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천사 대화방을 열어주시어 고맙습니다. 천사 대화방은 우리 회원들이 편안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천사(사모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방이고 또한 자유롭게 토론을 할 수 있는 방으로 그동안 바라던 일이 실현이 되어 너무도 기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매우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사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경청하고 그 말씀에 따를 것입니다. 편안한 우리들의 배움터가 되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우리의 휴게공간이기를 진심 기대합니다.
카페에 오더라도 머물 수 있는 방이 없어서 언제나 아쉬웠는데 이처럼 우리들이 함께 쉴 수 있는 방을 마련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저도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합시다 방에서 더 재미있고 더 즐거운 이야기를 나눔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방 개설을 축하합니다. 자주 들리겠습니다. 너무나 기분 좋습니다...
평소에 회원님들과 허심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카페지기님께서 이처럼 사랑방을 제공해 주시니 선물 받은 복권에 당첨이 된 기분이 이만이나 할까 싶은 행복감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기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어쨋거나 어렵게 꾸민 방이고 자리입니다. 이제 이 방에서 우리가 우리라는 의미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살아가는 이야기며 체험담과 같은 소중한 마음을 나눔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벌써 여러분께서 많은 글과 자료들을 올려주시었는데 거의가 신앙적인 측면에 치우친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쉽습니다만 이제 시작이니만치 어려운 이웃들의 이야기며 봉사활동하시면서의 애로나 에피소드와 같은 이야기 봇따리들이 술술 풀리리라 기대합니다. 저도 여러분의 의견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소소한 것이라 해도 세심하게 살펴가겠습니다. 이제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시기입니다. 더구나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간이니 만큼 마음도 조급해질 수 있을 텝니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 편히 가지시고 서두룸 없으시길 바랍니다. 건강한 여러분의 모습만 그리며 살겠습니다...
이제 이 방에서 우리가 우리라는 의미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살아가는 이야기며 체험담과 같은 소중한 마음을 나눔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벌써 여러분께서 많은 글과 자료들을 올려주시었는데 거의가 신앙적인 측면에 치우친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쉽습니다만 이제 시작이니만치 어려운 이웃들의 이야기며 봉사활동하시면서의 애로나 에피소드와 같은 이야기 봇따리들이 술술 풀리리라 기대합니다. 저도 여러분의 의견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소소한 것이라 해도 세심하게 살펴가겠습니다. 사모님. 저희들은 언제까지나 사모님 말씀에 따를 것입니다.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에 대한 글입니다. 사회교리 주간을 시작하는 인권주일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김선태 주교는 전국 교우들에게 보내는 담화를 이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우리가 혐오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악입니다(로마 12,9 참조). 혐오를 반드시 넘어서도록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서로 소통하며 보편적 형제애를 추구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정의와 사랑이 실현되고 차별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회교리의 핵심적 가르침입니다. 이는 보편적 형제애를 추구하는 현실에서만 이룩될 수 있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고도 불행하게도 스페인 왕조가 남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정복하던 15세기에는 이 진리에 눈을 뜬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약 눈을 뜬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세르반테스가 풍자한 돈키호테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대륙에서 채굴한 은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된 정복자들은 닥치는 대로 원주민들을 죽였습니다.
제러미 다이아몬드는 남미 대륙이 왜 저토록 힘없이 무너졌는지를 두고 나름 연구한 끝에 총 균 쇠라는 글을 써서 일약 유명 인사 반열에 올랐지만 이 글 안 어느 구석에서도 서양 백인들의 불의하고 부당한 살육과 착취를 나무라는 대목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 대륙 원주민들이 철기 문명을 몰랐고 따라서 총과 같은 근대식 무기가 없었고 서양 백인들이 몸에 지니고 간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없어서 성병에 걸리자 마자 죽음을 당해야 했던 저간의 사정만을 지적했을 뿐이었습니다. 과연 이런 관점이 타당합니까? 지적으로는 정직했을지 모르지만 윤리적으로는 낙제점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보는 관점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스페인 가톨릭 정복자들의 원주민 학살이 8백만 명을 넘어설 즈음 성모 마리아께서 개입하셨던 것입니다.
너희가 나의 사랑과 자비 보호를 증거하기 위해 이곳에 성당을 세우길 바란다. 이 말씀은 어제 우리 교회가 기념했던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목격자 후안 디에고를 통해 말씀하신 메시지입니다. 이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던 당시에 성모 마리아께서 역사상 처음으로 발현하신 사건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531년 12월 9일부터 12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역사상 최초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내리신 메시지이며 이로써 1492년 콜럼버스가 남아메리카 대륙을 침공한 이래 원주민 8백만 여명을 죽이는 등 스페인 가톨릭 정복자들에 의해 자행되어 온 학살이 즉시 멈추었고 뱀의 여신을 숭배해 오던 멕시코 아즈텍 문명의 원주민 8백만 여명이 집단으로 7년여 골안 개종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모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유심히 지켜 보신다는 증거가 이로써 드러났고 인류의 행태가 위험수위를 넘어서면 인류 역사에 개입하실 것임을 경고하는 시대의 징표였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정황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1531년 12월 9일 집에서 수km 떨어진 수도원 경당에서 거행되는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테페약(Tepeyac) 산을 넘던 후안 디에고(Juan Diego. 당시 57세)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멕시코 원주민의 모습을 한 여인은 당시 멕시코인들이 사용하던 토착어인 나후아틀어로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믿으며 내 도움을 요청하는 지상의 모든 백성의 자비로운 어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주교를 찾아가 자신이 나타난 장소에 성당을 세우라는 전갈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디에고는 주교관을 찾아가 스페인 출신의 후안 데 주마라가(Juan de Zumaraga) 주교에게 전했지만 주교는 디에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증표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디에고는 다시 그 장소를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나흘 뒤인 12월 12일 테페약 산에 다시 발현한 성모님께서는 디에고에게 자신과 처음 만났던 언덕에서 장미꽃을 모아오라고 명하고 디에고가 자신의 망토에 장미를 모아오자 장미를 가지런히 다시 놓으셨습니다. 성모께서 발현한 테페약 산 정상은 꽃이 자랄 수 없는 바위 언덕이었을 뿐 아니라 그 시기는 장미가 피지 않는 한겨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장미는 주교의 고향인 스페인 카스티야에서만 피어나는 장미였습니다. 디에고는 다시 주교를 찾아가 망토에 담아온 장미꽃을 펼쳐 보이자 장미꽃들이 바닥에 폭포처럼 흩뿌려지면서 그 망토에 성모의 형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를 본 주교는 즉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성모님의 메시지를 믿지 않은 자신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당시의 멕시코에는 인쇄 기술이 없었고 더욱이 천에 사람의 얼굴을 그릴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며 또한 후안의 망토는 선인장 실로 짠 거친 직물이어서 섬세한 그림을 그려 넣을 수도 없었는데 성모님께서는 그 망토자락에 실물처럼 섬세하게 찍혀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성모님께서 스페인 백인이 아니라 현지 원주민의 모습으로 발현하셨다는 점이었고 그것도 아기를 잉태한 여인의 모습으로 발현하셨다는 점 이었습니다. 또 성모 발현 장소인 테페약 산 정상은 원주민들이 숭배하던 아즈텍 토난친(Aztec Tonantzin) 여신의 신전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성모발현 이후 전 멕시코의 원주민들이 토속신앙을 버리고 세례를 청했고 인신을 공양하는 우상숭배 풍습에 젖어 있던 죄인들은 줄을 지어서 고해성사를 청했습니다.
또한 과달루페 성모가 허리에 맨 검은 띠는 임신한 여성을 나타내는 원주민들의 전통이었는데 이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무차별로 죽이던 생명을 수호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이해되었습니다. 멕시코시티 테페약 산에서 발현한 성모님께서는 자신을 과달루페(Guadalupe)의 영원하신 동정 마리아로 불러 주길 원했습니다. 과달루페는 뱀을 물리친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선교를 명분으로 내세운다고 해서 학살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무조건 신자가 늘어나는 일이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남아메리카 대륙 정복자들이 자행하던 대량 학살에 대해 항의하기는 커녕 이를 기화로 선교하려던 스페인 교회 이러한 선교활동으로 결과적으로 학살을 정당화시켜준 스페인 교회를 꾸짖지도 못했던 교황청을 대신하여 성모님께서 직접 나서셔야 했던 이 발현 사건은, 다시는 이렇게 교회의 예언직이 온통 마비되어 버린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꾸짖음인 동시에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켜 주고 사랑의 교회에 대한 상상력을 회복시켜 주시려던 메시지였습니다.
지금 그 언덕에 세워진 대성당에는 후안 디아고의 망토가 유리창 안에 보관되어 있는데 호기심 많은 천문학자들이 망토에 새겨진 성모 마리아의 눈망울을 2,500배의 크기로 확대해 보았더니 과연 그 당시 그러니까 1531년 12월 9일 성모를 발현한 후에 주교 앞에 서 있던 사라들 즉 후안 디아고와 주마리가 주교와 통역자 그리고 하녀들이 찍혀 있었고 망토의 별자리 역시 그 순간을 지켜본 1531년 12월 9일 바로 그날 밤하늘의 별자리 그대로였답니다. 이 발현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과학으로만 입증될 수 없습니다. 과학적 방법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신학적 통찰 역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과학적 진리와 신학적 진리는 서로 모순되지 않고 하나의 진리를 향합니다. 진리는 신학과 과학 모두를 통해서 입증되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방법으로 그 진실이 입증된 과달루페 성모 발현 현상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검증해 보겠습니다.
발현은 부활의 징표입니다. 예수님이든 성모 마리아든 부활하신 존재만이 사람들 앞에 발현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현을 목격하고 그 메시지를 듣도록 선택된 사람 이외에는 발현 체험이 불가능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서만 메시지를 들을 수 있고 이를 믿고 안 믿고는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발현은 부활 신앙에 대한 강력한 희망의 근거이면서도 동시에 믿음에 관한 도전이 됩니다. 과달루페 발현(1531년) 이후 프랑스 파리 뤼드박(1830년) 프랑스 라 살레뜨(1846년) 프랑스 루르드(1858년) 프랑스 풍맹(1871년) 아일랜드 녹(1879년) 포르투갈 파티마(1917년) 벨기에 보렝(1932년) 벨기에 바뇌(1933년) 필리핀 리파(1948년) 등 근현대사에서 일어난 모든 성모 발현이 다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시지 않으셨어도 성모 신심이 돈독한 신자들이 기도하는 곳마다 기적들이 일어나서 해마다 많은 신자들이 순례하러 오는 성지들도 많은데 중국 서산 스리랑카 마두 인도 바일란카니 파키스탄 마리아마바드 방글라데시 노바이 봇톨라 베트남 라방 등 입니다.
이 모든 성모 발현과 기적의 원형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보여주신 성모 마리아의 역할입니다. 그 잔치에서 마리아께서는 혼인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난처해질 뻔한 혼주를 대신해서 예수님께 기적을 청하셨는데 이 때에 하신 말씀이 이러했습니다.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이 말씀이 모든 성모 발현과 기적에 공통된 메시지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 메시지를 존중하지 않고 그와 정반대로 죄악이 저질러지고 불신과 의심이 팽배한 위기 상황에서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발현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 죽음 사건 직후 역시 불신과 공포 의심과 불안 속에서 숨어 지내던 제자들을 찾아가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발현하신 일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자 눈앞에서 예수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용기 백배하여 믿음을 되찾았고 스승의 가르침을 확신하고는 신자들에게 기적들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굳은 확신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열두 사도들은 요한만 제외하고는 모두 일생을 바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고 요한도 백세 넘는 늙은 나이까지 에페소를 비롯한 초대교회에서 복음을 전하였으니 이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일생과 목숨을.
십자가가 강생의 절정이라면 부활은 강생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요한 11.25-26)이라고 보증하셨습니다. 부활은 본시 하느님 곁에서 태초 이전부터 계시던 분이 원대복귀하신 것이므로 인간의 구원은 부활 때에 이르러 완성됩니다(1코린 15.35-58 참조). 강생의 신비가 지닌 의미는 물론 십자가의 영성이 지니는 가치 역시 부활의 빛에 의해 조명될 때라야 비로소 온전히 밝혀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가 내다보는 미래는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부활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고 사막에 길을 곧게 내며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과 언덕이 낮아지는 꿈은 부활의 사회적 메시지를 시적으로 묘사한 말씀입니다. 거친 곳이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됨으로써 드러나는 주님의 영광 역시 모든 사람이 부활의 광채를 보게 되는 벅찬 영적 현실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전해야 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부활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도리어 소외되거나 상처받은 이들이 있다면 부활 신앙을 믿는 이들은 당연히 그들을 찾아가서 감싸 안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대부분 이런 부활의 행동 일색이었고 이것이 오늘 복음에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로 발설된 것입니다. 부활의 메시지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은 부활의 행동으로 더욱 강화됩니다. 모든 종교적 진리가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게 되는 조건이 바로 이것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합시다 방 개설을 축하합니다.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방이 생겼으니 자주 들리겠습니다. 오늘도 커다란 잔에 커피 한 잔 타 가지고 여유로운 시간 갖고자 들렸습니다. 여러분께서 주신 말씀과 이야기에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모두가 건강하고 포근한 하루 맞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방을 개설하도록 해 주신 사모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초기 교회에는 공식화된 기도문이 거의 없었고 사제들이 즉흥적으로 성령의 영감을 따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교회의 전례가 체계화되면서 기도문들도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레고리우스 대교황(540~604년)이 편찬한 사크라멘타리움 그레고리아눔은 사제를 위한 기도문이 포함된 최초의 공식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중세 시대를 거치며 수도원 중심의 전례가 발전했고 각 지역 교회마다 사제 기도문이 다양하게 형성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에는 라틴어 중심의 전례에서 각 언어로 번역된 현대적 기도문들이 등장했습니다. 신학적 의미를 현대인에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새로운 형태의 기도들이 추가되며 오늘날의 사제 기도서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함께합시다 방 개설을 축하합니다.
노조 조끼를 입고 식사 중인 손님에게 벗어달라고 요구한 백화점 측 직원 태도가 논란입니다. 서울 롯데백화점의 보안요원이 식사하러 온 노동조합원들에게 공공장소에서는 에티켓을 지켜주셔야 한다라며 노조 조끼를 벗어달라고 요구해 논란입니다. 조끼에는 현대차 하청기업 해고 노동자의 복직을 요구하며 해고는 살인이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거죠? 하지만 논란이 확산하자 백화점 측이 노조에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기업 노동자들과 인권 단체들이 오늘 오후 노조 조끼를 입은 채 백화점에서 단체로 식사할 계획으로 알려졌는데요. 감정적인 사안으로 비화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어떤 복장을 했던 간에 백화점에 오는 손님이면 응당 출입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출입을 못하게 한 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제 3자에게 혐오감을 준다던가 백화점 영업에 현저하게 누가 된다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일 것입니다. 평화로운 사회를 바라는 시민입니다.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영국 평등과인권위원회(EHRC) 데이비드 아이작 의장이 최근 직장에서 종교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많은 신화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일터에서 성탄카드를 보내고 파티를 열어도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아이작 의장의 말은 EHRC가 지난 2일 직장 내 차별금지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드러난 기독교인들의 직장 내 역차별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영국은 2010년 직장과 교육현장 공공 서비스 분야 등 광범위한 공적 영역에서 종교 차별을 금지하는 평등 법안이 발효돼 그 영향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고용주에 따라서는 종업원들이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하거나 동성애를 반대하는 표현만 해도 제재를 하는 등 역차별을 받아왔다. 최근엔 성공회를 국교로 채택한 영국에서 성탄절에도 개인의 신앙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없는 것이냐는 불만이 표출돼왔다. 아이작 의장은 올 성탄절은 직장을 포함한 공공장소에서 즐거운 성탄 되세요(Seasons greetings)나 겨울 축제(Winterval) 등의 말은 가능할 것이라며 직장에서 종교 문제를 다루는 것은 상식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고도 영국이 선진국?
첫댓글 천사 대화방을 열어주시어 고맙습니다. 천사 대화방은 우리 회원들이 편안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천사(사모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방이고 또한 자유롭게 토론을 할 수 있는 방으로 그동안 바라던 일이 실현이 되어 너무도 기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매우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사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경청하고 그 말씀에 따를 것입니다. 편안한 우리들의 배움터가 되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우리의 휴게공간이기를 진심 기대합니다.
함께 합시다 방 개설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모두가 마음 편하게 서로의 의견도 나눔하는 그런 사랑방이면 좋겠습니다.
카페에 오더라도 머물 수 있는 방이 없어서 언제나 아쉬웠는데 이처럼 우리들이 함께 쉴 수 있는 방을 마련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저도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합시다 방에서 더 재미있고 더 즐거운 이야기를 나눔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방 개설을 축하합니다. 자주 들리겠습니다. 너무나 기분 좋습니다...
평소에 회원님들과 허심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카페지기님께서 이처럼 사랑방을 제공해 주시니 선물 받은 복권에 당첨이 된 기분이 이만이나 할까 싶은 행복감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기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어쨋거나 어렵게 꾸민 방이고 자리입니다. 이제 이 방에서 우리가 우리라는 의미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살아가는 이야기며 체험담과 같은 소중한 마음을 나눔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벌써 여러분께서 많은 글과 자료들을 올려주시었는데 거의가 신앙적인 측면에 치우친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쉽습니다만 이제 시작이니만치 어려운 이웃들의 이야기며 봉사활동하시면서의 애로나 에피소드와 같은 이야기 봇따리들이 술술 풀리리라 기대합니다. 저도 여러분의 의견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소소한 것이라 해도 세심하게 살펴가겠습니다. 이제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시기입니다. 더구나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간이니 만큼 마음도 조급해질 수 있을 텝니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 편히 가지시고 서두룸 없으시길 바랍니다. 건강한 여러분의 모습만 그리며 살겠습니다...
이제 이 방에서 우리가 우리라는 의미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살아가는 이야기며 체험담과 같은 소중한 마음을 나눔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벌써 여러분께서 많은 글과 자료들을 올려주시었는데 거의가 신앙적인 측면에 치우친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쉽습니다만 이제 시작이니만치 어려운 이웃들의 이야기며 봉사활동하시면서의 애로나 에피소드와 같은 이야기 봇따리들이 술술 풀리리라 기대합니다. 저도 여러분의 의견과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소소한 것이라 해도 세심하게 살펴가겠습니다. 사모님. 저희들은 언제까지나 사모님 말씀에 따를 것입니다.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에 대한 글입니다. 사회교리 주간을 시작하는 인권주일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김선태 주교는 전국 교우들에게 보내는 담화를 이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우리가 혐오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악입니다(로마 12,9 참조). 혐오를 반드시 넘어서도록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서로 소통하며 보편적 형제애를 추구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정의와 사랑이 실현되고 차별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회교리의 핵심적 가르침입니다. 이는 보편적 형제애를 추구하는 현실에서만 이룩될 수 있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고도 불행하게도 스페인 왕조가 남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정복하던 15세기에는 이 진리에 눈을 뜬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약 눈을 뜬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세르반테스가 풍자한 돈키호테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대륙에서 채굴한 은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된 정복자들은 닥치는 대로 원주민들을 죽였습니다.
제러미 다이아몬드는 남미 대륙이 왜 저토록 힘없이 무너졌는지를 두고 나름 연구한 끝에 총 균 쇠라는 글을 써서 일약 유명 인사 반열에 올랐지만 이 글 안 어느 구석에서도 서양 백인들의 불의하고 부당한 살육과 착취를 나무라는 대목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 대륙 원주민들이 철기 문명을 몰랐고 따라서 총과 같은 근대식 무기가 없었고 서양 백인들이 몸에 지니고 간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없어서 성병에 걸리자 마자 죽음을 당해야 했던 저간의 사정만을 지적했을 뿐이었습니다. 과연 이런 관점이 타당합니까? 지적으로는 정직했을지 모르지만 윤리적으로는 낙제점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보는 관점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스페인 가톨릭 정복자들의 원주민 학살이 8백만 명을 넘어설 즈음 성모 마리아께서 개입하셨던 것입니다.
너희가 나의 사랑과 자비 보호를 증거하기 위해 이곳에 성당을 세우길 바란다. 이 말씀은 어제 우리 교회가 기념했던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목격자 후안 디에고를 통해 말씀하신 메시지입니다. 이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던 당시에 성모 마리아께서 역사상 처음으로 발현하신 사건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531년 12월 9일부터 12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역사상 최초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내리신 메시지이며 이로써 1492년 콜럼버스가 남아메리카 대륙을 침공한 이래 원주민 8백만 여명을 죽이는 등 스페인 가톨릭 정복자들에 의해 자행되어 온 학살이 즉시 멈추었고 뱀의 여신을 숭배해 오던 멕시코 아즈텍 문명의 원주민 8백만 여명이 집단으로 7년여 골안 개종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모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유심히 지켜 보신다는 증거가 이로써 드러났고 인류의 행태가 위험수위를 넘어서면 인류 역사에 개입하실 것임을 경고하는 시대의 징표였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정황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1531년 12월 9일 집에서 수km 떨어진 수도원 경당에서 거행되는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테페약(Tepeyac) 산을 넘던 후안 디에고(Juan Diego. 당시 57세)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멕시코 원주민의 모습을 한 여인은 당시 멕시코인들이 사용하던 토착어인 나후아틀어로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믿으며 내 도움을 요청하는 지상의 모든 백성의 자비로운 어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주교를 찾아가 자신이 나타난 장소에 성당을 세우라는 전갈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디에고는 주교관을 찾아가 스페인 출신의 후안 데 주마라가(Juan de Zumaraga) 주교에게 전했지만 주교는 디에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증표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디에고는 다시 그 장소를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나흘 뒤인 12월 12일 테페약 산에 다시 발현한 성모님께서는 디에고에게 자신과 처음 만났던 언덕에서 장미꽃을 모아오라고 명하고 디에고가 자신의 망토에 장미를 모아오자 장미를 가지런히 다시 놓으셨습니다. 성모께서 발현한 테페약 산 정상은 꽃이 자랄 수 없는 바위 언덕이었을 뿐 아니라 그 시기는 장미가 피지 않는 한겨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장미는 주교의 고향인 스페인 카스티야에서만 피어나는 장미였습니다. 디에고는 다시 주교를 찾아가 망토에 담아온 장미꽃을 펼쳐 보이자 장미꽃들이 바닥에 폭포처럼 흩뿌려지면서 그 망토에 성모의 형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를 본 주교는 즉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성모님의 메시지를 믿지 않은 자신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당시의 멕시코에는 인쇄 기술이 없었고 더욱이 천에 사람의 얼굴을 그릴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며 또한 후안의 망토는 선인장 실로 짠 거친 직물이어서 섬세한 그림을 그려 넣을 수도 없었는데 성모님께서는 그 망토자락에 실물처럼 섬세하게 찍혀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성모님께서 스페인 백인이 아니라 현지 원주민의 모습으로 발현하셨다는 점이었고 그것도 아기를 잉태한 여인의 모습으로 발현하셨다는 점 이었습니다. 또 성모 발현 장소인 테페약 산 정상은 원주민들이 숭배하던 아즈텍 토난친(Aztec Tonantzin) 여신의 신전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성모발현 이후 전 멕시코의 원주민들이 토속신앙을 버리고 세례를 청했고 인신을 공양하는 우상숭배 풍습에 젖어 있던 죄인들은 줄을 지어서 고해성사를 청했습니다.
또한 과달루페 성모가 허리에 맨 검은 띠는 임신한 여성을 나타내는 원주민들의 전통이었는데 이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무차별로 죽이던 생명을 수호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이해되었습니다. 멕시코시티 테페약 산에서 발현한 성모님께서는 자신을 과달루페(Guadalupe)의 영원하신 동정 마리아로 불러 주길 원했습니다. 과달루페는 뱀을 물리친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선교를 명분으로 내세운다고 해서 학살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무조건 신자가 늘어나는 일이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남아메리카 대륙 정복자들이 자행하던 대량 학살에 대해 항의하기는 커녕 이를 기화로 선교하려던 스페인 교회 이러한 선교활동으로 결과적으로 학살을 정당화시켜준 스페인 교회를 꾸짖지도 못했던 교황청을 대신하여 성모님께서 직접 나서셔야 했던 이 발현 사건은, 다시는 이렇게 교회의 예언직이 온통 마비되어 버린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꾸짖음인 동시에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켜 주고 사랑의 교회에 대한 상상력을 회복시켜 주시려던 메시지였습니다.
지금 그 언덕에 세워진 대성당에는 후안 디아고의 망토가 유리창 안에 보관되어 있는데 호기심 많은 천문학자들이 망토에 새겨진 성모 마리아의 눈망울을 2,500배의 크기로 확대해 보았더니 과연 그 당시 그러니까 1531년 12월 9일 성모를 발현한 후에 주교 앞에 서 있던 사라들 즉 후안 디아고와 주마리가 주교와 통역자 그리고 하녀들이 찍혀 있었고 망토의 별자리 역시 그 순간을 지켜본 1531년 12월 9일 바로 그날 밤하늘의 별자리 그대로였답니다. 이 발현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과학으로만 입증될 수 없습니다. 과학적 방법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신학적 통찰 역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과학적 진리와 신학적 진리는 서로 모순되지 않고 하나의 진리를 향합니다. 진리는 신학과 과학 모두를 통해서 입증되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방법으로 그 진실이 입증된 과달루페 성모 발현 현상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검증해 보겠습니다.
발현은 부활의 징표입니다. 예수님이든 성모 마리아든 부활하신 존재만이 사람들 앞에 발현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현을 목격하고 그 메시지를 듣도록 선택된 사람 이외에는 발현 체험이 불가능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서만 메시지를 들을 수 있고 이를 믿고 안 믿고는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발현은 부활 신앙에 대한 강력한 희망의 근거이면서도 동시에 믿음에 관한 도전이 됩니다. 과달루페 발현(1531년) 이후 프랑스 파리 뤼드박(1830년) 프랑스 라 살레뜨(1846년) 프랑스 루르드(1858년) 프랑스 풍맹(1871년) 아일랜드 녹(1879년) 포르투갈 파티마(1917년) 벨기에 보렝(1932년) 벨기에 바뇌(1933년) 필리핀 리파(1948년) 등 근현대사에서 일어난 모든 성모 발현이 다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시지 않으셨어도 성모 신심이 돈독한 신자들이 기도하는 곳마다 기적들이 일어나서 해마다 많은 신자들이 순례하러 오는 성지들도 많은데 중국 서산 스리랑카 마두 인도 바일란카니 파키스탄 마리아마바드 방글라데시 노바이 봇톨라 베트남 라방 등 입니다.
이 모든 성모 발현과 기적의 원형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보여주신 성모 마리아의 역할입니다. 그 잔치에서 마리아께서는 혼인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난처해질 뻔한 혼주를 대신해서 예수님께 기적을 청하셨는데 이 때에 하신 말씀이 이러했습니다.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이 말씀이 모든 성모 발현과 기적에 공통된 메시지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 메시지를 존중하지 않고 그와 정반대로 죄악이 저질러지고 불신과 의심이 팽배한 위기 상황에서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발현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 죽음 사건 직후 역시 불신과 공포 의심과 불안 속에서 숨어 지내던 제자들을 찾아가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발현하신 일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자 눈앞에서 예수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용기 백배하여 믿음을 되찾았고 스승의 가르침을 확신하고는 신자들에게 기적들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굳은 확신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열두 사도들은 요한만 제외하고는 모두 일생을 바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고 요한도 백세 넘는 늙은 나이까지 에페소를 비롯한 초대교회에서 복음을 전하였으니 이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일생과 목숨을.
십자가가 강생의 절정이라면 부활은 강생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요한 11.25-26)이라고 보증하셨습니다. 부활은 본시 하느님 곁에서 태초 이전부터 계시던 분이 원대복귀하신 것이므로 인간의 구원은 부활 때에 이르러 완성됩니다(1코린 15.35-58 참조). 강생의 신비가 지닌 의미는 물론 십자가의 영성이 지니는 가치 역시 부활의 빛에 의해 조명될 때라야 비로소 온전히 밝혀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가 내다보는 미래는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부활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고 사막에 길을 곧게 내며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과 언덕이 낮아지는 꿈은 부활의 사회적 메시지를 시적으로 묘사한 말씀입니다. 거친 곳이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됨으로써 드러나는 주님의 영광 역시 모든 사람이 부활의 광채를 보게 되는 벅찬 영적 현실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전해야 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부활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도리어 소외되거나 상처받은 이들이 있다면 부활 신앙을 믿는 이들은 당연히 그들을 찾아가서 감싸 안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대부분 이런 부활의 행동 일색이었고 이것이 오늘 복음에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로 발설된 것입니다. 부활의 메시지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은 부활의 행동으로 더욱 강화됩니다. 모든 종교적 진리가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게 되는 조건이 바로 이것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합시다 방 개설을 축하합니다.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방이 생겼으니 자주 들리겠습니다. 오늘도 커다란 잔에 커피 한 잔 타 가지고 여유로운 시간 갖고자 들렸습니다. 여러분께서 주신 말씀과 이야기에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모두가 건강하고 포근한 하루 맞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방을 개설하도록 해 주신 사모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초기 교회에는 공식화된 기도문이 거의 없었고 사제들이 즉흥적으로 성령의 영감을 따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교회의 전례가 체계화되면서 기도문들도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레고리우스 대교황(540~604년)이 편찬한 사크라멘타리움 그레고리아눔은 사제를 위한 기도문이 포함된 최초의 공식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중세 시대를 거치며 수도원 중심의 전례가 발전했고 각 지역 교회마다 사제 기도문이 다양하게 형성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에는 라틴어 중심의 전례에서 각 언어로 번역된 현대적 기도문들이 등장했습니다. 신학적 의미를 현대인에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새로운 형태의 기도들이 추가되며 오늘날의 사제 기도서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함께합시다 방 개설을 축하합니다.
노조 조끼를 입고 식사 중인 손님에게 벗어달라고 요구한 백화점 측 직원 태도가 논란입니다. 서울 롯데백화점의 보안요원이 식사하러 온 노동조합원들에게 공공장소에서는 에티켓을 지켜주셔야 한다라며 노조 조끼를 벗어달라고 요구해 논란입니다. 조끼에는 현대차 하청기업 해고 노동자의 복직을 요구하며 해고는 살인이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거죠? 하지만 논란이 확산하자 백화점 측이 노조에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기업 노동자들과 인권 단체들이 오늘 오후 노조 조끼를 입은 채 백화점에서 단체로 식사할 계획으로 알려졌는데요. 감정적인 사안으로 비화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어떤 복장을 했던 간에 백화점에 오는 손님이면 응당 출입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출입을 못하게 한 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제 3자에게 혐오감을 준다던가 백화점 영업에 현저하게 누가 된다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일 것입니다. 평화로운 사회를 바라는 시민입니다.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영국 평등과인권위원회(EHRC) 데이비드 아이작 의장이 최근 직장에서 종교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많은 신화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일터에서 성탄카드를 보내고 파티를 열어도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아이작 의장의 말은 EHRC가 지난 2일 직장 내 차별금지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드러난 기독교인들의 직장 내 역차별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영국은 2010년 직장과 교육현장 공공 서비스 분야 등 광범위한 공적 영역에서 종교 차별을 금지하는 평등 법안이 발효돼 그 영향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고용주에 따라서는 종업원들이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하거나 동성애를 반대하는 표현만 해도 제재를 하는 등 역차별을 받아왔다. 최근엔 성공회를 국교로 채택한 영국에서 성탄절에도 개인의 신앙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없는 것이냐는 불만이 표출돼왔다. 아이작 의장은 올 성탄절은 직장을 포함한 공공장소에서 즐거운 성탄 되세요(Seasons greetings)나 겨울 축제(Winterval) 등의 말은 가능할 것이라며 직장에서 종교 문제를 다루는 것은 상식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고도 영국이 선진국?