가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매우 효과적이다. 이렇게 해서 스피커는 침대의 내 자리와 일직선으로 위치하도록 화장대 우측 모서리에 조심스럽게 자리잡게 되었다. '어디서 소리가 나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존재감을 최대한 숨기면서 말이다.
첫댓글 위트가 넘치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