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3대 욕구라는 식욕과 성욕, 수면욕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건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게도 공통된 욕구이다. 그걸 각각 동사로 표현하면 ‘먹다,’ ‘하다,’ ‘자다’이다. 그중에서 성욕은 충족하지 못한다 해도 죽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건 인생의 초년기에는 아직 충분히 발현되지 않은 상태이고, 노년기에는 현저히 감퇴하거나 거의 소멸한 상태가 된다. 인생의 중반기에 열렬하게 추구하고 나면 이후에는 그 그림자만 남아 어른거린다. 반면에 식욕과 수면욕은 남녀노소 시종일관이다. 일정 기간 먹지 못하거나 잠을 자지 못하면 사람은, 동물은 죽는다. 그만큼 절대적인 욕구이다.
그 3대 욕구를 충족하는 양상도 서로 흥미롭게 차이가 난다. 그중 두 번째 욕구를 충족하는 행위는 특이할 정도로 은밀하게 사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는’ 행위가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걸 훔쳐보려는 욕구를 관음증이라 하여 심리적인 문제 증상의 하나로 취급된다. 그리고 잠을 자는 행위는 오로지 자신만의 무의식 세계에 빠지게 되는 거니까 공개적이라거나 사적이라거나 그런 차원의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자는 모습을 바라보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그에 비해 먹는 행위는 어느 정도 공개적인 활동이어서 우리는 친한 사람들과 편하게 함께 먹는 걸 좋아하며, 다른 사람이 먹는 모습을 공공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많고, 그걸 관찰하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거기에서 변형된 게 현대인들이 즐기는 이른바 먹방이다.
방송으로 먹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그 모습을 직접 바라보는 게 훨씬 더 큰 만족감을 주는 것 같다. 어머니는 자기 자식이 젖을 힘차게 빨아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본질적인 행복감을 느끼며,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 흐뭇하다. 거기에는 한참 못 미치겠지만 자신이 기르는 가축이 먹이를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꽤나 즐거운 경험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여러 가지 가축을 길렀는데, 그때 나는 그 녀석들이 먹이를 먹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곤 했었다. 그래서 5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그 경험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한다. 심지어 요즘 아침밥 먹고 산책하러 나가면서 나는 혼잣말로 ‘돼지 밥 주고, 닭 모이 주고 와야지’라고 중얼거리며—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건 노인의 특권이다—아파트 문을 나선다. 실제로 그런 상상을 하며 산책을 하면 발걸음이 더 신난다.
소가 먹이를 먹는 모습은 바라보고 있으면 평화로우면서도 오지다. 날마다 석양 무렵에 들판 여기저기로 소를 끌고 다니며 풀을 뜯기면서 살펴보면 소는 촉촉하고도 탄탄한 위아래 입술로 제가 좋아하는 풀을 한입 문 다음 앞니를 이용해서 뜯어내는데, 그때 풀을 뜯는 소리가 보는 이의 마음을 뿌듯하게 한다. 풀 뜯는 소리가 마치 “뿌듯 뿌듯”처럼 들린다. 소는 먹이를 뜯어먹을 때는 아시다시피 씹지 않고 그냥 삼킨다. 일단 혹위에 저장해 둔 먹이를 나중에 한가할 때 엎드려 앉아 다시 끄집어내어 야금야금 되새김질하려는 것이다. 구유에다 퍼준 여물을 먹을 때는 기다란 혀를 쑥 꺼내어 옆으로 구부려서 그 공간에 여물을 기술적으로 말아 쥐고 입으로 끌어당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여물도 혀로 이리저리 달래가며 맛있게 먹는다. 일본 소였으면 ‘오이시’나 ‘우마이’라는 말을 연발할 것 같다. 물을 먹을 때 소는 머리를 숙여 냇물이나 물통 속 물에 입을 갖다 대고 쭉쭉 빨아들인다. 그렇게 삼킨 물이 소의 식도를 타고 목을 통해 넘어가는 모습이 울룩불룩 움직이는 목의 근육에 선명히 드러난다. 그런 식으로 충분히 마시고 나면 고개를 높이 치켜들어 물을 뱃속으로 내려가게 한 다음 혀를 내둘러 입언저리에 묻은 물을 핥아서 마무리한다.
예전에는 개가 오늘날처럼 씨리얼이나 과자처럼 생긴 제품화된 마른 사료를 먹지 않았고 그 집 식구들이 먹는 밥을 먹었다. 식구들이 먹다 남긴 것을 주로 먹었는데 국이나 물에 밥을 말아 그릇에 담아주면 돌출한 주둥이 부분을 밥그릇 안쪽에 밀어 넣고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하면서 혀를 날름거리며 야무지게 먹는다. 그때 첩첩첩 소리가 난다. 음식을 다 먹은 다음 밥그릇을 혀로 싹싹 핥아 깨끗하게 설거지까지 한다. 목이 말라서 따로 물을 먹을 경우에는 입으로 빨아들이지 않고 혀를 교묘하게 구부리면서 내밀어 물속에 담가서 그 구부러진 혀의 각도를 이용하여 물을 입안으로 당겨 넣으며 연신 쭈럭쭈럭 소리를 낸다.
토끼도 나름대로 맛있게 먹는다. 토끼의 최애 음식은 잎을 뜯으면 흰 즙이 나오는 싸랑부리(씀바귀)이다. 토끼가 풀잎을 먹을 때 보면 마치 구강 전체를 씰룩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코와 윗입술이 붙어 있고 게다가 윗입술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서—그래서 언청이가 영어로는 harelip이다—코와 양 볼, 윗입술, 그리고 양쪽 볼에 난 긴 털들이 동시에 씰룩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재미있다. 녀석이 싸랑부리나 질경이를 야무지게 씹어 먹을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가 그 어떤 ASMR효과음보다도 더 듣기 좋다.
돼지는 먹는 모습과 소리가 누구보다도 게걸스럽다. 돼지는 대체로 뭐든지 잘 먹는다. 식욕의 끝판왕이다. 돼지우리의 울 밑쪽에 놓여 있는 길쭉한 나무 밥그릇에 구정물을 부어주면 냉큼 다가와 일단 기다란 주둥이를 뿌연 구정물 속에 집어넣고 혹시 무슨 건더기라도 있는지 마구 뒤져 찾는다. 뭔가 입에 걸리면 재빨리 입 속으로 끌어들인 다음 주둥이를 들어 올려 축축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위턱과 아래턱을 방아 찧듯 찧어가며 맛있게 먹는다. 구정물을 반 양동이쯤 부어 놓고 그 위에 미강—벼나 보리를 방아 찧을 때 나오는 고운 속껍질 가루—을 한 바가지쯤 띄워 주면 입을 적당히 벌려 그 미강 층을 기가 막히게 입속으로 거둬들이며 먹어치운다. 지켜보고 있으면 저절로 덩달아 식욕이 돋워진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의 어떤 퀴즈 오락 프로그램에서 서양의 어떤 유명인사가 주장했다는,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알파벳 F로 시작되는 영어 단어 세 가지를 맞히는 문제가 주어졌다. 응답자들이 F로 시작되는 여러 단어들을 말했다. freedom, friends, family, faith, fun 등. 그러다가 마침내 누군가가 f--k이라는 단어를 꺼내놓자 진행자가 당황하며 못들은 척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정작 진행자가 요구했던 정답은 food, family, friends였다. 그걸 듣고 나는 food라는 단어가 좀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하다’나 ‘자다’를 인생삼락으로 꼽는 것보다는 ‘먹다’를 꼽는 게 더 설득력 있어 보이긴 한다. 먹는 욕구는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심지어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도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충족되어야 하고, 그걸 실행하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 먹는 행위에 대한 좀 다른 차원의 관찰과 생각이 있다.
“어떤 시는 겉은 딱딱하고 안은 부드러운 빵 같아서 씹을수록 맛이 있고, 어떤 시는 따뜻한 국물 맛이 일품이어서 몸을 녹이기에 제격입니다. 어떤 시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다가 조금씩 그 독특한 풍미를 드러내지요. ... 이처럼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발상과 언어를 몸의 일부로 만든다는 점에서 먹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 나희덕, 『한 접시의 시』
나희덕의 위 구절은 비단 시를 읽는 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 작품을 읽는 데 두루 적용될 것 같다.
첫댓글 일 없이 걸으면서 먹이주는 상상을...부럽~~!
우리끼리만 읽기 아까운 글들이 많습니다. 수필 공모전이나 수필 신인상을 검색해 보세요~ ^^
소가 풀 뜯는 소리 '뿌듯뿌듯'
개가 물 말은 밥 먹는 소리 '첩첩첩'
개가 물 먹는 소리 '쭈럭쭈럭'
토끼가 풀 먹는 소리 '사각사각'
돼지가 건더기 먹는 소리 '축축축'
저는 이런 소리 묘사가 어렵던데....이렇게 적확한 표현을 찾으시다니 정말 놀라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